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예비적죄명:사기)ㆍ사기ㆍ사문서위조ㆍ위조사문서행사ㆍ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ㆍ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ㆍ횡령(근저당권설정계약서 등에 대한 피해자의 서명ㆍ날인을 사취한 사건) [대법원 2017. 2. 16., 선고, 2016도13362, 전원합의체 판결] 【판시사항】 [1] 피기망자가 처분행위의 의미나 내용을 인식하지 못하였으나 피기망자의 작위 또는 부작위가 직접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재산적 처분행위로 평가되고, 이러한 작위 또는 부작위를 피기망자가 인식하고 한 경우, 사기죄의 처분행위에 상응하는 처분의사가 인정되는지 여부(적극) [2] 피기망자가 행위자의 기망행위로 인하여 착오에 빠진 결과 내심의 의사와 다른 효과를 발생시키는 내용의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처분문서의 내용에 따른 재산상 손해가 초래된 경우, 피기망자의 행위가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적극) / 이때 피기망자가 처분결과, 즉 문서의 구체적 내용과 법적 효과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였으나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하는 행위에 관한 인식이 있었던 경우, 피기망자의 처분의사가 인정되는지 여부(적극) [3] 피고인 등이 토지의 소유자이자 매도인인 피해자 甲 등에게 토지거래허가 등에 필요한 서류라고 속여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등에 서명·날인하게 하고 인감증명서를 교부받은 다음, 이를 이용하여 甲 등의 소유 토지에 피고인을 채무자로 한 근저당권을 乙 등에게 설정하여 주고 돈을 차용하는 방법으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하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및 사기로 기소된 사안에서, 甲 등의 행위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하고 甲 등의 처분의사가 인정됨에도, 甲 등에게 그 소유 토지들에 근저당권 등을 설정하여 줄 의사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甲 등의 처분행위가 없다고 본 원심판결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다수의견] 사기죄에서 처분행위는 행위자의 기망행위에 의한 피기망자의 착오와 행위자 등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라는 최종적 결과를 중간에서 매개·연결하는 한편, 착오에 빠진 피해자의 행위를 이용하여 재산을 취득하는 것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사기죄와 피해자의 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행위자가 탈취의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는 절도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처분행위가 갖는 이러한 역할과 기능을 고려하면, 피기망자의 의사에 기초한 어떤 행위를 통해 행위자 등이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라면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가 인정된다. 사기죄에서 피기망자의 처분의사는 기망행위로 착오에 빠진 상태에서 형성된 하자 있는 의사이므로 불완전하거나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처분행위의 법적 의미나 경제적 효과 등에 대한 피기망자의 주관적 인식과 실제로 초래되는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고, 이 점이 사기죄의 본질적 속성이다. 따라서 처분의사는 착오에 빠진 피기망자가 어떤 행위를 한다는 인식이 있으면 충분하고, 그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에 대한 인식까지 필요하다고 볼 것은 아니다. 사기죄의 성립요소로서 기망행위는 널리 거래관계에서 지켜야 할 신의칙에 반하는 행위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하고, 착오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인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실에 관한 것이든, 법률관계에 관한 것이든, 법률효과에 관한 것이든 상관없다. 또한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하자 있는 피기망자의 인식은 처분행위의 동기, 의도, 목적에 관한 것이든, 처분행위 자체에 관한 것이든 제한이 없다. 따라서 피기망자가 기망당한 결과 자신의 작위 또는 부작위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그러한 행위가 초래하는 결과를 인식하지 못하였더라도 그와 같은 착오 상태에서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행위를 하기에 이르렀다면 피기망자의 처분행위와 그에 상응하는 처분의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피해자의 처분행위에 처분의사가 필요하다고 보는 근거는 처분행위를 피해자가 인식하고 한 것이라는 점이 인정될 때 처분행위를 피해자가 한 행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사기죄에서 피해자의 처분의사가 갖는 기능은 피해자의 처분행위가 존재한다는 객관적 측면에 상응하여 이를 주관적 측면에서 확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처분행위라고 평가되는 어떤 행위를 피해자가 인식하고 한 것이라면 피해자의 처분의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피해자가 처분행위로 인한 결과까지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사기죄의 본질과 구조, 처분행위와 그 의사적 요소로서 처분의사의 기능과 역할, 기망행위와 착오의 의미 등에 비추어 보면, 비록 피기망자가 처분행위의 의미나 내용을 인식하지 못하였더라도, 피기망자의 작위 또는 부작위가 직접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재산적 처분행위로 평가되고, 이러한 작위 또는 부작위를 피기망자가 인식하고 한 것이라면 처분행위에 상응하는 처분의사는 인정된다. 다시 말하면 피기망자가 자신의 작위 또는 부작위에 따른 결과까지 인식하여야 처분의사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법관 이상훈, 대법관 김용덕,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조희대,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이기택의 반대의견] 절도는 범죄행위자의 탈취행위에 의하여 재물을 취득하는 것이고, 사기는 피해자의 처분행위에 의하여 재산을 취득하는 것으로, 양자는 처분행위를 기준으로 하여 구분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기죄는 자기손상범죄, 절도죄는 타인손상범죄라고 설명된다. 사기죄에서 이러한 자기손상행위로서 처분행위의 본질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피해자에게 자기 재산 처분에 대한 결정의사가 필수적이다. 다시 말하면 피해자의 행위가 자신의 재산권과 관련되어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여 형성된 의사에 지배된 작위 또는 부작위만이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한다고 규범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처분결과에 대한 아무런 인식 또는 의사가 없는 처분행위는 그 자체로서 모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피해자가 자신의 재산과 관련하여 무엇을 하였는지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의 사기죄는 자기손상범죄로서의 본질에 반한다. 사기죄의 구성요건은 사기죄의 본질에 따라 해석되어야 하고, 이러한 본질에 반하는 구성요건 해석론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자기손상범죄로서 사기죄를 특징짓고 절도죄와 구분 짓는 처분행위의 해석상 피기망자에게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요청되는 것으로, 사기죄의 다른 구성요건인 착오와 기망행위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이에 반하는 해석론을 전개할 수는 없다. 즉, 사기죄의 본질 및 이를 통해 도출되는 처분의사의 의미에 의하면, 착오에 빠진 피기망자가 자신의 행위의 의미와 결과에 대한 인식을 가진 채 처분행위를 한 경우에만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으므로, 구성요건요소로서 피기망자의 착오 역시 처분행위의 동기, 의도, 목적에 관한 것에 한정되고,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처분행위 자체에 관한 착오는 해석론상 사기죄에서 말하는 착오에 포섭될 수 없다. 구성요건으로서 기망행위에 대한 적정한 해석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결국 사기죄의 본질과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루어진 착오 및 기망행위에 대한 부적절한 구성요건 해석을 들어 피기망자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다수의견의 논증은 선후가 바뀐 해석론에 불과하여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사기죄의 처분의사 판단에서 피기망자에게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필요 없는 것으로 해석하는 다수의견에 의하면 사기죄 성립 여부가 불분명해지고, 그 결과 처벌 범위 역시 확대될 우려가 있다. 행위자의 기망적 행위가 개입한 다수의 범행에서 피기망자의 인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사기 범행과 사기 아닌 범행을 명확히 구분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피기망자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위법한 기망행위를 통해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행위자를 형사처벌하고자 한다면, 다수의견과 같이 사기죄에 관한 확립된 법리의 근간을 함부로 변경할 것이 아니라 별도의 입법을 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이다. [2] [다수의견] 이른바 ‘서명사취’ 사기는 기망행위에 의해 유발된 착오로 인하여 피기망자가 내심의 의사와 다른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재산상 손해를 초래한 경우이다. 여기서는 행위자의 기망행위 태양 자체가 피기망자가 자신의 처분행위의 의미나 내용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는 상황을 이용하거나 피기망자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하고, 이로 말미암아 피기망자는 착오에 빠져 처분문서에 대한 자신의 서명 또는 날인행위가 초래하는 결과를 인식하지 못하는 특수성이 있다. 피기망자의 하자 있는 처분행위를 이용하는 것이 사기죄의 본질인데, 서명사취 사안에서는 그 하자가 의사표시 자체의 성립과정에 존재한다. 이러한 서명사취 사안에서 피기망자가 처분문서의 내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내심의 의사와 처분문서를 통하여 객관적·외부적으로 인식되는 의사가 일치하지 않게 되었더라도, 피기망자의 행위에 의하여 행위자 등이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재산의 이전을 내용으로 하는 처분문서가 피기망자에 의하여 작성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피기망자가 행위자의 기망행위로 인하여 착오에 빠진 결과 내심의 의사와 다른 효과를 발생시키는 내용의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처분문서의 내용에 따른 재산상 손해가 초래되었다면 그와 같은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을 한 피기망자의 행위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한다. 아울러 비록 피기망자가 처분결과, 즉 문서의 구체적 내용과 법적 효과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였더라도, 어떤 문서에 스스로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하는 행위에 관한 인식이 있었던 이상 피기망자의 처분의사 역시 인정된다. [대법관 이상훈, 대법관 김용덕,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조희대,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이기택의 반대의견] 사기죄의 본질 및 구조에 비추어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란 어디까지나 처분의사에 지배된 행위이어야 하고, 이러한 처분의사는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에 대한 인식을 당연히 전제한다. 그 결과 피기망자가 기망행위로 인하여 문서의 내용을 오신한 채 내심의 의사와는 다른 효과를 발생시키는 문서에 서명·날인하여 행위자 등에게 교부함으로써 행위자 등이 문서의 내용에 따른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되는 이른바 서명사취 사안의 경우에는, 비록 피기망자에게 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한다는 인식이 있었더라도, 처분결과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었으므로 처분의사와 처분행위를 인정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재산적 처분행위나 그 요소로서의 처분의사가 존재하는지는 처분행위자인 피기망자의 입장에서 파악할 수밖에 없고, 피기망자가 문서의 내용에 관하여 기망당하여 그에 대한 아무런 인식 없이 행위자에 의해 제시된 서면에 서명·날인하였다면, 오히려 작성명의인인 피기망자의 의사에 반하는 문서가 작성된 것으로서 문서의 의미를 알지 못한 피기망자로서는 그 명의의 문서를 위조하는 범행에 이용당한 것일 뿐, 그 의사에 기한 처분행위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서명사취 사안의 행위자가 위조된 서면을 이용하여 그 정을 모르는 금전 대여자로부터 금전을 차용하기에 이르렀다면 금전 대여자에 대한 금전편취의 사기죄가 성립될 여지도 충분함을 아울러 고려하여 볼 때, 토지 소유자에 대한 사기죄가 성립되지 아니한다고 하여 적정한 형벌권 행사에 장애가 초래된다거나 처벌의 불균형이 발생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더욱이 이러한 경우에 금전 대여자에 대한 사기죄와 별개로 토지 소유자를 피해자로 한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보아 처벌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행위자가 최초부터 금전을 편취할 의도 아래 토지 소유자 명의의 문서를 위조하였다면, 서명사취 범행에 따른 문서 위조는 금전 대여자에 대한 기망을 통하여 금전을 편취하는 일련의 사기 범행을 위한 수단이거나 그 실행행위에 포함되는 행위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처분결과에 대한 피기망자의 주관적인 인식이 필요하고, 서명사취 사안의 경우 피기망자에게는 자신이 서명 또는 날인하는 처분문서의 내용과 법적 효과에 대하여 아무런 인식이 없으므로 처분의사와 그에 기한 처분행위를 부정함이 옳다. [3] 피고인 등이 토지의 소유자이자 매도인인 피해자 甲 등에게 토지거래허가 등에 필요한 서류라고 속여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등에 서명·날인하게 하고 인감증명서를 교부받은 다음, 이를 이용하여 甲 등의 소유 토지에 피고인을 채무자로 한 근저당권을 乙 등에게 설정하여 주고 돈을 차용하는 방법으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하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및 사기로 기소된 사안에서, 甲 등은 피고인 등의 기망행위로 착오에 빠진 결과 토지거래허가 등에 필요한 서류로 잘못 알고 처분문서인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등에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행위를 하였으므로 甲 등의 행위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하고, 甲 등이 비록 자신들이 서명 또는 날인하는 문서의 정확한 내용과 문서의 작성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였더라도 토지거래허가 등에 관한 서류로 알고 그와 다른 근저당권설정계약에 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문서에 스스로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그 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하는 행위에 관한 인식이 있었던 이상 처분의사도 인정됨에도, 甲 등에게 그 소유 토지들에 근저당권 등을 설정하여 줄 의사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甲 등의 처분행위가 없다고 보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 사기죄의 처분행위에 관한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형법 제13조, 제329조, 제347조,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2호, 제15조의2 제1항 제1호 [2] 형법 제13조, 제231조, 제347조 [3] 형법 제30조, 제347조 제1항, 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2012. 2. 10. 법률 제1130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조 제1항 제2호

【참조판례】 [1] 대법원 1983. 2. 22. 선고 82도3115 판결(공1983, 629), 대법원 1984. 2. 14. 선고 83도2995 판결(공1984, 475), 대법원 1987. 10. 26. 선고 87도1042 판결(공1987, 1829)(변경), 대법원 1994. 8. 12. 선고 94도1487 판결(공1994하, 2320), 대법원 1999. 7. 9. 선고 99도1326 판결(공1999하, 1681)(변경), 대법원 2006. 1. 26. 선고 2005도1160 판결, 대법원 2011. 4. 14. 선고 2011도769 판결(공2011상, 984)(변경) / [2] 대법원 2000. 6. 13. 선고 2000도778 판결(공2000하, 1700)


【전문】 【피 고 인】 【상 고 인】 검사

【변 호 인】 변호사 김태현

【원심판결】 서울고법 2016. 8. 17. 선고 2016노744 판결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무죄 부분 중 각 주위적 공소사실에 관하여 가. 사기죄는 타인을 기망하여 착오에 빠뜨리고 그로 인하여 피기망자가 처분행위를 하도록 유발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얻음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따라서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행위자의 기망행위, 피기망자의 착오와 그에 따른 처분행위, 그리고 행위자 등의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 있고, 그 사이에 순차적인 인과관계가 존재하여야 한다(대법원 1989. 7. 11. 선고 89도346 판결, 대법원 2000. 6. 27. 선고 2000도1155 판결 등 참조). 사기죄에서 처분행위는 행위자의 기망행위에 의한 피기망자의 착오와 행위자 등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라는 최종적 결과를 중간에서 매개·연결하는 한편, 착오에 빠진 피해자의 행위를 이용하여 재산을 취득하는 것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사기죄와 피해자의 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행위자가 탈취의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는 절도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처분행위가 갖는 이러한 역할과 기능을 고려하면, 피기망자의 의사에 기초한 어떤 행위를 통해 행위자 등이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라면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가 인정된다.

