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승신수
파주(坡州) 낙수(落水) 남편에 있는 승(僧) 신수(信修)의 암자에는 오늘밤에 무슨 일이 있는 모양으로 불빛이 절 밖에까지 비치어 흐르며 흥에 겨운 듯한 사람들의 말소리까지 드믄드믄 들려온다.
때는 여말(麗末) 홍건적의 난리입네, 김용(金鏞)의 반란입네 하고 온 나라가 물끓듯 하건만 이 파주 한 고을만은 세상사를 등진 듯이 지극히 평화하게 지내가는 터이다.
『또 이 화상 한잔 하시나 보군.』
하고 마침 그 암자 앞을 지나가던 사람 하나가 발을 멈추고 절 속을 기웃거렸다.
『흥 저자의 한잔이란 남의 백잔 꼴은 되거든.』
같이 가던 한 사람이 이렇게 말을 받으며 역시 발을 멈춘다.
신수는 이미 육십 가까운 노승으로 몸이 비록 승상(僧相)이나 원체 술을 잘 먹어 얼마든지 있는 대로 한자리에서 마셔 버리고 마는고로 이것을 보는 사람들은 그 모양을 바닷속의 고래가 물먹듯 한다고 모두 웃었다.
더욱이 그 음주하는 태도가 유쾌하니 사람들이 실없이 놀리느라고 혹 소(牛)오줌 같은 것을 가져다주며 먹으라고 졸라도 허허 웃고 단숨에 들이키면서,
『이 술이 심히 쓰다.』
하고 배를 두드렸다.
또 음식을 잘 먹어 쉰 고기나 마른 떡일지라도 가림 없이 다 먹어 없애며 심지어 많은 사람이 모이는 회중에서라도 고기, 생선을 가리지 않고 양껏 먹으니 그 상좌가 민망해하며,
『좀 삼가시오.』
하고 주의를 시키나 못들은 척 하므로 사람들이 모두 웃으니 그제야 자기도 허허 대소하면서 하는 말이,
『고기는 원래 물에 있는 것인데 이 고기가 땅에 있으니 내가 죽인 것이 아님은 알겠지요? 그러니 먹은들 무슨 상관이 있겠소.』
다른 사람들은 웃고 상좌도 웃고 신수도 또한 가장 웃으운 듯이 박장대소하였다.
이날 밤도 신수는 상당히 먹고 취한 모양으로 그 활달한 웃음소리가 길 가는 두 사람의 귀에까지 들려와 이렇게 발을 멈추게 하였으나 먼저 가던 나이 좀 지긋해 보이는 사람이 오늘 신수의 절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을 짐작하는 모양으로 공연히 열심으로 그 속을 들여다 보고 서 있다. 뒤따라가는 친구는 딱해졌다.
그러나 동무가 이처럼 열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라 차마 탓할 수는 없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눈치를 살피다가,
『어서 가세.』
하고 그 소매끝을 잡아다닌다. 그러나 친구는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참 세상에 횡재하는 놈도 많으이.』
하며 혼자 탄식하였다.
같이 가던 친구는 더욱 못 마땅한 듯이 입맛을 쩍쩍 다시더니,
『이 사람 정신이 바뀌었네.』
하고 기가 막혀 하늘을 쳐다볼 뿐이다.
사실 신수의 식음이라면 원체 유명하여 마을 사람들도 이를 탓하기는커녕 도리어 일종의 애교로까지 여기고 으례 예사롭게 보아 넘기거든 이렇게 같이 가던 친구가 새삼스레 떠날 마음이 없어하는 것을 보고,
『글쎄 무엇을 생각하기에 이 모양이야. 정 그럴 테면 혼자 밤이라도 새게.』
하고 젊은편 사람은 먼저 갈 뜻을 말하였다.
『참 저런 삼촌이나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먼저 말하던 사람은 친구의 재촉이 들리지도 않는 듯 여전히 절 안을 들여다보며 혼자 말을 계속한다.
『이 사람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하필 그 십육나한(十六羅漢)을 숙부로 섬기지 못해 애란 말인가.』
십육나한이란 신수의 별명이니 그가 머리를 흔들며 입을 삐죽거리고 눈방울을 굴릴 때마다 그 형상이 모두 기이하므로 십육나한의 상 같다 하여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지어 부르는 것이다.
『상판이야 어떻든 원통한 일이 있으니 말이지.』
처음 입을 열던 사람이 겨우 그 친구의 존재를 발견한 듯이 비로소 이렇게 대꾸를 하니,
『이 사람 암만 해도 망녕이 났네그려.』
하고 그 친구가 어이없는 듯이 웃었다.
