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기) [대법원 2002. 4. 12., 선고, 98다57099, 판결] 【판시사항】 [1] 전기공급규정의 법적 성질 [2] 전기공급규정 중 면책약관의 효력 [3] 전기공급 중단의 경우 한국전력공사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 '고의에 준하는 중대한 과실'의 개념 [4] 전주에 설치된 자동개폐로차단기에 대한 유지관리 소홀로 발생한 정전으로 인하여 딸기 등 재배농가가 피해를 입은 사안에서 전기공급자인 한국전력공사의 면책을 규정한 전기공급규정의 적용을 배제하는 중대한 과실을 인정한 사례

【판결요지】 [1] 전기사업법은 다수의 일반 수요자에게 생활에 필수적인 전기를 공급하는 공익사업인 전기사업의 합리적 운용과 사용자의 이익보호를 위하여 계약자유의 원칙을 일부 배제하여 일반 전기사업자와 일반 수요자 사이의 공급계약조건을 당사자가 개별적으로 협정하는 것을 금지하고 오로지 공급규정의 정함에 따를 것을 규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공급규정은 일반 전기사업자와 그 공급구역 내의 현재 및 장래의 불특정 다수의 수요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모든 전기공급계약에 적용되는 보통계약약관으로서의 성질을 가진다. [2] 한국전력공사의 전기공급규정 제51조 제3호, 제49조 제1항 제3호는 한국전력공사의 전기설비에 고장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때 한국전력공사는 전기의 공급을 중지하거나 그 사용을 제한할 수 있고, 이 경우 한국전력공사는 수용가가 받는 손해에 대하여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면책약관의 성질을 가지는 것으로서 한국전력공사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경우까지 적용된다고 보는 경우에는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7조 제1호에 위반되어 무효이나, 그 외의 경우에 한하여 한국전력공사의 면책을 정한 규정이라고 해석하는 한도에서는 유효하다고 보아야 한다. [3] 전기산업의 경우 한국전력공사가 일반 수요자들에 대한 공급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고, 관련 시설의 유지 및 관리에 필요한 기술과 책임도 사실상 단독으로 보유하고 있는 등 그 특수성에 비추어 전기공급 중단의 경우 한국전력공사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 고의에 준하는 중대한 과실의 개념은 위와 같은 한국전력공사의 특수한 지위에 비추어 마땅히 해야 할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현저히 결하는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4] 전주에 설치된 자동개폐로차단기에 대한 유지관리 소홀로 발생한 정전으로 인하여 딸기 등 재배농가가 피해를 입은 사안에서 한국전력공사가 정전사고의 원인이 된 자동개폐로차단기를 제대로 유지·관리하기 위한 순시·점검·측정 등의 업무를 면밀히 시행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주의의무를 게을리한 채 자동개폐로차단기 내부의 손상 여부에 대한 점검은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던 점 등을 인정하여 정전사고가 전기공급자인 한국전력공사의 면책을 규정한 전기공급규정의 적용을 배제하는 중대한 과실로 말미암아 발생한 것으로 인정한 사례.

【참조조문】

[1]

구 전기사업법(1996. 12. 30. 법률 제521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6조(현행 제14조 참조) ,

제17조(현행 제16조 참조) ,

제19조(현행 제16조 참조) ,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2조

[2]

구 전기사업법(1996. 12. 30. 법률 제521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6조(현행 제14조 참조) ,

제17조(현행 제16조 참조) ,

제19조(현행 제16조 참조) ,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5조 ,

제7조 제1호

[3]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7조 제1호

[4]

민법 제750조 ,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7조 제1호

【참조판례】

[1]

대법원 1989. 4. 25. 선고 87다카2792 판결(공1989, 805) /[2]

대법원 1995. 12. 12. 선고 95다11344 판결(공1996상, 358)


【전문】 【원고,피상고인】 이규부 외 522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박충근)

【피고,상고인】 한국전력공사 (소송대리인 변호사 제차룡)

【원심판결】 서울고법 1998. 10. 22. 선고 98나16229 판결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본다. 1. 사실관계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그 채용 증거들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하였다.