나. 그런데 이 같은 처분행위에 관하여 종래 대법원은 주관적으로 피기망자에게 처분의사 즉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고, 객관적으로 이러한 의사에 지배된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판시하여 왔다(대법원 1987. 10. 26. 선고 87도1042 판결, 대법원 1999. 7. 9. 선고 99도1326 판결, 대법원 2011. 4. 14. 선고 2011도769 판결 등 참조). 이에 따르면 피해자가 기망을 당하여 자신에게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로써 생겨나는 결과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처분행위가 인정될 수 없기 때문에 사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기죄는 본래 행위자가 기망행위를 수단으로 피기망자를 착오에 빠뜨려 피기망자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처분행위를 하도록 만드는 범죄이다. 피기망자가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결과를 정확하게 인식하였다면 그것은 결국 기망을 당하지 않았거나 기망행위로 착오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사기죄가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처분결과에 대한 피기망자의 인식이 있어야 처분의사를 인정할 수 있다는 종전의 견해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사기죄는 피기망자의 하자 있는 의사에 따른 처분행위로 재산이 이전되는 경우에 성립한다. 따라서 처분행위는 피기망자의 행위에 의한 것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하자 있는 의사라 하더라도 피기망자의 의사에 의한 것이어야 하므로, 의사무능력자의 행위나 무의식 상태에서 이루어진 행위는 처분행위가 될 수 없다. 이 점에서 처분의사는 처분행위의 주관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사기죄에서 피기망자의 처분의사는 기망행위로 착오에 빠진 상태에서 형성된 하자 있는 의사이므로 불완전하거나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처분행위의 법적 의미나 경제적 효과 등에 대한 피기망자의 주관적 인식과 실제로 초래되는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고, 이 점이 사기죄의 본질적 속성이다. 따라서 처분의사는 착오에 빠진 피기망자가 어떤 행위를 한다는 인식이 있으면 충분하고, 그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에 대한 인식까지 필요하다고 볼 것은 아니다. (2) 사기죄의 성립요소로서 기망행위는 널리 거래관계에서 지켜야 할 신의칙에 반하는 행위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하고, 착오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인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실에 관한 것이든, 법률관계에 관한 것이든, 법률효과에 관한 것이든 상관없다(대법원 1984. 2. 14. 선고 83도2995 판결, 대법원 2006. 1. 26. 선고 2005도1160 판결 등 참조). 또한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하자 있는 피기망자의 인식은 처분행위의 동기, 의도, 목적에 관한 것이든, 처분행위 자체에 관한 것이든 제한이 없다. 따라서 피기망자가 기망당한 결과 자신의 작위 또는 부작위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그러한 행위가 초래하는 결과를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착오 상태에서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행위를 하기에 이르렀다면 피기망자의 처분행위와 그에 상응하는 처분의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달리 피기망자에게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는 경우에만 처분의사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면, 행위자가 교묘하고 지능적인 수법을 사용하는 바람에 피기망자가 자신의 행위가 낳을 결과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착오에 빠질수록 오히려 처분의사가 부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이는 수긍하기 어려운 것이다. (3) 피해자의 처분의사가 있는지를 따질 때 행위자의 범의에 관한 해석론을 그대로 옮겨와서 피해자가 처분행위로 인한 결과를 인식한 경우에만 처분의사가 인정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형법 제13조는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행위자가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행위자의 책임으로 귀속시킬 수 있는 행위만을 벌하겠다는 책임주의 원칙의 표현이다. 따라서 사기죄에서 행위자의 범의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행위자의 기망행위, 피기망자의 착오와 그에 따른 처분행위, 그리고 행위자 등의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라는 사기죄의 성립요소 전부에 대한 인식을 필요로 한다. 결국 행위자의 범의는 행위의 결과에 대한 인식, 즉 행위자 등의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라는 요소에 대한 인식까지 있어야 비로소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인 피기망자가 행위자의 기망행위나 그에 따른 자신의 착오라는 요소를 인식하여야 사기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피해자가 행위자의 기망행위나 그에 따른 자신의 착오라는 요소를 인식하였다면 사기죄가 성립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피해자가 처분행위의 결과인 행위자 등의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라는 요소를 인식하여야 한다고 보아야 할 이유도 없다. 행위자의 범의의 인식 대상은 사기죄의 성립요소 전부이나 피해자의 처분의사의 인식 대상은 사기죄의 성립요소 중 처분행위 자체에 국한된다. 피해자의 처분의사는 행위자의 범의와 달리 책임주의 원칙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처분행위의 주관적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처분행위에 처분의사가 필요하다고 보는 근거는 처분행위를 피해자가 인식하고 한 것이라는 점이 인정될 때 그 처분행위를 피해자가 한 행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사기죄에서 피해자의 처분의사가 갖는 기능은 피해자의 처분행위가 존재한다는 객관적 측면에 상응하여 이를 주관적 측면에서 확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처분행위라고 평가되는 어떤 행위를 피해자가 인식하고 한 것이라면 피해자의 처분의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피해자가 처분행위로 인한 결과까지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 결론적으로 사기죄의 본질과 그 구조, 처분행위와 그 의사적 요소로서 처분의사의 기능과 역할, 기망행위와 착오의 의미 등에 비추어 보면, 비록 피기망자가 처분행위의 의미나 내용을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피기망자의 작위 또는 부작위가 직접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재산적 처분행위로 평가되고, 이러한 작위 또는 부작위를 피기망자가 인식하고 한 것이라면 처분행위에 상응하는 처분의사는 인정된다. 다시 말하면 피기망자가 자신의 작위 또는 부작위에 따른 결과까지 인식하여야 처분의사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달리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가 인정되려면 피기망자에게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판시한 대법원 1987. 10. 26. 선고 87도1042 판결, 대법원 1999. 7. 9. 선고 99도1326 판결, 대법원 2011. 4. 14. 선고 2011도769 판결 등은 이 판결과 배치되는 범위에서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라. 나아가 피기망자의 처분행위가 법률행위 또는 의사표시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경우에 피기망자의 내심의 의사와 외부로 표시되어 객관적으로 인식되는 의사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처분행위와 처분의사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1)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이른바 ‘서명사취’ 사기는 기망행위에 의해 유발된 착오로 인하여 피기망자가 내심의 의사와 다른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재산상 손해를 초래한 경우이다. 여기서는 행위자의 기망행위 태양 자체가 피기망자가 자신의 처분행위의 의미나 내용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는 상황을 이용하거나 피기망자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하고, 이로 말미암아 피기망자는 착오에 빠져 처분문서에 대한 자신의 서명 또는 날인행위가 초래하는 결과를 인식하지 못하는 특수성이 있다. 피기망자의 하자 있는 처분행위를 이용하는 것이 사기죄의 본질인데, 서명사취 사안에서는 그 하자가 의사표시 자체의 성립과정에 존재하는 것이다. (2) 이러한 서명사취 사안에서 피기망자가 처분문서의 내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내심의 의사와 처분문서를 통하여 객관적·외부적으로 인식되는 의사가 일치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피기망자의 행위에 의하여 행위자 등이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재산의 이전을 내용으로 하는 처분문서가 피기망자에 의하여 작성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피기망자가 행위자의 기망행위로 인하여 착오에 빠진 결과 내심의 의사와 다른 효과를 발생시키는 내용의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처분문서의 내용에 따른 재산상 손해가 초래되었다면 그와 같은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을 한 피기망자의 행위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한다. 아울러 비록 피기망자가 처분결과, 즉 문서의 구체적 내용과 그 법적 효과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어떤 문서에 스스로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그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하는 행위에 관한 인식이 있었던 이상 피기망자의 처분의사 역시 인정된다.

마. 원심판결 이유 및 제1심과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피고인과 공소외 1 등은 2010. 11. 29.경 및 2010. 12. 3. 토지거래허가 등에 필요한 서류라고 속여서 원심 판시 각 토지의 매도인인 피해자 공소외 2로 하여금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등에 서명·날인하게 하고, 피해자의 인감증명서를 교부받은 다음, 이를 이용하여 위 피해자 소유의 위 각 토지에 관하여 피고인을 채무자로 하여 채권최고액 합계 10억 5,000만 원인 근저당권을 공소외 3 등에게 설정하여 주고, 7억 원을 차용하였다. (2) 또한 피고인과 공소외 1 등은 2010. 12. 29. 원심 판시 각 토지의 매도인인 피해자 공소외 2, 공소외 4에게 토지거래허가 등에 필요한 서류라고 속여서 피해자들로 하여금 위 토지를 담보로 제공하는 취지가 기재된 차용지불약정서 등에 서명 또는 날인하게 하고, 피해자들의 인감증명서를 교부받은 다음, 이를 이용하여 피해자들 소유의 위 각 토지에 관하여 피고인을 채무자로 하여 채권최고액 1억 8,000만 원인 근저당권을 공소외 5에게 설정하여 주고, 1억 2,000만 원을 차용하였다. (3) 한편 ① 피고인과 공소외 6은 피해자 공소외 7 소유의 원심 판시 토지를 담보로 제공하여 1억 원을 빌린 후 계약금 3,00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돈을 자신들이 사용하기로 모의한 다음, 2011. 4. 5.경 피해자에게 위 토지를 3억 원에 매도할 것을 제안하며 그 계약금 3,000만 원의 차용에 관하여 근저당권을 설정해 줄 것을 요구하여 피해자의 승낙을 얻었고, ② 2011. 4. 7. 위 토지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자리에서 위 3,000만 원 차용에 대한 근저당권설정에 필요한 서류라고 잘못 알고 있는 피해자로부터 채권최고액 3,000만 원, 채무자 피고인, 근저당권자 공소외 8을 내용으로 하는 근저당권설정계약서와 채권최고액 1억 2,000만 원, 채무자 피고인, 근저당권자 공소외 9를 내용으로 하는 근저당권설정계약서에 서명·날인을 받고, 각 근저당권설정등기신청서 및 위임장 등에 날인을 받는 한편, 피해자의 인감증명서를 교부받았으며, ③ 이를 이용해 위 근저당권자들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주고, 합계 1억 원을 차용하였다.

바. 이러한 사실관계를 앞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1) 피해자 공소외 2, 공소외 4는 피고인 등의 기망행위로 착오에 빠진 결과 토지거래허가 등에 필요한 서류로 잘못 알고 처분문서인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등에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행위를 한 것이므로, 피해자들의 위와 같은 행위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하고, (2) 또한 피해자 공소외 7 역시 피고인 등의 기망행위로 착오에 빠진 결과 피고인 등이 3,000만 원을 대출받기 위하여 필요한 담보제공서류로 잘못 알고 1억 원의 대출을 위한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등에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행위를 한 것이므로, 피해자의 위와 같은 행위 또한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한다. 아울러 피해자들이 비록 자신들이 서명 또는 날인하는 문서의 정확한 내용과 그 문서의 작성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토지거래허가나 약정된 근저당권설정에 관한 서류로 알고 그와 다른 근저당권설정계약에 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문서에 스스로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그 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하는 행위에 관한 인식이 있었던 이상 처분의사도 인정된다.

사. 그럼에도 이와 달리 원심은 피해자들에게 그 소유 토지들에 근저당권 등을 설정하여 줄 의사가 없었다는 이유만을 들어 피해자들의 처분행위가 있었다고 할 수 없다고 잘못 판단하여 이 부분 각 주위적 공소사실을 모두 무죄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2. 파기의 범위 위에서 본 이유로, 원심판결 중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의 점, 2010. 12. 29. 사기의 점 및 2011. 4. 7. 사기의 점에 관한 각 주위적 공소사실 부분은 파기되어야 하고, 위 각 주위적 공소사실 부분이 파기되는 이상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의 점 및 각 사기의 점에 관한 각 예비적 공소사실 부분 역시 함께 파기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원심은 위와 같이 파기되는 2011. 4. 7. 사기의 점에 관한 예비적 공소사실 부분을 포함하여 나머지 유죄 부분에 대하여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아 하나의 형을 선고하였으므로, 결국 원심판결은 전부 파기되어야 한다.

