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세 유럽과 아시아/르네상스와 종교개혁/티무르 제국

티무르 제국〔槪說〕 편집

14세기 후반 서(西)차가타이 한국(汗國) 출신의 티무르는 칭기즈칸의 자손이라 칭하고 몽골 제국의 재건을 기도했다.

그는 사마르칸트에 수도를 두고 동서 차가타이 한국·일 한국을 병합하였으며 킵차크 한국·북인도에 침입했다. 이어 소아시아 방면에서 일어난 오스만 투르크를 앙고라에서 격파해 구(舊)몽골 제국의 서반부를 영유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티무르는 다시 몽골인의 구적(仇敵) 명(明)의 정복을 기도했으나 원정 도중에 병사했다. 티무르의 사후 왕실의 상속 싸움이 계속되었는데 샤 로흐 시대에 일시 번영을 되찾았다.

그런데 우루그 베그가 암살된 뒤 쓰러진 뒤에는 제국의 분열이 표면화되어 사마르칸트와 헤라트에 두 세 개의 정권이 대립했다. 그리고 킵차크 한국에서 나온 북방의 우즈베크 족이 침입하여 1500년에는 사마르칸트가 함락되고, 2년 뒤 헤라트도 함락되었다. 수도인 사마르칸트는 국제적인 상업도시로서 번영하여 왕년의 바그다드를 능가할 정도로 번영했다. 예술·문화면에서는 이란 문화의 영향이 강하고 역대 군주의 보호 장려에 의해서 티무르풍(風)의 이슬람 문화가 발달했다.

건축 양식에서는 중국식의 탑과 유목민족의 천막을 조합한 독특한 사원(寺院)이 만들어졌고, 회화(繪畵)에서는 이란풍의 미니어처(細密畵) 예술이 발달했다. 이란 문학에서는 시인 쟈미의 이름이 가장 알려졌고 아라비아 수학·천문학·의학· 지리학·역사학 등도 발달하여 이슬람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티무르 편집

Timr (1336

1405, 재위 1369∼1405)

칭기즈칸의 위업(偉業)을 받들어 이슬람 세계 제국의 건설을 이상(理想)으로 한 티무르 제국의 창시자. 일설에 의하면 칭기즈칸의 자손이라고도 하는데, 또 다른 설에 의하면 투르크계의 가난한 한 목인(牧人)의 아들에 지나지 않았다고도 한다. 티무르는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티무르 랭(Timr lang:절름발이 티무르)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전자의 설에 의하면 절름발이가 된 것은 전상(戰傷)에 의한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후자의 설에 의하면 소년시절에 가축 도적질을 하다가 잡혀서 사형(私刑)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아무튼 출신은 명확하지 않다.

몽골제국이 13세기 후반에 분해되자 그 유산은 투르크인 군주인 티무르에 의해서 계승되었다. 그는 1369년에 티무르 제국을 건설, 일련의 가공할 전쟁을 수행하여 몽골제국 붕괴 후 자립한 여러 한국(汗國)의 거의 전부를 지배하는 데 성공했다.

서방에서는 티무르의 타타르 군단이 볼가강 유역의 킵차크 한국을 복종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마물루크 왕조와의 전투에서는 항상 우세를 보였다. 서아시아에서는 오스만 투르크의 바야지트 1세와 싸워 1402년의 앙고라 싸움에서 그를 포로로 잡았다.

1404년에는 몽골인의 구적(仇敵)이며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도(異敎徒)의 국가인 명(明)나라의 타도를 기도하여 군대를 파견했으나 1405년 원정 도상에서 병사했다.

앙고라의 싸움 편집

티무르가 오스만 투르크 황제의 군대를 격파해 서아시아에서 주권을 확립한 싸움(1402). 티무르는 소아시아 방면에서 세력 확대를 기도했기 때문에 이 방면에서 점차로 강성해진 오스만 투르크와의 대립 관계는 점점 긴박해졌다. 투르크 황제 바야지트 1세는 대군단을 동원하여 앙고라(Angora) 교외에서 티무르의 군대를 맞아 싸웠다. 일주야에 걸친 격전 끝에 터키군은 총퇴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황제는 도주하는 도중에 말이 넘어져 두 아들과 함께 포로가 되었다. 여기서 오스만 왕조는 일시 중절(中絶)되었다.

샤 로흐 편집

Shh Rokh (1377

1447, 재위 1409∼1447)

티무르 제국 제3대의 군주. 문무(文武)를 겸비한 명군(名君)으로서 내란을 진압하여 오스만 투르크와 명나라의 국교를 회복하여 티무르 제국의 융성 시대를 이룩했다. 샤 로흐는 학문·예술에 대한 훌륭한 이해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다음의 우루그 베그의 치세와 함께 티무르풍(風) 이슬람 문화의 최성기를 맞았다.

우루그 베그 편집

Ulugh Beg (1393

1449, 재위 1447∼1449)

티무르 문화의 황금기를 이룩한 티무르 제국 제4대 군주. 제3대 군주 샤 로흐의 장자. 문화인으로서 뛰어난 수학자·천문학자·역사학자로서 학자·예술가들을 우대하고 학문·예술을 보호 장려했기 때문에 수도 사마르칸트는 이슬람 학예(學藝)의 중심지로서 번영했다.

그러나 군주로서의 재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내란이 끊이지 않았고 재위 불과 2년 8개월 만에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