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시사/정치와 생활/국민의 정치참여/정치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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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행동
편집政治行動
특정한 정치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개인 또는 단체가 행하는 정치적 행위를 총칭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의제민주정치를 기본으로 하는 곳에서는 대표자를 선거하는 투표행동이 정치행동의 중심을 이룬다. 이 이외에 제도상 확립된 직접적인 정치행동이 있다. 즉 이니시어티브, 레퍼렌덤, 리콜 등은 간접민주제에 수반되는 결함을 시정하는 직접참가의
정치행동으로서 활용된다. 그러나 투표행동이나 직접참가만이 정치행동이 아니고 암살과 같은 테러리즘(공포수단)으로부터 민중의 폭동, 반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대중데모, 제너럴 스트라이크(총파업:general strike)와 같은 집단적 실력행동이 정치행동 본래의 모습이다.
정치의 역사는 원시적 실력(폭력)으로부터 법에 의한 정치행동으로 제도화된 역사이기도 하다. 오늘날 국민은 자신의 권리나 이익이 손상되는 경우, 공적 기관에 구제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구제수단으로서의 소송이나 청원제도가 정비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는 개인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데 개인의 실력에 호소할 방법 이외에는 없었다. 본래 실력의 세계에도 무엇인가의 규칙(rule)이 필요하다. 고대사회에서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는 동해보복(同害報復)이 그 원칙이었다. 재판수속에 의하지 않고 분쟁을 처리하는 이러한 방식은 결투나 복수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많은 폐해를 수반한다. 이것을 제한하는 운동이 1, 2, 3세기에 일어났다. 당시 평화운동이라고 불려진 이들 움직임 속에서 분쟁의 중재기관으로서의 국가권력이 정비되고 이윽고 실력에 의한 분쟁해결이 법에 의한 해결방식으로 바뀌어졌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48년 법률에 의하여 복수가 금지되고 개인권리의 침해의 구제는 국가의 재정(裁定)을 구하는 소송 내지 청원에 의한 것으로 되었다. 이와 함께 실력투쟁을 중심으로 한 정치행동도 참정권리라고 하는 형태로 제도화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직에 속하는 공무원에 대해서 일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한 정치적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국가공무원법 제65조).
원래 정치행동은 오늘날에도 권력투쟁적 성격을 띠고 있다. 한 사회에 있어서 한정된 인적·물적 자원의 권력적 배분을 둘러싸고 투쟁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배분방법을 유리하다고 하는 세력은 이것을 '체제'로서 유지하려 하고 이것을 불리하다고 하는 자는 현체제를 비판·변혁하고자 하여 '반체제'의 세력을 형성한다. 정치운동은 이와 같은 '체제'와 '반체제'세력 상호의 이데올로기와 역관계(力關係)에 의해 방향지어진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노동자계급이 반체제운동의 주력이 된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는 민족독립운동이 반체제운동과 결합하여 광범한 민족전선을 형성하고 복잡한 정치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학생단체나 일반 시민조직이 광범한 정치운동 가운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학생운동은 지금까지 후진국 특유의 현상이라고 생각되고 있었지만, 현재 세계 선진국 어디에서도 직접행동의 중심으로 되어 있다. 정치행동은 소송이나 청원과 달라서 집단적인 직접적 실력행사를 포함하기 때문에 권력측에 의한 단속이나 탄압을 받는 일이 많다.
정치행동을 표현하는 경우 때때로 경기용어나 군사용어가 전용(轉用)된다. 원래 군사상으로 쓰인 전략전술이라는 말이 정치정세의 분석과 정치투쟁의 조직이나 운동의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 쓰여지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운동의 진전과 함께 정치상의 신어가 생겨나는 일도 많다. 데먼스트레이션으로부터 '데모'가, 또 제너럴 스트라이크로부터 제네스트라고 하는 식으로 간결한 형태로 변형되는 것도 투쟁의 요청에 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청원
편집請願
국민 또는 지역주민이 국가 또는 지방 공공단체의 기관에 대하여 ① 권리침해의 구제, ② 공무원의 비위의 시정 또는 공무원에 대한 징계나 처벌의 요구, ③ 법률·명령·규칙의 제정·개정 또는 폐지 등에 관하여 직접 의견을 말하고 희망을 표시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와 같은 행위는 청원권으로서 헌법에 의하여 보장되고 있다(헌법 26조). 청원을 받은 관공서는 이것을 성실하게 처리해야 하고 누구를 막론하고 청원을 했다고 해서 어떠한 차별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청원법 11조).