3. 결론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대법관 이상훈, 대법관 김용덕,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조희대,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이기택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하였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박병대의 보충의견, 대법관 김창석, 대법관 권순일의 보충의견, 대법관 김신의 보충의견이 있으며,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용덕,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박상옥의 보충의견, 대법관 조희대의 보충의견이 있다.

4. 원심판결의 무죄 부분 중 각 주위적 공소사실에 관한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이상훈, 대법관 김용덕,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조희대,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이기택의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다. 가. 다수의견은, 비록 피기망자가 처분행위의 의미나 내용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피기망자의 작위 또는 부작위가 직접 재산상의 손해를 초래하는 재산적 처분행위로 평가되고, 이러한 작위 또는 부작위를 피기망자가 인식하고 한 것이라면 처분행위에 상응하는 처분의사는 인정되며, 자신의 작위 또는 부작위에 따른 결과까지 인식하여야만 처분의사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을 처분의사로 이해해 온 종전 판례를 서명사취 사안의 처벌을 위해 갑작스럽게 변경하는 이러한 다수의견의 논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찬성하기 어렵다. (1) 절도는 범죄행위자의 탈취행위에 의하여 재물을 취득하는 것이고, 사기는 피해자의 처분행위에 의하여 재산을 취득하는 것으로, 양자는 처분행위를 기준으로 하여 구분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기죄는 자기손상범죄, 절도죄는 타인손상범죄라고 설명된다. 사기죄에서 이러한 자기손상행위로서 처분행위의 본질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피해자에게 자기 재산 처분에 대한 결정의사가 필수적이라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피해자의 행위가 자신의 재산권과 관련되어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여 형성된 의사에 지배된 작위 또는 부작위만이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한다고 규범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처분결과에 대한 아무런 인식 또는 의사가 없는 처분행위는 그 자체로서 모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피해자가 자신의 재산과 관련하여 무엇을 하였는지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의 사기죄는 자기손상범죄로서의 본질에 반한다. 종래 대법원이 일관하여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란 재산적 처분행위를 의미하며, 그것은 주관적으로는 피기망자에게 처분의사 즉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고, 객관적으로는 이러한 의사에 지배된 행위가 있을 것을 요한다고 해석하여 온 까닭 역시, 이러한 사기죄의 본질 및 처분행위와 그 의사적 요소로서 처분의사의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의 결과에 따른 정당한 해석론으로, 변경되어야 할 것이 결코 아니다. 결국 피기망자에게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경우에도 사기죄의 처분의사와 처분행위를 인정할 수 있다는 다수의견은 수긍하기 어렵다. (2) 다수의견 역시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기망자의 주관적 의사인 처분의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사기죄의 본질에 대해 재차 논하지 않더라도, ‘처분’의사라는 개념 자체는 이미 처분행위 내용에 상응하는 피기망자의 인식과 의사를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분행위로 인한 결과에 대한 아무런 인식이 없는 처분의사가 처분행위의 주관적 의사가 될 수는 없다. 다수의견은 처분행위에서 처분의사는 착오에 빠진 피기망자에게 재산적 처분행위로 평가되는 작위 또는 부작위를 한다는 인식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하는데, 그 실질적 의미를 보면 행위를 한 피기망자에게 의사무능력자의 행위나 무의식적 행위와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사실적 행위 의사만 있으면 된다는 취지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 의사를 처분행위에 상응하는 ‘처분’의사라고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다수의견은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의사와 피기망자의 일반적 행위 의사를 혼동하고 있고, 처분행위에 처분의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처분의사의 의미를 처분의사 개념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내용으로 독자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스스로 모순에 빠져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도 다수의견의 논리는 부당하다. (3) 사기죄의 구성요건은 사기죄의 본질에 따라 해석되어야 하고, 이러한 본질에 반하는 구성요건 해석론은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기손상범죄로서 사기죄를 특징짓고 절도죄와 구분 짓는 처분행위의 해석상 피기망자에게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요청되는 것으로, 사기죄의 다른 구성요건인 착오와 기망행위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이에 반하는 해석론을 전개할 수는 없다. 즉, 사기죄의 본질 및 이를 통해 도출되는 처분의사의 의미에 의하면, 착오에 빠진 피기망자가 자신의 행위의 의미와 결과에 대한 인식을 가진 채 처분행위를 한 경우에만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므로, 구성요건요소로서 피기망자의 착오 역시 처분행위의 동기, 의도, 목적에 관한 것에 한정되고,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처분행위 자체에 관한 착오는 해석론상 사기죄에서 말하는 착오에 포섭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구성요건으로서 기망행위에 대한 적정한 해석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결국 사기죄의 본질과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루어진 착오 및 기망행위에 대한 부적절한 구성요건 해석을 들어 피기망자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다수의견의 논증은 선후가 바뀐 해석론에 불과하여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4) 사기죄의 처분의사 판단에서 피기망자에게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필요 없는 것으로 해석하는 다수의견에 의하면 사기죄 성립 여부가 불분명해지고, 그 결과 처벌 범위 역시 확대될 우려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행위자의 기망적 행위가 개입한 다수의 범행에서 피기망자의 인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사기 범행과 사기 아닌 범행을 명확히 구분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책이나 귀금속을 잠깐 보겠다고 거짓말하여 피기망자로부터 넘겨받은 후 이를 그대로 가져가 버린 이른바 책략절도 사안에서 대법원은 피기망자의 교부행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 또는 귀금속이 피기망자의 점유하에 있다고 보아 피고인의 취거행위를 점유 침탈행위로 판단하여 절도죄로 처벌하여 왔다(대법원 1983. 2. 22. 선고 82도3115 판결, 대법원 1994. 8. 12. 선고 94도1487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이러한 책략절도의 경우 피기망자의 인식이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객관적·외부적 교부행위만을 가지고서는 피기망자가 책 또는 귀금속의 점유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지 또는 점유를 완전히 이전한 것인지를 명확히 판단하는 것은 결코 용이하지 않다. 결국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을 내용으로 하는 처분의사는 사기죄를 절도죄와 구분하기 위한 중요한 구성요건적 개념으로 사기죄 해석에 있어서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 것임이 분명하다. (5)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이하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라 한다) 제2조 제2호는 전기통신금융사기란 전기통신기본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전기통신을 이용하여 타인을 기망·공갈함으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거나 제3자에게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게 하는 다음 각 목의 행위를 말한다고 정의하면서, 각 목의 행위 중 하나로 ‘자금을 송금·이체하도록 하는 행위’를 정하고 있고, 제15조의2 제1항 제1호(이하 ‘이 사건 처벌조항’이라 한다)는 전기통신금융사기를 목적으로 타인으로 하여금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에 정보 또는 명령을 입력하게 하는 행위를 한 자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 사건 처벌조항은 세금환급을 해 준다고 속이고 피해자를 현금인출기로 유인해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계좌에서 보이스피싱 계좌로 돈을 송금 또는 이체하도록 하는 변종 보이스피싱 범죄의 경우, 기망당한 피해자가 자신의 재산을 처분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송금 또는 이체한 것이 아니어서 사기죄 적용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러한 범행까지 처벌하기 위한 필요에서 신설된 것이다. 그 결과 전기통신을 이용하여 피해자를 기망함으로써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가 초래하는 결과에 대한 아무런 인식조차 못하도록 하여 돈을 송금 또는 이체토록 한 행위는 이 사건 처벌조항을 통해 처벌된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이 사건 처벌조항의 이러한 제정 경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피기망자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위법한 기망행위를 통해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행위자를 형사처벌하고자 한다면, 다수의견과 같이 사기죄에 관한 확립된 법리의 근간을 함부로 변경할 것이 아니라 별도의 입법을 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이라고 할 것이다.

나. 또한 다수의견은, 이 사건에서 문제 되고 있는 서명사취 사기의 경우에 피기망자가 처분문서의 내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서명 또는 날인하였다고 하더라도, 처분문서의 내용에 따른 재산상 손해가 초래되었고, 피기망자가 처분문서에 스스로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그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하는 행위에 관한 인식이 있었던 이상 처분의사에 의한 처분행위를 인정할 수 있어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동의할 수 없다. (1) 누누이 강조한 바와 같이 사기죄의 본질 및 그 구조에 비추어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란 어디까지나 처분의사에 지배된 행위이어야 하고, 이러한 처분의사는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에 대한 인식을 당연히 전제한다. 그 결과 피기망자가 기망행위로 인하여 문서의 내용을 오신한 채 내심의 의사와는 다른 효과를 발생시키는 문서에 서명·날인하여 행위자 등에게 교부함으로써 행위자 등이 그 문서의 내용에 따른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되는 이른바 서명사취 사안의 경우에는, 비록 피기망자에게 그 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처분결과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었으므로 처분의사와 처분행위를 인정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2) (가) 재산적 처분행위나 그 요소로서의 처분의사가 존재하는지는 처분행위자인 피기망자의 입장에서 파악할 수밖에 없고, 피기망자가 문서의 내용에 관하여 기망당하여 그에 대한 아무런 인식 없이 행위자에 의해 제시된 서면에 서명·날인하였다면, 오히려 작성명의인인 피기망자의 의사에 반하는 문서가 작성된 것으로서 문서의 의미를 알지 못한 피기망자로서는 그 명의의 문서를 위조하는 범행에 이용당한 것일 뿐(대법원 2000. 6. 13. 선고 2000도778 판결 등 참조), 그 의사에 기한 처분행위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이 사건과 같이 행위자가 그 문서의 내용을 기망하는 방법으로 토지 소유자로 하여금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등에 서명·날인하게 함으로써 서명을 사취한 후 이를 이용해 금전 대여자 앞으로 근저당권설정등기까지 마친 경우에, 피기망자가 한 행위는 근저당권설정계약서라고 기재된 문서에 서명·날인한 것일 뿐, 그와 같은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겠다는 의사가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인식 자체도 없다. 그 문서는 피기망자의 의사에 의하지 아니하고 작성된 위조문서에 불과하며, 그 위조된 문서를 이용하여 근저당권설정 등의 행위를 하였다 하더라도 그 행위나 그에 따른 결과는 피기망자가 전혀 인식하거나 의도하지 아니한 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피기망자의 의사에 배치되는 것으로서 이에 피기망자의 제3자에 대한 처분의사가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없다. 결국 피기망자에 대한 관계에서 그러한 결과는 제거되어야 할 대상에 그치며 그러한 결과에 관하여 피기망자가 제3자에 대한 처분행위를 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나) 대법원은 토지 일부만을 매수한 자가 그 부분만을 분할 이전하겠다고 거짓말하여 소유자로부터 인감도장을 교부받은 다음 토지 전부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이른바 ‘인장사취 사안’의 경우에 매수하지 아니한 부분에 관한 등기에 대하여는 소유자인 피해자의 처분행위가 없다는 이유로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1982. 3. 9. 선고 81도1732 판결 등 참조). 행위자인 피고인이 토지 소유자의 개입 행위 없이 스스로 소유권이전에 필요한 문서를 작성한 위와 같은 인장사취 사안이나, 이 사건과 같이 토지 소유자를 기망하여 문서의 내용에 대한 인식 없는 토지 소유자로 하여금 근저당권설정계약서에 서명·날인하도록 한 서명사취 사안 모두 피고인의 행위는 문서위조의 다양한 범행 태양 중 하나에 지나지 아니하고, 그 실질은 사기 범행이 아닌 토지 소유자 명의의 문서를 위조한 행위로서 양자 사이에 형사법적으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 (다) 서명사취 사안에서 사기죄를 인정하는 다수의견에 의하면, 문서의 기재 정도 또는 완성 여부나 피기망자의 서명 방식에 따라 사기죄의 성립 여부가 분명하지 아니하거나 달라지게 되어 혼란을 초래하고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 다수의견에 의하더라도 피기망자의 처분의사를 인정하려면 피기망자가 문서에 서명·날인할 당시 그 내용이 어느 정도로 특정되어 있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아니하다. 이를테면, 근저당권설정계약서에 대한 서명을 사취한 경우에 피기망자의 서명·날인 당시 그 문서에 근저당권설정계약의 내용을 이루는 요소 중 어떠한 기재가 있어야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는지, 즉 근저당권자나 채무자의 표시, 채권최고액, 피담보채무의 내용과 범위, 근저당권의 목적물 중 일부 사항이 누락되어 있었던 경우에도 근저당권의 편취가 성립하는 것인지, 성립한다면 어떤 사항의 누락이 허용되는지 알기 어렵다. 나아가 다수의견이 처분의사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서명사취 사안과 행위자가 피기망자에게서 서명대행권을 부여받은 사안의 구별이 쉽지 아니하여 사기죄의 처벌 범위가 모호해지거나 지나치게 확대될 우려도 있다. 다수의견에 따르더라도 행위자로부터 기망당한 피기망자가 즉석에서 행위자로 하여금 서명을 대행하도록 한 경우에는 이를 피기망자의 문서 작성 행위로 평가할 수 있어서 서명사취 사안과 마찬가지로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명의 대행이 피기망자가 참여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경우, 이를테면 행위자가 피기망자로부터 사전에 토지거래허가 서류에 대한 서명대행을 허락받은 다음 피기망자가 없는 계약 체결 현장에서 전혀 다른 내용의 처분문서인 근저당권설정계약서에 서명을 대행한 경우에도 피기망자의 처분의사 또는 처분행위가 인정되어 사기죄가 성립하는지, 혹은 문서위조죄만이 성립하는 것인지, 구체적인 사정이나 상황에 따라 사기죄의 성립 여부가 달라진다면 그 구별 기준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없다. (3) 서명사취 사안의 행위자가 위조된 서면을 이용하여 그 정을 모르는 금전 대여자로부터 금전을 차용하기에 이르렀다면 금전 대여자에 대한 금전편취의 사기죄가 성립될 여지도 충분함을 아울러 고려하여 볼 때, 토지 소유자에 대한 사기죄가 성립되지 아니한다고 하여 적정한 형벌권 행사에 장애가 초래된다거나 처벌의 불균형이 발생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서명사취 사안의 경우 피기망자인 토지 소유자의 행위나 의사의 개입 아래 문서 위조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피기망자의 개입 행위가 전혀 없이 행위자 스스로 문서 위조 행위를 범한 인장사취 사안에 비하여 그 가벌성이 작다고 보지 못할 것도 아니다. 더욱이 이러한 경우에 금전 대여자에 대한 사기죄와 별개로 토지 소유자를 피해자로 한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보아 처벌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행위자가 최초부터 금전을 편취할 의도 아래 토지 소유자 명의의 문서를 위조하였다면, 서명사취 범행에 따른 문서 위조는 금전 대여자에 대한 기망을 통하여 금전을 편취하는 일련의 사기 범행을 위한 수단이거나 그 실행행위에 포함되는 행위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행위자가 편취하였다는 근저당권은 그 차용금의 경제적 가치와 중복되므로 행위자가 일련의 범행 과정에서 취득한 각 재산적 이익이 기망행위의 상대방별로 구분되는 별개의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고, 서명사취 행위는 금전 대여자에 대한 사기죄의 가벌적 평가에 이미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사법적으로 행위자인 피고인이 토지 소유자에 대한 담보설정에 따른 손해와, 금전 대여자에 대한 차용금 상당의 손해를 동시에 배상할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려움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기망의 수단으로 재산을 취득하는 모든 행위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것이고, 이러한 행위라 하더라도 사기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것은 비록 그 행위의 가벌성이 크다고 하여 함부로 처벌하여서는 아니 된다. 피기망자에게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없음에도 가벌성이 큰 기망행위라는 이유만으로 사기죄로 처벌한다면 이는 형법의 자유보장적 기능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것이다.

