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사회 I·문화재/현대사회의 대중과 사상/현대대중사회/여 론

여론(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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輿論(觀念)

어떠한 정치형태·정치체제도 지배층이 일반민중의 원망(願望)·기대(期待)·의사·요구 등을 오랜 동안에 걸쳐 무시해 나간다면 조만간에 민중의 저항력에 굽히게 되고 붕괴되고 만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공리(公理)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전제정치나 독재정치에 가까울수록, 물론 정치적 분식(粉飾)이라고 하더라도 '민의창달(民意暢達)'에의 열광적인 정치적 노력을 필요로 하는 패러독스(역설:얼핏 보면 모순된 것 같으면서도 올바른 말)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론과 정치와의 상호교류가 활발하고 다이나믹하게 전개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바탕에서만 가능하다. 어원적(語源的)으로 '인민의 권력' 또는 '인민의 지배'를 의미하는 민주주의는 결국 '여론에 의한 정치'에 귀착될 수 있으며 민주주의와 여론과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마치 민주주의의 관념이 다의적(多義的)으로 쓰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론도 역시 논쟁적을 내포하는 관념이다. 그 논쟁은 '민(民)의 소리'를 '신의 소리'로서 찬미할 것인가 '악마의 소리'로서 타기(唾棄)할 것인가 등의 윤리적 차원에 통속화되기 쉽지만 문제의 핵심은 물론 여론관념의 역사적 규정성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윤리적 관점에 선다면, 오래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적 사상 속에, 또는 그들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여론의 관념을 따질 수 있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그러나 여론의 관념이 역사적 의의를 갖고 등장하는 것은 철저한 관습(慣習)이나 습속(習俗)에 의한 전통적 지배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시민적 인격이 확립되고 시민의 자유가 향유되는 근대시민사회 성립 후인 18세기 이후라고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다. 특히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해서 서구 여러 나라에 있어서 정치과정에서 차지하는 여론의 중요한 역할이 다같이 인식되게 되었던 것이다.프랑스 재상 네케르(J. Necker, 1732-1804)가 200년 전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그리고 현재는 좋거나 싫거나 간에 교섭하지도 않으면 안 될 권위(權威)로서 여론의 힘을 인식하고 혁명 후의 재정 개선을 위해 공채(公債)정책에 대한 여론의 지지를 구했던 것은 여론이 '사회적 힘'으로서 현실화했다는 것을 기념비적(紀念碑的:monumental)으로 말해주고 있다.이와 같은 역사적 경위는 일면에서는 권력과 시민과의 대항적 구도(對抗的構圖)로서 여론의 관념이 윤곽을 잡게된 것을 나타내는 동시에 타면에서는 계급적 기반을 뿌리박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여론의 관념에 내재(內在)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당시 네케르가 '여론'(opinion publique)이라고 불렀던 실체(實▩)는 제3계급(부르주아지)의 의견에 지나지 않고, 현대사회의 실질적 구성층인 제4계급(프롤레타리아트)의 의견은 여론과정에서 배재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여론에 내재하는 구조적 모순은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점차로 표면화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서구에 있어서 근대민주주의 이론의 형성과 발전에 대응하면서 여론의 이론적 기초작업이 현저하게 진행된다. 이리하여 시민계급에 의한 '여론의 정치'가 제도적으로 정착하고 항상적 기능(恒常的機能)을 수행하여 나갔다. 영국 공리주의의 시조(始祖) 벤담은 여론의 이론적 기초를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의 '여론재판소(輿論裁判所:Public Opinion Tribunal)'의 구상은 코먼 맨의 도덕적·상식적 판단의 올바름, 바꾸어 말하면 여론의 합리성에의 절대적 신앙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과 더불어 여론이 민주주의 이론의 핵심이라는 것을 여실히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민주주의와 여론과의 행복한 결혼'이라는 19세기적 낙관론이 탄생한다.민주주의의 지주(支柱)인 여론이 빛을 보지 못했을 때는 일반적으로 '공중(公衆)'이라고 불리어졌으나 그 실체는 '교양과 재산'을 갖춘 시민계급의 동질적 집합체였으며, 그 '공중의 여론'에 의한 정치란 결국에 가서는 시민계급에 의한 기성질서 온존(溫存)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기왕에는 봉건적 반동세력과 대항해서 '자기이익(自己利益)'을 요구할 때 나타났던 시민계급의 진보성도 그들의 계급이익이 고정화됨과 동시에 후퇴·소멸해가는 반면, 계급이익을 달리하는 노동자 계급과의 대립·항쟁이 폭발적으로 격화되어 가는 것이다.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와의 대립·항쟁은 19세기 말 이후의 독점자본주의 단계에 이르러 현저하게 드러났고,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경제위기는 그것에 박차를 가했다. 