청원은 국민의 소리를 정치에 반영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봉건사회에 있어서는 민원(民願)의 유일한 출구였다. 우리나라 조선시대(태종 2년)에는 대궐의 문 밖에 북을 달아 놓고 특수청원, 상소를 위하여 북을 쳐 임금에게 알리도록 했다. 이것을 신문고라 해서 청원의 전형적인 예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근대에 들어서 각국의 헌법은 청원을 국민의 권리로서 보장하였다. 영국의 권리장전(1689)이 그 기원이다. 프랑스 혁명 후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인정되면서 폭력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제한하고 청원에 개인의 기명(記名)을 필요로 했다. 그 이래로 청원은 온건한 방법으로 행해야 한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부터 서울에서는 주장관(主掌官), 지방에서는 관찰사에게 청원하고 임금에게는 신문고를 두드리는 방법으로 법제화되어 있었다. 해방 후 국권 회복과 더불어 청원권을 헌법에서 보장하고 청원법(1963. 2. 26)이 제정되었다.
청원은 관공서에 그 수리(受理)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일 뿐 그 내용에 관한 회답을 요구할 수는 없다.
오늘날 청원은 우리나라에서 민의상달의 한 방법으로서 상당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진정
편집陳情
중앙이나 지방의 공적 기관에 대하여 일반사람들이 실정을 호소하고 희망을 개진하는 행위를 말한다. 민의를 정치에 반영하는 방법 중의 하나인 점과 그 내용에 관한 상대방의 회답을 요구할 수 없는 점에서 청원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법령상으로는 청원과 구별된다. 청원은 일정한 요식을 갖추는데 진정은 그러한 것이 없고 다만 진정자의 단순한 희망만 표시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이나 지방의 공적 기관에 대하여 어떤 특정한 일에 관하여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해 주도록 공식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비공식으로 요청하는 행위도 널리 진정이라 부르고 있다. 구미 각국에서는 각종의 이익단체가 자기의 특수이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중앙이나 지방관서에 압력을 넣고 있다. 압력을 중심으로 정치에 작용을 가하는 방식을 '압력정치'라고 부른다.
진정정치는 일반주민이나 특수한 이익단체가 국가나 지방공공단체에 대하여 행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중앙관청의 권한이 강한 나라에서는 지방공공단체가 국가의 관계관청이나 국회에 진정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 각국에서는 진정이 보조금 획득에 유력한 무기로서 지방공공단체나 기업에 의하여 성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정정치는 주식(酒食), 기타의 물질적 급부(給付)와 결합하여 낭비를 수반할 뿐만 아니라 정치헌금을 통하여 관료나 정당의 부패를 가져오기 쉽다. 이와 같은 부패를 가져옴이 없이 민의를 정치에 반영시키기 위해서는, 정당정치의 확립이 빼놓을 수 없는 전제가 된다.
레퍼렌덤(국민투표)
편집Referendum(國民投票)
일반적으로 의회를 통과한 법안의 최종확정을 위해 그의 가부를 선거인의 표결에 부치는 것으로 '국민투표' 또는 '국민표결'이라고 한다. 법안의 전부에 관하여 선거인 투표에 부치는 제도를 의무적 또는 강제적 레퍼렌덤이라고 부른다. 오늘날에는 국가기관이 인정한 특정사항에 관해서 행해지는 임의적 또는 선택적 레퍼렌덤이 일반적이다. 이것을 정치적으로 보면 카를 뢰벤슈타인이 말하는 국가의사 결정과정이 되는 것으로 현대국가에 있어서 헌법의 제정과 개정의 경우에는 필수적으로 요하는 절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과거 유신헌법 당시에 비민주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으나 제8차 개정헌법에서 본래의 의미로 환원하였다. 제9차 개정헌법에 의하면 헌법개정안 발의권은 국회와 대통령에게 있고, 20일 이상의 공고기간과 국회의 의결(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 재적 3분의 2 찬성)을 거쳐 국민투표에 회부하여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으로 확정된다고 규정되어 있다(제128-130조).