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처분결과에 대한 피기망자의 주관적인 인식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고, 서명사취 사안의 경우 피기망자에게는 자신이 서명 또는 날인하는 처분문서의 내용과 그 법적 효과에 대하여 아무런 인식이 없으므로 처분의사와 그에 기한 처분행위를 부정함이 옳다.

라. 같은 취지에서 원심 판시 각 토지 소유자인 피해자들이 그 각 소유 토지에 관하여 근저당권 등을 설정할 의사가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피해자들의 재산적 처분행위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이 부분 각 주위적 공소사실에 대하여 사기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본 원심의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사기죄의 처분행위 또는 처분의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에 찬성할 수 없음을 밝힌다.

5.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박병대의 보충의견은 다음과 같다. 민법상 법률행위나 의사표시의 핵심은 효과의사이다. 법적으로 의미 있는 행위는 그에 의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법률효과에 대한 행위자의 인식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기죄에서 기망에 의한 처분행위가 인정되려면 행위자(피해자)에게 그 행위의 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민법상 법률행위에서 효과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유사한 구조이다. 그런데 사기 피해자의 처분의사는 그 성질상 착오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처분행위의 법적 결과에 대한 착오이든 경제적 효과에 대한 착오이든 타인의 기망행위로 인하여 내심의 기대와 다른 결과가 초래되는 데 대한 착오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한 착오는 대개는 동기의 착오에 해당한다. 물건의 효능을 속이는 전형적인 물건 사기나 차용금 사기, 투자금 사기와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에서 문제 되는 서명사취는 표시상의 착오에 속한다. 내심의 의사는 토지거래허가신청을 하는 것이었는데 기망을 당한 결과 실제는 근저당권설정등기신청서류에 서명을 하였다는 것이다. 내심의 효과의사와 표시상의 효과의사가 부합하지 않는 결과가 생긴 것이다. 이를 민법상 의사표시의 관점에서 보면, 표시된 처분행위에 합치하는 효과의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사표시의 부존재 내지 불성립으로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민법 이론에서조차도 표시행위에 합치하는 내심의 효과의사가 있었는지만을 기준으로 법률행위의 존부를 판단하는 견해는 거의 없다고 보인다. 효과의사의 본체는 표시행위를 통하여 외부에서 추측·판단되는 의사이므로, 내심의 의사와 표시된 의사가 불일치하더라도 표시된 효과의사에 따른 의사표시 또는 법률행위가 성립하여 존재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지배적 다수의 견해이다. 그리고 이와 달리 내심의 의사가 효과의사의 본체라고 보거나 효과의사에 따른 표시행위를 한다는 인식, 즉 표시의사도 의사표시의 구성요소라고 보는 견해에서도, 표의자가 내심의 효과의사와 다른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표시행위를 한 경우 그에 따른 불이익은 의사와 표시의 불일치를 야기한 표의자 자신이 부담하는 것이 자기책임의 원칙에 부합하므로, 표시행위의 내용대로 의사표시가 성립하는 것으로 보는 규범적 해석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심과 다른 표시행위가 타인의 기망행위로 이루어진 경우에 표의자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는, 표시행위로부터 추단되는 의사표시의 ‘존재’는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자기책임의 원칙과 사기 또는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 등의 법리에 의하여 법률관계가 정리된다. 민사법상 의사표시에 관한 논의가 그럴진대, 형사법상 기망행위자의 사기죄의 성립 여부를 따지는 국면에서, 서명사취의 경우는 의사와 표시가 일치하지 않아 처분행위가 부존재 내지 불성립이라고 하는 것은 원시적 의사주의 이론으로 시계를 되돌리는 것이다. 표의자를 기망하여 내심과 불일치한 표시행위를 하게 하는 것이 기망행위자의 본래 의도이고, 그 의도대로 표시행위가 이루어졌음에도 내심의 의사가 표시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여 사기죄의 처분행위가 부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사기죄의 근본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고 형사상 책임원리에도 배치된다. 의사표시의 해석 방법으로 내심의 의사를 앞세우는 자연적 해석론에 의하든 표시행위를 중시하는 규범적 해석론에 의하든, 사기죄에서 처분행위의 존부를 따질 때에는 당연히 표시행위를 기준으로 하는 규범적 해석에 따르는 것이 옳다. 의사와 표시의 불일치가 기망행위에 의하여 초래되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기망행위자에게 유리한 판단요소로 작용하도록 해석할 수는 없다. 표시행위를 그르친 원인이 기망행위라면, 기망행위자에 대해서는 표시된 데 따라 죄책을 묻는 것이 합당하다. 요컨대 효과의사가 행위의 핵심지표일 수밖에 없는 민법상 법률행위 이론에서도, 효과의사는 행위자의 내심의 의사라는 자연적 사실의 개념이 아니라 규범적 평가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데 거의 이론이 없다. 다시 말해 민법 이론에서도 의사와 표시의 불일치로 인한 표시상의 착오가 있다고 하여 표시된 대로의 효과의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사표시가 원천적으로 ‘부존재’라고 하지는 않는다. 또한 당사자의 내심의 의사가 표시행위와 다르다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해서 내심의 의사가 그 법률행위의 내용이 된다고 보지도 않는다. 하물며 형법상 사기죄와 관련하여 피해자의 처분행위가 문제 되는 국면에서, 민법상 효과의사의 개념보다 더 엄격하게 내심의 의사와 표시된 의사의 사실적 일치가 있어야만 처분의사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균형이 맞지 않는다. 의사와 표시의 합치를 사기죄에서 오히려 더 강하게 요구할 이유는 없다. 민법상 효과의사와 사기죄의 처분의사를 대비하여 굳이 그 포섭 범위를 따진다면, 형사상 처분행위의 개념을 민사상 법률행위의 개념보다 좁혀서 보는 것은 규범목적상 타당하지 않고 자연스럽지도 않다. 거기에 피고인의 이익 보호를 위한 엄격해석주의 등 형사법 특유의 논리가 전개될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편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가 기망에 의한 것일 때, 이를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로 구성할 것인지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로 구성할 것인지는 민사법의 논의 영역에서는 실익이 있다.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사법적으로 사기죄의 성립 여부가 문제 되는 상황에서는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이든,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이든, 또 동기의 착오에 해당하든 표시상의 착오에 해당하든 구분할 뚜렷한 실익이 없다. 사기죄에서 피해자의 처분행위가 기망으로 인한 하자 있는 의사표시여야 한다는 것은 피고인의 기망행위와 피해자의 처분행위 사이의 인과관계 측면에서 주로 문제 될 뿐 피해자가 어떤 내심의 의사로 그러한 처분행위를 하였는지에 따라 사기죄의 성립 여부가 좌우된다고 볼 것은 아니다. 더구나 민법상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와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 중 유독 표시상의 착오가 있는 경우만 사기죄의 처분행위 범주에서 배제할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문제 되는 것과 같은 서명사취는 단순히 백지에 서명만을 받은 것이 아니다. 문서의 내용 자체로 재산적 처분행위의 취지가 명시되어 있는데 행위자가 다른 취지의 문서라고 피해자를 기망하여 서명을 받은 것이다. 말하자면 이때의 서명은 무의식의 행위가 아님은 물론이고 단순한 사실행위가 아니다. 문서의 내용과 결합하여 재산적 처분행위를 구성하는 의사를 외부적으로 표시하는 행위이다. 다만 기망을 당하여 그 표시행위가 내심의 의사와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을 행위자가 인식하지 못하였을 뿐이다. 재산적 처분행위의 내용이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된 경우에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 확립된 판례이다. 서명사취에 의하여 작성된 처분문서라고 하여 그 원칙이 달리 적용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서명사취에 의하여 받은 문서를 이용하여 제3자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어 그 원인행위의 효력이 문제 될 때, 이를 의사표시의 부존재로 인정하는 예는 없다. 서명사취된 근저당권설정계약서의 문언에 따른 법률행위가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사기, 착오 또는 무권대리 등의 논리로 유·무효를 따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사상 사기죄와 관련해서는 서명사취에는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없어 처분행위가 부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논리의 일관성도 없고 형사법 고유의 규범목적에도 배치된다. 하나의 행위를 두고 민사법 관계에서는 법률행위가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하면서 형사법 관계에서는 처분행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규범 질서의 정합성에 혼선을 야기할 뿐이다. 판례가 오토바이를 시운전 명목으로 교부받아 운전하여 도주한 행위가 사기죄가 아닌 절도죄가 된다고 한 것은, 오토바이의 교부행위가 그 당시의 전후 사정으로 볼 때 처분권의 이전이라는 외관을 가지는 처분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처분문서에 대하여 서명사취를 한 경우는 행위의 외관이 곧 처분문서의 내용이므로 위 오토바이 절취의 경우와는 법적 해석이 같을 수 없다. 그러므로 종래 일부 판례가 사기 피해자의 처분행위에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라는 엄밀한 의미의 처분의사가 필요하다고 한 것은 형사법적 규율 구도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민사법상 법률행위 이론의 틀에서 보더라도 조화롭지 못하다. 사기죄에서도, 민사법상 일반적인 의사표시 이론에서처럼 표시된 행위에서 추단되는 규범적 평가 개념으로서의 효과의사가 인정되고, 그러한 표시행위가 피해자의 하자 있는 의사에 의한 것인 이상 피해자의 처분의사는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이 민사법과 형사법을 관통하는 행위론의 본질에 부합한다. 이상으로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밝혀둔다.

