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사회 I·문화재/문 화 재/중요 문화재/인천광역시

답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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沓洞聖堂

사적 제287호. 인천광역시 중구 답동에 있는 유서깊은 성당. 벽돌조 고딕양식이다. 1890년대에 건축된 한국 성당 중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이다. 프랑스 코스트(한자명 高宜善) 신부의 설계로 1897년에 처음 건립되었고, 1937년 코스트 신부와 같은 소속인 P.시잘레(한자명 池士元) 신부의 설계로 증축되었다.앞면에 설계된 3개의 종탑은 건물의 수직 상승감을 더해주며, 8개의 작은 돌로 된 기둥(pilaster)이 8각(角)의 종머리 돔(dome)을 떠받들고 있다. 앞면의 출입구는 화강석을 사용하여 벽감(壁龕) 모양의 아치로 하였다.1979년 창문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했다. 이 성당은 그 위용과 아름다움으로 개항장 제물포 시대부터 인천의 역사적인 건축물로 꼽혀왔다.

녹청자 도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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綠靑磁陶窯址

인천광역시 서구 경서동 일대의 언덕에 있는 고려시대 녹청자 가마터이다. 모두 5곳으로, 10

11세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마는 3

4°의 자연경사를 이용하여 기울어져 있고 내부는 칸이 없는 통가마이다. 평면은 아궁이(봉통)와 가마 사이가 약간 좁고 긴 형태이다. 이 가마에서 구워낸 것은 녹청색이 짙은 청자로, 바탕흙〔胎土〕에는 불순물이 섞이고 기공(氣孔)이 많다. 유색은 녹갈색과 녹청색인데, 표면이 매끄럽지 못하며, 소문(素文)이 대부분이다. 형태는 대접·접시·병류가 많고, 이 가운데 입큰병은 중국 당(唐)나라 말기 오대(五代)의 양식을 보인다.

향약제집성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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鄕藥齊集成方

보물 제1178호.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1201 가천문화재단. 향약집성방은 조선 태조 때 김희선과 권중화 등이 의료 경험과 종래의 의약서 등을 참고로 하여 제생원(濟生院)에서 편찬한 것을 정종 1년(1399)에 김희선이 강원도에서 간행한 의학서이다. 총 30권 가운데 일부(제6권)로서 처음 발간된 유일한 책이다.책의 내용은 각종 질병을 부분별로 제시하고 있으며, 세종 15년(1433)에 간행된 향약집성방의 기초가 되었다. 특히 한국에서 자생하는 약초를 이용해 우리 풍토와 체질에 알맞은 향약을 적용하였다는 데 큰 의의가 있으며, 의약서와 인쇄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신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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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應經

보물 제1180호.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1201 가천문화재단. 신응경은 중국 명나라 유근이 출간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성종 5년(1474)에 목판본으로 간행한 침구(鍼灸) 전문서적이다. 이 책은 서(序) 등이 결락되고 본문도 훼손된 상태이나 우리나라에서 처음 간행된 침구서라는 점에서 서지학 및 침구서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식물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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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物本草

보물 제1227호. 명(明)나라 세종 5년, 즉 조선 중종 21년 요문청(姚文淸) 등의 서문을 붙여 간행한 것을 중종~명종년간(1526~1566)에 다시 갑진자판(甲辰字板:1484년에 만든 동활자)으로 간행한 전문 의학서이다. 각 류에는 조목마다 해당식물의 맛·본성·이익·독성 등을 적어놓았다. 희귀본 의서로서 의학 및 서지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덕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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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津鎭

사적 제226호. 강화도에 있는 강화 12진보(鎭堡)의 하나. 현재 문루(門樓)·포대(砲臺)와 성곽·돈대(墩臺)가 남아 있다. 병자호란 후 강화도를 수비하기 위하여 내성(內城)·외성(外城)·진보·돈대 등을 축조하였는데, 12진보는 그 중 하나로서 강화도 주위에 설치되었다. 덕진진은 1679년 축조된 용두(龍頭)·덕진 등 2개 돈대와 1874년(고종 11) 축조된 남장(南障)·덕진 등 2개 포대를 관할하는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였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양헌수(梁憲洙)가 이끄는 부대가 이 진을 통하여 정족산성(鼎足山城)으로 들어가 프랑스군을 격퇴하였고, 1871년 신미양요 때는 미국함대를 격퇴시켰다.

삼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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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郞城

사적 제130호. 강화군 길상면의 정족산에 있는 옛 성. 전설에 의하면 단군이 세 아들에게 명하여 쌓게 하였다 한다. 성내에는 전등사가 있다. 조선 18대 현종 1년(1600)에 마니산에 사고(史庫)를 옮겨 세우고 실록(實錄)을 감추어 보관한 일로 유명하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이 성을 침략한 프랑스군을 양헌수 장군의 병사들이 무찔렀다. 1976년 훼손된 부분을 복원하였다.

