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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국기와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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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Union of Myanmar 정치체제:연방제(군정하) 수 도:양곤(Yangon) 인 구:4,251만명(2003) 면 적:67만 8,5281㎢ 소 득:1인당 GDP 330달러(2002) 공 용 어 :미얀마어 화폐단위 :미얀마키아트(kyat / K) 주생산물 :쌀, 고무, 사탕수수 / 티크, 비료 / 석탄, 석유, 텅스텐 기 타:군사정권
미얀마의 자연
편집Myanmar-自然
인도차이나 반도 서단에 위치하며 지형적으로는 서부의 아라칸산맥, 중부의 저지, 동부의 샨 및 테나세림산지로 구분된다. 중부는 건조지인 상(上)미얀마분지와 저습지인 하(下)미얀마로 나누어진다.
미얀마의 기후
편집몬순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5월까지 우기이다. 강우량은 하미얀마에서 2,500㎜, 산간부에서는 5,000㎜에 달한다. 11월에서 4월에 이르는 동안 몬순이 북동쪽에서 불게 되면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건조기가 된다.
살윈강
편집Salween江
이라와디강 이상의 대하로 역시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마르타반만으로 흘러든다. 길이 2,800㎞ 이다. 그러나 동부의 산간협곡을 형성할 뿐 유역에 평야는 없다. 용도도 산지에서 나는 티크재(材)의 운반에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미얀마의 역사·주민
편집-歷史·住民
역사적으로 먼저 말레이족이 우위를 차지했고, 이어 몬 계통의 민족이 우세해졌다가 티베트·미얀마계의 민족이 남하하여 선주민족과의 혼혈로 미얀마 민족을 낳았다. 1044년 상미얀마의 파간에 미얀마인의 왕조가 건설돼 몬문화를 흡수, 발전했다. 1531년 퉁구왕조가 일어나서 위세를 떨쳐 타이의 수도 아유타야를 점령했으나 그후 타이족의 반격으로 페구에서 쫓겨 아바에 왕도를 옮겼다가 몬족의 공격을 받고 멸망했다.알라웅파 왕조는 얼마 후 아라칸을 병합했으나 인도를 지배하는 영국과 충돌하여 미얀마·영국전쟁이 일어났다.이 전쟁의 결과 미얀마는 1886년 전토가 영령(英領) 인도에 병합되었다. 그러나 미얀마 민족은 1900년까지 게릴라 항전을 계속하였다. 태평양전쟁(1942∼45) 때 일시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며, 1948년 영연방에서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1962년 군사쿠데타 이후 군부가 집권하고 있으며, 1989년 3월 군사정부에 의해 일당독재의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철폐되고 다당제가 채택되었다.미얀마의 민족 구성은 퍽 복잡하다. 대체로 중부에는 미얀마족, 동부에는 샨족, 카렌족, 서부에는 친족, 북부에 카친족이 거주하며, 하(下)미얀마에는 인도인과 화교도 적지 않다.
미얀마의 정치
편집-政治
1948년 독립 이래 국내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외교적으로는 중립주의를 표방해 왔다. 그러나 정정(政情)은 안정되지 않아 1962년에는 군부의 쿠데타가 일어나 혁명위원회가 설치되고 네윈 장군이 국가권력을 장악했다. 네윈 정권의 정치 목표는 미얀마식 사회주의 건설과 엄정중립의 고수에 있다.1973년 12월에 국민투표를 거쳐 신헌법을 공포하였다. 1974년 3월 민정이양을 실시하고 정부기관을 새로 구성했다.1989년 국방장관 겸 참모총장인 사우 마웅은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국가법 질서회복위원회(군사평의회)를 구성하고, 의회를 폐지했으며, 다당제(多黨制)를 채택하고 국호도 버마에서 미얀마로 변경했다.그러나 집권 이후 억압정치를 계속하고 있으며 특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여사에 대한 탄압은 국내외의 비난을 받았다.
미얀마의 산업·무역
편집-産業·貿易
미얀마의 경제는 2차대전과 전후의 내란으로 심한 타격을 입었는데 1959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전전(戰前)의 수준을 회복했다.1962년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채택으로 경제가 침체되자 1977년부터 폐쇄적 경제체제를 완화하였으며 서구의 원조를 받아들였다.1977∼1978년의 경제성장률은 6.4%로 네윈정권이 들어선 이래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미얀마의 기본경제인 쌀농사는 저미가와 공출제도로 인해 생산의욕이 저하되어 쌀수출은 증가하지 않고 있다. 쌀 외에 수출품은 목재(티크재)·콩·수산물·보석 등이며 해마다 상당량이 밀수된다. 석유는 1976년부터 자급하고 있으며 소량이지만 수출한다.1986년 미얀마식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탈피하고 자유시장 경제체제로 전환하였다.자유시장 경제체제로의 전환 후 풍부한 천연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제5차 4개년개발계획을 시행, 연평균 GDP 성장률 8.2%로 목표치(5.6%)를 초과 달성하였다. 2001년까지 성장률 6% 목표로 신경 제1차 5개년계획을 추진중이다.
농업
편집農業
농업이 산업의 지주이며 하(下)미얀마 지방의 도작(稻作)이 국력의 기반이다. 하미얀마의 논은 19세기 후반 이후에 개척되었으며, 미얀마 농민은 대부분이 인도인 지주의 소작인이었다. 전후 농업개혁이 실시되었고 1965년의 포고령으로 농민은 겨우 소작인의 신세를 면할 수가 있게 되었다.
광공업
편집鑛工業
광업은 석유·주석·텅스텐 등의 자원이 풍부하나, 전쟁과 계속되는 내란 때문에 그 생산고는 아직 전전의 수준에도 미달하는 상태이다. 공업은 정미, 제재가 중요하며, 임업에서는 티크재가 유명하다.
무역
편집貿易
콩·면화·고무 등의 농산물과 목재·광물을 수출하고 공업 제품을 수입한다. 고무가 수출품목의 대종을 이루며 총수출고의 70%를 차지한다. 무역은 국유화되어 정부기관이 이를 장악한다.
미얀마의 사회
편집-社會
미얀마의 가족제도는 남자가 결혼하면 처가네 가서 장인·장모와 함께 사는 대가족제도가 일반적이다. 또 인구 부족으로 가족계획은 장려하지 않으며 낙태는 공식적으로 불허한다. 미얀마인의 이름에는 성이 없고 돌림자도 없어서 이름만 가지고는 한 가족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 통신은 국영 미얀마 통신, 일간지는 국가에서 운영한다.
미얀마의 교통·도시
편집-交通·都市
교통은 하천수운이 가장 중요하며 이라와디강이 교통의 대동맥이 되고 있어, 하구에서 1,500㎞ 떨어진 바모까지 기선이 통행하고 있다. 사탕, 살윈 두 강도 교통에 이용되고 있다. 철도교통은 뒤떨어져 있으나 양곤에서 프롬, 만달레이 등지에 철도가 개설되어 있다. 대외무역은 주로 양곤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항공은 국영 미얀마항공 외에 국제항공의 편이 있다.주요 도시로는 수도 양곤 외에 만달레이, 물메인, 프롬, 미트키나, 바모 등이 있다.
양곤
편집Yangon
미얀마 연방의 수도. 페구강과 프라잉강의 합류점에 위치하며 해안에서 약 40㎞ 내륙에 있다. 이러한 교통상의 전략적 위치 때문에 영국의 군사령부가 이곳에 설치되어 있었다.또 중요 항구이기도 하기 때문에 2차대전 후 독립이 달성되었을 때는 수도로 선정되었다. 인구 445만 8,000명(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