6.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창석, 대법관 권순일의 보충의견은 다음과 같다. 가. 종래 대법원은, 사기죄에서 피기망자의 처분행위가 있다고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피기망자의 처분의사가 있어야 하는데, 피기망자의 처분의사가 인정되려면 피기망자가 처분행위라고 평가되는 행위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로 인한 결과까지 인식하여야 한다고 보아왔다. 그러나 이에 따르면 마땅히 사기죄로 처벌되어야 할 행위들이 사기죄의 성립 범위에서 제외되는 결과가 발생하고, 그러한 결과가 이론적으로도 옳지 않다는 점에서 종전 견해를 변경하고자 하는 것이다. (1) 반대의견은 종전 견해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논거로서, 사기죄에서 자기손상행위로서 처분행위의 본질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피해자에게 자기 재산 처분에 대한 결정의사가 필수적이라고 할 것인데, 피해자의 행위가 자신의 재산권과 관련되어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여 형성된 의사에 지배된 작위 또는 부작위만이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한다고 규범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처분행위로 인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그 처분행위를 한 자에게 귀속시키고자 하는 경우라면 그 처분행위를 한 자는 처분행위로 인한 결과를 인식하여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을 행위자가 인식하지 못하였다면 그의 책임으로 귀속시킬 수 없다는 책임주의 원칙상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사기죄에서 피해자의 처분의사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처분행위자에게 그 처분행위로 인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귀속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기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피해자의 처분행위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재산의 이전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피해자의 처분행위가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처분행위로 평가될 수 있는 행위가 피해자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객관적 측면만으로는 부족하고 그에 상응하는 처분의사까지 인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처분의사의 기능은 피해자에게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고 행위자 등에게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의 취득을 가져오는 것으로 평가되는 행위를 피해자가 인식하고 하였다는 점을 확인하는 의미를 넘어서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수의견은 처분의사의 인정에 필요한 피해자의 인식 대상은 처분행위로 평가될 수 있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한 것으로 충분하고 그로 인한 결과에까지 확장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사기죄의 구성요건상 처분행위는 행위자 등의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라는 처분행위로 인한 결과와는 명확하게 구분되고, 주관적 요소는 객관적 요소에 상응하는 것인데, 처분의사의 인정에 필요한 피해자의 인식 대상을 처분행위라고 평가되는 행위 그 자체에 국한시키는 것이 그러한 기준에 들어맞는 것이기도 하다. (2) 종전 견해에 의하면 피해자가 행위자의 기망행위나 그로 인한 자신의 착오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처분행위를 하였으나 그로 인한 결과 발생을 인식한 경우에는 사기죄의 성립을 긍정하나, 나아가 피해자가 처분행위로 인한 결과 발생까지 인식하지 못하고 처분행위를 한 경우에는 사기죄의 성립을 부정한다. 반대의견은 이러한 결과가 자기손상범죄로서의 사기죄의 본질에 들어맞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행위자의 기망행위와 그로 인한 피해자의 착오가 존재하고, 그러한 착오에 따른 피해자의 행위가 존재하며, 그러한 행위에 따른 피해자의 재산상 손해가 존재한다. 어느 경우이든 자기손상행위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반대의견은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자기손상범죄로서의 사기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한다. 피해자의 의사결정의 자유가 정당하게 행사된 것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피해자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논리로 이해된다. 사기죄는 피해자의 행위에 의하여 재산의 이전이 이루어졌으나 행위자의 기망행위로 인하여 피해자가 의사결정의 자유를 올바르게 행사하지 못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이다. 이 점에서 행위자의 기망행위로 인하여 피해자의 의사결정의 자유가 더 침해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를 자기손상범죄에서 제외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

나. 반대의견은 사기죄의 본질에서 도출되는 처분의사의 성질상 피기망자의 착오는 동기, 의도, 목적에 관한 것에 한정되고,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처분행위 자체’에 관한 착오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착오에 포섭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사기죄의 구성요건 중 착오가 처분행위의 이전 단계에서 존재하여야 하고, 처분행위 자체에는 존재하면 안 된다고 착오의 포섭 범위를 한계 지우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피기망자의 내심의 의사와 외부로 표시된 의사가 일치하여 의사표시 자체에는 아무런 결함이 없어야 한다는 반대의견의 해석을 서명사취 사안에 적용하면, 피기망자가 문서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문서의 작성이 가져올 결과를 알면서 그 문서에 표시된 의사에 따른 효력을 발생시킬 내심의 의사로 서명·날인한 것이 아니라면 처분의사를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서명사취 사안은 행위자가 피기망자의 의사표시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기망행위가 존재하는 경우이므로 피기망자가 외부에 표시된 의사를 기준으로 객관적으로 인식될 의사표시의 의미와 효과를 알아차리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 반대의견은 피기망자의 의사표시가 필요한 사기 유형에서는 유독 그 의사표시에 대해서만큼은 피기망자의 내심의 의사와 표시된 의사가 일치함으로써 하자가 없는 것이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수긍하기 어렵다. 한편 형사법적으로 처분행위가 법률행위인 경우 그것이 유효이든, 무효이든, 취소할 수 있는 것이든 사기죄의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서명사취 사안의 경우 비록 편취된 것이기는 하나, 피기망자의 처분문서 작성을 통해 외부적으로 드러난 의사표시가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의사표시는 행위자 등으로 하여금 직접 재산을 취득하게 하는 효과를 발생시키는 처분행위로 평가된다. 민사법적으로 보더라도, 비록 착오에 빠진 결과 내심의 효과의사와 표시상의 효과의사가 일치하지 않더라도, 처분문서에 대한 서명 또는 날인을 통한 처분문서 작성과 그 교부 등을 통해 이러한 의사가 인식될 수 있는 외부적인 행위, 즉 표시행위가 분명히 존재하므로, 서명사취 사안의 경우 처분문서의 내용에 따른 의사표시가 성립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게다가 피기망자가 행위자의 기망행위에 의하여 처분문서의 내용을 알지 못하였더라도 스스로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하여 처분문서를 작성한 이상 문서의 진정 성립은 인정된다. 행위자가 서명사취 행위에 대하여 사문서위조죄로 처벌받았다고 하더라도 문서 작성을 통해 외부로 표시된 의사표시가 부존재한다거나 표시상의 효과의사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행위자의 기망행위로 피기망자가 착오에 빠진 나머지 객관적으로 의사표시로 인정되는 처분문서의 작성과 같은 어떤 행위를 하였고, 그에 기초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이전이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였음에도, 단지 피기망자의 내심의 의사와 외부로 표시된 의사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분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사기죄의 성립을 부정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다. (1) 사기죄의 처분의사에 피기망자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을 요하지 않는다고 하여 반대의견의 언급과 같이 사기죄의 성립 여부가 불분명해지거나 처벌 범위가 불합리하게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 다수의견은 처분의사에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을 요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 사기죄의 구성요건요소로서 처분행위 개념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개별 사안에서 피기망자의 처분행위 즉, 피기망자의 하자 있는 의사에 의하여 지배된 작위 또는 부작위로서 직접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재산적 처분행위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사기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재산상 이익에 대한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종래의 판례들, 즉 치료비 채무의 이행을 모면하기 위하여 병원을 빠져 나와 도주한 사안(대법원 1970. 9. 22. 선고 70도1615 판결 참조), 기존 채무와 관련하여 위조된 약속어음을 교부한 사안(대법원 1982. 9. 28. 선고 82도1759 판결 참조) 등의 경우에도 굳이 피기망자에게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었는지 여부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피기망자의 재산적 처분행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경우이므로,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어려움 없이 도출될 수 있다. 또한 반대의견이 예로 들고 있는 책이나 귀금속을 구입할 것처럼 건네받은 다음 가지고 도주하는 이른바 ‘책략절도’의 경우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물건을 구입하려는 사람에게 구경할 수 있도록 잠시 점유를 이전한 것뿐이다. 재물에 대한 탈취가 일어난 것은 피해자의 하자 있는 의사에 의하여 지배된 처분행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며, 오히려 물건을 가지고 달아나는 행위자의 추가적인 행위에 의하여 재물의 취득이 발생한 것일 따름이다. 따라서 처분행위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어서 사기죄가 성립할 수 없는 사안이다. 객관적·외부적으로 인식되는 교부행위를 기준으로 판단하더라도 피해자가 행위자에게 물건에 관한 점유를 완전히 이전한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요컨대 이 경우 처분행위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지에 따라 사기죄의 성립 여부를 가릴 수 있으므로, 반드시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까지 포함시켜 처분의사를 파악하여야 사기죄와 책략절도죄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 반대의견이 지적하는 것처럼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제정에 따라 전기통신금융사기와 관련한 여러 처벌조항이 신설됨으로써, 피해자에게 돈을 송금 또는 이체한다는 인식이 없는 경우를 포함하여 전기통신을 이용한 다양한 유형의 사기범죄에 대한 명확한 처벌근거가 마련된 것은 맞다. 그러나 형법상 사기죄의 성립을 두고 그동안 논란의 소지가 있었던 부분을 명확히 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신종·변종 수법의 보이스피싱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위와 같은 처벌조항이 신설되었다고 하여, 처분의사의 인정에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해석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현행법의 해석으로 충분히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음에도 사기죄의 성립 범위를 축소하는 해석을 한 다음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하여 다시 입법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라. (1) 이른바 ‘인장사취 사안’과 ‘서명사취 사안’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용도를 속여 토지 소유자로부터 인감도장을 교부받은 후 그 소유 토지에 관하여 임의로 제3자 앞으로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마쳐 준 인장사취 사안을 상정해 보면, 이러한 경우 피기망자의 처분행위라고 할 만한 외부적 의사표시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행위자가 편취한 인장을 사용하여 피해자 명의의 근저당권설정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위조한 행위가 존재할 뿐이어서,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반면에 서명사취 사안에서는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하는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등에 의한 피기망자의 외부적 의사표시가 엄연히 존재한다. 인장사취 사안의 경우 근저당권설정계약에 관한 피기망자의 어떠한 의사표시가 있다고 할 수 없는 결과 사취된 인장에 의하여 마쳐진 등기는 원인무효의 등기로서 말소될 수밖에 없다는 사정을 고려하면, 서명사취 사안의 경우와 법적 평가를 달리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할 수 없다. (2) 이 사건과 같은 근저당권설정계약서에 대한 서명사취 사안의 경우, 민사법적으로 토지 소유자인 피해자가 기명날인의 착오나 서명의 착오를 이유로 근저당권설정계약의 취소를 주장하여 금전 대여자 앞으로 마쳐진 근저당권설정등기의 말소를 구할 수도 있다(대법원 2005. 5. 27. 선고 2004다43824 판결, 대법원 2006. 10. 27. 선고 2006다41778 판결 등 참조). 그러나 표의자인 피해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취소가 배제된다(민법 제109조 제1항 단서).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를 이유로 취소 주장을 하는 경우에는, 제3자인 근저당권자가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임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하여 취소가 허용된다(민법 제110조 제2항). 나아가 근저당권설정계약에 기초한 근저당권자 지위를 양수하는 등으로 새로운 이해관계를 맺은 선의의 제3자에 대하여는 위와 같은 취소로 대항할 수 없다(민법 제109조 제2항, 제110조 제3항). 결국 토지 소유자인 피해자가 서명이나 날인이 사취되었음을 들어 자신의 토지에 관하여 설정된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말소시켜 권리를 회복하는 것이 언제나 가능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토지 소유자를 사기죄의 피해자로 보호할 형사정책적 필요성이 분명하게 인정된다.

마. (1) 서명사취 사안에서 금전 대여자에 대한 차용금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사정이 토지 소유자에 대한 사기죄의 성립을 부정할 논거가 될 수는 없다. 두 가지 사기 범행은 피해자를 달리하고, 기망행위의 내용도 상이하다. 범행으로 인하여 영득한 재산 역시 전자의 경우는 재물인 금전인 반면, 후자의 경우는 타인 소유 부동산을 담보로 이용할 수 있는 재산상 이익이라는 점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두 가지 범죄는 양립이 불가능하거나 서로 배척하는 관계에 있지도 않다. 그리고 토지 소유자에 대한 서명사취 사기 범행이 금전 대여자에 대한 사기 범행에 일반적·전형적으로 결합되어 수반되는 범행의 관계에 있지도 아니하다. 그런데도 반대의견은 행위자가 범행의 결과로 금전을 편취하였다는 점에 지나치게 주목한 나머지 범행에 따라 여러 피해자들에게 서로 다른 법익 침해의 결과가 발생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또한 행위자나 제3자에 대한 증여 또는 채무 면제의 의사표시가 기재된 처분문서에 피기망자로 하여금 서명이나 날인을 하도록 하여 재산을 편취한 경우라면 피기망자를 피해자로 하는 사기죄 이외에 별개의 사기죄가 성립할 여지가 없다. 게다가 이 사건과 같이 형사소송 절차에서 증명이 충분하지 않아 금전 대여자에 대한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담보권설정계약이 민사적으로 유효하다고 인정되면 금전 대여자가 굳이 행위자의 형사책임을 문제 삼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반대의견의 주장과 달리 사기죄로 처벌하는 데에 빈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바로 이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 서명사취 사안에서 행위자가 사문서위조죄로 처벌될 수 있다고 하여 형벌권이 적정하게 실현된다고 할 수 없다. 서명사취 사안의 실질은 기망행위를 통한 재산영득범죄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가벌적 행위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을 처벌하지 아니하고 그 수단적 행위인 문서위조 범행만을 처벌한다는 것은 행위 및 결과의 불법성에 부합하는 적정한 형벌권의 행사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사기죄와 사문서위조죄는 그 법정형의 차이가 크고, 사기죄에는 편취액에 따라 가중 처벌하는 특별법의 규정이 있으나 사문서위조죄에는 그러한 규정이 없으므로, 서명사취 범행을 통해 행위자 등이 막대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경우에도 가벼운 사문서위조죄로 처벌하는 데 그치는 처벌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바. (1) 피기망자가 서명이나 날인을 할 당시 처분문서의 내용이 어느 정도로 특정되어 있어야 처분행위를 인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사안마다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성질의 것이다. 범죄행위의 태양이 다양한 만큼 개별 사안의 특수한 사정을 모두 포섭할 수 있는 획일적인 기준을 제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기죄에서 처분행위가 차지하는 역할과 기능에 비추어 핵심적인 판단 기준은 피기망자가 서명이나 날인을 한 문서가 처분문서로서의 외관을 갖추고 있어 행위자 등에게 직접적으로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 취득의 효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해당 처분문서에 대한 서명이나 날인 행위로 인하여 외부적·객관적으로 피기망자의 재산 처분의 의사표시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다시 말하면 피기망자의 서명이나 날인 행위가 그러한 결과 발생에 본질적 기여를 한 것인지 여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범죄 성립 여부와 관련하여 빈번하게 마주치는 구성요건에의 포섭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사기죄는 행위자가 아닌 피기망자 스스로의 처분행위가 있고, 그러한 행위가 행위자 등의 재산취득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피기망자의 처분행위를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통념상 피기망자 자신의 서명·날인과 같게 취급하는 것이 타당할 정도로 행위자나 제3자가 마치 피기망자의 수족처럼 그의 지시에 따라 기계적으로 서명·날인을 대행한 경우가 아닌 이상, 행위자가 처분문서에 기재될 내용을 기망하여 피기망자로부터 서명·날인의 대행을 허락받아 피기망자에게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처분문서에 피기망자의 서명·날인을 대행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인장사취 사안과 다를 바 없어 피기망자가 처분행위를 하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밝힌다.

