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헌가5
기부금품모집금지법 제3조 등 위헌제청 [전원재판부 96헌가5, 1998. 5. 28.] 【판시사항】 1. 기본권이 허가절차에 미치는 영향 2. 기부금품 모집행위의 허가여부를 행정청의 자유로운 재량행위로 한 것의 위헌 여부 (적극) 3. 최소침해성의 원칙 4. 기부금품의 모집목적을 제한하는 허가절차의 위헌성 여부 (적극) 【결정요지】 1. 허가는 특별히 권리를 설정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공익목적을 위하여 제한된 기본권적 자유를 다시 회복시켜주는 행정행위이다. 따라서 기부금품의 모집행위도 행복추구권에서 파생하는 일반적인 행동자유권에 의하여 기본권으로 보장되기 때문에, 법의 허가가 기본권의 본질과 부합하려면, 그 허가절차는 기본권에 의하여 보장된 자유를 행사할 권리 그 자체를 제거해서는 아니되고 허가절차에 규정된 법률요건을 충족시킨 경우에는 기본권의 주체에게 기본권행사의 형식적 제한을 다시 해제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부여하여야 한다. 2. 법은 제3조에 규정된 경우가 존재하는 때에만 행정청이 허가를 하도록 규정하여 그 규정에 열거한 사항에 해당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허가할 수 없다는 것을 소극적으로 밝히면서 한편, 어떠한 경우에 행정청이 허가를 할 의무가 있는가 하는 구체적인 허가요건을 규정하지 아니하고, 허가여부를 오로지 행정청의 자유로운 재량행사에 맡기고 있다. 따라서 기부금품을 모집 하고자 하는 자는 비 록 법 제3조에 규정된 요건을 총족시킨 경우에도 허가를 청구할 법적 권리가 없다. 법 제3조는 기부금품을 모집하고자 하는 국민에게 허가를 청구할 법적 권리를 부여하지 아니 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다. 3. 입법자는 공익실현을 위하여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입법목적을 실현하기에 적합한 여러 수단 중에서 되도록 국민의 기본권을 가장 존중하고 기본권을 최소로 침해하는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 기본권을 제한하는 규정은 기본권행사의 ‘방법’에 관한 규정과 기본권행사의 ‘여부’에 관한 규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침해의 최소성의 관점에서, 입법자는 그가 의도하는 공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우선 기본권을 보다 적게 제한하는 단계인 기본권행사의 ‘방법’에 관한 규제로써 공익을 실현할 수 있는가를 시도하고 이러한 방법으로는 공익달성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비로소 그 다음 단계인 기본권행사의 ‘여부’에 관한 규제를 선택해야 한다. 4. 모집목적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제한을 두지 않으면서,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침해할 위험이 없고 모집행위의 합법적인 시행과 모집목적에 따른 기부금품의 사용이 충분히 보장되는 경우에는 허가를 해주는 질서유지행정 차원의 허가절차를 통해서도 충분히 법이 의도하는 목적을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법이 의도하는 목적인 국민의 재산권보장과 생활안정은 모집목적의 제한보다도 기본권을 적게 침해하는 모집행위의 절차 및 그 방법과 사용목적에 따른 통제를 통해서도 충분히 달성될 수 있다 할 것이므로, 모집목적의 제한을 통하여 모집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법 제3조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에 필요한 수단의 범위를 훨씬 넘어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다. 【전문】 【당 사 자】 제청법원 서울지방법원(96초210 위헌제청신청)
제청신청인 권
○
길
당해사건 서울지방법원 95고단10975 기부금품모집금지법위반등
【주 문】 구 기부금품모집금지법
(1951. 11. 7. 법률 제224호로 제정되고 1970.