『자네야말로 정말 까닭도 모르고 욕부터 해야 그래 옳단 말인가.』
늙스구레한 사람이 정색을 하며 닥아서는 것을 보자 웃던 친구도 당황한 듯이 손으로 막으며,
『아니 그까짓 중의 일로 이렇게 시빗조를 걸며 따질 건 없네.』
하고 물러섰다. 덤비던 친구도 민망한 듯이 웃으며,
『참 기가 막히네.』
『무엇이 그처럼 기가 막힌단 말인가.』
『신수의 이번 처사 말일세.』
『난 점점 모르겠는걸.』
젊은 친구가 머리를 홰홰 내젓는 것을 보자 차마 떠나지 못하던 사람이 설명하는 말이다. 신수는 원래 파주출생으로 근읍에 전지가 많이 있었으나 가난한 사람 고독한 사람들을 위하여 이럭 저럭 끊어주고 그리고도 아직 많은 가산이 있는 것을 오늘밤은 모두 털어내어 그의 조카들에게 마지막 갈라주려는 것이라 한다.
『그 사람이 원래 재물을 아끼지 않는 것은 알지만 참 이번 처사야말로 남의 눈에도 갸륵하네.』
친구가 이렇게 말을 맺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한 사람도,
『그것 참 내 삼촌 아닌 게 원통하겠군.』
하고 놀렸다.
『그래 자넨 원통하지 않나?』
『글쎄 원통할 것까진 없지만 부럽기는허이.』
두 사람은 함께 웃었다.
과연 이날 신수는 세 사람의 조카들을 모아 놓고 주안을 배포하여 실컷 먹고 마시게 한 후 각각 지점을 분별하여 땅을 갈라 주었다.
그중 한 사람이
『우선 잡수실 건 남겨야지 이렇게 모두 주셔서야.』
하고 간절히 사양하는 것을,
『나는 중이니 동냥을 댕길 테다.』
하며 그 뚱뚱한 배를 두드리고 웃었다.
그 모양이 어찌 기이하든지 방안 사람도 웃고 심지어 기명이며 등불까지 허리를 펴지 못하는 것 같았다.
🙝 🙟
이리하여 신수는 수중 무푼전하여저 집집으로 탁발을 다니나 수단이 심히 묘하고 또 입에서 나오는 말이나 그 행동의 일거일투가 모두 웃으워 한번 본 사람에게라도 숙친한 감정을 주므로 서로 불러 「너 나」하니 여름에도 오히려 흰밥을 상식치 않는 때가 없었다.
어느 날 그는 가득 찬 시주 바랑을 메고 절을 향하여 돌아가는데 문득 그의 두 눈은 집 마을로 향하는 언덕길에 쏠리어 움직이지 않았다.
『응 저게 누구냐.』
처음 그의 입에서는 안까님이 나오고 드디어 전신에 열이 핑 돌았다.
남치마에 노랑저고리로 비록 때묻은 무명일망정 아직 빛만은 선명한 색 옷을 떨쳐 입은 한 젊은 여자가 물동이를 이고 총총히 마을을 향하여 들어가는 것이다.
『흥, 고것 괜찮은데. 사람 참, 눈꼴 사납겐 해주네.』
신수는 빨리 그 여인의 뒤를 따라갔다.
원래 성질이 호탕한 데다가 색을 즐기는 그는 눈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어떻게 달래든지 능청맞게 내 것을 만들고 말았다.
사람들이 혹 무어라고 말하면
『지금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욕(利慾)이 서로 얼켰으며 혹은 심장이 포악하여 번뇌(煩腦)에서 깨어나지 못하므로 좋은 것을 보면 침을 흘리고 고운 여인을 보면 음심을 품으나 이루지 못하고 바둥거리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서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곧 먹고 색을 보아도 곧 취하므로 그 뒤는 꼭 여름날 소나기 오는 것과 같이 순간에 씻어 버리나니 이것이 그래 제일 아니요?』
하며 여전히 크게 웃어 버렸다.
그러므로 마음이 걸직한 계집이나 바람기 있는 여자들이면 도리어 고리탑삭한 범부(凡夫)보다 신수의 이 호담 패연(沛然)한 것을 좋아하여 슬슬 기어드니 그도 밉지 않게 보는 계집이면 그만큼 치닥거리도 해주어 이 방면에 있어서의 평판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지금 물 긷는 여자의 뒤를 이렇게 따르나 그 계집은 눈치를 채었는지 안채었는지 핼끔 돌아보더니 한번 방긋 웃고 더욱 걸음을 빨리 하였다.
『어구, 고것 사람 녹인다.』
신수도 급히 따라갔다.
무너진 싸릿짝 문턱에 이르러 계집은 약간 돌아보는 듯하더니 다시 한번 쌕 웃고 쑥 들어가 버린다.
