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시사/정치와 생활/국민의 정치참여/정치의식



정치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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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意識

오늘날 정치의식이라는 말이 빈번히 쓰여지게 되었으나 그것은 정치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단순한 의식만의 문제로서 그치지 않는다. 정치에 대한 것의 사고방식의 기초에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정한 성격과 태도의 문제가 있으며 또한 그에 따른 일정한 행동양식이 있다.

따라서 정치의식이란 말이 사용되는 경우에도 그것은 정치에 대한 태도나 사고방법·느낌 및 행동방법 등을 한데 뭉쳐 말하는 일이 많다. 어느 것이나 그것은 정치에 있어 인간의 주관적·내면적인 측면을 문제로 하는 것으로서 더구나 그것은 극히 실증적(實證的)·구체적인 행동의 관찰과 의식의 조사를 통해 그러한 측면을 명확히 하려 한 최근의 소위 행동과학적인 학문방법에 있어 강조되는 개념이다.

정치행동·정치의식·정치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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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行動·政治意識·政治文化

정치의식이라는 말을 널리 이해하면 그것은 최근의 정치학에서 '정치행동'이라 불리우고 있는 영역에 포함되든가 또는 포개져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은 어떤 사람의 정치에 관한 행동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의식 및 사상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의식의 조사에서 행동하는 방법이 이해되고 또 행동의 관찰을 통해서 의식이 추정될 정도로 이 양자는 불가분이다.

그러나 행동과학적인 어프로치를 강조하는 최근의 유럽과 미국의 정치학에서 '정치(적) 문화'라 하는 개념이 빈번히 사용되게 되었다. 이것도 개인의 정치적 행동을 규정하는 것 같은 어느 사회의 문화적 특성, 소위 그 사회의 문화가 정치에 대해서 취하는 일정한 태도나 신념이나 정서를 의미하여 정치과정의 심리적·주관적 측면을 나타내는 것으로 된다. 따라서 이 개념도 정치의식이라는 개념과 그 의미내용에 따라서 어느 정도 중첩되어 있으나 정치적 문화의 편은 어느 사회의 특유한 전통적·집합적인 공통의 의식형태를 문제로 하여 혹은 또 사회의 일반적 문화와의 관련을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정치의식의 편은 개개인의 의식을 보다 많이 문제로 삼는다고 하는 뉘앙스의 상위점이 인정된다.

정치문화는 이때까지 정치적 이데올로기라든가 국민성이라고 불려져 온 것을 보다 엄밀히 과학적으로 취급하기 위하여 필요해진 개념이기 때문에 각각 흩어진 의견이 아니고 일정한 구조 내지 체계를 가진 공통의 것으로 보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그것은 개개인의 정치의식의 조사와 분석을 통하여 명확히 할 수가 있다. 흔히 정치의식이라는 말은 우리가 즐겨 사용하게 된 술어의 것처럼 같은 종류의 문제를 취급하고 있는 유럽과 미국의 서적을 보아도 확실히 이것에 부합되는 기본적 술어는 눈에 뜨이지 않는다. 이것과 비슷한 것으로는 이미 말한 '정치행동'·'정치(적) 문화' 또는 '정치적 의견' 등이 있다.

정치참가와 정치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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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參加-政治意識

정치참가와 정치의식이란 어떠한 관계에 있는 것인가. 정치참가의 형태와 질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통상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1) 사회적 요인 ― 사람을 정치참가로 향하게 하고 혹은 거기서 도피하게 하는 사회적인 여러 요인으로 교육·직업·수입·연령·인종·종교·성별·주거 등을 비롯한 사회적 환경을 생각하게 된다.

(2) 심리적 요인 ― 정치참가를 결정하는 것으로서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동기·태도·성격 등의 분석이 필요하며 더욱이 이 가운데 그 사회의 대다수에 공통된 성격적 경향성(傾向性) 소위 '사회적 성격'이나 또는 개인에게 있는 특유한 성격적 특성 등이 정치참가에 관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 정치적 요인 ― 정치참가를 좌우하는 정치적 요인이란 그 사회의 정치체제의 성격, 소위 정치에 관한 제도·상황·정보 등을 가리킨다.

(1) 및 (2)가 정치참가를 규정하는 비교적 영속적·간접적인 요인이라고 한다면 (3)은 반대로 그 직접적인 원인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정치에 참가하는 경우에 그 사람이 어떠한 사회적 배경과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의 분석과 함께 그 사람이 정치적인 문제와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주관적의식의 분석이 불가결하다. 그래서 이 사람이 정치적인 것을 보는 방법을 그 사회적 배경이나 심리적·성격적 특성에 관련시켜 이해하고 거기에서 그의 정치참가의 정도와 그 방법을 분석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로 정치참가의 연구에는 정치의식의 분석이 불가결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치의식의 문제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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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意識-問題領域

정치의식은 광의(廣義)로는 정치행동의 문제영역과 겹치나 좁은 의미로는 정치에 관한 사고방식이나 느끼는 점, 즉 정서·인식·평가·태도 등을 문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종래 정치적 이데올로기라 불리어 온 것과 밀접하게 관계된다. 그러나 정치적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경우에는 예를 든다면 민주주의·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보수주의·공산주의라고 말하는 하나의 줄거리를 가진 체계적 사상을 가리키며 그 내용과 사회적 배경 및 사상적 의의 내지 진위를 문제로 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에 대해 정치의식이라고 하는 경우에는 개개의 구체적인 정치에 관한 의견을 취급할 뿐 아니라 그러한 의견이 대체로 어떠한 사고방식이나 태도 혹은 성격에 근거하고 있는가 하는 심리학적인 분석에 중점(重點)이 놓여져 정치에 있어서의 사상과 인간, 의식과 퍼스낼러티(개인의 성격·개성)와의 관계가 해명된다. 그래서 그러한 연구를 통하여 개인·국가·계층 등의 의식의 경향을 잡아 그것을 기본삼아 장래의 정치활동을 추측할 수 있는 확실한 지식을 얻는 일이 정치의식의 연구의 목적이다.