8. 12. 법률 제2235호로 개정된 것)
제3조 및 제11조 중 제3조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
【이 유】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가. 사건의 개요제청신청인 권○길은 현재 서울지방법원 95고단10975호 노동쟁의조정법위반 등 사건의 피고인으로 재판에 계류중인 자이다. 그런데 공소제기된 제청신청인에 대한 공소사실 중의 하나가 제청신청인이 서울특별시장의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기부금품을 모집하여 기부금품모집금지법
(1951. 11. 7. 법률 제224호로 제정되고 1970. 8. 12. 법률 제2235호로 개정된 것, 이하 ‘법’이라 한다)
제3조 및 제11조를 위반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제청신청인은 법 제3조 및 11조 중 제3조에 관한 부분에 대하여 위헌제청을 신청하였고
(96초210)
, 서울지방법원은 제청신청인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법 제41조 제1항에 의하여 1996. 2. 7.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따라서 이 사건의 심판대상은 법 제3조와 제11조 중 제3조에 관한 부분
(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이고, 그 규정내용은 다음과 같다.
법 제3조
(모집의 금지와 허가)
누구든지 기부금품의 모집을 할 수 없다. 다만, 좌의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하여 내무부장관과 도지사 또는 서울특별시장은 기부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이를 허가할 수 있다.
1. 국제적으로 행해지는 구제금품
2.
천재, 지변 기타 이에 준하는 재액을 구휼하는데 필요한 금
품
3. 국방기재를 헌납하기 위한 금품
4. 현충기념시설의 설치와 자선사업에 충당하기 위한 금품
5. 전국적 규모로 사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의 설치를 위한 금품과 올림픽에 참여할 선수의 파견을 위한 금품
6. 국제적인 반공기관의 설치를 위한 금품
7.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참석할 선수의 파견을 위한 금품
법 제11조
(벌칙)
제3조의 규정에 의한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기부금품의 모집을 행한 자 또는 제4조의 규정에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이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 위헌심판제청이유와 이해관계인의 의견가. 제청법원의 제청이유 및 제청신청인의 위헌제청신청이유(1) 법은 6. 25 사변으로 국가재정이 곤란하게 된 시점에서 시국대책 또는 멸공구국운동 등의 이름아래 기부금품모집행위가 성행하고 있어 국민의 재산권보장과 생활안정을 목적으로 1951. 11. 7. 제정되었다. 그러나 제정당시와 상황이 현저하게 변화된 오늘날은 법이 정한 규제의 적정성, 존속의 필요성에 대한 새로운 검토가 필요하다.
(2) 자신의 재산을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기부하는 행위는 선행으로서 사회공동체의 유지, 발전을 위하여 바람직한 행위인데, 이 사건 법률조항은 기부금품의 모집행위를 윈칙적으로 금지하면서 오로지 정부가 필요한 범위내에서만 인정한 경우에 한하여 내무부장관 등의 허가를 받아야만 모집행위를 할 수 있도
록 하고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기부금품의 모집행위를 한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다.
법이 기부금품모집행위를 합리적이고 타당한 한도내에서 재산권행사의 자유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규제하지 아니하고 모든 기부금품모집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은 재산권행사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다. 또한 헌법이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의 중요한 내용 중의 하나는 결성된 단체가 자유롭게 조직원을 모으고 일반 국민의 지지와 후원을 얻어가며 활동하는 것인데, 이 사건 법률조항은 이와 같은 단체들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지지와 후원을 확대해 나가면서 독립적이고 건전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써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
(3) 법 제3조가 규정한 7가지 사업은 너무 한정적이다. 법이 허가의 대상이 되는 사업의 영역을 지나치게 제한하여 오로지 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만 기부금품의 모집을 허용함으로써 오히려 공익을 위하여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히 요구되는 경우에도 법의 규제로 말미암아 그러한 사업을 할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한다.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기부금품모집행위를 한 자에 대하여 오로지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은 명백히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 왜냐하면 사인의 일정한 행위에 대하여 행정관청의 허가를 얻도록 하는 것은 그러한 행위가 아무런 통제없이 허용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과 폐
해를 사전에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지 행위 자체를 아예 금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원칙적으로 기부금품의 모집행위 그 자체는 타인의 법익이나 사회적 법익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어서 이를 범죄로 규정하여 금지해야만 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나. 행정자치부장관, 법무부장관 및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의견(1) 기부금품모집에 대한 규제는 법 제1조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무분별한 기부금품 모집을 방지하여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생활안정에 기여하게 하고자 한 것인데, 아직도 국민과 기업으로부터 각종의 기부금품 모집에 따른 폐해의 여론이 비등한 실정이므로 현 단계에서 기부금품 모집에 대한 규제를 완화 또는 폐지하는 것은 우리의 과거 타성이나 사회실정상 부작용이 크게 우려된다.