가. 개요 (1) 원고들은 비닐하우스를 설치하여 농작물을 조기 재배하는 농민들로서, 피고와 사이에 농사용 전기수급계약을 체결하고 비닐하우스에 설치된 난방기 등을 가동하여 겨울철에도 농작물을 재배해 왔는바, 1996. 1.경 원고 유대근은 들깻잎, 원고 박수규는 오이, 원고 노경도는 토마토를 재배하였고, 나머지 원고들은 모두 딸기를 재배하고 있었다. (2) 그런데 1996. 1. 12. 04:05경 피고가 소유·관리하는 경북 고령군 쌍림면 소재 합천 간 113호 전주에 설치된 자동개폐로차단기(Recloser 또는 R/C, 일명 니크로자, 이하 '자동개폐기'라 한다.)의 고장으로 논공 변전소로부터 고령군 지역으로 공급되던 전기가 차단되어 원고들의 비닐하우스가 위치한 전 지역이 같은 날 07:50경까지 3시간 45분 동안 정전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당시 정전지역의 외부 온도는 ­12℃였다. (3) 이에 원고들의 비닐하우스에 설치된 난방기 등의 작동이 중지되어 비닐하우스의 내부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는 바람에, 딸기 모종 중 일부는 동사하고, 일부는 냉해를 입었으며, 들깻잎, 오이, 토마토 등의 농작물도 냉해를 입었다.

나. 이 사건 정전사고의 원인 및 경위 (1) 고장난 자동개폐기(일련번호 3817)는 피고 산하 고령지점이 관리하던 3대의 자동개폐기 중 하나로 1977. 1.경 미국에서 제작되어 그 무렵 피고에 의해 수입된 장비이고, 그 수명은 30년 정도로 1988. 9. 수리하여 달성―위천 간에 설치된 다음 1989년 논공―구지 간에 이설되었다가 1992. 4. 현재의 위치로 다시 이설된 것인데, 자동개폐기는 과전류가 흐르면 자동으로 전기를 차단하는 고가의 장치로서 배전선로를 구성하는 중요한 전기설비인 관계로 피고는 자동개폐기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별도의 보수이력카드를 작성하여 이를 관리하고 있다. (2) 그런데 이 자동개폐기는 1996. 1. 12. 04:05경 그 탱크 내부에 설치된 자기(瓷器, 일명 애자) 부분인 부싱(Bushing) 6개 중 한 개가 파손됨으로써 고장을 일으켜 이 자동개폐기가 속한 배전선로에 22,900V의 전기를 공급하던 논공 변전소의 자동차단기(CB)가 작동하는 바람에 이 변전소로부터 총긍장 96.5㎞, 1,935경간에 이르는 배전선로 전부가 정전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었다. 이처럼 자동개폐기 내부의 부싱이 파손된 것은, 조립과정이나 수리 등 분해된 상태에서 외부 충격 등으로 형성된 표면의 미세한 방사상 균열이 단락현상을 일으키고 이에 발생하는 고열에 의하여 절연유가 탄화되어 파단면에 부착됨으로써 절연성을 약화시켜 누설 전류량이 증가함에 따라 2차적 파손이 일어난 때문이다. (3) 피고의 송배전선로 순시점검 및 정비규정에 의하면, 피고는 배전선로에 관하여 정기순시, 특별순시, 간부직원 순시, 안전순시 등의 순시(제5조)를 하는 외에, 이러한 순시만으로 충분히 조사하기 어려운 선로의 상태·기기 및 보안장치 등을 자세히 조사하기 위하여 전선로의 점검 및 청소를 실시하여 경미한 사항의 보수공사를 시행하여야 하고(제6조), 정격전압의 유지·배전선로상의 기기 및 보안장치의 정상상태 유지 등을 위하여 별도로 측정업무를 실시하여야 하는데(제7조), 자동개폐기의 경우에는 순시 이외에도 1년에 1회씩 정기점검을 실시하여야 하고(별표 2 제9항), 선로전압 및 전류 측정은 1년에 1회, 누설전류 측정은 2년에 1회씩 하도록(별표 3 제1, 3항) 규정되어 있다. 또한 위와 같은 자동개폐기 내부의 부싱 손상 여부는 절연저항 측정, 상용주파 내전압시험, 기계적 동작시험, 최소동작 전류시험 등을 통하여 이를 발견할 수 있다.