정치의식의 피라미드 형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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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意識-Pyramid型構造

정치에 대한 의견과 태도 등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사한 사람들은 정치의식이 어떠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가설(假說) 내지 모델을 만들고 있다. 이것은 분석이나 이해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실제의 조사를 근본으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가설에 지나지 않으므로 현실적으로 보아 맞지 않는 데가 있으면 자유로이 그것을 시정하여 더욱 완전한 것으로 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정치의식의 구조의 모델로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아이젠크(영국의 사회심리학자)가 만든 것이 있다. 그것에 의하면 정치의식은 피라미드 혹은 위계층형(位階層型)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 피라미드 위쪽으로 가면 갈수록 통합적·포괄적으로 되고 아래쪽으로 가면 갈수록 개별적이고 흩어진 의견이라는 형태로 된다. 그의 『정치심리학』에 있는 모델을 차용한다면 그림 1과 같다.

개별적 의견의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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個別的意見-level

정치의식 구조에는 네 가지의 다른 단계 내지 레벨이 있으며 그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그 정치적인 구조의 제일 밑의 단계에는 제각기 흩어진 여러 가지의 의견이 있으며 그러한 의견은 상호간 아무런 연결도 없고 또 그 의견을 품는 본인의 성격적 특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다른 기회에 그 본인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해서 같은 의견을 말한다고는 할 수 없다. 즉 그때그때 변한다고 하는 일관성이 없는 여러 가지 의견으로서 그러한 의견은 전혀 영속성이 없는 그때만의 것이므로 이것을 근거로 해서 즉시 그 의견을 갖는 본인의 퍼스낼러티나 이데올로기를 잡을 수는 없다. 이러한 레벨의 의견이 개별적(특정) 의견이다.

습관적 의견의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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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慣的意見-level

개별적 의견의 레벨 위에 속하는 고차(高次)의 레벨이 습관적 의견의 레벨이라 불리우는 것으로서 이것은 그 본인이 품은 어느 정도 일관된 영속적인 의견으로서 그 의미로는 본인의 성격적 특성을 어느 정도 나타내는 것 같은 의견이다. 즉 예를 들면 다른 기회일지라도 마찬가지로 말하여지는 것으로서 개별적 의견과 같이 급히 되는 대로 변해 버리는 일은 없다. 즉 안정된 의견이고 따라서 대략 정확히 이것을 잡을 수 있다.

태도의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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態度-level

보다 고차적(高次的)인 레벨로서 한 계단 위에 태도의 레벨이 있다. 이 레벨에는 어느 문제에 대하여 하나의 어느 정도 안정된 의견이 있을(그것이 습관적 의견의 레벨이다) 뿐만 아니라 그 문제에 관하여 따로이 의견이 많은 경우 똑같은 확실한 의견이 존재하여 이것들의 여러 가지 의견이 짜여져 이 문제에 대한 일정한 태도가 형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그러한 태도의 예로서 '반(反)유대주의'를 들 수가 있겠다. 즉 이 레벨에는 의견은 고립적으로 흩어진 것으로서 생기(生起)하는 것이 아니고 같은 문제에 대한 다른 여러 가지 의견과 밀접히 관련되어 일정한 구조를 나타내게 된다.

이데올로기의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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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ologie-level

그러나 이러한 태도도 또한 단독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든다면 아이젠크가 말한 바에 의하면 '반유대주의'라고 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 밖에도 종교에 호의적인 태도, 매질이나 사형(死刑)을 시인하는 엄벌주의의 태도, 어린이의 교육에 대한 엄한 태도, 자신이 속하는 민족이나 국가를 훌륭한 것으로 믿는 애국주의적·자민족(自民族) 중심적 태도 등이 서로 맺어져서 한덩어리를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태도의 종합적 통일체제를 '초태도(超態度)' 혹은 '이데올로기'라고 편의상 부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태도에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소위 '보수주의(保守主義)'의 초태도 내지 이데올로기이다. 이리하여 정치의식은 피라미드 구조로 모델화되어 있다. 위로 오르면 오를수록 포괄적·통합적 구조를 나타내고 숫자상으로도 점점 소수로 짜여진다.

각 레벨의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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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level-調査

이상의 정치의식 구조의 모델로 나타난 각 단계 내지 레벨은 실제의 조사나 측정의 방법과 부합한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단순한 '세론조사(世論調査)'라고 불리우는 것은 그림 1에서 설명하면 제일 밑의 레벨의 의견을 말한다. '태도 측정'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예를 들면 앞에서 말한 '반유대주의' 태도를 조사하는 경우와 같이 유대인에 관한 얼마간의 질문을 맞추어 의견을 묻고 그 결과로 해서 피질문자가 어느 정도 '반유대주의'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를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단계의 측정이라고 하면 그것은 더 한층 복잡한 방법이 필요하게 된다. 즉 어떤 의견과 또 다른 의견 혹은 어떤 태도와 다른 태도의 사이에 어느 정도의 친근성 혹은 상관관계가 있는가를 측정하고 그 '상관계수(相關係數)'를 구해서 그런 것들을 매듭짓는 것 같은 소위'인자분석(因子分析)' 등의 방법을 써서 태도나 이데올로기의 존재 및 성격이 검출된다. 이리하여 정치의식은 어느 정도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R인자와 T인자 R因子-T因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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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식을 분석할 때에 아이젠크(영국의 사회심리학자)가 사용한 또 하나의 유명한 도식(圖式)이 있다(( 그림2). 즉 여러 가지 태도 사이의 상관관계를 '급진주의-보수주의'라고 하는 횡축(橫軸)과 '굳은 심성(心性)-부드러운 심성'이라는 종축(縱軸)과를 좌표축(座標軸)으로 하는 평면상의 점으로 나타내고 그것에 의한 태도·이데올로기·퍼서낼리티(개인의 성격·개성)의 관계를 명확히 하려 한 것이다. 이중 '급진주의-보수주의'의 척도를 아이젠크는 R인자라 부르고 '굳은 심성-부드러운 심성'의 그것을 T인자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R인자편은 우리들이 통상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정당에 관련해서 쓰여지고 있는 용법과 대체로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비교적 이해가 용이하나 '굳은 심성-부드러운 심성'의 척도를 나타내는 T인자의 편은 설명을 요한다. 이는 본래 윌리엄 제임스(1842-1840:미국의 철학자 심리학자. 프래그머티즘의 수립자)에 의해 사용된 구별로서 그것을 아이젠크는 제임스로부터 차용해 급진주의-보수주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데올로기나 태도의 특징을 나타내고자 시도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인자가 서로 독립적이라는 것은 각각 다른 좌표축으로 나타나 있는 것으로도 표명되어 있다. T인자는 퍼서낼리티의 기본적 특성이 사회적 태도의 면에 투사(投射)된 것으로 설명된다. 아이젠크에 의하면 '부드러운 심성'에 가까운 의견이나 태도는 윤리적·도덕주의적이고 초자아(超自我)·이타적(利他的)인 가치 등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에 대해 '굳은 심성'을 구성하는 의견과 태도에는 현실주의적·세속적·이기적인 가치에의 집착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것의 구별 내지 상위는 정당의 정책노선의 상위와는 전혀 별개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사상적으로는 같은 우(右)라고 해도 '부드러운 심성'의 종교단체가 있고 '굳은 심성'의 우익단체가 있다. 그러므로 급진·보수 혹은 중간이라고 하는 사회적 태도는 T인자 즉 그 사람이 갖는 이러한 성격적 특질과 결합되어 여러 가지 표현상태를 취하게 된다. 예를 들면 R인자에서 말하자면 공산주의자는 급진, 파시스트는 보수의 편에 서게 되는데 양자는 상당한 간격을 볼 수 있으나 T인자편에서 보는 경우에는 공산주의자와 파시스트는 상당히 비슷해서 어느 쪽이나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리하여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는 그 이데올로기의 상위와 함게 퍼스낼러티의 유사성이 지적됨으로써 더욱 엄밀히 위치가 지어진다(( 그림3).