직접참가
편집直接參加
간접민주제하에서는 의원이 선거민의 의지(意志)를 완전히 대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결함은 1930년대 이후 의회제도의 위기로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직접민주제의 사고(思考)에 의한 여러 가지 제도가 도입되었다. 특히 이니시어티브, 레퍼렌덤, 리콜이라는 직접 참가방식이 알려져 있다. 직접 참가방식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볼 수 있었지만 근대에 들어서 스위스나 미국 등에서 부활되고 오늘날에는 많은 나라들이 채용하고 우리나라에서도 해방 후 정부수립과 더불어 이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니시어티브(국민발안)
편집initiative(國民發案)
일정한 법안을 국민 또는 지역주민이 제안하는 것으로 국민발안 또는 국민창안이라 한다. 법안의 발의(發議)로부터 심의·표결까지 입법기관인 의회가 하는 것이 의회제의 원칙이지만 이니시어티브에서는 선거인이 법안을 발의할 수 있다. 선거인 일정수의 요구에 의하여 제안된 법안을 일반 유권자에게 제시하고 선거인 전체의 투표에 의하여 그 가부를 결정하는 경우를 특히 '직접 이니시어티브'라 한다 이에 반하여 제안된 법안의 동의거부, 또는 수정 제출 등을 의회가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간접 이니시어티브'라 한다.
플레비시트(인민투표)
편집plebiscite(人民投票)
레퍼렌덤의 일종. 정치상의 최종 결정을 인민표결에 부치는 점에서 레퍼렌덤과 마찬가지지만 법안의 가부가 아니라 그때그때의 정치상의 중대사건이나 중대방침의 결정에 임하여 의회를 통하지 않고 직접 인민표결에 붙이는 점에서 일반적인 레퍼렌덤과 편의상 구별한다.
플레비시트는 고대 로마 민회(民會)에 있어서의 결정방법이었다고 하지만, 현대적 의미로서 처음 사용된 것은 1790년 프랑스가 정복을 위한 전쟁을 폐기하기 위해서 행해졌다고 한다. 지금까지 사용된 플레비시트는 왕정의 부활이나 폐지를 결정할 경우에 많았다. 다만 나폴레옹(1802)이나 나폴레옹 3세(1851) 또는 히틀러(1933)가 황제나 총통에 취임하기 위해서 행한 플레비시트는 반혁명을 위하여 국민의 의지를 강요한 예이고,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동구 제국에서 왕정을 폐지할 때 사용한 플레비시트는 사회주의혁명의 한 수단으로서 사용된 예이다. 영토 변경할 때 플레비시트가 때때로 사용된다. 1955년 자를란트를 서유럽화할 때도 이 방법이 채택되었다.
똑같은 플레비시트라 하더라도 그것을 행하는 정치가, 적용되는 안건, 그에 동원되는 민중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서 현행 질서를 옹호하는 데에도 반대로 이것을 파괴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한 정책을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친 다음 국민투표에 붙칠 수 있다(헌 72조, 헌 89조 3호). 따라서 이 경우 국민투표에 부치느냐 않느냐는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다. 이 조항은 제7차 개정헌법에서 새로 설치된 것이다.
리콜(국민소환)
편집recall(國民召換)
공직자를 그 임기만료 전에 선거인이 투표에 의해서 해임하는 것, '국민해직' 또는 '국민파면' '해직청구' '해임투표'라고도 한다. 재판, 탄핵(彈劾), 행정처분에 의한 파면과는 달리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통제방법이다. 고대 그리스의 오스트라시즘(도편추방:아테네에서 僭主의 出現방지를 위해서 전 시민이 행한 비밀투표)에서 선례를 볼 수 있는데 근대적 의미의 리콜은 스위스의 캉통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에서도 20세기 초 진보적인 운동에서 주장되고 연방 및 주 재판관 내지 임명제의 공무원까지 리콜을 적용하였다. 유럽에서는 개개 의원의 리콜과 함께 의원 전체의 리콜이 행해지고 스위스의 초기 리콜도 이 타입이었다. 대통령 파면을 인정한 것으로는 바이마르 헌법(1919), 오스트리아 헌법(1929년 수정) 등이 있다.
