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삼국-통일신라의 문학/통일신라시대 문학/무용과 잡희

舞踊-雜戱

상고시대의 제천의식에서나 고구려의 고등신(高等神) 신앙에서나 종교적 신앙 제전에서 연극적 요소가 파생했다. 신라의 기악에서도 가무·미지무(美知舞)와 같이 노래가 없는 것이 있으며, 가무에서 피리·사내무(思內舞=辛熱舞)에서는 금척(琴尺)이라는 악공(樂工)과 무척(舞尺)이라는 무동(舞童)이 있어, 노래와 춤과 음악이 서로 어울리는 무용(舞踊)이나 무극(舞劇)이겠으나 이것이 민속화해서는 잡희(雜戱)라는 연극적 요소가 덧붙게 되었다. 이와 아울러 인형의 존재로서 인형극(人形劇)이, 상무의 기상으로 검무(劍舞)가 있었으며, 가면무(假面舞)도 있어 이런 것이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의 궁중무악이 되었다. 동오(東吳)에서 백제를 거쳐 일본에 건너간 기악(伎樂)도 그 한 예이다. 한편 신라에도 음성서(音聲署)가 있어 기악을 다스렸으니 그만큼 무악에 대하여 정제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 말에 된 최치원의 <향악잡영(鄕樂雜詠)>에 금환(金丸)·월전(月顚)·대면(大面)·속독(束毒) 산예 등이 있다 했는데, 그 때 이런 가면극이나 잡희가 성행했다. 이것이 고려를 통해 조선시대까지 내려오면서 연극문화의 전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