따라서 서구 민주주의의 위기가 소리 높이 외쳐지고 고전적 근대민주주의는 현대적 대중민주주의로 그 모습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즉, 한편에서 기성정치체제로부터 소외되어 '무시되는 양(量)'에 지나지 않았던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발적 에너지를 기성체제 안에 흡수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보통선거제(普通選擧制)에로의 점진적 개혁이 시도됨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참가에의 자격과 기회의 확대에 수반하여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의식에 눈을 뜨고 조직적 대중으로서 자각적(自覺的)·능동적인 정치행동을 전개해 나간다. 여기에 프롤레타리아트를 주로 하는 여론의 조직화라는 전혀 새로운 여론상황이 새롭게 나타나고 여론의 조화와 균형의 시대로부터 여론의 분열과 대립의 시대로 역사적인 전환을 하는 것과 동시에 여론이 서구 데모크라시의 전유물(專有物)이라는 것도 부정되게 되는 것이다.이 여론상황의 역사적 전환기는, 동시에 다른 면에서는 '여론의 병리(病理)'를 노출하는 시기와 겹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여론의 정동성(情動性)이나 비합리성이 현상적(現象的)으로 비대하고 특히 1930년대에 있어서의 나치즘·파시즘의 광란(狂亂)은 '여론의 합리성'이라는 낙관적 이미지를 '여론의 비합리성'이라는 비관적 이미지로 충격적으로 뒤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역사적 충격은 근대시민사회의 대중사회로의 형태전환을 배경으로 해서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여론관념에 어두운 그림자를 비치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근대시민사회에서의 사회생활의 전체적 조화성(調和性)과 개인 생활의 상대적 완결성(完結性)이 붕괴되었을 때 대중은 자기를 붙잡아 매는 안정된 생활기반의 부표(浮漂)를 상실한 채로 단순한 양적(量的)인 존재로서 기계적·관료제적 '거대사회(巨大社會)'의 대해(大海)에서 표류하지 않을 수 없다는 대중사회적 상황이 한편에서 발생하고, 현대사회에서의 대중의 수동성(受動性)·무력성(無力性)·정서성(情緖性) 등의 성격 특성이 클로즈업 되어서 대중의 여론에 대한 불신감이 현저하게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자유로부터의 도주).이와 같은 부정적 계기를 상황적으로 포괄하면서도 현대사회에 있어서 기본적인 여론 상황은 원칙적으로는 중간층을 주요 담당자로 하는 지배계급의 '체제유지'의 여론과 노동층을 주된 담당자로 하는 피지배계급의 '체제개혁'의 여론으로 분극화(分極化)하는 경향을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대중국가의 근간적(根幹的) 정책을 이루는 복지국가정책의 수행과 더불어 소득의 상대적 평준화를 낳고, 신중간층(新中間層)이 급격하게 팽창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내부분화(內部分化)가 진행된다. 앞에서 말한 바 '이데올로기의 종언(終焉)'이라 불리는 사상상황(思想狀況)의 전개와 함께 '체제유지'와 '체제개혁'으로의 여론의 분극화는 신중간층을 매개로 하여 국부적으로 완화되어 가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여론의 계급적인 분열·대립의 시대는 여론의 계층적 거래·타협의 시대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사회적·정치적·제이해(諸利害)의 복잡화와 다원화(多元的)는 여론 상황의 유동화(流動化)를 더 한층 조장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론과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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輿論-意見

여론관념 또는 여론현상에 관한 역사적 고찰에서 밝혀졌듯이((여론) 여론은 주로 정치적 사상(事象)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론의 개념구성은 제1의적으로는 정치적 차원에서 두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여론은 특정한 정치적 쟁점(爭點)을 둘러싸고 그 정치적 결정에 무엇인가 영향을 주는 효력을 갖는 여러 의견의 복합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여론이 논쟁점 내지 대립점을 내포하고 있는 문제를 중심으로 형성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지고 있는 일이다. 특정의 정치사회에 있어서 바이탈한(아주 중요한) 이해가 있는 정치문제일수록 논쟁의 성질을 띠기 때문에 논쟁적 문제는 일반적으로 공공적(公共的)인 성격을 갖는다고 생각해도 좋다.여론이 민주주의의 원동력이라고 일컬어지듯이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의 여론은 정치에 그 어떤 충격을 주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더욱이 여론의 정치적 영향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또한 직접적·전면적(全面的)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의 속도, 그 넓이, 강도, 심도에 따라 다양한 단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무자각적(無自覺的)·정서적인 의견의 흐름보다는 민주적 대중토의(大衆討議)를 거쳐서 쌓아 올린 자각적·합리적인 의견의 결정체(結晶體)가 정치적 효력을 발휘하기 쉬울 것이다.