전환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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轉換-可能性

R축으로 쏠린 이동은 일어날 수가 있다. 즉 급진주의자가 보수주의자로 되든지 그 반대로 보수주의자가 급진주의자로 되든지 하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T축으로 쏠려서 이동이 생기는 일은 드물다. 그것은 T인자(因子)는 개인의 기본적인 퍼스낼러티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번 형성된 기본적 퍼서낼러티는 용이하게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좌우의 사이에 놓인 사상적 전향(轉向)은 있을 수 있으나 권위주의자가 민주주의자로 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시중의 군국주의자와 국가주의자가 전후(戰後)에 민주주의자로 전향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마 사이비 민주주의자(似而非民主主義者)에 불과할 공산이 크다.

외향성·내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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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向性·內向性

종래의 심리학에 의한 성격형(性格型)의 분류로 상당히 파고 들어가 연구된 것으로서 외향적 성격과 내향적 성격의 구별이 있다. 아이젠크는 이 구별과 그가 말하는 '굳은 심성'과 '부드러운 심성'의 구별이 극히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것을 실증하고 따라서 외향 ― 내향적 성격에 관한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T인자(굳은 심성-부드러운 심성)의 구명(究明)에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외향성의 사람은 자기의 관심과 본능적 에네지를 외측에 즉 객관적 실존(槪觀的實存)의 세계에 돌리고 내향성은 내측 즉 자기자신 쪽으로 향한다. 외향성에 있어서는 주체는 객체보다 못하다고 의식하고, 주관적인 측면에는 제2차적인 중요성도 주지 않는다. 그는 외계(外界)를 높이 평가하고 육체적인 활동에 있어서는 활발하다. 이에 대하여 내향성은 객관적 실재를 자아(自我)에게 따르게 하려고 한다. 그의 활동은 주로 지적(知的)·정서적 영역에서 행하여진다. 그러나 외향형은 히스테리든가 정신병이든가 하는 아무튼 도덕률(道德律)이 무시당한 것 같은 무사회적(無社會的)인 경향에 빠지기 쉽다. 여기에 대해서 내향형은 불안·초조·강박관념 등의 병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젠크는 그가 말하는 '굳은 심성'이 외향적 성격의 사회적 태도면에의 투사(投射)이며 '부드러운 심성'은 내향형의 투사라고 하는 것을 지적하여 정치의식과 신경증(神經症)과의 관계에까지 고찰을 확대했다고 말할 수 있다.

권위주의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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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威主義的性格

나치즘의 정치심리학적 분석의 연구를 통하여 나치즘에 대한 학문적 저항을 시도해 보던 학자들에 의해 소위'권위주의적 인격(성격)'의 연구가 그때마다 진행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저명한 것으로는 아도르노(1903-69:독일의 철학자·사회학자. 미국으로 망명)와 프롬(1900-1980:독일의 정신분석학자·사회학자. 미국으로 망명)의 것이 있다. 아드르노와 그 협력자들은 반(反)민주주의적인 성격으로서 권위주의를 발견하는 한편 그 정도를 재는 실증적(實證的)인 방법을 발전시킨 것에 반해서 프롬의 편은 정신분석적 수법을 써서 권위주의가 사디즘과 마조히즘(被虐性)과의 결합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권위주의를 별명 '사도마조히즘'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권위주의적 성격이란 '자유로부터의 도피'(인간이 고독과 불안에 견디면서 통일이 잡힌 인격을 형성해 간다고 하는 의미에의 자주성을 버리는 것)라고 하는 잘못된 방위기제(防衛機制)의 산물(産物)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아이젠크는 아드르노 등이 처음에 파시스트의 정도를 재기 위해서 만든 소위 F척도(尺度)를 더욱 일반적으로 '권위주의의 척도'라 부르고 그것이 '굳은 심성'을 재는 척도와 실질적으로는 비슷해지고 있는 것을 나타냈다. 이리하여 T인자의 연구는 다시 한번 그 시야를 확대함에 이르렀다.

학습과 조건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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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習-條件-

최후로 R인자와 T인자가 후천적으로 획득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 것들의 발전은 중추신경계(中樞神經系)에 무엇인가의 변이가 생겼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R인자와 T인자는 각각 다른 타입의 신경적 변이(變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타입의 변이는 이것을 '학습'과 '조건붙이기'라고 이름지을 수가 있다.

학습의 경우는 보상(報償)과 가벌(加罰)의 영향을 통해 행동을 변동시키는 경우에 쓰인다. 즉 그것은 자발적인 반응으로서 고통을 피해 쾌락을 구한다고 하는 소위 쾌락원리(快樂原理)에 근거하여 발달한다. 이러한 학습은 예를 들어서 반유대주의 등과 같은 급진주의-보수주의의 여러 태도의 근저(根底)에 있는 것과 같고 따라서 이러한 태도와 사회계급이나 사회적 지위와의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을 볼 수 있다. 이것에 반해 '조건붙이기'는 예를 들면 공격성 등과 같이 비자발적(非自發的)인 정서적 반응을 통하여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것이고 T인자에 관련하는 태도의 근저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해서 태도의 측정은 심리학상의 소위 '학습이론'하고도 결부되어서 정치의식의 해명에 많은 빛이 던져지게 될 것이다.

