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미술/미술의 기초/조형의 요소와 미의 조건/양감·운동감·시간과 속도감

양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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量感

볼륨은 용적, 체적, 양감의 의미이다. 물체가 3차원에 의하여 공간 중에서 차지하고 있는 양을 말한다. 크기, 두께의 느낌이 합치되어서 양감이 생긴다.

물체가 공간에 실재할 때 시각적으로 광선의 명암에 따라서 양을 느낀다. 조각은 실재의 양으로서 폼되고 회화에서는 감각적으로, 그리고 암시적으로 양이 표현된다. 또한 명암, 색채의 점감(漸減), 전조(轉調)는 양감을 생성하고 형의 구성, 호선(弧線)이나 직선의 대조 또는 묘법(描法)에 의하여 양감이 표현된다. 양감은 촉각적인 대상으로서 파악되고 우리들은 입체물의 주위를 돌면서 눈으로 촉각하여 그 양감을 확인한다. 이를 시각적인 촉각이라 한다.

종래의 조각가는 충실한 공간(量感)을 근거로 해서 제작했다. 현대에는 허(虛)의 공간이 의식적으로 취급되고 구현(具現)되게끔 되었다.

양괴(量塊)에서 척결되고 남겨진 공간, 즉 허의 공간이 조형 공간으로서 형성되게끔 되었다. 이 공간은 실제로는 접촉할 수도 볼 수도 없는 네거티브한 공간인데, 안쪽에서 둘러싼 입체나 면을 받치고, 조각(彫刻)에 강인(强靭)한 긴장감이나 충실감을 부여한다.

허의 공간과 내실(內實)된 양괴는 표리일체의 상호관계에 의하여 조형을 받치고 있다.

구체는 응축(凝縮)하려 하는 표면적(表面積)과 최대의 한도까지 넓혀져서 확장하려고 하는 양의 상극(相剋)에 의하여 새긴 형이다.

그리고 충실한 아름다운 양감을 준다. 고래로 인간은 양괴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근원적인 매력을 느껴 왔다. 멘히르, 고인돌의 거석(巨石)의 구축, 산악을 신앙하는 산악숭배, 거대하게 확충되어 가는 양적인 건축군(建築群) 등은 그칠래야 그칠 수 없는 인간의 망향(望鄕)이기도 하다.

운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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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動感

조형예술에 있어서 시간을 수반하는 운동을 취급함은 모순처럼 생각되지만 표현 속에 내재하는 것으로서, 개념으로서 취급할 수가 있다.

우리들이 물상(物象)에 접하여 불현듯이 움직이는 감동에는 물상이 갖는 동세(動勢)가 있다. 이 동세는 우리들의 심안(心眼)에 의하여 포착되고 보이게 되는 것이다. 회화에서의 운동의 표현은 문자 그대로 계속해서 운동하고 있는 것을 묘출(描出)하는 데만 한정되어 있지는 않다.

보는 사람 자신이 건물이나 정원의 내부나 주위를 거닐고 돌면서 차례차례로 변화하는 시점의 관조(觀照)에 의하여 전체의 미적인 동세의 인상을 감득(感得)하든가 큰 화면은 한눈으로 볼 수가 없기 때문에 화면 위를 이동하는 눈의 운동에 의하여 관조하거나 한다.

그리고 필촉(筆觸), 필세(筆勢), 명암의 톤, 형의 조합(組合), 선, 면 등의 방법에 의하여 관조자의 눈의 운동을 유도하고 운동의 인상을 환기시킨다.

또한 빛이나 조명의 효과에 의한 동세감(動勢感)이나 공간의 원근의 표현에 의하여 속 깊숙한 곳을 향한 시각적인 심리의 진행에 따르는 운동 따위의 결과 화면에 운동감이 환기된다. 사선(斜線)은 운동을 느끼게 한다.

그리스 조각가 마르시아스는 팔과 다리와 신체의 주축을 이루는 방향선의 대조적인 조합에 의해 동세를 느끼게 하고 있다. 그레코의 작품은 화면에 있는 암시적인 사선에 의한 굴절선(屈折線)으로 전광형(電光形)의 동세감을 표현하고 있다. 쾌적한 운동감에는 율동(Rhythm)이 수반된다.

구체적인 운동감 그 자체를 조형예술에 도입코자 한 것은 미래파(未來派)이다. 콜더의 조각 모빌은 소박한 풍력(風力)을 이용하여 자연의 동인(動因)을 조각의 세계 속으로 반입하였다.

광원체의 이용, 회전하는 글라스판(板), 빛의 점멸(點滅) 따위를 이용한 실험적인 운동성의 사고방식은 과학기술의 진보와 함께 쉐페르의 사이버네틱스의 조각이나 옵 아트에 의하여 시각적인 일류전에 의한 움직임의 인상 등과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예술)로서 조형예술도 운동성·동력(動力)의 도입에 의하여 변혁되고 있다.

시간과 속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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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間-速度感

시각적인 영상(映像)의 격변에 따라 우리들의 생활 환경에는 시간적인 요소가 급속히 도입되고, 현대의 조형 공간을 생각할 때에는 시간이나 속도를 따로 분리할 수가 없다. 회화에 시간성을 도입하는 것은 원시예술이나 아이들의 묘화(描畵)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조형예술 속에 운동감을 도입하면 필연적으로 시간적인 감각이나 속도감이 관련된다.

스라쥬 마츄는 필속(筆速)에 의하여 시각적인 시간감을 표현하였고, 폰타나는 캔버스를 칼로 찢고서 찢긴 자국에 의해서 생긴 공간에 시간과 속도감을 주고 있다. 조각에 진동을 주어서 운동상태에 의하여 생기는 형태에 심리적인 아름다움을 주고자 하는 작품도 있다.

팅겔리의 움직이는 조각은 작품 속에 시간과 속도와 그리고 음향을 집어 넣었고, 맥심 데콘반은 형상이 공간에 시간과 속도를 합친 싱크로나이즈(同時的存在)의 작품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