이와 같은 여론의 중핵적(中核的) 부분의 형성에 있어서 정당 지도자·노동조합 등 각종의 이익집단(利益集團)의 지도자·인텔리겐차·저널리스트라고 하는 소위 여론의 지도자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여론'이 공중의 의견이라든가 민중의 의견, 인민의 의견이라든가 혹은 개인적 의견의 총화 등으로 불려지고 있듯이 '의견'은 확실히 '여론의 본체(本體)'라고 불리기에 적당한 것이다. 흔히 의견은 지식과 확신(確信)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말한다. 즉, 지식만큼의 논리성과 실증성(實證性)이 결핍되기는 하지만 확신과 같이 정서적으로 고정화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流動的)·가소적(可塑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의견은 합리성과 비합리성, 논리성과 정서성과의 융합물로서 외적 상황과의 관련에 있어서 어떠한 측면에도 전화(轉化)할 수 있는 양면성격적(兩面性格的)인 계기를 갖고 있다.'여론의 본체(本體)'인 의견은 유기적 상호관련성을 결(缺)하고 있는 사적 의견(私的意見)의 단면이 아니라 일정한 사회적 계급·계층에 귀속하는 집단적·사회적 의견의 다발(束)에 깊이 관련되고 있다. 의견의 사회적 기초에 주시(注視)할 때 여론의 담당자 또는 주체의 차원문제가 크게 떠오르게 된다. 즉, 어떠한 사회적 계급·계층을 중핵적인 담당자로 하는가에 따라서 여론의 질과 방향성(方向性)이 총체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여론과의 관련에서 문제가 되는 '의견'이 특정의 사회적 계급·계층을 기저로 하는 정치적인 '주장(主張)의 공시(公示)'인 이상, 여론은 '책임의 윤리'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요청되며, 그 배후에 어떠한 '행동'을 예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론은 단순한 언어적 표명(言語的表明)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운동으로 발전해 나가는 동태적(動態的) 의견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지적할 필요도 없이 민주주의의 정수(精髓)는 비판적 계기를 포함하는 '이견(異見)'이 상호간에 창조적 교류를 최대한으로 허용하고, 의견의 승한작용을 촉진하는 데 있다. 서로 다른 의견의 상호대립·항쟁은 원칙적으로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 그 자체의 실질(實質)을 풍부하게 한다. 물론 기본적 계급이해(階級利害)의 대립과 모순을 전면적으로 지양하고 있지 않은 현대사회에 있어서 이상과 현실과의 낙차(落差)는 너무나도 크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립과 항쟁의 가치 있는 대상을 정당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통치효율(統治效率)의 관점에서 오직 '여론의 일치'에 부심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질식화시키는 일이 되고야 말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의견의 복합체'는 무엇보다도 이질적·대립적 제의견의 역동적 구성(力動的構成)을 의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역동적 구성은 지배적 의견에 통솔당하는 다수의견의 히에라르키(Hierarchie:階層制)로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또 자각적·합리적 의견이 응결된 소수의견을 중핵으로 그 주변에 다수의견이 군생(群生)하는 동심원적 구심성(同心圓的求心性)을 띠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제의견의 복합체라는 개념단위는 '다수성(多數性)의 마력(魔力)'에 사로잡히지 말고 정당한 소수의견의 창조적 기능을 올바르게 보는 것이 특히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론의 2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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輿論-二面性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여론은 그것의 실질적 형성에 참여하는 대중의 기능적 2면성에 상응하여 확산성(擴散性)과 조직성(組織性)을 함께 가지고 있다. 즉 일면에서는 주로 매스 커뮤니케이션을 매개로 하는 정치선전에 의해 '원자화된 대중'의 비합리적 감정을 교묘하게 조종하여 대중을 확산화의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측면과 함께 '조직적 대중'의 정치적 자각의 상승에 맞추어 생산적·창조적인 방향으로 대중 에너지를 조직화하는 측면을 갖는 것이다. 현실의 여론현상은 보통 이들 두 개의 측면을 동시에 포함하는 것이어서 여론의 확산성이냐 조직성이냐의 어느 측면에 역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여론의 질적 편차를 낳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결국 주로 심벌 조작에 의해서 대중의 비합리적인 감정에 호소하여 여론의 확산성을 추진한다면 일시적으로는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획득하는 데는 성공할 수 있으나 그 열광성 때문에 여론의 소비성(消費性)·감각성(感覺性)은 증대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민주적 대중토의를 거부함으로써 얻어지는 여론의 조직적 결정화(結晶化)는 '풀 뿌리(그래스 루트)'로부터의 대중 에너지를 흡수하는 데 지장을 가져오지 않는 이상, 여론의 생산성·창조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사회심리·여론·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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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會理論·輿論·ideology