다. 정전사고 후의 복구과정 (1) 정전사고 발생 당시 피고 고령지점에는 보수반 직원 전종배, 박종문이 야간근무중이었고, 논공 변전소 직원인 김창수는 같은 날 04:07경 전종배에게 정전사고를 통고하였다. 당시 이 사건 정전사고를 복구하기 위하여 조작을 시행하여야 할 자동개폐기는 2대, 단순개폐기는 50대 정도로서 이는 모두 피고 산하 고령지점의 관할 내에 위치하고 있었고, 일반적으로 정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전선로를 따라 순차적으로 개폐기 등 기기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사고 원인을 찾아내는데, 이 사건 정전사고가 발생한 지역이 딸기재배 지역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던 전종배와 박종문은 농가 대부분이 고령 간 252호 전주로부터 논공 변전소 반대방향에 분포하고 있는 사정을 고려하여 고령 간 252호 전주로 먼저 출동하여 점검한 결과, 04:43경 정전사고 원인이 되는 지점이 고령 간 252호 전주로부터 논공 변전소 반대방향에 있음을 발견하고 그 무렵 피고 달성지점(고령지점의 상급지점이다.) 수리반에 지원요청을 한 후, 각자 점검작업을 하기로 하여 일단 고령지점으로 복귀한 다음, 박종문은 05:10경 다시 고령 간 252호 전주, 05:26경 합천 간 80호 전주로 순차 이동하여 점검작업을 하였고, 전종배는 05:00경 전선로 중앙에 있는 합천 간 80호 전주, 05:25경에는 이 사건 정전사고를 야기한 자동개폐기가 설치된 합천 간 113호 전주로 순차 이동하여 점검작업을 하였지만, 사고지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2) 또한, 수리지원 요청을 받은 피고 달성지점 보수반 직원인 원문희는 피고 고령지점 보수주임인 채태수에게 전화로 사고통보 및 직원 비상동원을 요청하였고, 이에 채태수는 딸기재배 지역이 정전되어 긴급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고령지점 보수반 직원 중 김명환, 이상용, 이월용 등을 비상호출하여, 이상용은 05:43경 합천 간 80호 전주에 도착하여 박종문과 같이 점검작업에 들어갔으며, 김명환은 달성지점 직원인 박병호와 함께 05:45경 현장에 출동하여 정전구간 순시에 임하였다. 그리고 채태수와 원문희는 고령지점에 남아 작업지휘와 전화응대 및 고객응대에 임하였다. (3) 위와 같이 이 사건 정전사고의 복구작업을 위하여 배전선로에 출동한 직원은 모두 5명(달성지점 직원 1명 포함.)이었는데, 같은 날 07:36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박종문이 합천 간 113호 전주에 설치된 고장난 자동개폐기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하고 복구작업을 실시하여 사고 발생후 3시간 45분만인 07:50경부터 정전지역에 다시 송전이 되었다. (4) 그러나 이러한 고장확인과 그 복구에, 변전소로부터 고령 252호 전주 사이에 34분(04:05­04:39), 변전소로부터 합천 80호 전주 사이에 31분(04:39­05:10), 합천 80호 전주에서 113호 전주 사이에 23분(05:10­05:33), 합천 80호 전주에서 99호 전주 사이에 1시간 12분(05:33­06:45), 합천 99호 전주에서 113호 전주 사이의 선로순시 및 고장복구에 1시간 5분(06:45­07:50)이 각기 소요됨으로써, 전체 3시간 45분 중 실제로 고장복구에 소요된 최종 14분(07:36­07:50)을 제외한 3시간 31분은 합천 80호부터 113호 사이(513경간)의 고장구간을 알아내고 개폐기를 조작하면서 이를 순차로 정밀순시함으로써 정확한 사고 개소를 확인하는 데에 소요되었다. 또한, 이 사건 정전사고 당시 피고 고령지점의 보수반 직원은 모두 9명이었고, 고령지점의 책임자인 지점장 배태원은 이 사건 정전사고를 제대로 보고받지도 못하여 사고가 복구된 이후 정상 출근을 한 다음에야 비로소 이 사건 정전사고를 알게 되었다. (5) 피고의 비상근무규정에 의하면, 전시·사변 기타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태시를 안보비상, 전력수급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전력계통 사고시나 국가적 중요행사시를 전력계통비상, 천재지변으로 인한 중대한 전력계통 사고 등이 발생하거나 사고발생의 우려가 많을 때를 재해비상으로 구분하여 위와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 구분에 따라 전직원, 또는 필요 인원을 소집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이 사건 정전사고가 발생한 직후인 당일 04:05경부터 다시 송전이 이루어지기까지 농민들은 수 10 차례에 걸쳐 피고 고령지점에 전화를 하여 정전사고를 알림과 동시에 농작물 냉해를 우려하면서 신속한 복구를 요구하였고, 이에 피고 고령지점의 직원은 신속히 복구하겠으나 정확한 소요시간은 알 수 없다고만 통보하였으며, 일부 농민들은 고령지점 또는 복구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농작물의 냉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신속한 복구를 요구하기까지 하였다. (6) 딸기는 저온성 작물로 다른 작물에 비해 비교적 냉해에 대한 저항력이 큰 작물이나 개화 후 7일 내지 20일의 중과실은 온도가 ­2℃ 이하로 되면 발육이 정지되고, 개화 후 7일 이내의 적온과실은 ­2℃에서 3시간, ­5℃에서 1시간 방치해 두면 흑색으로 변하게 되며, 개화 3일 내지 8일 전의 사분자(四分子) 분열기에 있는 꽃봉오리는 ­2℃에서 암술이 흑색으로 변하여 과실을 수확할 수 없는 동해를 입는 생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라. 원·피고 사이의 합의과정 (1) 원고들을 포함한 피해 농민들은 사고발생 당일인 1996. 1. 12. 피고 고령지점에 찾아가 지점장 배태원에게 피해보상을 요구하면서 정전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피고가 대처를 잘못하여 일어난 것임을 확인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기재된 확인서에 날인을 요구하여 배태원은 그 확인서에 날인하였다. (2) 그 후 피해 농민들의 보상요구가 격렬해지자 같은 달 13. 고령군 쌍림농업협동조합장실에서 대책회의가 개최되었는데, 피고는 경상북도를 관할구역으로 하는 경북지사의 지사장을 통하여 부지사장인 석우길을 포함한 직원 5명을 대표로 참석하게 하고, 피해 농민 대표 10명, 고령군 부군수, 고령군의회 의장, 신한국당 위원장, 쌍림농업협동조합장 등이 참석하여 피해보상에 관하여 협의를 한 결과, 신한국당 위원장의 의견에 기초하여 피고 직원 전문재가 이 사건 정전사고로 농작물이 냉해를 입은 것은 피고의 책임으로 농작물의 피해상황 파악을 위한 합동조사를 실시하여 피고가 보상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하여 석우길과 배태원이 이에 서명·무인하였으며, 그 자리에서 고령군 특작계장 유장식과 고령경찰서 정보과장 김연수가 이 각서 뒷면에 입회인으로 서명하였다. (3) 이 대책회의 당시 피고측은 처음에는 전기공급규정을 내세워 면책을 주장하다가 피해 농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치자, 피고측 대표로 참석한 경북지사 부지사장 석우길 등이 피고 경북지사장과 본사에 연락을 취하면서 협상을 진행하여 각서가 작성되기에 이르렀다. (4) 이 각서에 따라 피고는 1996. 1. 14. 개최된 협의회에 직원인 김종현과 김태근을 참석시키고, 같은 달 16. 이재관 등 7명의 직원을 합동조사반 2차 조사원으로 편성시켰으나, 그 후 태도를 바꾸어 피해조사에 참여하지 아니하였다.

