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금융·경영/종합경영의 기초지식/경영형태의 발전/동양의 전통적 경영형태

근대 중국의 경영방식 편집

近代中國-經營方式

중국 상가의 특징

中國商賈-特徵

근대 중국(청조말)의 특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것은 17세기 유럽의 길드(guild)와 비슷한 조직인 '회관(會館)', '공소(公訴)'의 존재이다. 역사적으로 상인과 수공업자에 대한 법률의 보호가 불완전한 것을 기회로 대소 관리는 관권(官權)을 전단(專斷)하여 사복(私服)을 채웠으며 명문사족(士族)들은 권위를 내세워 그 횡포가 극심한 형세 아래, 상민들인 상인이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면 동향자나 동업자끼리 단결하여 상호 보호구제하는 길밖에는 별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위적 요구에서 발생한 것이 회관 또는 공소라 불리는 조직인데, 이 조직은 차차 발달하여 상호의 보호구제를 목적으로 한 소극적인 것에서 적극적으로 공동이익의 보호증진을 목적으로 한 것이 되었다.

회관에는 입법·사법·행정을 맡은 부서가 설치되어 유럽제국의 길드와 같은 동업조합에서 정치단체적인 요소가 가미된 독특한 것이 되었다. 중국 상가의 굳은 단결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이것은 중국의 천성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조직을 통해 공동운명을 의식한 데서 온 것이라 생각된다.

중국의 상가는 유럽의 길드와 같이 도제(徒弟)양성의 제도가 있어 친척이나 친구의 자제를 맡아 상업경영을 습득시켜 왔는데, 이 과정에서 태만하거나 정직하지 않은 점 등 결점이 발견되면 가차없이 축출하였고, 일단 축출된 사람은 아무도 채용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러한 관습은 중국의 상가가 신용을 생명처럼 알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중국상가의 자본 편집

中國商賈-資本

고대부터 중국의 상가들은 친척·친구끼리의 합자형식이 많았다. 출자자들은 서로 믿을 수 있는 친척이나 친지에 한했고, 출자자 수는 많아야 20∼30명, 보통은 3∼4명에 지나지 않았는데, 가장 일반적인 것이 풍기(豊記:3인조)·협기(協記:3인 내지 6인의 합자)·공기(公記:10인 내외의 주식) 등이었다.

투자방법 편집

投資方法

사업경영에는 관판(官辦) 즉 관영의 것, 관상합판(官商合辦) 즉 관민공영, 상판(商辦) 즉 민영의 3종이 있다.

(1) 관판 ― 독점적 성질을 가진 철도·기선·광무(鑛務) 등의 공공기업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국가사업으로서 경영했으며, 그 자금은 중앙정부 및 성(省) 관아에서 지출하거나 주식을 공모하기도 하고 외국의 차관에 의한 것도 있었다.

(2) 관상합판 ― 관가·민간상인의 출자로 이루어진 형태로, 관판과 상판의 중간적 형태이나 완성되지는 못하였다.

(3) 상판 ― 완전한 개인기업으로, 투자방법에 따라 ① 자기 자본에 의해 자기 스스로 경영하는 것, ② 대영(代營:代辦 또는 包辦)이라 불리는 것으로 사업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자본을 맡겨 영업상 일체의 관할을 맡기는 것, ③ 합자(合資) 또는 합동(合同) 등이 있는데, 합자에는 공기·협기·풍기 등의 형태가 있음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경영자 편집

經營者

중국의 상가에서는 최고경영자인 주인을 동가(東家)라 부르는데, 운영형태에 따라 자영·대영·합자의 3가지가 있듯이, 동가에도 3종의 구분이 있다. 즉 재동(財東)이라 불리는 자본주, 고분에 있어 고표(肌票:株式)를 소유한 고동(肌東), 타인의 출자에 의해 독자적으로 사업을 경영하는 영동(嶺東)이 그것이다.

동가 밑에는 관사적(管事的)이라 불리는 지배인이 있어 일체의 사무를 처리하고 고용인의 임면에서 상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하였으며, 최고경영자인 재동·고동 등에 대해서는 경영상에 관한 모든 책임을 졌다. 지배인은 경우에 따라서는 신원보증금이란 명목하에 약간의 출자를 하여 이에 대해 일정한 이익배당을 받는 경우에 있으나, 원칙적으로는 일정한 보수와 연말 영업성적에 따라 일정한 상여금을 받았다.

근세 일본의 산업 편집

近世日本-産業

소위 에도시대(江戶時代)라 불리는 16∼19세기의 일본의 산업은 아직도 농업이 지배적인 생산이었다.

한편 에도 중기 이후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여감에 따라 농민이 구입하는 상품의 양도 증가하였다. 소금·어개류(魚介類)·도자기·금속가공품 등은 농민들이 구입하던 중요한 상품이었으나, 중기 이후 여러 가지 상품들이 거래되었다. 과자·술·담배·직물·신발·기름·종이·약품·우산 등의 소비품과 특수한 농기구·어비(魚肥) 등이 농촌에 흘러들어 이러한 상품들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번성하였고, 상품경제의 발달에 따라 화폐의 유통도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이상과 같이 화폐경제가 발달해감에 따라 겸업적인 농촌공업이 발달하였고, 나아가서는 본격적인 도시공업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근대적인 상업 및 화폐금융체제로의 발판이 되었다.

에도시대의 경영 편집

江戶時代-經營

공업경영 편집

工業經營공업은 처음에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했으나, 농촌에도 부업적인 가내공업이 발달하였고, 지방 영주(領主)들의 물산장려정책에 의해 전국 각지의 특산물이 많이 생산되었다. 공업경영의 형태는 17세기경에는 도이야제(問屋制) 가내공업이 19세기말에는 공장제(工場制) 수공업이 생겨났다. 공업의 종류로는 직물공업·도자기공업·칠기(漆器)공업·양조공업 등이 왕성했다.