한국의 직접참가제도
편집韓國-直接參加制度
--> 레퍼렌덤·플레비시트
직접참가제도의 문제점
편집直接參加制度-問題點
미국이나 스위스의 직접참가는 그 효과면에 있어서 반드시 진보적이라 할 수 없고 보수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 때문에 직접민주제의 도입으로 의회제도의 결함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통증을 느끼는 신념'이다(라스키)라는 견해가 있다. 그에 의하면 직접민주제보다도 대의민주제가 더 우수한 제도이다. 그 이유는 직접민주제의 잘못된 전제, 즉 의회는 항상 부패하고 국민은 항상 건전하다고 하는 신념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 판단이 언제나 건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건전한 의원을 선출하지 못한 유권자가 의원보다 건전한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점에 직접민주제의 모순이 있다. 또 직접참가에 의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국민의 모순에 찬 현실의 '의지(Will)'인 데 대하여 대의제에 의하여 대표하는 것은 경험이 없는 의지를 넘은 일반적 '사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확실히 현대와 같은 대규모 사회에서는 국민이 사상적으로 스스로 단련하여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어렵고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이나 일시적 흥분 속에 데머고그(선동적 선전)이나 매스 미디어(대중전달수단)의 폭위(暴威) 속에 중대사가 결정될 위험도 적지 않다. 특히 플레비시트에 있어서는 그 위험이 크다.
따라서 정치의 직접참가도 만일 국민이 사상적으로 높은 정치성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창조와 동시에 파괴를 가져오는 양날의 칼이 될 것이다. 민주정치의 이념은 직접민주제에 있으나 직접참가의 역할은 의연히 대의제를 보완하는 역할에 머무는 게 좋을 것이다.
집단행동
편집集團行動
정치행동은 보통 정당, 노동조합 혹은 대중단체, 학생조직, 민족주의 단체 등의 집단행동으로서 전개된다. 물론 정치행동은 요인의 암살이란 개인적 테러리즘(공포수단)과 같이 개인의 직접행동으로서 나타나는 것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조직적인 집단행동이어서 테러리즘 경우에서도 개인적 테러보다는 쿠데타나 조직적 공포수단의 행사나 탄압 등의 집단적 테러가 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자본주의사회에 있어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노동조건 유지·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자주적 단체로서 정치단체는 아니지만 때때로 정치운동의 주요한 부분을 이룬다. 노동운동이 때로는 총자본 대 총노동의 투쟁형태로 발전하는 일도 있다. 따라서 근대국가도 노동자가 사용자와 대등하게 교섭하기 위하여 단결된 노동조합이란 조직의 결성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53년 노동조합법이 제정되어서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가 인정되었다. 그 주요한 것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쟁의권(爭議權)이다. 특히 노동쟁의권은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최후의 투쟁수단이다. 스트라이크 외에 사보타주(태업), 보이콧(불매동맹) 등이 있고, 자본가측은 이에 대하여 공장문을 닫아 노동자에게 직장을 주지 않는 로크아웃(직장폐쇄) 등의 수단을 쓴다.
스트라이크(동맹파업)
편집strike(同盟罷業)
노동자가 쟁의행위로서 집단적으로 노동력의 제공을 정지하는 행위를 말한다. 학생들의 동맹휴학 등도 스트라이크라 부르지만 학생들의 수업거부 내지 포기는 노동자의 스트라이크와 그 의미도 사회적 역할도 전혀 다르다. 스트라이크는 그 목적에 따라 경제 스트라이크, 정치 스트라이크, 동조 스트라이크로 나눈다. 정치 스트라이크는 노동법규 개악 반대의 스트라이크와 같은 노동자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정치 스트라이크 외에 또 광범한 정치목적, 예를 들면 입법반대라든가 전쟁반대와 같은 정치 스트라이크가 포함된다. 또 형태에 따라 부분 스트라이크, 제너럴 스트라이크로 나뉜다. 피사용자의 일부만이 스트라이크에 들어가는 것을 '부분 스트라이크'라 한다.