(2)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한 규제는 법 제2조에 의해 “의뢰, 권유 기타 방법으로 무상 또는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아니하고 금품을 취득하는 행위”에 한하는 것이고, 사인간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금품을 증여하거나 기탁ㆍ기부하는 행위까지 규제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같은 조 제1호 내지 제3호에서 법인, 정당, 종교단체 등이 그 소속원 또는 신도 등으로부터 그 경비에 충당하기 위하여 금품을 갹출하는 경우에는 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 따라서 법의 규제로 인하여 기본권이 제한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는 무분별한 기부금품모집을 방지하여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건전한 사회질서를 확립한다는 공익의 차원에서 불가피한 것이고, 국민의 행복추구권이나 계약의 자유, 재산권 행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도 않는다. 결사의 자유란 단체를 결성하고 이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단체의 결성에 일정한 재정의 수준
을 요건으로 하는 것이 아닌 한 결사의 자유와 재정의 확보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3) 기부금품의 모집은 의뢰, 권유, 요구 등에 의하여 대가와 반대급부없이 금품을 모집하는 것으로서, 이는 원칙적으로 상대방의 자발성에 의한 것과도 구별되고 사기 또는 강박에 의한 것과도 구별된다고 할 수 있어 현행 민ㆍ형법 등에 의해서는 효과적으로 규제되기 어려우므로, 독자적인 법률에 의하여 규제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어 중복규제라 할 수 없다.
국민의 의식이 크게 향상된 현재에도 각종의 기부금품 모집에 따른 부작용이 지적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허가의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더욱이 법 제3조는 기부금품모집의 금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기부금품의 모집은 인정하면서도 국민에게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무분별한 기부금품의 모집에 따르는 부작용을 방지하자는 취지이므로 허가규정이 크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법 제3조 각 호의 사업은 기부금품모집에 의한 재원충당이 정당화될 만큼 사회공익에 관련된 사업이라 할 수 있다. 반대급부없는 일방적인 갹출인 기부금품모집의 대상은 되도록이면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부금품의 모집이 날로 지능화, 거액화하고 있는 오늘날 그 위반에 대하여 과태료 등의 행정벌로만 대처하는 경우에는 그 실효성은 매우 미미할 것이므로 징역형이나 벌금형 등의 형사벌로 처벌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심판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
3. 판 단가. 법 제3조에 의하여 제한되는 기본권법 제3조는 기부금품의 모집행위를 하기 위하여 행정자치부장관 등의 허가를 얻도록 규정함으로써 국민이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우리 헌법 제10조 전문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고 규정하여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고, 행복추구권은 그의 구체적인 표현으로서 일반적인 행동자유권과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권을 포함하기 때문에
(헌재 1991. 6. 3. 89헌마204, 판례집 3, 268,
275)
, 기부금품의 모집행위는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보호된다. 계약의 자유도 헌법상의 행복추구권에 포함된 일반적인 행동자유권으로부터 파생하므로, 계약의 자유 또한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보호된
다.