7.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신의 보충의견은 다음과 같다. 가. 피기망자가 처분행위의 의미나 내용을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피기망자의 작위 또는 부작위가 직접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행위로서 착오에 빠진 피기망자의 하자 있는 의사에 지배된 것이고, 그로 인하여 피고인이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면 사기죄가 성립하고, 피기망자의 작위 또는 부작위에 따른 결과에 대한 인식까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다수의견에 찬성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사기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형법에서 정한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사기죄의 성립에 피기망자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는 처분행위가 필요한지 여부도 그 문언해석을 기초로 판단하여야 한다. 형법은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와 같은 방법으로 제3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한 자를 사기죄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형법 제347조). 문언상 피고인이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를 구성요건으로 정하고 있을 뿐, 피기망자가 처분결과를 인식하고 처분행위를 하는 것을 구성요건으로 삼고 있지 않음이 명백하다. 그런데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피고인이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기 위한 전제로서 피기망자의 재물 교부나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행위가 수반된다. 어떠한 행위가 피기망자의 행위로 평가될 수 있으려면 자연적 행위 자체에 대한 피기망자의 인식이 필요하고, 그와 같은 인식조차 없는 무의식적인 행동을 피기망자의 행위라고 평가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피기망자의 작위 또는 부작위가 직접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행위로서 피기망자의 의사에 지배된 것이라고 인정되면, 이를 피기망자의 행위가 아니라고 평가할 이유가 없다. 사기죄의 본질은 기망에 의한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의 취득에 있고, 피고인이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함에 있어 피해자 즉 피기망자의 처분행위가 개입된다. 피기망자의 처분행위가 피고인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 취득의 전제가 될 뿐인데도 그와 같은 처분행위에 반드시 피기망자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까지 필요하다고 볼 법률상 근거나 논리적 필연성이 없다. 이는 형사정책적 관점에서 처벌의 필요성과 형법의 법익 보호적 기능을 중시한 것이 아니라 형법 규정에 관한 자연스러운 해석의 결과이다. (2) 사기죄에서 피고인이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다양한 행위 태양을 통일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도 피기망자가 처분결과를 인식한 채 처분행위를 한 경우에만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 형법이 사기죄에 의하여 보호하려는 것은 피해자의 의사결정의 자유가 아니라 전체로서의 피해자의 재산이다. 따라서 사기죄에서 피고인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 취득의 전제가 되는 피기망자의 처분행위는 객관적으로 직접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것이라면 민법상 법률행위임을 요하지 아니하고 순수한 의미의 사실행위도 포함되며, 그것이 유효이건 무효이건 또는 취소할 수 있는 것이건 묻지 않는다. 그런데 처분행위가 의사표시나 법률행위의 외형을 가지는 경우 피기망자가 처분결과를 인식한다는 의사가 존재할 수 있겠지만, 처분행위가 순수한 의미의 사실행위인 경우에도 그와 같은 의사를 인정한다는 것은 피기망자의 행위 자체에 대한 인식을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으로 본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피고인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 취득의 전제가 되는 피기망자의 처분행위에 민법상 법률행위에서나 상정 가능한 결과발생의 인식이라는 의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나아가 그와 같은 의미의 처분의사를 사기죄의 구성요건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피고인이 피기망자의 사실행위에 의해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경우와 피기망자의 법률행위에 의해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경우에 관한 통일적 해석을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3) 사기죄에서 처벌하는 대상은 피고인의 행위이고, 사기죄의 성부를 판단함에 있어 평가해야 하는 대상도 피고인의 행위이지 피기망자의 행위는 아니다. 그러므로 사기죄의 성립 여부는 피고인의 행위 측면에서 평가하여 판단할 문제이고 피기망자의 행위 측면에서 평가하여 가려낼 문제가 아니다. 피해자의 처분의사가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을 의미하고 그것이 구성요건이라고 이해하려는 태도는 피기망자의 주관적 의사와 객관적 표시행위의 불일치가 있는 경우 그 표시행위의 효력 유무를 평가하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민법상 의사표시의 해석론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법상 의사표시의 해석론은 피기망자의 의사표시가 부존재하는지, 또는 그 의사표시에 무효나 취소사유에 해당하는 하자가 있는지 여부를 가려서 의사표시에 부여할 법률효과를 판단하는 문제인 반면, 사기죄의 성립 여부는 그와 같은 상태를 초래하여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피고인의 행위가 형법에서 규정한 처벌 대상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문제이다. 이와 같이 사기죄가 피고인의 행위를 처벌하려는 것인 이상, 피고인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 취득의 전제가 되는 피기망자의 처분행위는 피고인의 행위가 사기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수단에 불과하므로, 민법상 법률행위와 같이 완결된 의미의 의사표시가 되어야 할 이유나 필요가 없고, 처분행위가 없다면 그 논리적 귀결로서 피고인이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인정될 수 없다는 소극적인 의미를 가질 뿐이다. 객관적으로 살펴볼 때 피기망자의 처분행위로 인하여 직접 피고인이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음이 인정되고, 그것이 피고인의 기망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라면 사기죄가 성립한다. 피기망자의 내심의 의사에 따른 법률효과가 발생하는지 여부는 민사사건에서 별도로 논의할 문제이고, 피고인이 피기망자의 행위에 의한 처분문서의 내용에 따른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때에 피기망자의 내심의 의사와 다른 법률효과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사기죄에서 제외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나. 반대의견의 핵심적인 내용은, 자기손상범죄인 사기죄의 본질상 피기망자의 처분행위는 재산권과 관련되어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여 형성된 의사에 지배되어야 하고,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없는 의사를 처분행위에 대응하는 처분의사로 볼 수 없으므로, 구성요건요소로서 피기망자의 착오는 처분행위의 동기, 의도, 목적에 관한 것에 한정되고,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처분행위 자체에 관한 착오는 해석론상 사기죄에서 말하는 착오에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1) 사기죄가 자기손상범죄이고 그 본질상 피기망자의 행위가 개입되어야 함은 수긍할 수 있지만,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기망자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는 없다. 사기죄가 자기손상범죄라는 의미는 피기망자의 행위가 개입되어 피고인이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것이고, 절도죄와 같은 탈취죄와 달리 피기망자의 착오로 인한 행동이 피고인의 범죄적 중간행위 없이 직접 피기망자의 재산 감소와 피고인 또는 제3자의 재산 증가를 일으킨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피기망자의 행위가 개입된다는 이유만으로 피기망자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탈취죄와 사기죄를 구분하는 지표로서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까지 볼 이유는 없다. 피해자의 주관적 인식은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이전이 피해자의 의사에 의해 지배된 행위에서 기인한 직접 결과인지 또는 피고인의 행위에서 기인한 직접 결과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 고려하여야 하는 중요한 요소에 불과하다. 사기죄에서 피기망자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견해에 따르더라도 피기망자가 처분행위의 대상이 된 재산이 자신의 재산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피고인 또는 제3자에게 귀속되는지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경우에만 처분의사가 인정된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만일 사기죄에서 피기망자의 완벽하고도 엄격한 처분의사를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재물을 반환할 의사 없이 빌려달라고 하는 자에게 재물을 교부한 경우에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없었으므로 언제든지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엉뚱한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사안에 따라서는 피기망자의 처분의사로서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무엇인지조차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대법원이 사기죄에서 어떤 처분행위가 지닌 의미와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피기망자의 주관적 인식을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라고 표현한 선례가 있지만, 이는 당해 사안에서 사기죄가 성립하는 데 필요한 피기망자의 주관적 인식을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피기망자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라는 개념은 사기죄의 자기손상범죄라는 본질에서 당연히 도출되는 것이 아니고, 사기죄를 다른 범죄와 구분하는 유효하고도 적절한 기준이라고 보이지도 않는다. (2) 이러한 점에서 처분행위에 처분의사가 필요하다고 보면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사기죄의 구성요건이 되어야 한다는 반대의견은 수긍하기 어렵다. 반대의견은 주로 피고인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사기죄에서 피기망자의 처분행위가 의사표시나 법률행위의 외형을 가지는 경우를 전제로 하여 피기망자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재물을 교부받는 사기죄에서도 이와 같은 해석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피기망자의 처분행위가 재물을 교부하는 행위인 경우, 피기망자의 주관적 의사는 점유이전에 대한 인식만으로 충분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고, 이때 피기망자가 재물을 교부하는 행위의 결과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해석하는 견해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형법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재물을 교부받는 행위를 사기죄의 주된 유형으로 명시하고 있고, 피해자를 기망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는 이와 대등한 사기죄의 한 유형임이 분명하다. 재물사기죄와 이익사기죄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재물을 교부받는 행위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는 대등한 구성요건이다. 재물사기죄에서 피기망자의 처분행위가 인정되기 위한 주관적 요소는 점유를 이전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인식이 있으면 충분한데도, 이익사기죄에서는 그와 대등한 주관적 요소로서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까지 필요하다고 볼 아무런 이유가 없다. 반대의견은 사기죄에서 피기망자의 처분의사가 필요하다고 본다면 피기망자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밖에 없는데도, 다수의견이 처분의사를 독자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스스로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없는 피기망자의 의사를 처분의사로 표현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는 의미를 넘어, 피기망자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구성요건이라는 결론을 정당화하는 논거가 되는지는 의문이다. 피기망자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만을 처분의사로 새길 수 있고 피기망자의 처분행위를 무의식적 행위와 구분하는 기준으로서 그 행위 자체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므로, 굳이 이러한 인식을 처분의사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라면, 다수의견은 반대의견이 한정하는 의미에서의 그러한 처분의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힌 것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3) 결과적으로 구성요건요소로서 피기망자의 착오를 처분행위의 동기, 의도, 목적에 관한 것에 한정된다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형법의 사기죄에 대한 구성요건을 거듭하여 살펴보더라도 피고인이 피기망자를 기망하는 행위가 처분행위의 동기, 의도, 목적에 관한 것으로 한정되어야 한다고 해석할 만한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 형법은 피고인의 행위를 평가의 대상으로 삼아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행위를 사기죄로 규정하고 있고, 피고인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 취득의 전제로서 피해자의 처분행위가 개입될 뿐이다. 사기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피고인의 기망행위가 처분행위의 동기, 의도, 목적에 관한 것이든 처분행위 자체에 관한 것이든, 피해자를 기망한 행위로 평가될 수 있고, 이로 인하여 피해자가 하자 있는 의사에 기초하여 재물을 교부하거나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피고인이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면, 이를 사기죄에서 배제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사기죄는 피고인이 상대방의 하자 있는 의사표시에 의해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해야만 성립하는데, 피고인이 기망행위를 통해 상대방이 하자 있는 의사를 가지게 하려면 결국 처분행위의 동기, 의도, 목적에 관한 사정도 기망하기 마련이다. 즉 사기죄가 성립하는 전형적인 사안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처분행위의 동기, 의도, 목적에 관한 사정을 기망하는 사례가 많을 수밖에 없지만, 그와 같은 사정을 근거로 들어, 그러한 경우에만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이어서 채택하기 어렵다.

다. 형법은 피기망자가 처분결과를 인식한 상태에서 하는 처분행위를 사기죄의 구성요건으로 규정하지 않았고, 피기망자의 처분행위는 사실행위일 수도 있고 법률행위일 수도 있다. 따라서 피기망자의 작위 또는 부작위로서 직접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행위가 착오에 빠진 피기망자의 의사에 지배된 것인 이상, 피기망자의 처분행위를 인정하는 데 필요한 주관적 요소는 그 행위 자체에 대한 인식으로 충분하고 그와 같은 인식도 인정되지 않을 때에는 피기망자의 처분행위로 볼 수 없다는 소극적 의미를 가질 뿐이다. 처분행위에 수반되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인식을 넘어서지 않는 의사를 별도로 평가하여 처분의사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것이 처분행위 자체에 당연히 포섭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아 처분의사는 필요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는 분류나 명명의 차이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내용은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다만 사기죄에서 처분행위에 그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까지 필요하다고 볼 수는 없고, 이는 사기죄의 성립 여부를 피고인의 행위 측면에서 평가하는 우리 형법 해석의 당연한 귀결이다. 이상과 같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밝힌다.

