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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러시아의 북아시아 지배〔槪說〕
편집청은 17세기 초 만주 남부에서 일어나 중국을 정복하고 넓은 동아시아 지역을 지배하게 되는데, 북아시아에 대하여는 이미 태조 누르하치가 만주족을 통일, 흑룡강 유역까지 지배의 손을 뻗쳤다. 내몽골 방면에 있어서는 차카르부(部)나 내(內)카루카부(部) 등을 태종 때까지 남김없이 복속(服屬)시켰다. 거기에 외몽골 일대의 외칼카부도 강희제(康熙帝) 시대에 복속시켜, 때마침 동진하고 있던 러시아와 흑룡강 방면에서 상대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당시의 유럽 여러 나라가 해로(海路)를 통하여 아시아 진출을 시도하고 있던 중에 홀로 육로를 통하여 북아시아에 동진(東進)하여, 17세기 중엽에는 태평양 연안에 도달하고, 다시 흑룡강 유역에 육박했다. 1689년 청은 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고 흑룡강 유역의 지배권을 확립했다. 이로써 러시아의 북아시아 지배는 외몽골 방면으로 향하게 되었고 캄챠카 방면으로도 뻗어갔다.
차카르부
편집-部 Chakhar
명나라 중엽부터 내몽골 동남에 일어난 부. 청대(淸代)에는 이 지방 행정 단위의 명칭이 되었다. 한때 여직(女直)을 종속시켰고, 요동(遼東)에도 진출하여 강대하여졌으나, 1635년, 신흥하는 청에 멸망하여 복속되었다. 후에 삼번(三藩)의 난에 즈음하여 반란을 기도했으나, 청은 그때까지의 자치권을 빼앗고 차하얼부의 명칭은 그대로 두면서 청조 직할부로서 통치하여 청말에 이르렀다.
카루카부
편집-部 Kharukha
명나라 중엽 때 일어난 외몽골의 부명(部名)인데, 내(內)카루카·외(外)카루카로 나눠 청대(淸代)에 다 같이 복속됐다. 내카루카는 남하하여 내몽골 서북에서 유목을 하고 있었는데, 태종 첫 해가 되어서야 청나라에 복속하게 됐다. 외카루카는 외몽골 전역으로 발전하고 있었으나, 1688년 서방 준가르부(部)의 침입을 받아 남하하여 청의 보호를 받아 옛 땅으로 돌아가고 이후 청에 복속되어 청말까지 이르렀다.
네르친스크 조약
편집-條約 Treaty of Nerchinsk
시베리아의 네르친스크(尼布楚)에서 청(淸)과 러시아 사이에 체결된 조약. 17세기 중엽 러시아는 헤이룽강(黑龍江) 지방에까지 진출하고, 네르친스크, 알바진 등지에 성을 구축하였다. 당시 청은 입관(入關) 초기로 국내 정비(整備)에 틈이 없어 러시아 세력의 진출을 견제(牽制)치 못하였다.
한편 러시아는 청과의 통상을 목적으로 수차 베이징(北京)에 사절을 보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청은 1681년 삼번(三藩)의 난이 진압되자, 러시아의 공격에 대비하기 시작했고, 1685년에는 헤이룽강 북안의 알바진성을 함락시켰다. 이에 일단 네르친스크로 철퇴한 러시아는 다시 알바진성으로 진출하였고, 청이 다시 공격하던 중 휴전이 성립되었다. 그 결과, 청의 전권(全權) 대신(大臣)과 러시아 전권 대신 사이에 조약이 조인되었는데, 이것이 네르친스크 조약이다.
그 내용은 (1) 헤이룽강의 아르군·케르비치 두 강과 외싱안링(外興安嶺)을 양국간의 국경으로 정하고 알바진성은 파괴할 것 (2) 월경자(越境者)의 인도(引渡)와 처벌 (3) 양국 민간인 사이의 교역(交易)의 자유 등을 규정하였다. 이 결과 청은 종래까지는 그들의 세력이 미치지 못했던 헤이룽강 북안까지도 19세기 중엽까지 확보하게 되었고, 러시아는 베이징 무역을 지속(持續)하게 되었다. 이 조약의 체결로 북만주의 경계는 확정했지만, 서쪽 끝인 몽골과 시베리아의 경계는 확정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국은 1727년 캬흐타에서 또 한번의 조약을 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