단체의 재정확보를 위한 모금행위가 단체의 결성이나 결성된 단체의 활동과 유지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기부금품 모집행위의 제한이 결사의 자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인정된다. 그러나 결사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법 제3조가 가져오는 간접적이고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다. 법 제3조가 규율하려고 하는 국민의 생활영역은 기부금품의 모집행위이므로, 모집행위를 보호하는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청구인은 법 제3조가 재산권행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나, 법 제3조는 기부금품의 모집을 하고자 하는 자의 재산권행사와는 전혀 무관할 뿐 아니라, 기부를 하고자 하는 자의 재산권보장이란
관점에서 보더라도 기부를 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기부금품의 모집행위와 관계없이 자신의 재산을 기부행위를 통하여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법 제3조에 의한 제한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남아 있으므로, 법 제3조가 기부를 하고자 하는 자의 재산권행사를 제한하지 아니한다. 물론, 기부를 하려는 국민도 타인의 모집행위를 통하여 누가 어떤 목적으로 기부금품을 필요로 하는가를 인식함으로써 기부행위의 동기와 기회를 부여받는다는 사실은 인정되지만, 법에 의한 제한은 단지 기부행위를 할 기회만을 제한할 뿐 재산권의 자유로운 처분에 대한 제한을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로이 기부행위를 할 수 있는 기회의 보장은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의 보호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법 제3조에 의하여 제한되는 기본권은 행복추구권이다.
나. 법 제3조의 위헌성(1) 기부행위의 허가여부를 행정청의 재량행위로 한 것
(가) 법 제3조는 허가를 받지 않은 기부금품의 모집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다만, 입법자가 모집행위의 필요성을 인정한 7가지의 경우에 한하여 “내무부장관과 도지사 또는 서울특별시장은 기부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이를 허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법 제3조에 열거된 모집목적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허가여부를 행정청의 재량에 맡기고 있으므로 비록 기부금품을 모집하고자 하는 목적이 법에 규정된 경우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허가를 청구할 수 있는 개인의 법적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허가는 법령에 의한 일반적 금지를 특정한 경우에 해제하여 적법하게 일정한 행위를 할 수 있게 하는 행정행위로서, 허가의 목적
은 경험적으로 보아 빈번하게 법질서의 위반이 발생하거나 우려되는 행위나 상황에 대하여 행정청으로 하여금 적시에 사전적ㆍ예방적 심사를 하게끔 하는데 있다. 즉, 허가를 받아야 하는 법률상의 의무는 허가를 요하는 행위 그 자체가 금지된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정청이 정해진 절차에서 행위의 적법성을 심사하고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권리행사를 개시할 수 있다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뜻에서 허가의 법적인 의미는 의도하는 행위의 적법성이 확인된 경우에는 사전적으로 권리행사를 제한하는 잠정적인 금지가 다시 해제되는데 있다. 그러므로 허가는 특별히 권리를 설정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공익목적을 위하여 제한된 기본권적 자유를 다시 회복시켜주는 행정행위이다. 따라서 허가의 본질은 바로, 기본권에서 파생하는 국민의 원칙적인 주관적 공권을 규율하는데 있으며 달리 정당한 공익이 대치하지 않는 한 국민이 허가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데 있다.
(나) 법은 제1조에서 “이 법은 기부금품의 모집을 금지하여……”라고 규정하고, 법 제3조에서 예외적으로 모집을 허용할 수 있는 대상을 정함으로써, 기부금품의 모집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이란 법의 명칭도 이러한 입법자의 의도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로써 법은 모집행위를 원칙적으로 허용되는 행위로 보고 모집과정에서 발생하는 위법적 행위를 통제하기 위하여 허가절차가 필요하다는 사고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금품의 모집행위를 윈칙적으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또는 유해한 것으로 간주하고 단지 국가가 모집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기부금품의 모집행위 그 자체는 공익이나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는 사회적으로 유해한 행위가 아니다. 모든 기본권으로 보장된 행위가 그 자체로서 사회적으로 유해한 행위는 아니며 단지 기본권의 행사과정에서 타인의 법익이나 공익과의 충돌로 말미암아 그에 따른 제한이 필요하듯이, 기부금품의 모집행위 또한 마찬가지로 모집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피해나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대한 침해가 우려되므로,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그에 대한 제한과 규율의 필요성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기부금품의 모집행위도 행복추구권에서 파생하는 일반적인 행동자유권에 의하여 기본권으로 보장되기 때문에, 법의 허가가 기본권의 본질과 부합하려면, 그 허가절차는 기본권에 의하여 보장된 자유를 행사할 권리 그 자체를 제거해서는 아니되고 허가절차에 규정된 법률요건을 충족시킨 경우에는 기본권의 주체에게 기본권행사의 형식적 제한을 다시 해제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부여하여야 한다.