2. 원심의 판단 원심은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토대로 먼저 자동개폐기의 유지 관리와 관련하여, 이 사건 정전사고는 피고가 소유·관리하는 전기공작물인 자동개폐기의 고장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임이 분명하고, 이 사건 정전사고 당시 피고는 자동개폐기의 수명이 언제까지인지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점, 자동개폐기의 고장은 외부로부터 부싱에 가해진 충격으로 인한 미세한 균열 및 이에 따른 반복 단락현상에 의한 2차적 파손에 의한 것이므로, 이는 상당한 기간 동안 진행된 결과로 보이는데, 피고는 그 자동개폐기가 1988.(원심판결의 1989.은 오기로 보인다.)에 수리, 설치된 이래 여러 번에 걸쳐 이설되는 과정에서도 단순히 외관 검사만을 실시하였을 뿐 그 탱크 내부에 대한 점검이나 측정을 전혀 실시하지 아니하였던 점, 피고의 자인이나 피고 감사실의 조사보고서에서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이는 피고가 이 사건 자동개폐기의 유지·관리에 자체의 점검 및 정비규정을 무시한 채 그 탱크 내부의 점검이나 측정은 이를 아예 포기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음에 기인하는 점, 결국 피고처럼 자동개폐기를 관리하는 경우에는 그 시기만이 문제로 될 뿐 이 사건 정전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는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때 피고는 면책약관을 내세움으로써 책임을 면하려 하게 되는 점 등의 사정에다가, 이 사건의 경우 전기의 공급은 피고가 독점하면서 그 관리 역시 피고가 전담하도록 되어 있는 점, 따라서 자동개폐기 등의 점검이나 보수 등에 관련된 기술도 역시 피고만이 이를 보유하고 있는 점, 피고 고령지점이 관리하는 자동개폐기는 도합 3대에 불과한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해 보면, 피고가 관리하는 전체적인 전기공급설비의 광역성이나 이로 인한 보수·점검의 곤란성을 감안하더라도, 피고의 이와 같은 사고 자동개폐기의 유지·관리는 그 주의의무를 심히 결여한 것으로서 중대한 과실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정전사고 후 복구과정과 관련하여서도, 피고 고령지점의 직원들은 원고들이 피고가 공급하는 전력에 의존하여 난방기를 가동함으로써 딸기 등 농작물을 조기 재배하고 있는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점 및 이 사건 정전사고로 전기공급이 차단된 전선로의 총긍장이 96.5㎞이고 1,935경간에 이르며 총 52대의 개폐기가 설치되어 있어 정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그 복구를 위하여 장시간이 소요될 여지가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 고령지점으로서는 이 사건 정전사고가 장시간 계속될 경우 원고들이 재배하는 딸기 등이 냉해를 입을 수 있음을 인식하고 그 복구작업을 위하여 적어도 수리반 직원 전원을 투입하여 복구에 만전을 기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달리 특별한 사정도 엿보이지 않는데도 5명의 직원(그 중 1명은 달성지점의 직원이다.)만을 배전선로 현장에 투입시킴으로써 정전시간의 대부분을 사고 개소를 발견하는 데에 허비하여 복구작업이 지연되게 한 명백한 과실이 있는바, 여기에다가 앞서 본 자동개폐기의 유지·관리상의 귀책사유를 더하여 보면, 이 사건 정전사고에 관한 피고의 중과실은 더욱 분명해진다는 이유로 피고는 원고에게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고, 미리 정전에 대비하지 못한 원고들의 과실을 60%로 평가하여 피고의 책임을 40%로 제한하였다.