정수사 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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淨水寺法堂

보물 제161호. 강화군 화도면 정수사에 있는 조선 초기의 목조 건물. 정면 3칸, 측면 4칸의 단층 맞배지붕 건물이다. 1957년 보수공사를 할 때 1689년(숙종 15) 당시의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이 법당은 1424년(세종 6)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강화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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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華山城

사적 제132호. 고려 및 조선시대의 산성. 강화군 강화읍에 있다. 고려 말 몽골군이 침략하자 이에 항쟁하여 강화 천도를 목적으로 1234년 1월부터 도성과 궁궐 등을 축조한 것이다. 성은 내성·중성·외성이 있었는데,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성이다. 그러나 1259년 몽골과 강화(講和)의 조건으로 성을 헐었다가 조선 초기에 다시 쌓았다. 이후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보수공사가 실시되었다. 현재 강화읍의 동쪽 부분은 무너져 자취만 남아 있으나 남북쪽으로는 보존이 잘 되어 있다.

강화 고려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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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華高麗宮址

사적 제133호. 고려의 궁터. 강화군 강화읍에 있다. 1232년(고종 19)부터 1270년(원종 11)까지 39년 동안 몽골의 침입을 피하여 옮겨 온 왕궁터로 한때 고려의 중심부였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당시에는 연경(延慶)·강안(康安) 등 많은 건물과 이궁(離宮)·가궐(假闕)까지 갖춘 대규모의 궁정이었다.

초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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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芝鎭

사적 제225호. 해안경비를 하던 진(鎭). 강화도의 초지리에 있다. 조선 인조 22년(1644)에 설치되었고, 현종 7년(1666)에는 병마(兵馬) 1만 호(戶)가 있었으며, 영조 39년(1763)에는 첨사(僉使)가 있었다. 1871년 신미양요 때 최대의 격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이 초지진이 모두 허물어져 돈의 터와 성터만 남아 있다가 1973년 초지돈만 복원되었다. 돈에는 3개소에 포좌(砲座)가 있고 100여 개의 총좌(銃座)가 있다. 성은 높이 약 4m, 장축 약 100m의 타원형 돈으로, 포각(砲閣) 안에 대포 1문이 전시되어 있다. 이 밖에도 사적 제227호로 지정된 광성보는 강화 해안에 설치한 “진과 보”의 지휘 본부이고, 사적 제306호인 갑곶돈대는 강화도의 관문으로 한강을 지키는 서울의 첫 길목이다.

전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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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燈寺

강화군 길상면 정족산성(鼎足山城) 안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그 후 고려 제27, 28, 30대의 충숙왕(忠肅王)·충혜왕(忠惠王)·충정왕(忠定王) 때에 수축하였고, 1625년(인조 3)과 1906년에도 중수하였으며, 또 일제강점기에도 두 차례 중수하였다. 전등사라는 이름은 충렬왕(忠烈王, 재위 1274∼1308)의 비 정화궁주(貞和宮主)가 이 절에 옥등(玉燈)을 시주한 데서 비롯되었다.

전등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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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燈寺大雄殿

보물 제178호. 강화군 길상면에 있다. 조선시대 중기 대웅전 건축의 전형적인 예. 정면과 측면 각 3칸의 팔작 다포집이다. 처마 끝이 날아갈 듯 들려 있으며, 우아한 느낌과 내부 장식의 화려함이 돋보인다. 1615년(광해군 7)에 기공하여 1622년에 준공을 보았다.

전등사 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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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燈寺梵鐘

보물 제393호. 전등사의 종각에 있는 북송(北宋)시대의 종. 높이 1.64m. 입지름 1m. 꼭대기에는 좌우에서 쌍룡이 등을 지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의 꼭지가 있을 뿐 몸통은 없다. 형태가 장중하고 조각이 웅걸하며 소리가 맑다. 본래 중국 송나라 때 허난성(河南省) 백암산 숭명사에 있던 것으로, 1097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전한다. 일제시대 때 무기를 만들기 위해 일본 군인들이 쇠붙이를 거두어들일 때 전등사 범종도 강제로 빼앗겼다. 광복 후 부평 군기창에서 큰 종이 발견되었으나 그것은 전등사 범종이 아니라 송나라 때 만든 종이었으며, 그것이 오늘날 전등사 종루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전등사 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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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燈寺藥師殿

보물 제179호. 전등사에 있는 조선시대 중기의 목조건물. 약사여래좌상을 모신 건물로, 불교 신자들이 병을 고칠 목적으로 이곳에서 불공을 드리곤 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다포집 계통에 속하며, 건립 시기는 대략 1621년으로 추정된다.

참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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塹星壇

사적 제136호.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 꼭대기에 있는 제단. 마니산 제천단이라고도 한다. 높이 5m. 상고시대에 단군께서 단을 쌓고 하늘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 상단 네모의 길이는 사방 2m, 기단 원형의 지름은 4.5m이다. 산에 있는 돌을 다듬어 반듯하고 납작하게 만들어 돌과 돌 사이에 흙이나 회를 바르지 않고 쌓았다. 상단 동쪽면에는 21계단의 돌층계가 설치되어 있다. 1639년(인조 17)과 1700년(숙종 26)에 중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