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세 유럽과 아시아/르네상스와 종교개혁/지리상의 발견

지리상의 발견〔槪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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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세기에 봉건사회의 완성과 더불어 유럽 세계는 밖으로 향해서 팽창·확대를 시작했다. 동남방으로 향해서 십자군이, 서남방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국토 회복이, 동방에는 동독일 식민이 있었다. 이 유럽의 팽창·확대의 전개로서, 15세기 말의 지리상의 발견을 볼 수 있다.

동방에 대한 동경에 곁들여 십자군 이래 이슬람 상인을 매개체로 한 동방 무역의 유리함에 눈뜬 유럽 여러 나라는 오스만 투르크의 발전으로 무역이 방해를 받았으므로 인도에 이르는 항로의 개발을 기도했다. 14,15세기에 동방 무역으로 번영한 북이탈리아 도시가 아니라 이슬람과의 국토 회복 전쟁을 통해서 강력한 왕권하에 통일국가를 형성해 가고 있던 이베리아 반도의 국가인 에스파냐, 포르투갈이 지리적 위치를 이용하여 그 선두에 섰다. 헨리 항해왕 밑에서 착실하게 아프리카 서해안의 탐험을 해 나가던 포르투갈에서는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에 도달하였으며(1488), 그 후 1498년에 바스코 다 가마에 의해 마침내 인도에 도달했다.

에스파냐에서는 이슬람 최후의 거점인 그라나다를 함락시킨 1492년 콜럼버스가 단번에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어디까지나 인도로 믿고 있던 콜럼버스에 대해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그것이 인도와 다른 신대륙이라는 것을 명백히 하였고, 발보아의 태평양 발견(1513)을 거쳐서 포르투갈 사람 마젤란이 마침내 세계 일주를 성취하여(1521

1522) 지구가 구체(球體)임을 실증했다.

서북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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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北航路

15, 16세기경에, 대서양의 북부 그린란드 부근에서부터 서진(西進)하면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다고 믿어진 항로(航路). 이는 에스파냐, 포르투갈의 방해를 받지 않고 중국 및 인도에 도달할 수 있어 영국인들이 열심히 탐색하였다. 15세기말의 카보토 부자(父子)의 항해를 효시로 하여 헨리 8세 때 항해가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길버트가 서북항로의 동북항로에 대한 우위를 주장하여, 1578년·1583년에 길버트의 탐험이 행해졌다. 가장 큰 것으로는 1585년·1586년·1587년의 존 데이비스의 항해로 3차에 걸쳐서 북위(北緯) 73°에까지 도달하였다. 이들 행해자들은 모두 자기가 서북항로를 발견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북아메리카 해안의 지리가 확실해졌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동북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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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北航路

16세기경 영국에서 북항(北航)하여 북극해(北極海)로 들어가 시베리아 해(海) 연안으로 동진(東進)하여 중국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던 항로. 서북항로(西北航路)와 같이 에스파냐, 포르투갈의 방해를 받지 않고 동방의 황금국(黃金國)으로 갈 수 있다고 믿어 영국인들이 열심히 탐구하였다. 최초의 입안자(立案者)는 세바스티아노 카보토이며 1553년 탐험대가 파견되었다. 그 뒤에도 몇 차례에 걸쳐 탐험이 계속되어 북극해로 들어가 오비 만(灣)까지 도달한 듯하였으나, 동쪽으로 그이상은 진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계기가 되어 러시아와의 통상이 열리고, 영국은 동방에 새로운 유리한 시장(市場)을 획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