신수는 따라 들어갈가 하다가 차마 그러지 못하고 울타리 밑에 주저 앉아서 가만히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물독에 물을 죽 들어 붓더니,
『아이구 이 망난이 어디멜 갔을가.』
이따위 입을 놀리고 뭐라고 알아들리지도 않게 연방 종알대는 그의 사설 소리가 들린다.
『허 - 고것.』
신수는 고개를 흔들고 눈으로 미소하였다. 어떤 충동이 한순간 휙 온몸에 돈 것이다.
『영감은 나갔나보다.』
하고 그는 드디어 벌떡 일어났다.
이 집은 성옹(成翁)의 집이다.
원체 가난한 모양이므로 탁발의 내왕에도 들려본 일은 없으나 이 마을에서 자란 신수라 집안 형편 쯤이야 짐작 못할 배 아니다.
가난하고 늙고 착할 뿐인 성옹 ─ 그러면 저 계집은 아마 그의 아내인 모양인데 언제 저렇듯 예쁘고 젊고 팔팔한 것을 맞아들였을가.
『험, 험, 험!』
신수는 연해 헛기침을 해가며 코를 씰룩거리고 입을 빙글거리도록 두 손을 뒤꽁문이에다 짐지우듯이 얹어가지고 그만 그 집 속으로 들어갔다.
툇마루 앞에다 시주 자루를 들이대고 방안을 기웃이 들여다 보았다.
세간이라고는 허리 부러진 고리짝 한 개 없는 방구석을 등지고 가만히 앉아 있는 계집을 슬쩍 쳐다보나 그는 알은체도 아니하고 빈 바느질 광주리만 뒤지고 있다.
『새침한 계집년!』
하고 신수는 픽 웃음이 나왔으나 당장 저 계집에게 의논을 부쳐보아야 이 아쉬운 정을 풀 수가 있겠는데 하고 마음을 다잡아먹고 정작 말을 부치려니 혀가 굳었는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몇 번이나 슬금 슬금 눈치를 보다가 기껏 한 소리가
『시주 좀 합쇼.』
해버렸다. 계집은 이 말을 못 들었다니보다도 여태껏 들여다보는 신수를 한 번도 거들떠 보 지도 않고 배 앓는 고양이 상을 한 채 여전히 쭈그리고 앉았다.
웃음을 참는 모양이었다.
『조런 얌퉁머리, 아무것두 없는 반짐고린 뒤져 뭘 하는 거야.』
신수는 약간 속이 뒤집혔다.
그러나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흥분을 가져와 가뜩이나 괴로운 충동을 더욱 북돋아 주었다.
그는 더 섰을래야 더 섰을 수가 없었다.
『시주 좀 허우.』
신수는 거듭 들이대었다.
계집의 입술이 펴지더니 웃음이 흐른다. 신수는 겨우 용기를 내어,
『내 말 한 가지 듣겠소?』
하고 성큼 마루 위로 올랐다 . 계집은 새빨갛게 되었으나 반항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신수는 속으로 은근히 반가웠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계집은 고개를 숙인 채 몇 걸음을 뒤로 물러 앉았다.
『그럴 건 없네.』
하며 신수는 음탕스러운 눈으로 계집의 몸을 굽어보았다.
『성옹은 어디로 갔소?』
여인은 대답이 없다.
─ 이건 벙어리인가 말대답을 해 줘야 그놈의 의논을 해보지. ─ 신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
『벙어리가 아니거든 말좀 하소. 글쎄 성옹은 어디 갔소?』
『산에 나무하러 갔나 봐요.』
『나무하러갔다? 허 그 늙은이가 오죽 고될라고.』
신수가 하도 참말처럼 맞장구를 쳐보이자 계집의 눈에는 아련히 눈물까지 스며 올랐다.
『모두가 가난 때문, 가난이 죄지요.』
『그래 그 가난을 면할 도리는 없소?』
『어떻게 있겠어요.』
어둑한 방안, 온몸에서 발휘하는 강열한 정욕감 때문에 점점 가느스름해 오는 신수의 눈에는 계집의 모습이 꽤 예쁘게 비취었다.
『내 말 한마디 들우, 우선 이 가난만은 면하게 해줄 테니.』
신수에게서 기어이 최후의 선고를 들은 계집의 얼굴은 약간 창백해졌다.
몸을 가늘게 떨었다.
『내가 이 방에 들어온 것을 가만히 두는 데는 필시 무슨 결심이 있을 것. 자 ― 그 결심을 어디 실행해 보지.』
신수는 발발 떠는 계집의 손을 잡았다. 여인은 갑자기 몸을 떨치며 손을 빼앗으려 한다.