계층과 정치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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階層-政治意識

계층 여하에 따라 정치에 대한 사고방식이 다른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엄밀히 말해서 어떻게 다른지는 최근의 조사 기술의 발달에 따라 처음으로 명확히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정치의식은 정치행동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므로 투표행동의 조사 등도 정치에 대한 태도나 의견의 연구에 직접적으로 유익한 데가 많다. 그런데 소속하는 사회집단·계층이 다르면 정치의식도 달라지지만, 그렇다면 그 사회집단·계층을 어떠한 관점에서 나누는가가 문제가 된다. 통상 소득·직업·사회적 지위(위신) 등을 고려한 사회·경제적 계급(계층)의 분류가 형성되나 그런 경우에도 이것을 몇 개의 계층으로 나누는가는 경우에 따라 일정하지가 않다. 또 교육정도나 학력에 의한 분류, 연령이나 세대의 상위에 따른 분류, 남녀의 성별에 의한 분류법, 거주지에 의한 구별(예를 들면 시가지나 교외 등), 종교의 차이에 의한 분류법 등이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종교에 기한 분류법은 그다지 쓰여지지 않고 있으며 도시다 농촌이다 하는 식의 분류가 중요시되고 있다. 어느 것이든 제일 잘 쓰이는 지표(指標)는 소득·학력·연령·성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 최근에는 새생활 형태로서의 단지(團地) 등의 정치의식을 특히 조사한다고 하는 것도 열심히 행하여진다.

정치적 태도와 사회적 지표의 상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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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的態度-社會的指標-相關度

위에서 열거한 지표 가운데 어떤 몇 가지 사이에는 일정한 상관관계가 인정된다. 예를 들면 소득과 직업(사회적 지위)과 학력의 사이에는 상당히 높은 상관도가 보통 인정되고 있으며 더욱 그것이 어느 일정한 정치적 태도와 관계되고 있는 것이 지적된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보수당 지지가 많고 낮으면 낮아질수록 노동당 지지가 늘어난다. 자유당 지지에 관해서는 사회적 지위와의 상관도가 낮고 어떤 지위의 사람들에게도 대체로 비슷한 퍼센테이지로 지지되고 있다. 다음에 자기가 어느 계급에 속하는가를 자기가 결정지워 만든 사회계급의 분류와 정당지지의 관계를 보아도 대개 사회적 지위의 경우와 같은 결과가 나와 있다. 학력을 통해서 본다면 학력이 높을수록 보수당 지지가 늘고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노동당 지지가 많아진다. 종교의 경우는 지위와 학력만큼 상관도를 갖지 않으나 국교회(國敎會)에 소속하는 쪽에 보수당 지지가 많고 비국교도(非國敎徒)와 무신론자의 편에 혁신지지(革新支持)가 많다. 또한 연령면에서 본다면 상식적인 추정(推定)을 뒷받침하듯이 연령의 증가와 더불어 보수지지가 많아진다. 성별의 경우는 반드시 확실한 경향을 나타내지 않으나 여성의 편에 보수지지가 조금 많으며 또한 D. K.(모른다·알 수 없다) 층이 역시 어느 정도 많다. 이러한 조사의 결과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이젠크(영국의 심리학자)에 의하면 영국에서는 이런 것의 지표를 짜맞추는 것에 의해서 어떤 사람의 정치적 태도가 보수지지인가 혁신지지인가 대체로 60-70%까지는 결정된다고 한다. 이런 방법은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에도 상당히 닮은 결과를 낳는 일이 센터스(1912-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등에 의해 실증되고 있다.

정치적 관심과 참가의 상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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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的關心-參加-相關度

정치적 지식이 많은 사람은 정치적 관심도 왕성하며 따라서 정치참가의 정도도 크다는 정도로 보통은 이런 것들 사이에는 극히 높은 상관도가 있다. 이러한 것은 렌(미국의 정치학자) 등등에 의해서 미국에서 실증되고 있다. 더욱이 지식·관심·참가에 있어서 열심인 사람일수록 자기의 정치적 효율감(效率感) 즉 자기의 하는 일에 의미가 있다고 하는 자신을 가지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자기의 정치적 효율에 자신을 안 가지는 사람일수록 정치에 관여하지 않게 된다.

1956년의 대통령선거에서는 높은 효율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믿는 사람의 91%가 투표한 것에 반하여 낮은 효율밖에 믿지 않는 사람은 52%밖에 투표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타나 있다. 정치적 효율감은 수입·사회적 지위·정치적 겸허·그리고 특히 교육정도에 비례해서 상승한다고 말한다. 더욱이 높은 효율감을 가진 사람은 정치뿐 아니라 사회의 여러 가지 집단이나 활동에도 관계하여 지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 것이다. 또 그러한 사람은 그 사회에서 극히 적은 소외감을 갖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치적 효율감과 정치적 소외감은 양극(兩極)을 이루어 상호간에 대립한다.

계층과 정치적 관심도의 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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階層-政治的關心度-相違

미국에 있어서의 조사를 기초로 하여 R. 렌은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계층에서 정치적 관심과 참가의 정도도 낮아진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래서 그 이유로 다음과 같이 몇 가지를 열거했다.

① 저계층 중 특히 여성은 정치활동을 위한 여가가 얼마 없다. ② 저계층 사람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따라서 자기의 '정치적' 환경에 대한 지배력을 느끼는 일에는 뒤떨어진다. ③ 높은 계층의 사람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잃게 되는 일에 대한 협위(脅威)를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저계층에 비해서 보다 많이 정치에의 동기가 된다. ④ 높은 계층은 정책이 자기의 이해에 어떻게 관계되는가에 따라서 더욱 민감하다. ⑤ 저계층에는 보다 많은 자신과 경험의 결여를 볼 수 있다. ⑥ 저계층에 있어서의 어린이 양육방법에는 자기를 사회적으로 주장하는 것 같은 성격육성에 있어서 빠지는 것이 있다. ⑦ 높은 계층의 사람에게는 '특권은 책임을 수반한다'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 ⑧ 저계층은 보다 많은 사회적 압력에 따른다. ⑨ 저계층은 조직과 집단에 속하는 일이 보다 적고 따라서 친밀한 우인관계도 적다. ⑩ 저계층은 추상적 문제를 논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또 환경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일에 있어서도 뒤떨어진다.