(다) 그런데 법은 제3조에 규정된 경우가 존재하는 때에만 행정청이 허가를 하도록 규정하여 그 규정에 열거한 사항에 해당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허가할 수 없다는 것을 소극적으로 밝히면서 한편, 어떠한 경우에 행정청이 허가를 할 의무가 있는가 하는 구체적인 허가요건을 규정하지 아니하고, 허가여부를 오로지 행정청의 자유로운 재량행사에 맡기고 있다. 따라서 기부금품을 모집하고자 하는 자는 비록 법 제3조에 규정된 요건을 총족시킨 경우에도 허가를 청구할 법적 권리가 없다. 다시 말하면 법 제3조는 허가를 재량행위로 형성하여 헌법상 부여된 기본권적인 권리의 행사여부를 행정청의 재량에 맡김으로써, 허가관청이 임의로 국민의 기본권적 권
리를 처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그러므로 법 제3조는 기부금품을 모집하고자 하는 국민에게 허가를 청구할 법적 권리를 부여하지 아니 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다.
(2) 기부행위 모집목적을 제한한 것
법 제3조는 제1문에서 “누구든지 기부금품의 모집을 할 수 없다”고 하고, 제2문 단서에서 모집행위의 목적을 제한하여 7가지의 대상에 한하여는 허가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 제3조의 허가절차는 기부금품의 모집행위가 일반적인 행동자유권의 한 표현이므로, 일반적인 행동자유권을 제한하는 규정이다. 물론, 행복추구권에서 파생하는 일반적인 행동자유권도 다른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헌법 제37조 제2항에 근거하여 공익상의 이유로 제한될 수 있다. 따라서 입법자는 법 제3조와 같이 일정한 행위에 대하여 예방적ㆍ사전적 심사절차를 규정하고 관할 행정청의 허가를 받아야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규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하여 적용되는 구체적인 수단은 법치국가적 요청인 비례의 원칙
(과잉금지 원칙)
에 합치해야 한다. 즉, 입법자가 선택한 수단이 의도하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고 촉진하기에 적합해야 하고
(방법의 적정성)
, 입법목적을 달성하기에 똑같이 효율적인 수단중에서 가장 기본권을 존중하고 적게 침해하는 수단을 사용해야 하며
(침해의 최소성)
, 법률에 의하여 국민에게 야기되는 효과, 즉 기본권의 침해의 정도와 법률에 의하여 실현되는 공익의 비중을 전반적으로 비교형량하였을 때 양자사이의 적정한 비례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법익의 균형성)
.