『세상에 억울한 일도 있다. 그래 이처럼 예쁜 여편네를 고생기키다니, 자 내게로 온. 면해볼 도리가 있겠지.』
신수는 그만 계집의 목을 얼싸 앉았다.
『에그머니.』
계집은 중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나려 하였다.
그러나 그때 벌려진 신수의 넓은 품은 계집을 놓지 않았다.
성옹의 처는 마치 독수리에게 움키운 닭과 같이 그의 품속으로 말리어 들어갔다.
저녁해가 붉게 산마루를 몰들일 때까지 한 갈퀴라도 더 모으고자 힘없는 팔에 힘을 돋우던 성옹은 드디어 어슬렁 어슬렁 집을 찾아 들었다.
아침 식량이 떨어졌는 줄 빤히 아는 터에 저녁밥을 찾아 들어오기는 너무도 서글픈 일이지만 그래도 빈 창자가 쪼르륵 소리를 내며 무엇을 요구하는 통에 역시 내 집 밖에는 찾아갈 곳이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디서 변통을 해다 죽이라도 끓여 두었으면…….』
굽어진 등을 마구 내려 누르는 듯한 나뭇짐을 겨우 지탕하여 싸리문을 돌아 들어오려던 성옹은 잠깐 멈칫하고 물러섰다.
댓돌 위에 어지럽게 굴러져 있는 한 쌍의 남자의 신발과 툇마루에 자빠진 시주 자루, 그 방탕한 신수가 아내에까지 손을 뻗쳤음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응 저것들이…….』
그의 콧구멍에서는 휘파람소리같은 단숨결이 드나들며 눈에는 서릿발같은 찬 빛이 뻗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죽해야 저런 생각까지 날라구 불쌍한 것.』
이렇게 억지로 생각을 돌려 뒤집힌 배알을 바로 잡았다.
『암 오죽 배가 고파야.』
그러나 그는 눈앞에 밥사발이 보이기보다도 실상 보아서는 두 눈에서 불이 일어날 듯한 그 무슨 광경이 꼴딱서니 사납게도 자꾸 두눈에 비쳐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구 있을 때가 아니었다.
힘없는 어깨 위의 나무가 자꾸 체모없이 내리 누르는 통에 점점 머리가 홀쭉한 뱃가죽을 향하여 굽어드는 때문이다.
성옹은 미닫이를 드윽 열어젖히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으며 부엌바닥에 나뭇짐을 부려 던지고 맨 봉당 위에 터덜썩 주저앉았다. 방안에서도 남편이 돌아온 기색을 알자 수성수성하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방문이 열리며 신수가 나오고 치마꼬리를 여미며 이내 계집이 뒤따라 나와 함께 문밖으로 사라진다.
성옹은 아무말도 없이 슬며시 방으로 들어와 찢어질듯이 피곤한 몸을 아랫목 바닥에다 부치고 쭉 두 다리를 뻗으며 눈을 감았다.
눈에 뜨이는 것이 모두 육중한 신수와 팔팔한 젊은 아내와의 사이에 일어났을 그 무슨 이상한 모양을 연상케하여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부엌에서는 무엇을 하는지 덜거럭 덜거럭 하는 소리가 연해 나며 얼마가 지났을 때 밥상을 가져다 방 한가운데 놓는다.
『진지 잡수.』
성옹은 씨근씨근 숨결만 되게 내고 누워 있었다.
밥이고 무엇이고 한바탕 때려부수고 싶은 생각이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건만
『모두 내 탓이다.』
하고 그는 그저 참았다.
『글쎄 진지 안 잡수세요?』
재차 독촉하는 아내의 눈에서는 눈물 방울이 구술같이 굴러내렸다.
『불쌍한 것.』
하고 성옹은 비로소 일어나 앉았다.
신수가 시주 자루를 털어놓고 감이리라. 언제 먹어 보았는지 기억조차 아득한 쌀밥이 두둑하게 사발 위에 솟아올라 있다.
몇 날을 굶어 때리고 눈앞에 흰밥이 생겼을 때 동치 않을 장사가 어디 있으랴.
슬슬 닥아 앉는 성옹의 떨리는 손이 숟가락을 잡자마자 순식간에 남은 것이라고는 사발 밖에 없다.
빈 밥그릇을 부족한 듯이 멀거니 바라보다가 멀뚱해서 물러앉는 늙은 남편을 까치랑밤송이처럼 웃목에 옹숭거리고 앉아 있는 아내가 민망한 듯이 쳐다보며 웃으니 성옹도 그처럼 놀랍던 분이 모두 어디로 사라진듯 마주 보고 싱긋 웃었다.
다음날도 성옹이 없는 틈을 타서 신수는 찾아 왔다.