여론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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輿論-役割

정치와의 관련에서 여론이라고 하는 경우에는 여론형성과 정책결정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부각된다. 여론은 정책결정에 대해서 2중(二重)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정책결정에 대한 압력으로서의 역할로서 여론이라고 하는 형태로 사회의 이익이 표출(表出)되고 그것이 정책 속에 스며들게 하는 일이 있다. 민주주의는 때때로 여론에 의한 정치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여론이 갖는 이러한 역할을 강조한 것에 불과하다.

다른 면에 있어서 여론은 오늘날에는 정부 기타의 권력에 의해서 조작의 대상으로 되는 면을 가지고 있다. 이 목적을 위해 정부에 의하여 잘 사용되는 수단으로는 공보활동·선전·검열 및 정보관리의 새로운 방법 등이 있다. 최근에는 정부 그 자체가 여러 가지 여론조사를 실시해서 그 결과를 시책(施策)의 참고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조사의 방법 여하에 따라서는 자기가 바라는 것 같은 결과를 어느 정도 낼 수도 있으므로 여론조사의 이름을 빌린 여론조작(輿論操作)을 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정부라 할지라도 여론을 고려하거나 조작하거나 하지 않으면 정책결정을 유효하게 수행할 수 없다는 의미로서는 여론은 오늘날 정치에 대하여 압력이 되고 굴레가 되며 방벽(防壁)이 되고 또한 조작되는 도구이기도 하다.

정치적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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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的意見

정치에 관한 여론을 간단하게 정치적 의견이라고 부르는 일이 있다. 정치적 의견은 민주주의의 정치과정에 있어서는 논쟁할 수 있는 대립적 의견이고 합리적 설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관념이 아니면 안 된다. 즉 의논과 타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면 합의에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신앙이나 신념과 같은 것은 폭력이 나오지 않으면 절대적인 권위에 의해서 귀착되지 않으면 안 되고 정치적 의견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이러한 뜻에서 소위 '컨센서스'(기본적 일치)와 여론 내지 정치적 의견이 구별된다. 전자는 사회의 근본에 있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서 후자의 컨센서스의 위에 형성되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퍼블릭 오피니언(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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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Opinion(麗輿論)

여론은 영어로 퍼블릭 오피니언이라고 불린다. 그것은 퍼블릭의(혹은 퍼블릭한) 의견이다. 즉 국가와 정부의 의견이 아니고 사회와 시민 사이에 일어난 자생적(自生的)인 의견이고 '공중(公衆)'의 의견이다. 그것은 또 '공공(公共)'의 의견으로서 정책결정에 관계하는 공공적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지적되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이 그것은 '공공'의 의견이어서 사회적 이해와 요구가 확실하게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전에는 퍼블릭 오피니언이라는 경우의 '퍼블릭(公衆)'이 실질적으로는 '중간계급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 때도 있었으나 읽기 쓰기 능력의 증대와 커뮤니케이션 매체(媒體)의 발달에 의해서 그 한계가 무너지고 또한 조사기술의 발달에 의해서 온갖 계층의 의견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여론은 한층 정치적 의의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작가능성의 증대에 의해((여론의 역할) 여론은 사회의 어느 특수이익의 가면(假面)으로 될 수 있는 위험성도 증대했다.

여론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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輿論-

이전의 민주주의적 이론으로는 여론은 시민 사이에 있어서의 의견의 자유경쟁에서 생겨났으며 이렇게 해서 생긴 여론이 정당이라고 하는 렌즈를 통해서 의회라고 하는 스크린 위에 충실히 비친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중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마치 경제세계(經濟世界)에 있어서 처음 의견의 자유경쟁시대가 끝나고 매스컴 기타에 의한 의견의 독점 내지 과점상태(寡占狀態)가 출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거기서 매스컴에 의한 일방적인 흐름을 시정하고 또한 그것을 우리들 사이에서 정확히 받아들여 그것에 우리들의 요구를 가공하여 다시 돌려 보내기 위해서는 점점 오피니언 리더(여론지도자)의 존재가 중요하게 되어졌다.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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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leader-役割

현대의 우리들은 매스컴의 압력에 시달려서 무방비하게 보이지만 매스컴이 주는 것을 단순히 소화하지 못하는 상태로 삼켜 버리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엄밀히 맺어진 인격적 접촉을 보장하는 제1차 집단(직접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접촉을 가지고 잇는 사람들이 '우리들의 의식'에 기해서 친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소집단)과 거기에 놓인 여론지도자의 휠터를 통하여 정보가 선택된다고 하는 경과를 거친다.

이렇게 해서 인격간의 대화과정이 매스컴의 과정과 중첩되어 있어 그것이 카츠(1903- :미국의 사회학자)와 라자스페르드(1901-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의 소위 '커뮤니케이션의 2단(二段)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여론을 매스컴의 피조물(被造物)로 하지 않기 위하여서는 이러한 2단의 흐름(매스 커뮤니케이션과 미니 커뮤니케이션)을 여과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여론과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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輿論-政策

정치에는 한편으로 정부의 '정책결과과정(政策決定過程)'이 있지만 그 정책에 여론이 뒤따르는 것이 요구된다. 그 때문에 다른 편에서 '여론제출과정'이라 불리우는 것이 없으면 안 된다. 즉 일정한 희망과 요구를 포함한 의견이 정책결정자에게 전하여지고 그것이 고려되도록 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여론제출과정은 더욱이 '여론형성과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세 가지 과정이 상호간에 맺어져서 순환관계가 성립하는 곳에 민주주의적 정치과정이 있다고 말한다. 이 과정 속에 정치적 의견을 따라 여러 가지 역할을 갖는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오피니언 리더'는 매스미디어(TV·방송)와 같은 비개인적인 경로(經路)에서 흘러나오는 관념과 정보를 개인적 접촉이 가능한 퍼스널 커뮤니케이션(예를 들면 회화)의 통로에 릴레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오피니언 보지자(保持者)'라고 불리우는 것은 어느 문제에 관해서 의견을 품고 있으며 개인간에는 이야기하는 일도 있으나 그것을 매스컴 등에 실어서 흘리는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일이다. 여기에 대해서 '오피니언(여론)형성자'는 그 사회적 지도성과 영향력에 의해서 매스커뮤니케이션 등을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사람들의 일을 가리킨다.