여론의 확산성과 조직성이라는 양면적 성격은 사회심리와 여론 및 이데올로기와의 상호관련성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여론의 2면성). 이데올로기와의 대비에서 본다면 사회심리는 특정의 사회·집단·계급·직업 등에 속하는 사람들의 사회의식 가운데 일정한 사회적·문화적 여러 조건에 따라 규정되면서도, 특히 일상적인 생활조건에 밀착해서 자연성장적(自然成長的)으로 발생하는 계통적·체계적이 아닌 감정·기분·사상·환상 등의 총체를 의미한다. 이점에 있어서 의견과 마찬가지로 사회심리도 합리성과 비합리성, 지각성(知覺性)과 정동성(情動性)이라는 양면적 성격을 내포하고, 따라서 유동적·가동적(可動的)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데올로기는 특정 사회의 정신적 생산 부문에 종사하는 이데올로기들에 의해 의식적으로 형성되는 사상의 체계이다.그렇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는 자각적·논리적·체계적인 특질을 가지며 명확한 사회적·정치적 방향성을 내포한다. 그리하여 사회심리와 이데올로기와의 상호관련에 대해서 이데올로기는 사회심리의 응결체 또는 결정체라고 불리어 왔다.그러나 다양한 가능성을 포함하는 자연발생적인 사회심리로부터 목적의식적인 이데올로기에로의 질적 전화(轉化)는 결코 단선적(單線的)·기계적 과정으로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이데올로기와 사회심리는 복잡해질 뿐만 아니라 단층(斷層)을 이루고 있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이데올로기와 사회심리와의 중간항(中間項)으로서 여론을 설정하는 의미가 있다. 즉, 그 개념설정에 의해서 이데올로기와 사회심리와의 복잡한 관계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으며 동시에 그 단층을 접속하는 교량적 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여론연구 그 자체로도 실속있는 방향인 것이다.이와 같이 이데올로기와 사회심리와의 중간에 여론을 놓을 때 '여론의 2면성'과의 관련도 더욱 명료해진다. 즉, '사회심리'의 심벌조작에 의해서 여론은 확산화하고, '이데올로기'의 지도 밑에 여론은 조직화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현실의 여론과정에 있어서 확산화와 조직화는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으므로 이데올로기에 의한 조직적인 지도나 교육을 수반하지 않고서 사회심리의 교치(巧緻)한 조종에만 관심을 쏟는 여론형성은 맹목(盲目)이고, 반대로 이데올로기에 의한 지도가 획일화·경직화해서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근원이라고 말하는 사회심리를 계수화(係數化)하지 않는 여론형성은 공허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그러므로 좋아하든지 좋아하지 않든지 간에 현대 여론의 전략론(戰略論)을 말하자면 2정면작전(二正面作戰)을 원칙으로 하고, 변동하는 정치상황에 유연(柔軟)하고 다각적으로 대응하면서 확산화와 조직화를 역동적(力動的)으로 결합시켜 명확한 정치적 방향성에 힘입으면서 또한 폭넓은 민중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결집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여론조사의 효용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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輿論調査-效用-限界

영국의 유명한 정치사상가 브라이스는 그의 저서 『아메리칸 코먼웰스』가운데서 여론의 역사적 발전을 4단계로 나누어 '의회를 경유할 필요도 없고, 아마도 투표장치의 필요성도 일체 없이 국민의 대다수의 의사가 항상적으로 확인되기에 이르는' 제4의 단계를 '여론의 지배'에서 가장 적합한 상태라고 말했다. 최근에 있어서의 여론조사의 눈부신 발전은 이 브라이스의 제4단계에의 접근을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 여론을 옳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고 민주주의의 완성에 크게 기여했다고 해서 무조건 기뻐할 수도 없다.여론조사가 특정시점에 있어서의 여론의 실태를 횡단면적으로 해부하는 과학적 도구라는 데는 틀림이 없다. 과학적인 조사이론과 조사기술의 뒷받침을 받는 한, 여론조사는 일반적으로 과학적 권위를 갖는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도 하나의 도구인 이상 그 사용주체와의 복잡미묘한 관련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측정의 도구'로부터 '조종의 도구'에로의 여론조사의 전화라고 하는 비극도 실은 이 조사주체의 문제차원에 있는 것이다. 한번 여론조종의 도구로 화하면 과학의 베일을 걸치게 되므로 그 폐해 또한 배가(倍加)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론조사의 작위성(作爲性)과 기만성에 세심한 주의를 하는 동시에 동태적인 여론과정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조사상의 한계를 근거로 하는, 여론조사에 관한 올바른 과학적 인식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여론조사의 이데올로기 비판'과 '여론조사 페티시즘'의 중간에서 여론조사의 효용을 찾고, 여론의 실태를 찾아내는 하나의 실마리를 객관적 데이타로서 제공하는 것이 오늘날의 과학적 여론조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