늦게까지 계집을 끼고 희롱하다가 역시 시주 전대를 털어놓고 가니 성옹은 모르는 체하고 전날처럼 분도 그리 나지 않았다.
『계집을 못쓰게 만든 것도 모두 내 죄다.』
하고 깨달으니, 밤낮 마실도리해서 늙은 서방 먹여 살리지 못해 바둥거리는 모양이 도리어 아내의 고마운 덕같이 생각되며 그처럼 밉게 보이던 신수의 육중한 몸짓까지 치가 떨리게 원통하지는 않았다.
『가난이 죄야 그놈의 가난이.』
성옹의 마음에는 활달하고 아낌 없는 신수의 성의가 도리어 미덥게 생각되며 자기를 먹이기 위하여 그 몸까지 버리는 불쌍한 아내를 어떻게 해서든지 한번 좋은 세월을 보여주고 싶었다.
성옹의 마음이 점점 이렇게 풀려드는 것같이 그 아내에게로 쏠리는 신수의 사랑도 더하여져서 혹 자기가 오지 못하는 날엔 기필 상좌를 시켜서 식량을 보내주니 으례이 몇 날씩 연기를 올려보지 못하던 성옹의 집 굴뚝에서는 하루 세 번 걸르지 않고 기운차게 푸른 연기가 높이 떠오르곤 하였다.
일이 이렇게 쯤 되니까 입빠른 마을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어, 저녁 먹고 남의 사랑방에 모여 앉았을 때나 논물을 보러 논두렁에 몰렸을 때면 으례이 신수의 이야기가 나왔다.
『성옹의 여편네는 마치 그 집 쌀가마닐세.』
『허허 참 그래 신수는 하필 남의 임자 있는 계집을 다친담……』
『아니 이번에야말로 정말 반한 모양인가 보던데?』
『성옹이 또 못본 체하니 더 가관이야.』
가는 곳, 이르는 데마다 모두 이 일에 대한 화제 뿐이라 성옹의 귀에나 신수의 신변에도 안들릴 리 없다.
물론 신수의 이야기임에 모두 농이나 웃음거리들로 하는 말이지만 당자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그렇지 않아서 성옹은 이같은 말이 들려올 때마다 하염 없이 탄식하였다.
더욱이 요사이는 아내의 배가 점점 달라가며 입맛이 걷히어 끙끙거리는 것을 눈치 채일 만큼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무슨 도리를 세워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판이라 한편 신수의 비호를 받고자 하는 생각도 간절하여 어느 날 아침 일찌기 낙수변(落水邊)에 있는 신수의 암자를 찾아갔다.
어릴적부터 절의 부처를 섬김으로 일찍 깨는 버릇이 배었던 신수는 벌써 일어나 아침 소세를 마치고 있었다. 성옹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반가이 맞아 드리며
『어떻게 이처럼 일찍 오나?』
하며 예의 눈방울을 굴레굴레 십육나한 상을 짓는다.
이것은 신수가 몹시 반갑거나 놀라거나 우수울 때같이 무슨 감정의 격동이 있을 때이면 으례이 지어 보이는 일종의 습관으로서, 그 표정에서 발산하는 감각이 언제나 상대편의 마음을 따뜻이 싸주는 것이었다.
『왜 몇 날 안 보였어?』
성옹도 맞받아 허게를 하는 터이다.
『응, 소다리 한 개에 청밀주(淸密酒) 열 되를 먹었더니 좀 배탈이 나셨다네.』
『신수도 탈날 때가 있나? 』
두 사람은 크게 웃었다.
『그런데 여편네가 점점 달라지는 모양이니 어떡했으면 좋겠나?』
이말 저말이 오고간 후 성옹이 꺼낸 의논은 역시 그것이었으나 그 말하는 태도는 여전히 평화하였다.
지금은 신수에게 대한 분노의 마음은 커녕 처음에 그처럼 아웅거리고 애타하던 일조차 우습게 생각하고 있는 그이다.
『이리로 이살 오게.』
하고 신수는 태연하다.
『이사를 오다니?』
『글쎄 우리 함께 모여서 살잔 말이지.』
영감은 기가 막혔다.
가뜩이나 마을 사람들이 돌려세우고 수군거리는게 약이 올라 죽겠는데 의논이랍시고 오니 이사를 와서 한 집안에서 같이 살자는 태연한 통에 그만 넋을 잃고 쳐다 보다가
『이 사람아 다른 사람들이 뭐랄지 알고 있나.』
하며 풀이 꺾이었다.
『번뇌를 깨치지 못한 자들의 소리 탓해선 뭘 한담.』
신수는 아주 뱃장이 태평성세다.
