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어린것에게

고요한 밤 너의 자는 얼굴을 무심ㅎ고 드려다볼 때,
새근새근 쉬는 네 숨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아비의 마음은 해면(海綿)처럼 사랑에 붇(潤)는다.
사랑에 겨워 고사리 같은 네 손을 가만히 쥐어도 본다.

이 손으로 너는 장차 무엇을 하려느냐
네가 씩씩하게 자라나면 무슨 일을 하려느냐,
붓대는 잡지마라, 행여 붓대만은 잡지 말아라
죽기전 아비의 유언이다 호미를 쥐어라! 쇠마치를 잡아라!

실눈을 뜨고 엄마의 젖가슴에 달려 붙어서
배냇짓으로 젖 빠는 흉내를 내는 너의 얼굴은
평화의 보드러운 날개가 고히고히 쓰다듬고
잠의 신(神)은 네 눈에 들락날락 하는구나.

내가 너를 왜 낳아 놓았는지 나도 모른다.
네가 이 알뜰한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너도 모르리라
그러나 네가 땅에 떨어지자 으아 소리를 우렁차게 지를 때
나는 들었다 그 뜻을 알았다. 억세인 삶의 소리인 것을!

(이하(以下) 십이행(十二行) 략(略))



조선 사람의 피를 백대(百代)나 천대(千代)나 이어줄 너이길래
팔 다리를 자근자근 깨물고 싶도록 네가 귀엽다.
내가 이루지 못한 소원을 이루고야말 우리 집의 업둥이길래
남달리 네가 귀엽다 꼴딱 삼키고 싶도록 네가 귀여운 것이다.

모든 무거운 짐을 요 어린것의 어깨에만 지울 것이랴
온갖 희망을 염체 네게다만 붙이고야 어찌 살겠느냐
그러나 너와 같은 앞날의 일군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든든하구나 우리의 뿌리가 열길 스무길이나 박혀 있구나.

그믐밤에 반딧불처럼 저 하늘의 별들처럼
반득여라 빛나거라 가는 곳마다 횃불을 들어라.
우리 아기 착한 아기 어서어서 저 주먹에 힘이 올라라
오오 우리의 강산은 온통 꽃밭이 아니냐? 별투성이가 아니냐!

1932.9.4. 재건이 낳은 지 넉달 열흘 되는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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