도시의 공업 편집

都市-工業

도시의 공업은 쇼쿠닌(職人)이라 불리는 공인(工人)들에 의한 수공업이 대부분이었는데 쇼쿠닌들은 '나카마(中間)'라 불리는 동업조합을 조직하였고, '도제제도(徒弟制度)'를 채용했다. 나카마는 조합원의 자격을 규제, 인원을 제한하여 영업의 독점권을 장악하고 제품의 가격·생산량을 협정, 자유경쟁을 금지했다.

나카마는 영업의 독점권을 인정받는 대신 막대한 금액을 통치자인 바쿠후(幕府)나 지방영주에게 바쳤다. 쇼쿠닌이 되려는 자는 조합원이 쇼쿠닌에게 도제로서 일정기간 근무하며 기술을 익힌 다음에야 쇼쿠닌이 될 수 있었는데, 그러나 한 사람 몫의 쇼쿠닌이 되었다 해도 누구나 나카마에 가입할 수는 없었다. 나카마에서는 가부(株)라 불리는 일정한 정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입하지 못한 쇼쿠닌은 가입한 쇼쿠닌에게 고용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쇼쿠닌은 임금 노동자에 지나지 않았고, 상업자본은 이러한 쇼쿠닌을 이용하여 도이야제 가내공업을 형성해 갔다.

도이야제 가내공업 편집

問屋制家內工業

도이야라 불리는 상업자본가가 가내공업에 자금·원료·도구 등을 미리 대부하고 생산에 관한 지시를 하며, 완성된 제품은 전부 인수하여 판매하는 형식이다.

이 방식에서는 가내공업자는 제품의 판매시장에서나 원료의 구입시장에서나 밀려나게 되어 위탁가공하는 데 지나지 않았고, 끝내는 완전히 도이야에 예속된 임금노동자가 되었다. 이러한 도이야는 농촌에서는 상인화(商人化)·고리대금업자화한 유력한 지주였으며, 도시에서는 상인·고리대자본가였다.

상업의 경영 편집

商業-經營

에도시대에는 바쿠후가 징수한 연공미(年貢米)와 지방영주들이 전매제도에 의해 농민들로부터 강제로 매수한 지방특산물을 오사카·에도 등지로 보내 상인들을 통해 판매하였고, 지배계급인 무사들은 녹미(祿米)로 받은 쌀을 받아 각종 생활필수품을 사들이는 등의 이유로 상업이 매우 발달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상품생산이 활발해지고 화폐경제를 발전시킨 계기가 되었다.

구라모토·가케야 편집

藏元·掛屋

지방 영주들이 거둬들인 연공미와 매수한 특산품을 오사카·에도 등지의 대도시로 수송·판매하기 위해 '구라야시키(藏屋)'라 불리는 창고겸 거래소를 마련하고, 관리자로 무사(武士)를 임명했으나, 실제 운영은 구라모토·가케야라 불리는 민간인이 맡았다.

구라모토는 지방영주가 보내온 쌀이나 특산물을 보관·출납하는 상인으로서, 영주로부터 봉급을 받았을 뿐 아니라 물품 매각에 따르는 구전을 받았다. 가케야는 물품매각 대금을 보관하여 지방영주가 필요할 때 송금하며 필요한 자금을 융통해 주는 것이 임무로서, 이들은 지방영주의 재정이 궁핍해지면 자금을 대부해 주고 높은 이자를 받았는데, 지방영주들은 이 대상(大商)의 경제력에 압도당하는 형편이었다.

상업의 형태 편집

商業-形態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상업은 생산으로부터 분리되었고, 상인도 도이야·나카가이(仲買)·소매상 등으로 전문화했다. 도이야나 나카가이는 가부나카마(株仲間)를 조직, 도야마(富山)의 매약(賣藥) 상인이나 오우미(近江)지방의 상인들은 행상(行商)으로 전국에서 활약했다.

도이야와 나카가이 편집

問屋-仲買

도이야는 하주(荷主)의 위탁을 받거나 하주로부터 사들여 구전을 얹어 나카가이에게 파는 상인이다. 도이야에는 집하(集荷)를 주요 업무로 하는 것과 다른 지방으로서 이출(移出)를 다루는 2종류가 있다. 나카가이는 도이야로부터 상품을 사들여 소매상에 팔거나 생산자·하주로부터 상품을 사 모아 도이야에 파는 상인으로서 이 시대의 상품유통이나 경제활동은 도이야와 나카가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오우미상인 편집

近江商人

오우미상인의 출신자는 중부 일본의 시가현으로, 오우미상의 영업형태는 행상(行商)에서 출발하여 유망한 지방에는 지점을 설치하고 그곳에 정착, 그 지방의 경제실권을 장악했다. 상업뿐 아니라 공업·어업·금융업에까지 손을 대어 홋카이도(北海道)의 어장과 해산물을 지배했으며, 매약(賣藥)·의류(衣類) 등의 행상과 간장·된장·술 등의 양조업을 경영하기도 했다. 오우미상인이 발전한 이유로서는 이 지방이 곡창이라 불릴 정도로 농산물이 풍부했고, 수륙 양쪽으로 교통이 편리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오사카(大阪)지방을 근거지로 상세(商勢)를 떨친 '오사카상인'은 오우미상인의 성격을 계승·발전시켜서 형성된 것이다. 또 에도(江戶)지방에는 에도상인이 있었으나 그 세력은 오사카상인에 미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