『글쎄 방도 없는 곳엘?』
하고 성옹이 여전히 망서리니 신수는 허허 웃으면서
『한 방에 있지.』
하였다. 그 말하는 태도가 태연자약하여 봄새벽에 운무가 개이는 것 같다.
드디어 성옹도 감탄하여 꺾이며
『내 곧 옮겨 옴세.』
하고 그 길로 이사할 준비를 시작하였다.
살림이라야 원체 쌀 담을 독 한 개 없는 터이니 두 사람이 몸만 빠져나오면 그만이지, 집도 남의 집이라 인사말깨나 치뤄야 할 테고 역시 얻어부치는 밭떼기가 있으니 사정을 말하고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하겠으므로 이럭저럭 맘가는 곳 없이 동네 인사까지 치르고 난 때는 벌써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황혼이었다.
성옹은 배부른 젊은 아내를 데리고 이렇게 하여 신수의 절 속에 동거하게 되었다.
방도 한 방 이불도 한 이불 속, 처음 이사온 첫날 밤은 세 사람이 모두 기괴한 광경이었다.
신수는 그 뚱뚱한 배를 내어 놓은 채로 이불 한 끝을 겨우 얻어가서 아랫도리만 두르고도 제일 먼저 골아 떨어지고 그 곁에 누운 성옹의 아내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눈만 말뚱말뚱하게 뜨고 있으나 삼경이 가까워 오자 역시 정신없이 코를 골기 시작하거만 제일 아랫목 뜻뜻한 자리를 차지한 성옹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까지 애를 태웠다.
날이 밝으니 성옹과 그 아내는 상좌 보기도 부끄러운 듯하여 얼른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신수는 여전하게 진령송경(振鈴誦經)하니 두 사람도 할 수 없는 듯이 해가 높이 오를 때에야 겨우 일어났다.
그러나 흉을 보고 따돌릴 줄 알았던 상좌놈은 도리어 이 사람들이 동거케 됨을 기뻐하였다.
그 까닭은 남자뿐인 이 우사(禹寺) 안에 한 여자가 들어오자 설거지 같은 것도 갑자기 깨끗해지며 손끝에 물을 묻혀 동자해먹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요, 성옹 역시 매일 나무하고 또 틈 있는 대로 채전을 가꾸어주어 상좌를 편케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신수만 그들을 끔직히 위하는 것이 아니라 상좌까지 이들 부처를 대접하고 사랑하여 옷과 밥을 덥게 해주며 좋은 것이면 아껴두었다가 성옹만 대접하므로 성옹은 차차 마음이 붙고 서로 뜻이 통하여 힘을 내어 일하며 신수가 절에 있을 때면 정성으로 그의 뒤를 돌보아주고 혹 멀리 향할 일이 있으면 그 짐을 지고 따라가되 종같이 오히려 사양하지 않았다.
처음에 이 기괴한 광경을 손가락질하며 욕도 하고 비웃기도 하던 마을 사람들까지 점점 신수의 초연한 태도에 감동되고 혹은 그의 「문형즉식(聞馨卽喰) 견색즉취(見色卽取)하여 번뇌에 사로잡히지 않는다」하는 주의주장에 공명하는 사람까지 생겨나서 도리어 존경하고 농담하게 쯤 되었다.
이러는 동안에 한 해 두 해 세월이 흘러가며 성옹이 이사올 때 이미 아내의 뱃속에 들었던 것이 사니이로 세상에 나오고 뒤이어 또 증후가 나타나더니 계집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당자들까지 그것이 누구의 소생인지 알지 못하여 그저 「유념(惟念)」 「연심(蓮心)」이란 두 불명을 주었을 뿐 성은 정치 못하고 있었다.
🙝 🙟
이렇게 하여 이제는 암자 속 넓은 방에 다섯 사람이 함께 기거를 하되 서로 미워하는 법도 없고 시기하는 빛도 없이 지극히 평화하여 그야말로 낙토였다.
하루는 성옹이 큰놈을 무릎 위에 올려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다가 손가락으로 그의 턱을 받쳐들고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암만 해도 화상을 닮았는걸』
하고 빙그레 웃으니 신수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그 입모습과 이마는 자네와 한판에 박은 듯하이.』
하고 시침을 떼었다.
성옹은 한 손으로 자기 이마를 쓸어보고 더욱 웃으며
『주름살이 이렇게 있는데.』
하나 그 태도는 조금도 불평한 기색이 없다.