청구인의 주장에 의하면, 법의 목적인 국민의 재산권보장과 생활
안정은 기존의 법률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기부행위를 허가사유로 규정해야 할 당위성과 필요성이 없다고 하나, 행복추구권에서 파생하는 일반적인 행동자유권은 모집행위를 감독하고 통제하는 모든 형태의 법적 규율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기부금품의 모집과정에서 타인의 법익에 대한 침해나 법질서에 대한 위반이 빈번하게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지난날 우리 사회에는 그러한 일들이 흔히 있었다)
, 공공의 안녕과 질서, 사기ㆍ강박, 불공정경쟁, 그 외 질서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허가절차를 통하여 모집행위에 대하여 사전에 규율하는 것은 그 필요성이 인정되고, 헌법적으로도 전혀 하자가 없다 할 것이다. 그러나 법 제3조가 모집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다만 예외적으로 국가가 정당한 것으로 정한 경우에만 모집행위를 허용하고 있으므로, 모집목적을 제한하는 이러한 형태의 허가절차는 위헌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가) 입법목적의 정당성 및 방법의 적정성
법 제1조는 “이 법은 기부금품의 모집을 금지하여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며 그 생활안정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여, 법이 국민의 재산권보호와 생활안정을 목적으로 제정된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법제정 당시와는 현저하게 다른 현재의 제상황에 비추어 위의 입법목적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법 제1조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법이 의도하는 바는 궁극적으로 모집행위에 있어서의 공공의 안녕과 질서의 유지, 사기ㆍ강박에 의한 모집행위나 그 밖의 질서위반의 방지 등, 질서유지행정적 차원에서의 규율의 필요성를 뜻한다고 해석할 수 있으므로, 입법목적의 정
당성이 인정된다고 하겠다.
또한 수단의 적정성의 관점에서도, 법 제3조가 허가의 대상을 국가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몇 가지의 공익사업에만 국한함으로써 입법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의 모든 모집행위를 처음부터 완전히 봉쇄하는 방법을 선택하였고, 이러한 수단이 입법목적의 달성에 기여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므로 수단으로서의 적정성도 인정된다 하겠다.
(나) 침해의 최소성
① 1951년 법이 제정된 이래 우리 사회는 정치ㆍ경제ㆍ문화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었고, 입법당시의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늘날 국민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었으며 국민의 의식 또한 크게 성숙하였다. 이제 우리 국민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ㆍ사회관을 바탕으로 사회공동체안에서 각자의 생활을 자신의 책임하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형성하는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발전하였다. 국가재정 또한 그 사이 국가경제의 성장으로 인하여 크게 향상되었고, 이에 따라 국가가 주도하는 사업을 더 이상 국민의 성금에 의존하지 않고도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제3조의 모집목적의 제한을 통한 모집행위의 원칙적인 금지는 바로 우리 헌법의 인간상인 자기결정권을 지닌 창의적이고 성숙한 개체로서의 국민을 마치 다 자라지 아니한 어린이처럼 다룸으로써, 오히려 국민이 기부행위를 통하여 사회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아실현의 기회를 가로 막고 있다.
결국 법 제3조는 국가만이 기부금품의 모집을 정당화하는 공익적 목적과 모집의 필요성을 결정하고, 나아가 국민이 기부금품의
모집행위를 통하여 기본권적 자유를 행사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을 결정할 수 있게 하였다. 즉, 법 제3조는 어떠한 경우에 국민이 기본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는가를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행사의 여부와 방향을 통제하게 되고, 기본권에 대한 이러한 통제방법은 기본권에 대한 매우 심각한 침해이므로 그에 상응하는 중대한 공익에 의하여 정당화되지 아니하는 한 헌법상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② 입법자는 공익실현을 위하여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입법목적을 실현하기에 적합한 여러 수단 중에서 되도록 국민의 기본권을 가장 존중하고 기본권을 최소로 침해하는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 기본권을 제한하는 규정은 기본권행사의 ‘방법’에 관한 규정과 기본권행사의 ‘여부’에 관한 규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침해의 최소성의 관점에서, 입법자는 그가 의도하는 공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우선 기본권을 보다 적게 제한하는 단계인 기본권행사의 ‘방법’에 관한 규제로써 공익을 실현할 수 있는가를 시도하고 이러한 방법으로는 공익달성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비로소 그 다음 단계인 기본권행사의 ‘여부’에 관한 규제를 선택해야 한다.
