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인류 문화의 시작/그리스도교의 성립/서북 인도의 번영
서북 인도의 번영〔槪說〕
편집그리스인의 식민국가 박트리아 왕국의 세력은 한때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서 서북 인도 일대에 미쳤지만, 분열에 의해 약화되어 기원전 139년경 스키타이계(系) 여러 부족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그 후 박트리아 지역에는 대하(大夏, Tokhra)국이 성립했지만, 이 대하는 곧 흉노에게 쫓겨 서쪽으로 이동한 대월지에 의해 멸망하고, 대월지는 거기에 정착하여 나라를 세웠다.기원을 전후해서 대월지 영토 내에 5제후(五諸侯)의 하나인 쿠샨(貴霜)족이 강성해져 대월지를 뒤엎고 힌두쿠시 산맥의 남북에 걸친 대제국을 세웠다. 쿠샨 왕조는 2세기 중엽의 카니슈카왕(王) 시대가 가장 번창했으며, 도읍 프르샤푸라가 있는 간다라 지방을 중심으로 그 지배 영역은 북쪽으로는 동투르키스탄, 남쪽으로는 갠지스강(江) 중부 유역 그리고 데칸 북부까지 뻗어 갔다.쿠샨 제국이 번영한 가장 큰 원인은 이 제국이 동서 무역로의 중앙에 점하기 있었던 때문이다. 또 동서 문화의 교류 지점이기도 한 이 지방은 쿠샨 시대에는 대승불교가 확립되고 간다라 미술이 번영했다.
쿠샨 왕조
편집-王朝
이란계(系)의 쿠샨(Kushan)족이 서북 인도에 세운 왕조. 기원전 2세기,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인 대월지(大月氏)는 흉노(匈奴)에게 땅을 빼앗기고 쫓겨나자 박트리아(大夏)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 나라를 그리스인에게서 빼앗아 다섯 부족(部族)에게 분할한 뒤 각각 수장(首長)을 두었다고 한다. 그중의 하나에 쿠샨부족이 있었다. 쿠샨족은 처음에 대월지에 종속하고 있었지만 후에 대월지를 무너뜨리고 독립했다. 큐샨인의 수장 쿠줄라 카드피세스는 이윽고 다른 네 부족을 종속시켜 쿠샨왕이라 일컬었으며, 현재의 아프가니스탄과 인도 서북부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1
2세기에 걸쳐 쿠줄라 카드피세스(카드피세스 1세)와 그의 아들 비마 카드피세스(카드피세스 2세) 시대에 기초를 닦아서 2세기 중엽쯤 카니슈카왕 때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한때 갠지스강 유역에서 동(東)투르키스탄에 이르는 영토를 지배했던 왕조도 3세기에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싸워서 기세가 꺾이고, 다시 부흥했지만(카다라 왕조) 5세기 말경 에프탈에게 멸망되었다.
카니슈카왕
편집-王 Kanishka (재위 140?
170?)
2세기 중엽에 나온 쿠샨 왕조 전성기의 왕. 불교도는 그를 아소카왕(王)과 함께 불교의 대보호자로 불러왔다. 그의 재위시에 제4회의 불전 결집이 행하여졌으며, 또 불교 시인 아슈바 고샤(馬鳴)나 나가르주나(龍樹)가 활약했다고 한다. 그러나 카니슈카왕이 불교와 함께 그리스 여러 신의 숭배와 조로아스터교·힌두교 등을 보호한 것은, 이들 신상(神像)이 당시의 화폐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대승불교
편집大乘佛敎
기원을 전후하여 일어난 불교의 새로운 사상. 대성자(大成者)는 2세기경 활약한 나가르주나(龍樹)라고 전해진다. 이 때까지의 불교는 자기의 해탈을 구해서 수업을 쌓는 출가자 중심의 것이나 대승불교에서는 이타행위가 장려되었다. 또 부처(佛)나 보살(菩薩)을 섬김으로써 승속(僧俗)의 구별 없이 구제되는 것을 강조하고, 여러 부처와 보살의 구제의 힘을 찬송하는 방대한 산스크리트어 경전이 편찬되었다. ‘대승(大乘)’이란 넓은 구제의 도(道)를 의미한다.서북인도에서 확립된 대승불교는 중앙아시아·중국·한국·일본·베트남·티베트에 전해져 그곳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승불교는 인도 지방에 전해진 불교(北傳佛敎)의 주체를 이루고 있다.