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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輿論調査

최근에는 조사의 기술이 진보하여 세론의 실태가 파악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론조사의 결과로서 나온 다수의견이 마치 있어야 할 여론인 것 같은 착각을 사람들에게 주어 지금까지 의견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도 거기에서 배우는 것 같은 경향이 조장(助長)되는 것은 경계해야 될 것이다. 더욱이 정책결정자의 편에서도 조사결과의 다수의견을 무시해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고려하는 것은 좋지만 그와 함께 지나친 겁쟁이가 되어 어느 정도 단호한 장기정책을 수행하는 것이 어렵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의견의 방향과 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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意見-方向-强度

여론을 분석할 때에 특히 유의할 것은 의견이 가지고 있는 '방향'과 '강도(强度)'의 두 측면이다. '방향'이란 의견에 포함되어 있는 찬성 또는 반대의 요소를 의미한다. 그것이 가장 명확한 모양으로는 질문에 대하여 '예' 또는 '아니오'라는 답변으로 나타나지만 그 이외에도 '아마·대개'라든가 '경우에 따라' 등 소위 '한정된 회답'이 있다.

다음에 사람들이 어떤 의견을 갖는 경우에 그 의견에 대한 확신의 도가 틀리는 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조사의 경우에도 '강력히 찬성'·'일단 찬성'·'똑똑히는 말 못한다'·'경우에 따른다'·'일단 찬성'·'강력히 반대' 등의 구별이 될 때가 있다. 이것이 의견의 '강도(强度)'의 측면이다. 이리하여 어느 일정한 방향과 강도를 가진 의견은 ㉠ 어느 정도의 안정성을 가지고 있는가 ㉡ 거기에 포함된 판단은 어느 정도의 정보에 기준되어 있는가 ㉢ 어느 정도 깊이 생각되어진 것인가 ㉣ 다른 의견과 맺어져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고립되어 있는가 ㉤ 혹은 다른 의견과 모순되고 있지 않은가 등이 조사된다.

정치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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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文化

정치과정에 질서와 의미를 주며, 정치체계내의 행동을 지배하는 기본적인 전제와 규칙을 부여하는 태도·신조·심정의 집합을 일컬어 하는 말이다. 따라서 정치문화란 정치의 심리적·주관적인 제 차원의 집합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정치문화란 정치체계의 전체적인 역사일 뿐 아니라 체계구성원의 생활사 및 공적·사적인 일체의 사상·관념 형태를 포함한다. 이래서 정치문화는 정치구조와의 상관관계에서 충성형·무관심형·소외형으로 나누거나 혹은 참가형·배타형·무관심형으로 구분 평가하기도 하며, 또는 엘리트와 대중의 정치문화로 나누기도 한다.

정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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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心理學

정치 행동에 대한 법칙을 연구하는 것으로 정치과정과 심리과정의 상호관계를 통일적으로 다루는 사회과학의 한 영역이다. 각종 정치과정이 개인행동의 내적 메커니즘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 정치심리학의 주요 목표가 된다. 즉 이것은 모든 정치 현상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해명하고자 하는 과학으로 사회심리학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정치심리학은 정치적 태도와 투표행동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왔다.

정치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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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過程

사회의 제 세력간에 얽힌 동태적(動態的)인 이해관계의 조정·통합과정으로서의 정치를 다룰 때 쓰는 말. 이 말은 정치를 통치기구나 정계 내부의 권력현상만이 아닌 사회전반에 걸친 문제 및 입법·행정 등의 통치과정을 통괄한다.

정치적 사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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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的社會化

보통 정치교육이라 하면 정치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특정의 교육기관 등에 의해서 의도적(意圖的)·의식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라고 해석되지만 어느 개인이 정치에 관한 사고방식·가치·태도 등을 몸에 익혀가는 과정은 별도로 이러한 정식 전문기관에 의한 계획적·의도적인 활동에만 한할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어느 사회에 탄생되었을 때부터 그 전 성장과정(成長過程)을 통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획득된다. 이러한 넓은 의미에서의 학습을 통해서 정치에 관한 지식과 태도를 몸에 익혀두는 것을 '정치적 사회화'라고 최근 부르고 있다. 따라서 소위 정치교육은 정치적 사회화 중에 하나의 경우를 가리키고 있으며 주로 학교나 국가기관이나 매스 미디어 등에 의해서 계획적·조직적으로 일정한 정치적 학습을 획득시키는 것을 말한다.

더욱이 정치적 사회화의 특수한 형태로서는 관료나 정치가라고 하는 특정한 정치적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렇게 해서 정치적 사회화를 연구하는 사람에 있어서도 '누가 누구로부터 어떠한 상태로 무엇을 공부하고 그 효과는 어떠한가'라고 하는 공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점이 고찰의 포인트가 된다. 정치적 사회화는 개인 가운데 정치에 대해 일정하게 정해진 반응의 방법을 내재화(內在化)시키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폭력이나 제재(制裁)에 호소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사회화에 의존하는 편이 지배하기 보다 원활하고 경제적으로 행하여진다. 그러므로 어느 사회가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생각되면 생각될수록 의식적으로 정치교육의 필요성이 역설된다. 나치스와 같은 폭력적 독재국가에 있어서도 정치교육은 국가의 방침으로서 계획적·조직적으로 강제되었다. 정치교육은 그것이 바르게 행하여질 때에는 '국민적 합의(내셔널 컨센서스)'를 생산하는 데 보탬이 되나 권력에 의하여 이용되면 일방적인 국가의 사상통제(思想統制)의 수단이 된다.