법 제3조에 규정된 모집목적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에는 기부금품을 모집하고자 하는 자는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처음부터 막혀 있다. 따라서 법 제3조에서 허가의 조건으로서 기부금품의 모집목적을 제한하는 것은 기본권행사의 ‘방법’이 아니라 ‘여부’에 관한 규제에 해당한다. 그러나 국민의 ‘재산권보장과 생활안정’, 즉 ‘모집행위에 의한 폐해나 부작용의 방지’라고 하는 법이 달성하려는 공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기부금품의 모집행위를 독자적
인 법률에 의하여 규율할 필요성이 비록 있다고 하더라도, 규율의 형태에 있어서 모집목적에 관한 제한보다는 기본권의 침해를 적게 가져오는 그 이전의 단계인 모집절차 및 그 방법과 모집된 기부금품의 사용에 대한 통제를 통하여, 즉 기본권행사의 ‘방법’을 규제함으로써 충분히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③ 기부금품의 모집에 따른 폐해나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그러한 폐해가 가장 우려되는 모집형태인 방문모집이나 가두모집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모집방법을 우편에 의한 모집으로 제한한다든지 아니면 방문모집과 가두모집은 엄격한 요건하에서만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든지 또는 모집장소를 일정한 공개장소로 제한하는 등 모집절차에 대한 통제를 통하여 얼마든지 모집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폐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이러한 모집방법의 제한은 순수한 사익을 위한 모집행위나 제3자에게 피해 또는 심리적 압박을 주는 모집행위를 사전에 예방하고, 결국 모집목적이 자연스럽게 사회공익적 성격의 사업이나 자선행위에 국한되도록 형성하는 효과를 가져 오게 한다. 또한 모집결과의 신고의무, 기부금품의 모집상황 및 사용내역에 관한 장부의 비치의무, 관계서류제출의무 등 행정청의 감독권한을 통하여 모집된 기부금품을 모집의 목적에 맞도록 사용하게끔 통제함으로써, 모집의 목적과 다르게 사용하기 위한 모집행위를 처음부터 차단하여 무분별하거나 사기적인 모집행위를 방지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일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목적을 위한 모집행위는 모집절차와 사용용도의 통제로 말미암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 확실히 예상되므로,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자연히 국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민에 의한 모집목적의 제
한을 가져올 수 있다.
④ 모집목적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제한을 두지 않으면서,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침해할 위험이 없고 모집행위의 합법적인 시행과 모집목적에 따른 기부금품의 사용이 충분히 보장되며 모집에 소요되는 비용과 모집된 금액 사이에 명백한 불균형이 우려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허가를 해주는 질서유지행정 차원의 허가절차를 통해서도 충분히 법이 의도하는 목적을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법이 의도하는 목적인 국민의 재산권보장과 생활안정은 모집목적의 제한보다도 기본권을 적게 침해하는 모집행위의 절차 및 그 방법과 사용목적에 따른 통제를 통해서도 충분히 달성될 수 있다 할 것이므로, 모집목적의 제한을 통하여 모집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법 제3조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에 필요한 수단의 범위를 훨씬 넘어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3) 소결론
법 제3조가 모집행위의 허가여부를 행정청의 재량에 위임하는 것은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의 본질에 반하고, 모집목적의 제한을 통하여 모집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행복추구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므로 법 제3조는 위헌적인 규정이다.
다. 법 제11조의 위헌성법 제11조 중 제3조에 관한 부분은 법 제3조에 위반한 경우에 대한 형벌조항이므로 그 처벌의 전제가 되는 구성요건인 제3조가 헌법에 위반된다면 그에 따라 당연히 위헌이 될 수 밖에 없는 규정이다. 따라서 법 제11조 중 제3조에 관한 부분은 그 구성요건인
법 제3조가 이미 위에서 밝힌 이유로 헌법에 위반되기 때문에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것이다.
4. 결 론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은 모두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것이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재판관 전원의 의견 일치에 따른 것이다.
재판관 김용준(재판장) 김문희(주심) 이재화 조승형 정경식
고중석 신창언 이영모 한 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