스트라이크는 처음부터 정치적이었던 것은 아니고 자본주의 초기에는 열악(劣惡)한 노동조건과 무권리상태에 대한 자연발생적인 스트라이크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노동조합운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노동조합이 산업별로 조직되면서 스트라이크가 주요한 투쟁형태로 되었다. 독점자본주의 단계에서는 사용자도 노동조합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을 맺고 압력단체로 등장하여 권력을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조작한다. 따라서 노동자의 경제적 요구로부터 시작한 스트라이크도 권력에 대한 투쟁으로서 정치 스트라이크에 발전할 가능성이 많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이 금지되어 있다(노동조합법 12조).
제너럴 스트라이크(총파업)
편집general strike(總罷業) '총동맹 파업'이라고도 한다. 일정지역(주로 전국), 동일산업, 또는 동일직업의 전 노동자가 공동으로 동시에 행하는 스트라이크를 말한다. 총파업은 그 요구 성격에 따라 경제적 총파업과 정치적총파업으로 나누어진다. 경제적 총파업의 경우에도 그 정치적
의의는 크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후 사회주의자 노동조합 연맹인 '전평'에 의해서 계획된 일이 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국가 독점자본주의 밑에서는 노동조합이 때때로 총파업에 의한 대결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노동조합의 경제적 요구의 연장으로서, 최저임금제와 같은 사회정책 입법을 획득하기 위하여 혹은 노동조합을 억압하는 법규나, 노동자의 제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이 입안(立案)되는 경우이다. 또 정부가 침략적 전쟁을 개시하려고 할 때 이것을 저지하기 위한 총파업이 기도되고, 정부의 퇴진을 촉진할 수 있다. 정치적 총파업의 경우 쟁의행위로서의 정당성을 잃는다. 그러나 정치적 총파업은 대중민주주의하에서 정권에의 항의라고 하는 민의의 표현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대중행동
편집大衆行動
대중을 동원하여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행동을 총칭한다. 일반적으로 대중운동 혹은 대중의 행동은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 따라 그 형태도 다르다. 소박한 형태의 대중운동은 고대의 민중봉기나 중세의 농민반란 등의 형태로 존재하였다. 절대주의하에서는 피치자(被治者)의 의지를 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길이 막혔기 때문에 그 불만이 때때로 대중행동으로서 폭발하였다. 14세기 영국의 존·불의 반란, 16세기 독일 농민운동, 프랑스 혁명에 있어서 바스티유의 습격 등이 그것이다. 시민혁명 이후 대중의지는 국민대표란 이름으로 어느 정도 의회에 흡수되고 있지만 제한선거하에서는, 즉 1835년 차티스트 운동, 한국의 동학농민운동 등이 대중행동으로서 발생했다. 현대의 대중운동은 조직적이면서도 계속적이라는 점에서 그 이전과 다르다. 그러한 이유는 20세기에 들어와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해서 대량생산, 자본의 고도집중화, 독점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대중의 생활이해가 즉시로 정치화하는데 이르렀기 때문이다. 보통 대중운동은 국회에 압력을 가하는 대중동원으로서 행해진다. 그러나 이들 기성 대표제에 의하여 흡수되지 않은 생활이익의 실현을 목표로 대중은 자발적인 대중단체를 조직하고 중앙집권화한 정부에 대해서 직접적인 대중행동에 호소하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은 대중행동은 여론의 양에 의해서 지배자에게 공공연히 압력을 가하는 점에서 정당의 선거활동이나 압력단체의 압력행동 또는 계급투쟁적인 혁명운동과는 구별된다.
현재 의회 외의 대중행동은 의회제도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 이것은 의회를 사회로부터 유리된 폐쇄적 제도로 보는 것으로 이와 같은 원내 주의는 원외의 움직임에 좌우되지 않는 의회라고 하는 고전적 의회관에 선 것으로 지지할 수 없다. 문제는 대중행동이 공개성과 책임성의 원칙에 따라 민주적으로 컨트롤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 만일 의회와 정당이 이들 원외의 요구나 이해를 전체적인 정책확립에 통합할 수 있으면 원외의 대중행동은, 의회제도와 대립하기는커녕 그 기능을 보완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의회민주주의의 존재형태다.