『그 아이는 자네 아일세, 나야 이제 나무 한 짐질 기력도 어려운데 어느 결에 새끼 만들 기운까지 있는 줄 아나.』
『아니야 적은 년은 몰라도 큰놈만은 자네 걸세. 아마 내 동냥 나간 새 슬그머니 만들었는지 모르지.』
신수의 말이 점점 음탕한 지경에 빠지려 하므로
『내 아이가 자네 아이고 화상 아이가 내 아이지 따져서 뭘 하나.』
하고 성옹은 말허리를 꺾었다.』
이렇게 하여 평화한 세월은 더욱 빨리 흘러갔으나 예기치 못하는 것은 사람의 수명이다.
성옹은 그동안 몸이 늙었으나 강잉하고 신수는 늙을수록 기름지며 원기 왕성하나 성옹의 아내만은 아직 삼십을 바라보는 젊은 나이에 심히 약하고 쇠약하더니 둘째 아이를 낳고부터는 더욱 파리해지며 애타하다가 급기야 자리에 눕고 말았다.
신수의 정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도록 지극한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세사람이 동거한 뒤에도 원체 체력이 좋고 성욕이 강한 신수는 때때로 오입을 나다니며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성옹부처를 잠못 들게 하더니 한번 성옹의 아내가 자리에 눕는 날부터는 갖은 애를 써가며 이것을 간호하고, 나날이 받아내는 분뇨(糞尿)까지 몸소 가져다 버리며 미식(美食)과 좋은 의복으로 위로하니 감탄하고 상좌도 감심하여 그 인정의 후함을 성옹도 감송해 마지아니하였다.
그러나 인생이란 원래 무상(無常)한 것이었던지 이 간곡한 정성을 미처 살피지 못하고 성옹의 아내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
성옹과 신수와 두 아이의 비통은 무엇으로 형용하랴.
가엾은 정에 눈물을 뿌리고
『늙은 것에게 매어서 갖은 고생을 다 해가며 지내더니 글쎄 너 먼저 가 버리느냐.』
하고 탄식하던 성옹이 그 곁에서 경을 외이고 있는 신수를 돌아보며
『그래도 죽기 전 얼마간은 자네 덕에 그 지긋지긋한 고생만은 모르고 지났네.』
한다.
신수도 감개무량한 듯이
『참 가엾은 생애였어.』
하며 처음으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자네 덕이었네. 자네 때문에 나도 탈출 번뇌하고 동네 사람들도 얼마나 마음을 바로 잡았는지 몰라.』
성옹의 늙은 눈에 더욱 눈물이 넘쳤다.
한 여자의 시체를 앞에 놓고 주고 받는 이 두 사람의 대화에 보는 사람도 모두 감탄하였다.
이럭저럭 아내의 장례는 지냈으나 성옹의 마음 구석에는 아직 가시지 않는 한 가지 근심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내도 없는 이 절 속에서 앞으로 계속하여 신수의 신세를 지기 난처한 까닭이다.
그리하여 어느 날 밤에는 잠자리에 들어가려는 신수를 붙잡고 성옹은 이 암자를 떠나갈 것을 말하였다.
『왜?』
하고 그 주먹같은 눈방울을 더욱 둥그렇게 굴리는 신수의 얼굴에는 어린아이 같은 치기(稚氣)가 있었다.
『내가 이 절에 온 것이 아내 때문이었고 첫째 보호를 받게 된 것부터도 내 아내 때문이었는데 계집 죽은 후에야 내가 무슨 염의로 여전히 자네 보호를 받는단 말인가?』
『그래 어쩌겠단 말야.』
하고 신수는 자식을 꾸짖는 어버이 모양으로 호령하였다. 넓은 방안이 찡 하고 울린다.
아랫목에서 딩굴어 자던 두 아이가 그 소리에 놀란 듯이 눈을 떠서 작은 것이 으아 ― 하고 울었다.
신수는 얼른 일어나 이것을 다둑거려 재워 놓고
『글쎄 어떻게 하겠단 말이야.』
하고 이번에는 정색을 한다. 성옹도 민망한 듯이 따라 웃으며
『어떻게 할지.』
적적히 말하였다.
신수는 갑자기 눈물이 글썽해지며
『우리 두 사람이 형같이 동생같이 수년을 지내왔거든 이제 새삼스럽게 자네가 날 버리고 내가 자넬 버리면 그게 어디 당한 말인가.』
『아니 내가 자넬 버리려는 게 아니라 하도 염의가 없으니……』
『그럼 내가 계집 취해 자네를 도와주었더란 말인가. 그렇게 안단 말인가. 근 십 년 같이 있던 자네까지 날 그렇게 안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네만.』
신수는 크게 웃으며
『글쎄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내가 하도 미친 놈 같으니 자네가 아마 겁을 집어먹고 도망가려는 줄 알았네.』
신수가 성옹의 어깨를 툭툭 치고 자리에 쓰러지니 곧 들보를 울릴 듯한 코고는 소리가 들리었다.