소승불교
편집小乘佛敎
대승불교도가 전통적·보수적인 종래의 불교 제파(諸派)를 일컬어 사용했던 호칭. 불교 교단은 불타(佛陀, Buddha)의 서거 후 약 100년간 통일을 유지했으나(原始佛敎時代), 그 후 다수의 부파(部派)로 분열되었다(部派佛敎時代). 소승불교라는 호칭은 대승불교도가 자기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 불교 제파를 독선적인 소승(좁은 구제의 道)이라고 비방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늘날 실론이나 동남아시아(베트남 제외)의 불교는 소승의 일파 테라바다(上座部)에 속하고, 팔리어(語)로 쓰인 경전(經典)이 전해 내려온다. 이 일파를 북방불교에 대해 남방불교(南方佛敎)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교미술의 전개
편집佛敎美術-展開
불타가 열반(涅槃)에 들어간 뒤의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불탑을 건립하여 예배하면서 불타를 추모하고 있었다. 그 무렵에 건립되었던 불탑으로는 산치, 바르후트, 부다가야, 탁실라의 다르마라지카 등의 유적이 있다. 이같은 불탑을 둘러싼 울타리며 탑문(塔門)에는 수많은 조상(彫像)이며 부조(浮彫)가 묘출되어 있지만, 거기에서 불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불타의 인간적 모습을 그리는 습관도 없었을 뿐 아니라 위대한 불타의 모습을 도저히 보통모습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그러나 1세기 무렵부터 인도의 서북변경(西北邊境)이 동서교역(東西交易)의 요지에 자리하여 활기를 띠고, 쿠샨왕조(王朝) 아래서 그리스 양식 간다라 미술이 번창하였다. 거기에는 이미 갸름한 얼굴에 음영이 짙은 생김새에, 옷 무늬의 주름을 그리스 양식으로 곁들여 배합한 불타의 모습이 있었다. 그리스적 미술과 인도 불교사상(佛敎思想)의 멋진 융합이다. 이렇게 탄생한 불상이 그 뒤의 불교 유포에 불가결하게 되자 불상을 안치하는 불전(佛殿)도 중요시하게 되어, 훗날의 칠당가람(七堂伽藍)의 기본이 이루어졌다. 이 조형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우리나라에까지 전래되었다.
간다라 미술
편집-美術 Gandhra Art
인도의 서북단 간다라 지방을 중심으로 기원 전후부터 수세기 동안 번영한 불교 미술. 원래 불교도는 불타를 상(像)으로 표현하는 것을 피하고 있었지만 기원을 전후하여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서북 인도에서 그리스 조각의 수법을 사용하여 불상이나 보살상이 처음으로 만들어지고, 불상 숭배의 유행이 일어났다. 간다라 불상의 특징은 머리카락이 물결모양의 장발이고 용모는 눈언저리가 깊고 콧대가 우뚝한 모습이 마치 서양인 같고 착의(着衣)의 주름이 깊게 새겨져 그 모양이 자연스럽다. 조각은 거의 부조(浮彫)이고 대개는 스투파 기단(基壇)의 벽면을 장식하였다. 간다라 조각은 대월지족이 세운 쿠샨왕조의 카니슈카왕 때에 많은 발전을 하였다. 그리스식 불상 조각으로 대표되는 이 불교 미술은 발생지의 이름을 따서 간다라 미술이라 불린다. 간다라에서 시작된 불상 숭배는 불상 조각의 기술과 함께, 인도 본토는 물론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한국·일본에까지 전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