노동조합과 같은 대중단체는 조직과 행동면에서 공개성과 민주적 통제에 따르기 때문에 단순한 압력활동을 넘어서 정치적 의지(意志)를 형성하는 데 주도권을 잡는 수가 있다. 이에 반하여 거대기업의 경우 그의 경제수단을 통하여 강대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공개성과 민주화에는 한계가 있다. 원래 대중단체도 집단적 규율을 결정하면 군중으로써 폭발한다. 나치즘은 군중이 갖는 비합리성을 극도로 이용한 예였다. 중핵적인 지도부에 의해서 추진되는 대중행동은 우발적인 군중의 폭발적 행동과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충분히 잘 조직된 대중행동이 현대국가권력의 지배에 대하여 수행하는 역할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데모(시위행동)
편집demonstration(示威行動)
개인이나 조직의 위력을 보이는 일체의 시위행동을 총칭하지만 시위를 위한 행진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여러 가지 요구를 쓴 플래카드를 들고 간결한 슬로건을 외치면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집회를 조직하고 그 결의를 지배자에게 과시하고 일반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위하여 행진하는 것이다. 데모에 참가함으로써 동료간의 연대의식이 높아지기 때문에 데모는 때때로 노동운동이나 대중행동의 피크나 전환점에 유효한 무기로서 활용되어 왔다. 데모에는 항의데모·진정데모 등이 있다. 특히 메이 데이는 단결과 연대(連帶)를 과시하는 국제적인 노동자의 제전으로서 매년 5월 1일 세계의 근로자가 직장을 쉬고 대중집회나 데모 행진을 한다. 우리나라는 매년 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정하고 집회를 가지지만 데모 행진은 하지 않는다.
데모는 대중운동의 가장 유력한 무기로서 오늘날 각국에서 특히 학생들을 중심으로 폭력적 데모로까지 발전되어 왔다. 집회와 데모가 발휘하는 영향력이 광범하고 심대하기 때문에 지배층의 데모대책도 극히 치안경찰적으로 되고 때로는 군대의 동원이나 위수령(衛戍令), 계엄령(戒嚴令)을 초래하기까지도 한다.
직접행동
편집直接行動
직접행동이라고 하면 암살이나 쿠데타와 같은 테러리즘(조직적·집단적 공포수단)으로 대표되어 왔지만 오늘날에는 학생단체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규모로 행해지고 주목을 끌고 있다.
직접행동은 원래, 노동자계급에 있어서 스트라이크가 그랬던 것처럼 중앙정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생산 및 경제생활을 자신들의 손으로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경제적 직접행동만이 아니라 정치적 직접행동이 폭력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주도권도 비판정당의 하부조직이나 노동조합 혹은 농민단체가 아니라 학생조직이고, 지도층이라고 해야 학생층과 장교밖에 없는 후진국에서가 아니라 선진국에서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만이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직접행동이야 말로 대규모적인 '관리의 시대'에 특징적인 현상으로 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급속히 진행된 기술혁신 가운데서 정치는 전통적인 권력지배로부터 새로운 기술적 관리에로 변한다. 국가도 자본주의, 사회주의 체제를 넘어서 종래의 권력국가로부터 관리국가에로 나아가고 있다. 거기에서는 노동자나 농민의 정치적 욕망도 어느 정도 이와 같은 관리질서(establishment) 가운데 흡수되고 이미 철쇄(鐵鎖)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고전적 개념은 사실상 의미를 상실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성질서로부터 학생·주부·노인·어린이들의 문제가 등장한다. 특히 학생집단은 자기의 소외감과 실존적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항의한다. 이와 같은 항의운동은 1960년대 후반 이후 기성 좌익정당의 퇴폐에 수반한 사회주의에의 환멸과 겹쳐 소위 '학생의 반역'이 세계적 규모로 전개되는 데 이르렀다. 학생집단은 다음 세대를 선취하는 사상적 단체로서 현재의 관리질서에 대한 불신에의 직접행동의 기폭제(起爆劑)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학생집단의 위력이 오늘날 대학문제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한 세대의 마무리인가 혹은 새로운 세대의 시작인가는 정의내리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정치행동이란 항상 전통적인 판단 체계에서는 파악할 수 없게 된 상황 가운데 자기 자신을 투입하고 거기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획득해 가는 조직적인 협동작업이기 때문에 새로운 정치이념을 준비하지 않고는 현대의 직접행동의 의미를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