과연 다음날부터 신수의 정의는 더욱 무르녹아 성옹을 섬기되 꼭 형과 같이하고 그를 사랑하되 손아래 동생같이 하니 보는 사람들이 모두 괴상해 하여 일방 그의 갓난애 같고 거울 같이 맑은 마음에 감탄하였다.
성옹은 더욱 늙어 다시 나무도 하지 못하고 밭도 가꾸지 못하였으나 신수는 조금도 싫은 상을 하지 않고 더욱 따뜻이 위하며 어디 가서 고기를 먹으면 술을 가지고 와서 혹 성옹이 없는 이로 딱딱한 것을 삭이지 못할 때는 씹어까지 주었다.
몇 해 후에 성옹이 늙어 죽으매 신수가 애곡하고 후히 장례하여 한 가지도 빠짐이 없으니 칭찬하지 않는 자가 없으나 신수는 여전히 마이동풍격으로 들은 체도 아니하고 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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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옹마저 잃은 뒤에는 그렇듯 정력이 절륜하던 신수도 점점 노쇠해지며 강열하던 성욕조차 줄어드는지 그리 색까지 탐하지 않았다.
신수를 가장 사랑하던 사람은 당시 명상(名相) 신현이다.
신현의 고향은 파주이므로 어릴 때 신수와 자주 상종하여 놀았으니 신수는 비록 나이 어리나 여러가지 괴행(怪行)이 많아 우스운 소리 잘하고 남의 흉내 잘 내고 더욱 마을 여편네들에게 대하여 행하는 작난이란 그야말로 천하의 가관이었다.
나중 신현은 벼슬하여 재상 자리까지 올랐으나 항상 이 괴동을 잊지 못하던 중 마침 부모의 상(喪)을 만나 귀향곡(歸鄕谷)하였으므로 이리저리 소문을 듣고 보니 당시의 괴동이야말로 금시의 괴승 신수다.
서로 옛날을 회고하여 왕래하며 다시 여러가지 이야기로 날을 보냈다.
『가문도 괜찮고 집안도 넉넉하였거늘 어찌 하필 중이 되었는가.』
신현의 묻는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신수가 발성대소하며
『글 싫고 재물 싫고 영화 싫은 몸이 무엇이 되겠소.』
한다. 신현도 옛날 보던 괴동의 기억이 삼삼하여 빙그레 웃으며
『그러면 대처식육(帶妻食肉)을 말아야지.』
하니
『 색을 취하고 미식을 싫도록 하고 보니 이제 내 마음은 아무 의심이 없고 아무 소원도 없소이다. 그러니 이 어찌 여래의 마음이 아니면 나한의 마음이 아니겠소.』
하였다. 신현도 무릎을 치며
『참 귀한 마음이러고』
하고 칭찬하니 신수 갑자기 정색을 하며 꿇어앉아
『세상 사람이 어리석어 재물을 보면 들이 쌓지마는 이 몸 한번 죽으면 남 줄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생전에 잘 입고 잘 먹을 것이지, 죽은 뒤에 아무리 애통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이까』
가뜩이나 부모상 당하였던 신현은 이 적적한 풍자에 눈물까지 글썽해지며
『옳은 말일세, 옳은 말일세.』
하고 연해 탄복하니 신수는 더욱 기가 나서
『그러니 대감도 생전에 맛좋은 떡과 녹주(漉酒)와 절육(切肉)으로 아침 저녁을 잡수실 것이지 이러구 베옷에 소식을 취하시면 나중 돌아가신 후에 누가 건물(乾物)과 술잔이나 향 피움으로 관 앞에 통곡한들 먹을 마음이 어찌 나겠소.』
하며 합장하고 진령송경(振鈴誦經)하여 스스로 자기 혼을 부르며 사창하되
『신수 신수여, 네가 비록 이 세상에서는 미친놈 노릇을 했을지라도 왕생 극락하거던 참 사람이 되어라』
하고 엎어져 대성통곡하니 소리가 온 집안에 울리었다.
신현이 놀라 만류하자 신수는 벌떡 일어나 껄껄 웃으매 사람들이 모두 정신 빠진 것 같이 되어 쳐다보는 속을 바랑을 걷어지고 인사 말도 없이 달아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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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는 나이 백 살이 넘고 크게 득도하여 왕생극락하였는데 그 시체에서는 발훈이 혁혁하고 기색이 화창하여 사람들이 모이어 화장할 때 공중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일어 가시지 아니 하였다.
성옹의 두 아이는 그때까지 신수를 모시고 있었으니 이때 상복을 입고 애곡하여 보는 사람들까지 비창한 마음을 금치 못하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