유아기의 정치적 사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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幼兒期-政治的社會化

어느 개인의 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 내지 방향규정은 이미 학교 이전의 유아기에 행해지는데 그것은 정치적 사회화에 있어서 가정생활 특히 양친의 생각과 행동양식이 중요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른에 대해서 철저하게 복종하도록 가르치는 가정(家庭)과 보다 평등주의적으로 아이에게도 어른에 대해서 의견을 말하는 것을 장려하는 가정과는 정치권력을 대하는 태도와 정치참가의 점에서 상당히 다른 것을 발전시킨다고 하는 것이 실증적으로 조사되고 있다. 또 남아와 여아를 비교했을 경우에 남아의 경우는 신변과 가족관계 등의 범위를 넘어서 정치가나 군인이나 역사상의 인물 등에 흥미를 나타내고 또 전기나 과학에 관심을 나타내는 데 반해서 여아의 경우는 가정소설적인 것에 끌려서 이상(理想)의 인물로는 가까운 데 있는 어머니를 든다. 이러한 의식의 상위는 벌써 취학아동 이전에 형성되나 길어질 때에는 성인남자의 경우가 여자에 비해서 정치에 대한 참가와 관심에 있어서도 낫다는 것을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미국의 조사로는 상류계급 출신자의 경우가 하류계급 출신자에 비해서 정치적으로 보다 활동적인데 이것도 각기 양친의 활동적 참가와 관심도의 상위의 반영이라고 한다. 또 나라에 따라서도 정치적 사회화의 상위가 보인다. 예를 들면 프랑스는 미국에 비해서 부자(父子) 사이의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적다고 말한다. 미국 성인의 80%는 그 양친이 어느 정당을 지지하고 있었나를 대답할 수 있었으나 프랑스에서는 30%에 지나지 않았다. 프랑스의 가정에서 확실한 특정정당의 편을 드는 기질을 키울 수가 없다는 것은 프랑스에 있어서의 부동표(浮動票)의 폭과 미국에 비해서 여러 가지 대중적 정치운동의 기복이 심한 것을 설명하는 데 쓰이고 있다. 물론 유아기의 일만이 어른의 행동을 결정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최근의 여러 가지 연구는 양자의 사이에 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정치적 인간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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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的人間-形成

특히 정신분석의 이론을 정치설명에 응용하는 사람들은 유아기의 일을 중시한다. 그러한 사람의 대표로서는 라스웰(1902- :미국의 정치학자)을 들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주로 유아기에 가족과의 관계 등에 의해서 형성된 사적 동기(動機)(P) 예컨대 부친에 대한 억압된 증오 등이 가족적 대상에서 공적인 대상 예를 들면 지배자와 자본가 등으로 전위(轉位)되는(d) 경우가 있다. 더욱이 그러한 경우에 이 심리학적인 전위를 공공의 이익 등을 끌어내 놓고서 합리화(r) 혹은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H.라스웰에 의하면 p{d} r=p의 공식이 이루어진다.

P는 정치적 인간 즉 권력의 추구에 의하여 자기 평가의 낮음을 극복하려고 하는 인간을 나타낸다. 사적동기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나 정치적 인간의 경우에는 이것을 공(公)의 대상으로 전위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에 이유를 붙이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이 해석으로 나간다면 예컨대 자유를 박해한다고 하는 이유로서 정치가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실은 유아기에 있어서의 부친에 대한 증오를 대상을 바꿔서 부딪치고 있다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이해가 된다. 어떤 사람의 정치행동을 이해하는 데 이러한 정신분석적 가설을 쓴다면 그 사람의 유아기는 대체 무엇이 있었는가 즉 그 사람의 정치적 사회화의 과정이 어떠했는가를 조사한다고 하는 방법이 중요하게 된다.

대통령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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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統領-image

데 그레지어(1915- :미국의 정치학자)에 의하면 유아기에 있어서 신념체계(信念體系)의 형성과정에 있어서는 초인간적인 신(神) 등의 종교적 권위에 대하는 태도와 군주나 대통령 등의 정치적 수장(首長)에 대한 태도의 형성 사이에는 극히 가까운 관계가 존재한다.

어린이가 갖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조사한 사람들에 의하면 그것은 정겨운 더구나 중요한 인물로서 극히 적극적·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치가에 대한 부정적·냉소적 태도는 오히려 나이를 먹어서부터 얻어지는 것이라는 것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대통령에 대한 어린이의 이미지는 보통 신(神)과 종교적 권위에 관련하여 쓰여질 수 있는 말로서 표현되고 있으며 대통령은 '세계에서 제일 훌륭한 사람'인 것이고 국가에 대하여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필요에 따라서 친절하게 배려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상의 고찰에서도 밝혀진 바와 같이 정치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과 태도의 기본적인 부분은 상당히 빠른 시기에 형성되는 것으로서 정치적 사회화를 담당하는 것으로서의 가정의 의의가 새로이 인식될 수 있다.

이데올로기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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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ologie 敎育

정치교육이 오늘날에 때때로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정치적 편향교육(偏向敎育)' 혹은 '이데올로기 교육'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정치교육은 단순한 사회과(社會科)나 도덕과(道德科)의 교육내용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체의 교육은 저치적 사회화와 관계를 가짐과 동시에 정치에 대한 기본적 태도는 취학 이전부터 이미 형성되어 있다고 하는 것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어느 특정한 교과내용(敎科內容)을 취해서 편향교육이라고 규정해 버리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오히려 편향교육이라면 정치권력이 판단하는 편에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권력은 자기의 특권유지에 있어서 좋지 못한 사상은 모두 이것을 편향이라고 이름짓고서 권력적인 개입을 시도할 것이다. 교육에 대하여 국가권력이 개입하든지 혹은 일정한 이데올로기를 강제하게 된다면 거기에 오히려 이데올로기 교육이 본격화하는 실마리가 있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교육은 본래 전 사회적인 기능이라는 것을 정치적 사회화의 이론은 가르친다. 그런데 국가가 자진하여 앞서서 정치교육의 일을 담당하게 된다면 국가가 자진하여 앞서서 정치교육의 일을 담당하게 된다면 그것은 근대국가의 하나의 원칙인 도덕과 사상에 대한 중립성을 버리고 사상통일과 사상통제의 위에 서는 독재주의국가에 가까워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가치관 위에 국가형성을 이룩하고자 하는 소위 신흥제국과 사회주의제국은 낡은 가치관을 파괴하기 위해서도 정치교육을 국민에게 강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정치교육 건설적인 의의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해도 의연히 거기에는 사상·언론의 자유에 대한 압박이라고 하는 요소가 남는다. 정치교육의 필요성의 강조는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불안정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세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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洗腦