3. 이 법원의 판단 가. 전기공급규정 중 면책약관의 효력 전기사업법은 다수의 일반 수요자에게 생활에 필수적인 전기를 공급하는 공익사업인 전기사업의 합리적 운용과 사용자의 이익보호를 위하여 계약자유의 원칙을 일부 배제하여 일반 전기사업자와 일반 수요자 사이의 공급계약조건을 당사자가 개별적으로 협정하는 것을 금지하고 오로지 공급규정의 정함에 따를 것을 규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공급규정은 일반 전기사업자와 그 공급구역 내의 현재 및 장래의 불특정 다수의 수요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모든 전기공급계약에 적용되는 보통계약약관으로서의 성질을 가진다(대법원 1989. 4. 25. 선고 87다카2792 판결 참조). 그리고 피고의 전기공급규정 제51조 제3호, 제49조 제1항 제3호는 피고의 전기설비에 고장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때 피고는 전기의 공급을 중지하거나 그 사용을 제한할 수 있고, 이 경우 피고는 수용가가 받는 손해에 대하여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면책약관의 성질을 가지는 것으로서 피고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경우까지 적용된다고 보는 경우에는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7조 제1호에 위반되어 무효이나, 그 외의 경우에 한하여 피고의 면책을 정한 규정이라고 해석하는 한도에서는 유효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대법원 1995. 12. 12. 선고 95다11344 판결 참조).

나. 피고의 중과실 인정 여부 전기산업의 경우 피고가 일반 수요자들에 대한 공급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고, 관련 시설의 유지 및 관리에 필요한 기술과 책임도 사실상 단독으로 보유하고 있는 등 그 특수성에 비추어 전기공급 중단의 경우 피고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 고의에 준하는 중대한 과실의 개념은 위와 같은 피고의 특수한 지위에 비추어 마땅히 해야 할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현저히 결하는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이 사건의 경우 원심이 적절히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피고가 정전사고의 원인이 된 자동개폐기를 제대로 유지·관리하기 위하여서는 점검 및 정비규정에 따라 순시·점검·측정 등의 업무를 면밀히 시행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주의의무를 게을리한 채 자동개폐기 내부의 손상 여부에 대한 점검은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던 점이 인정되는바, 여기에 그 밖에 원심이 판시한 바와 같은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정전사고는 피고의 중대한 과실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고, 이러한 피고의 과실과 농작물에 대한 냉해에 의한 원고들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 또한 당연히 인정된다.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사실오인이나 채증법칙 위반,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피고는 원고들과 피고 사이의 면책약관의 적용을 배제하는 합의의 효력 등에 대한 원심의 판단도 다투고 있으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피고의 책임이 인정되는 이상, 이 점에 관한 상고이유는 원심의 가정적 판단을 문제삼는 것으로서 더 나아가 판단할 필요 없이 받아들일 수 없다.

4. 결 론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의 부담으로 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윤재식(재판장) 송진훈(주심) 변재승 이규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