8.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용덕,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박상옥의 보충의견은 다음과 같다. 가. (1) 책임주의는 형사법의 대원칙이고, 사적 자치의 원칙 내지 자기책임의 원칙은 민사법의 대원칙이다. 이러한 대원칙을 관통하는 이념은 사람이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선택하여 행한 행위와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구속되고 책임을 진다는 자유주의이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의사의 능력이나 행위의 능력 등에 기인한 차이로 일방이 본래의 뜻을 펴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에 의해 뒷받침되는 법제도를 통해 적절한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것이 현대적 의미의 책임주의이고 사적 자치의 원칙 내지 자기책임의 원칙이다. 결국 사람들의 의사에 의해 형성되는 법률관계에 있어서는 이러한 의사와 법제도를 기반으로 그에 대한 적절한 몫과 해석이 부여되어야 한다. (2) 이러한 책임주의 원칙에 따라 형법은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하고 다만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예외로 하도록 하는 한편(제13조), 특별히 중한 죄가 되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중한 죄로 벌하지 아니하고(제15조 제1항), 또한 결과로 인하여 형이 중할 죄에 있어서 그 결과의 발생을 예견할 수 없었을 때에는 중한 죄로 벌하지 아니한다고(제15조 제2항) 규정하고 있다. (3) 재산범죄에서 법익침해는, 절도와 같이 가해자의 행위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피해자의 법익을 침해하는 유형과 사기와 같이 피해자의 행위를 통하여 법익침해 결과가 발생되는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후자는 그 법익침해가 피해자의 선택·용인이라는 피해자의 의사결정에 의한 결과로 발생하는 자기손상범죄라고 할 수 있다. 사기죄의 본질은 가해자의 기망행위에 의해 유발된 착오로 그릇된 인식에 기초하여 결정된 의사에 의하여 선택된 피해자의 재산상 행위의 용인된 결과가 바로 피해자의 재산상 손해로 이어지는 것이고, 이처럼 재산상 손해의 발생을 넘어 발생하는 기망행위를 통한 의사결정의 자유의 침해를 중시하여 형법은 사기죄를 절도죄보다 더 무겁게 처벌하는 것이다. 결국 가해자의 기망행위와 재산상 이익의 취득 및 각 그에 대한 인식, 그 반대편에 있는 기망행위에 의해 의사결정의 자유가 침해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피해자의 재산상 행위와 그 결과로서의 재산상 손해의 발생이 국가형벌권의 이념적 기초인 책임주의가 작용할 영역이 된다.

나. (1) 그동안 대법원은 사기죄는 타인을 기망하여 착오에 빠뜨리고 그 처분행위를 유발하여 재물, 재산상의 이득을 얻음으로써 성립하고, 그 처분행위는 재산적 처분행위로서 주관적으로는 피기망자에게 처분의사 즉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 및 그 결과를 실현하려는 의사가 있어야 하고, 객관적으로는 이러한 의사에 지배된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해석하여 왔으며, 또한 피기망자가 자유의사로 직접 재산상의 손해를 초래하는 작위에 나아가거나 또는 부작위에 이른 것이 처분행위라고 해석함으로써 자유의사에 의한 행위임을 전제로 하여 채권을 행사하지 아니하는 부작위도 처분행위가 된다고 판시하였다. (2) 그리고 여기서 처분행위에 해당하는 부작위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아니한다는 단순 부작위가 아니라, 권리의 유예·포기 등과 같이 할 수 있거나 하여야 할 일정한 권리행사를 하지 아니하는 것으로서 재산적 처분행위로 평가될 수 있는 이른바 부진정 부작위를 말한다. 따라서 작위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부작위로 인한 결과에 대한 인식 및 그 결과를 부작위에 의하여 실현한다는 의사 내지는 처분의사가 필요하며, 오히려 이러한 내용의 부작위에 대한 인식 및 의사가 처분행위로서의 부작위를 다른 단순한 부작위와 구분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3) 결국 처분행위와 그 의사적 요소로서 처분의사에 관한 대법원의 이러한 해석은 위에서 본 행위론 및 사기죄의 본질에 기초한 것으로서 정당하고, 변경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다. 다수의견은 이 사건에서 문제 된 서명사취 사안에 관하여, 사기죄를 인정하려면 피기망자의 처분행위 및 처분의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피기망자가 그의 의사로 어떠한 행위를 한다는 인식만 있으면 그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에 대한 인식이 없어도 처분의사가 인정된다고 보고, 나아가 피기망자가 문서의 구체적 내용과 법적 효과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서명·날인에 그친 행위에 대하여 문서의 내용인 의사표시가 이루어졌다고 보아 그에 의한 처분행위를 인정하여, 그 서명·날인행위를 한 이상 처분의사가 인정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서명·날인의사가 어떠한 점에서 다른 행위의사와 구분되는 처분의사라는 것인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아니하나, 피기망자의 서명·날인에 의하여 문서가 작성됨으로써 하자 있는 의사표시가 성립된다고 보아 서명·날인에 대한 인식이 그 처분행위인 의사표시에 대한 것으로서 처분의사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러나 서명사취 사안에서 처분의사의 의미를 다수의견과 같이 새기게 되면, 문서 작성행위 내지 표시행위에 대응하는 내심의 의사가 없는 경우는 물론이고, 어떠한 법률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인식 자체가 없거나 아예 표시행위가 인정될 수 없는 경우에서조차 피기망자의 의사표시 및 그에 대한 처분의사를 인정하여, 결국 문서에 대한 단순한 서명·날인행위를 처분행위라고 간주하는 것으로서, 앞에서 본 행위론 및 처분행위를 요구하는 사기죄의 본질에 반하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다수의견이 제시하는 새로운 처분행위론이 안고 있는 여러 법리적인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1) 당사자가 어떠한 행위를 하였는지를 논할 때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가 무엇인지를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고, 진정한 의사와 외부적 행위는 일치함이 보통이지만 양자가 불일치할 때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어떤 법률효과를 부여할 것인지가 법의 과제이다. 민사법적으로 의사표시를 해석할 때에 당사자의 내심의 의사보다는 외부로 표시된 행위에 의하여 추단되는 의사를 가지고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설명되지만, 이는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를 알 수 없는 경우에 관한 해석론으로서, 만약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를 알 수 있다면 외부로 표시된 행위가 아니라 그 진정한 의사가 의사표시 내지 법률행위의 내용이 된다. 즉, 의사가 행위를 결정하고 행위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지, 행위라는 외형을 가지고 의사가 의제된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다수의견은 피기망자가 처분행위의 의미나 내용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행위를 한다는 의사만 있으면 처분행위에 수반되는 처분의사가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이에 기초하여 서명사취 사안의 경우에 서명·날인행위를 한 이상 처분의사가 인정되어 문서에 따른 처분행위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는 행위와 행위의사의 관계, 처분행위와 처분의사의 관계를 무시한 것이고, 또한 처분행위를 인정하기 위한 전제로서 요구되는 주관적 요소인 처분의사에 관한 논증을 회피한 것이다. 피기망자는 단순히 문서를 작성한다는 인식에 그쳤음에도 그 작성된 문서에 대해 처분의사에 의한 처분행위를 인정한다는 것이어서 행위론의 본질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처분행위가 있으니 처분의사도 있다는 식이어서 행위와 의사가 서로 순환되는 오류를 안고 있다. (2) 더욱이 서명사취 사안 중에는 피기망자가 권리의 처분에 관한 행위를 한다는 의식, 즉 민사상으로는 법률행위를 한다는 인식이나 의사 자체가 없는 경우가 있다. 피기망자가 기망행위로 인하여 착오에 빠진 결과, 어떠한 법률적인 의미를 가진 문서를 작성한다는 의사가 전혀 없이 서류에 서명하거나 또는 법률행위와는 전혀 무관한 문서, 예를 들어 확인서·탄원서 등을 작성한다는 인식에 따라 서명하였는데, 그 작성된 문서에 권리의 처분에 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에, 피기망자로서는 그 서류에 대한 서명을 통하여 그 기재된 내용과 같은 구체적인 법률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의사가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행위에 의하여 어떠한 법률효과가 생긴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 법률행위 자체에 대한 의사가 부존재하는 경우 아무런 의식 없이 이루어진 행위와 다르지 아니하고, 이러한 행위를 가지고 처분행위를 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아래에서 보듯이 민사상 의사표시에 관하여 내심의 효과의사와 표시행위가 불일치하는 경우에 착오가 논의되나, 피기망자와 기망행위자 모두 서로 어떠한 법률행위를 한다는 의사 자체가 전혀 없음에도, 여기에 의사표시 착오에 관한 논의를 끌어들여, 피기망자의 관점에서 내심의 의사와 작성된 문서 내용이 불일치한다는 사정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피기망자와 기망행위자 사이에 문서 내용에 따른 피기망자의 처분행위가 이루어졌고, 나아가 그에 관하여 피기망자의 처분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더욱이 민법에 의하면, 의사표시의 상대방이 표의자가 진의 아님을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그 의사표시는 무효이고(민법 제107조 제1항), 상대방과 통정한 허위의 의사표시 역시 무효이다(민법 제108호 제1항). 그런데 오히려 이 사건에서와 같이 문서의 작성과정에서 피기망자와 기망행위자 모두에게 근저당권 설정이라는 법률행위를 한다는 인식이나 의사조차도 없어 불일치가 더 심한 경우임에도 이를 단순한 착오나 기망에 의한 의사표시로만 취급하여 취소사유(민법 제109조 제1항, 제110조 제1항)만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은, 민법상 의사표시에 관한 규정체계에 어긋나고 형평에도 반한다. 그리고 그동안 대법원은 물건을 구입할 것처럼 넘겨받은 후 다른 핑계를 대고 그 물건을 소지한 채 도주한 경우에 절도죄에 해당한다고 보아 왔고, 예를 들어 오토바이 시운전을 명목으로 점포 밖으로 운전하여 도주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다루었다(대법원 1994. 8. 12. 선고 94도1487 판결, 대법원 2009. 6. 11. 선고 2009도3139 판결 등 참조). 이는 해당 물건의 교부·사용이라는 외형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점유지배를 이전하는 처분행위의 실질이 없고, 그러한 법률효과를 의도한 행위가 아니라는 취지로 보이는데, 기망행위자와 피해자 사이에 법률행위를 한다는 실질 없이 법률효과를 의도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단순히 문서를 작성한 위 경우와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 만약 서명·날인에 의한 문서 작성의 외형 내지 그 문서를 이용한 결과를 가지고 처분행위 및 처분의사를 인정한다면, 오토바이 시운전의 경우에도 역시 그에 상응한 처분행위 및 처분의사를 인정하게 되고 사기죄가 성립하는 결과로 되어 종래의 확립된 판례에 배치되게 된다. 결국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처분에 관한 인식이나 의사가 전혀 없음에도, 문서 서명이라는 결과만을 가지고 의사표시로서 처분행위 및 그에 수반되는 처분의사가 있다고 보는 것은 부존재하는 인식이나 의사 및 처분행위를 존재한다고 의제하는 것이어서, 처분행위에 관한 해석의 한계를 벗어난다. (3) 그리고 다수의견은 서명사취 사안에서 서명행위가 처분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내심의 의사와 다른 효과를 발생시키는 내용의 의사표시가 처분문서에 표시되어 있다고 보아, 문서에 의한 외부적 의사표시라는 민사상의 의사표시 해석론에 기초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사기죄의 성립 여부를 가리는 기준이 되는 형사상의 처분행위를 민사상의 의사표시 내지 법률행위 해석론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문서에 서명·날인하는 행위 그 자체를 문서 내용에 따른 의사표시로서의 재산적 처분행위로 평가하고, 그에 대한 처분의사가 존재한다고 보는 다수의견의 논리는 문서의 작성행위와 의사표시를 혼동한 것으로서 합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가) 민사상 의사표시는 표의자가 효과의사를 외부적으로 표시하는 것으로서, 그 방법에 제한이 없다. 계약서 등 문서는 이러한 의사표시 내지 법률행위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작성되는 수단이고, 그 작성 자체는 사실행위이며, 그 문서 작성을 통하여 당사자 사이에 형성되는 의사표시의 내용이 법률행위를 이룬다. 당사자 사이에 계약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어 처분문서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해석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그와 같은 약정이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약정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설명하는 것도 이와 같은 취지이다. 어떤 내용이 문서에 기재되어 있다는 사정만으로 그것이 곧바로 외부적으로 표시된 의사표시라 단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문서의 작성은 의사표시 내지는 법률행위가 이루어졌음에 관한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지만, 그에 상응한 의사표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문서의 작성만으로 의사표시가 의제된다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문서 작성자인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증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단순히 증여계약서만 작성한 경우에 이를 법률행위라 할 수 없고, 또한 이사하는 과정에서 아들에게 그 문서의 점유가 이전되었다 하더라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증여라는 법률행위가 있었다고 할 수 없으며, 설령 그 문서의 점유 이전 과정에 아들의 기망적인 방법이 동원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법률행위 부존재에는 변함이 없다. 즉, 문서의 작성사실 자체가 아니라 작성된 문서 내용과 같은 법률효과를 발생시킨다는 문서 작성자의 실질적인 의사가 의사표시를 이루는 것이고, 이러한 의사가 담겨져 있지 아니한 상태에서의 문서 작성은 단순한 서류 작성이라는 사실행위에 불과하다. 대법원은 문서에 관하여 서명을 편취한 경우에 이를 위조라고 보고 있다. 위조는 문서 작성명의자의 의사에 반하여 작성되는 것을 의미하므로, 서명을 편취하여 작성된 문서를 위조라고 보는 것은 비록 문서 명의자가 서명하였다 하더라도 그 문서 내지는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작성명의자의 의사에 반하여 작성되었음을 말한다. 결국 서명에도 불구하고 문서에 담긴 내용은 작성명의자의 의사가 아니고, 그 문서 내용에 따른 의사표시 내지 법률행위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며, 그 문서가 작성되었다는 사정만을 가지고 그 내용에 따른 의사표시 내지 처분행위를 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 (나) 의사표시의 성립을 위한 표시행위는 표의자의 효과의사가 추단될 수 있는 외부적인 행위가 있는 경우에 그 존재가 인정된다. 이 사건과 같이 피기망자의 서명을 사취한 다음, 피기망자 명의의 근저당권설정계약서를 이용하여 제3자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주고 금전을 차용한 피고인의 행위가 피기망자를 피해자로 하여 근저당권 또는 그에 해당하는 재산상 이익을 편취한 사기죄를 구성하려면, 제3자인 근저당권자에 대한 근저당권의 설정이라는 피기망자의 재산적 처분행위 내지 의사표시가 필요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처럼 의사표시 또는 재산적 처분행위의 상대방이 기망행위자가 아닌 제3자인 경우에, 기망행위자와 피기망자 사이의 문서 작성행위만을 가지고는 제3자에 대하여 재산처분의 의사를 표시하였다거나 제3자에 대하여 처분행위를 하였다고 볼 수는 없고, 오히려 제3자에 대한 처분행위는 피기망자가 아니라 기망행위자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보인다. 나아가 기망행위자가 그 작성된 문서를 이용하여 제3자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한 행위를 가지고 피기망자에 의한 근저당권설정의 의사표시로 보려면, 기망행위자에 의한 피기망자의 근저당권설정 의사표시 내지 계약에 관하여 피기망자의 수권이 있어야 하고, 그 수권이 없다면, 이는 기망행위자의 무권대리행위 내지 무권대행행위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러한 수권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근저당권설정행위를 가지고 피기망자의 처분의사에 의하여 이루어진 피기망자의 처분행위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견은 위와 같은 경우에 근저당권의 편취에 의한 사기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여 수긍하기 어렵다. 그리고 다수의견에 의할 경우 피기망자의 처분행위를 인정한다면 처분행위는 피기망자의 문서 작성 자체가 될 수밖에 없는데, 과연 기망행위자가 서명을 사취한 후에 문서를 제3자에게 전달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피기망자의 처분행위를 인정하여 바로 사기죄가 성립된다는 것인지, 문서가 제3자에게 전달된 경우에 비로소 처분행위를 인정하여 사기죄가 성립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문서 작성 시에는 사기죄를 착수함에 그치고 제3자와 근저당권설정계약을 체결하고 금전을 차용하거나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마쳐야 사기죄가 기수에 이른다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아니하다. 이러한 문제는 문서 작성 외에 피기망자가 한 행위는 없기 때문이고, 문서 작성 후에 기망행위자가 임의로 한 행위를 피기망자의 행위라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다수의견이 문서의 작성만으로 그 문서 내용에 부합하는 의사표시가 외부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취지에서 이를 처분행위라고 인정하는 것은 서명사취 사안에 대한 처벌의 필요성을 중시한 나머지 의사표시의 성립 과정을 도외시하고 문서 작성 후의 행위를 제대로 살피지 아니함으로써 논증의 방향을 그르쳤다고 보인다. (다) 나아가 대법원은, 민사사건에서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란 타인의 기망행위로 말미암아 착오에 빠지게 된 결과 어떠한 의사표시를 하게 되는 경우이므로, 거기에는 의사와 표시의 불일치가 있을 수 없고, 단지 의사의 형성과정 즉, 의사표시의 동기에 착오가 있는 것에 불과하며, 이 점에서 고유한 의미의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와 구분된다고 보아, 이 사건과 같이 처분문서에 서명·날인할 의사는 있었으나 착오에 빠진 상태로 자신의 의사와는 다른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내용의 서면에 서명·날인함으로써 내심의 효과의사와 표시상의 효과의사가 부합하지 아니하게 된 경우는 그 착오가 제3자의 기망행위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라 하더라도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에 관한 법리를 적용할 것이 아니라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에 관한 법리를 적용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05. 5. 27. 선고 2004다43824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대법원판결은 기망에 의한 문서 작성과 기망에 의한 의사표시를 구분하여 문서 작성사실만을 가지고는 그 문서 내용에 상응하는 법률행위를 하려는 의사가 존재한다고 할 수 없음을 밝힌 것으로서, 서명의 편취에 관하여 처분의사를 부정하는 형사 판례와 서로 대응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위 대법원판결은 위와 같은 서명의 편취를 민사상 착오로 인정하였는데, 민사상 착오는 내심의 의사 내지 효과의사가 없어 표시행위와 불일치함을 말하므로, 민사상 착오가 인정되었다 하더라도 외부적으로 표시된 결과에 상응하는 처분의사가 없다는 전제는 변함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피기망자의 외부적 표시행위에 상응하는 내심적 의사가 없음에도 다수의견과 같이 외부적으로 표시된 내용이 피기망자의 의사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보아 사기죄의 성립을 인정하면, 민사적 법률관계에서는 착오에 불과할 뿐 사기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행위가 형사적으로는 사기로 평가되는 수긍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하고, 의사표시에 관한 대법원의 기존 해석과 모순되는 불합리한 결론에 이른다.