정치권력에 의한 강제적인 정치교육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서 세뇌라고 불리우는 것이 있다. 그것은 보통 혁신적인 방향에의 사상개조를 시키는 것이며, 그 반대로 보수적인 혹은 국가주의적인 것으로의 사상개조는 '전향(轉向)'이라고 불리우는 경우가 있다. 보수-혁신간의 사상적 전환은 '굳은 심성(心性)'과 '부드러운 심성'과의 사이의 성격적 전환과는 다르기 때문에 곤란하지는 않다(( R인子와 T인자)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특히 공산주의국에 있어서의 '세뇌'가 문제가 되어 많은 논란을 가져왔다. 세뇌는 정신과 육체에 가해지는 여러 가지 모양의 심리적·물리적 압박에 의하여 정치적 신념을 완전히 변화시켜 버린다든가 혹은 실제로는 범하지 않은 죄에 대하여 진심으로 그것을 인정해서 고백하고 자기 비판을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이 양자를 동시에 행한다고 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수행하기 위하여 이성과 감정, 논리와 신앙, 설득과 강제의 여러 가지 방법이 수단으로 쓰인다.

세뇌의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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洗腦-手段

상대를 세뇌하기 위해서는 첫째 상대를 철저하게 지배하고 상대로부터 자유를 뺏고 기거(起居)를 위시해서 그 생리적 욕구에 이르기까지 엄격히 관리함으로써 상대에게 무력감(無力感)을 준다. 상대에게는 무엇 때문에 고발당했는가를 알리지 않고 더욱 고백을 강요하는 것 같은 방법으로 상대를 전혀 불확정하고 불안정한 심리적 상태에까지 몰아넣는다. 또 상대를 외계로부터 격리하여 고독·고립의 상태로 묶어 놓는다. 그리고 정신적·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여러 가지 고문이 가해진다. 예를 들면 세워 둔 채로 반나절 이상이나 질문을 당하고 녹초가 된 다음에 잠시 자는 것이 허락되나 곧 또다시 두들겨 깨워져 질문이 행해진다는 방법 등으로서 끝내는 극도의 정신적·육체적 피로곤비(疲勞困憊)에 달한다. 그의 자존심과 주체성은 파괴되고 가련해질 만큼 굴욕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질문자 자신이 그의 유죄를 확신하고 있는 것같이 보이기 때문에 어떠한 변명도 쓸데 없으리라는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착란(錯亂)된 상태에서 고백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사상이 받아들여지게 된다.

세뇌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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洗腦-效果

이상과 같은 세뇌과정이 지나게 되면 특별한 사람이나 정신병질(精神病質)의 사람을 제외한 보통 사람의 거의 전부가 세뇌되어 버린다고 말한다. 세뇌의 효과는 그것이 행하여진 사회에 머물러 있는 한 그 효과를 강화시키는 환경적 자극이 되풀이됨으로써 효과가 지속되지만, 포로(捕虜)가 되어서 세뇌받은 사람이 본국에 돌아간 경우 얼마 후에는 고백과 개조된 사상을 부인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이 세뇌에 의한 사상 개조에는 그것에 요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서 효과는 반드시 지속적이 아니고 또한 광범위한 사람에게 미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정치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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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宣傳

정치선전도 정치적 사회화(政治的社會化)의 일면으로 취급할 수 있으나, 보통은 선전과 교육의 상위로서 들 수 있는 것은 선전의 경우 의도적인 심벌 조작('평화'·'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심벌을 통해 사회를 통제하는 양식)에 의해서 타인의 사상이나 행동에 이 편의 요구하는 것같은 영향을 주고자 하는 것이 주안(主眼)이며 따라서 미리 준비된 의논이나 특정한 심벌만을 쓴다고 하는 경향이 있는 데 반해서 교육의 경우에는 어떠한 문제에 관해 여러 가지 면을 제시하고 받는 편에게 판단이나 결정을 맡긴다고 하는 특징을 갖는 것이다. 다만 어느 사회에서는 자명(自明)한 것으로서 교육된 것도 다른 사회에서는 선전이라고 생각되는 일도 있다. 예를 들면 공산주의사회에서의 정치교육은 비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선전으로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그것이다. 또 레닌(1870-1924)과 같이 선전과 선동을 구별하여, 선전이란 지적 소수자(知的小數者)에 대한 이론적 설득임에 반하여, 선동이란 무교육의 대중에 대한 정서적인 슬로건의 사용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도 있다.

정치선전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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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宣傳-效果

오늘날의 사회에는 매스 미디어가 발달하여 한편 상업적인 광고나 선전에 있어서 그것을 이용해서 어느 틈엔가 의식의 심층(深層)이나 무의식의 세계에까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통하여 우리의 가치나 취미를 바꾼다고 하는 기술이 발달했다. 거기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기술을 정치의 세계에 응용하여 정치선전의 효과를 올릴 수 없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업광고와 달라서 정치선전 편이 그 효과에 있어서는 상당히 한정되어 있는 것이 지적되고 있다. 왜냐하면 매스미디어를 쓰는 정치선전은 사람들 사이에 벌써 존재하고 있는 기호(嗜好)나 가치를 강화하든지 반복하든지 해서 확인시키는 것에는 유효하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 가치를 획득시키는 데는 그다지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상업선전의 경우에는 화장하는 일을 근본적인 가치로 인정하고 있는 여성에게 어느 브랜드의 상품을 사용시키는가 하는 광고를 하니까 효과가 있으나, 정치의 경우에는 예컨대 사회주의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사회주의의 선전을 해봐야 그 사람의 근본적 태도를 변경시키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그러므로 정치선전의 경우에는 제일 선전하고 싶은 상대가 제일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 이리하여 여러 가지 실증적인 연구의 결과 정치선전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적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와 함께 사람들 사이에 사회적·심리적 불안이 증대하여 종래의 가치체계가 의문시될 것 같은 상황 아래서는 정치선전의 효과가 증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그 선전 내용이 사람들이 구하는 새로운 가치를 체현(體現)하고 있는 경우에는 한층 강력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이상 고찰한 것 같은 한계를 갖는 데도 불구하고 세뇌나 정치선전은 장래의 기술적 발전에 의해 그 한계를 극복하여 더 한층 강력하고 두려운 것이 될지도 모른다. 정치적 사회화의 문제영역은 금후 더욱 중요함을 더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