라. 한편 다수의견은 피해자의 처분의사는 행위자의 범의와 달리 책임주의 원칙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처분행위의 주관적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에, 행위자의 범의의 인식 대상은 사기죄의 성립요소 전부이지만 피해자의 처분의사의 인식 대상은 사기죄의 성립요소 중 처분행위 자체에 국한된다고 하므로, 과연 다수의견과 같이 행위자의 범의와 피해자의 처분행위가 서로 별개의 것인지 살펴본다. (1) 책임주의의 원칙에 따라 형법 제13조 본문은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책임주의에 의하면, 형법 제347조 제1항은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경우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사기죄의 행위자는 기망행위 외에 재물의 교부를 받는다는 인식 또는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 즉 재산을 얻는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2) 서명사취 사안에서, 행위자의 범의를 살펴본다. 피고인과 공소외 1 등은 토지거래허가 등에 필요한 서류라고 속여서 부동산 소유자로 하여금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등에 서명·날인하게 하고, 그 소유자의 인감증명서를 교부받은 다음, 이를 이용하여 각 토지에 관하여 피고인을 채무자로 하여 근저당권을 대여자 등에게 설정하여 주고, 금원을 차용하는 일련의 행위를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를 통해 피고인 등이 재산을 얻는다는 인식을 하는 시점은 차용금이라는 금전을 얻었을 때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 단계에서 부동산 소유자로부터 얻은 그의 서명·날인이 있는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등은 피고인 등에게 차용금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 그 자체가 재산은 아니다. 그렇다면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등에 서명·날인을 받은 행위와 관련해서는 피고인 등에게 죄의 성립요소인 재산을 얻는 것에 관한 인식이 없는 것이고, 뒤에서 살필 인장사취 사안에서처럼 이전등기 문서에 날인을 받는다는 인식이나 이전등기 문서의 작성을 위해 인장을 교부받는다는 인식과도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3) 그런데 피고인 등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하나의 기망행위가 아니라 두 개의 기망행위를 사용하였다. 첫 번째 기망행위는 근저당권설정계약서 서명·날인자에 대한 기망행위이고, 두 번째 기망행위는 차용금 교부자에 대한 기망행위이다. 후자의 기망에 의한 차용금 영득행위에 대해서는 다수의견 역시 증명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 사기로 인정하는 입장에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전자에 한정해서 논의를 전개하기로 한다. (가) 전자의 기망행위와 책략절도를 비교해 보자. 귀금속 가게에서 행위자가 진열대에 있던 금 목걸이를 바닥에 떨어뜨린 후 이를 주우면서 자신의 것이 떨어졌다고 하여 주인이 그런 것으로 알고 그냥 가져가도록 방치한 경우 이를 사기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피해자의 처분행위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지만, 행위자의 범의의 측면에서 바라보더라도 행위자에게는 절취의 범의가 있을 뿐 사기의 범의는 없기 때문이다. (나) 그러나 만약 귀금속 가게에서 행위자가 금 거래상인 것처럼 가장하고 주인에게 매매 대상 금의 순도가 30%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순도를 측정하는 기계를 조작하는 등으로 이를 믿게 한 후 시가의 30%의 금액만 지급하고 금을 매수하였다면 이는 사기라고 할 것이다. 역시 피해자의 처분행위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지만 행위자의 범의 측면에서도 사기의 범의가 있기 때문이다. (다) 전자의 기망행위는 반대의견이 누누이 논하여 온 것처럼 책략절도와 매우 유사하다. 인장사취 사안에서 대법원이 이를 사기라고 보지 않고 사취한 인장에 의해 문서를 완성한 경우 문서위조라고 하였던 것처럼, 근저당권설정계약서의 형식을 어느 범위까지 갖추고 있었는지 불명확한 문서에 대한 서명·날인을 사취하여 근저당권설정계약서를 완성하였다면 이는 문서위조에 불과하다. 행위자의 범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행위자는 재산을 얻은 것이라기보다는 명의자의 서명·날인을 명의자의 오신을 이용하여 얻어낸 것으로서 문서위조의 범의가 있을 뿐이고, 나아가 이를 후행 사기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범의가 있을 뿐이다. (라) 대법원은 과거 이러한 입장에서, 전체 토지 중 일부 면적만을 매수하였음에도 토지 전부에 대하여 이전등기를 받을 생각으로 등기부상 소유 명의자에게 일부 면적 부분의 이전등기에 필요하다고 말하여 위 토지 전부에 대한 이전등기 문서에 날인을 받았다면, 그 문서의 작성명의자인 위 소유 명의자가 그 내용을 오신하고 있는 것을 이용하여 그 날인을 받음으로써 작성명의자의 의사와 다른 내용의 문서를 작성한 것이 되므로 사문서위조죄에 해당한다고 한 바 있다(대법원 1970. 9. 29. 선고 70도1759 판결 참조). 같은 입장에서, 진실한 용도를 속이고 피해자로부터 그 인감도장을 교부받아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에 필요한 관계서류를 작성하여 그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하여도 피해자의 처분행위가 있었다고 할 수 없고, 또 인감도장이라는 재물을 영득할 의사가 없었던 것이라면 사기의 공소사실에 관하여 무죄를 선고한 것은 옳다고 한 바도 있다(대법원 1990. 2. 27. 선고 89도335 판결 참조). (4) 서명사취 사안에서 차용금의 취득에 이르지 못한 경우를 살펴본다. 기망을 해서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명의자의 서명·날인을 받으려 하였으나 명의자가 이를 눈치채고 서명을 하지 않은 경우, 다수설에 의하면 사기미수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앞서 본 것처럼 행위자가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명의자를 통해 얻으려 했던 것은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이 아니라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명의자의 서명·날인에 불과하고, 이를 얻으려다 실패한 것이다. 행위자는 이를 사기의 수단으로 이용해서 차용금 보유자로부터 돈을 받아내려 한 것이고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이 재산을 얻는다는 사기의 구성요소인 사실을 인식한 범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행위자는 문서위조의 실행에 착수하였다가 미수에 이른 것에 불과하고, 앞서 살핀 문서위조 관련 대법원의 태도에 부합하는 것이다. 만약 서명·날인 사취 후 근저당권설정등기를 경료했으나 대여자가 명의자에게 확인한 후 금전 대여를 중단하여 대여금의 교부가 없었다고 하는 경우, 다수의견에 의할 때, 담보 설정행위는 종료하여 재산상 이익은 취득하였으므로 사기의 기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반대의견에 의할 때에는 문서위조는 기수에, 사기는 미수에 그친 것으로 보면 되므로 별다른 의문이 없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만약, 행위자와 대여자가 공범관계이고, 서명·날인 사취 후 근저당권설정등기를 경료하고 금원을 차용한 것과 같은 외관만 만들었을 뿐 실제 금전 대여는 없었고, 근저당권을 빌미로 허위의 대여자가 서명자에게 근저당권설정등기 말소를 빙자하여 대여금 상환 명목의 금원을 받아낸 경우라면, 다수의견처럼 서명·날인행위를 처분행위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역시 반대의견에 의할 때에는 문서위조와 사기의 성립을 인정함에 별다른 의문이 없다. (5) 서명사취 사안에서 공범관계를 살펴본다. 서명·날인을 얻는 결과만을 인식하고 그 행위에만 관여하였을 뿐 차용금 취득이라는 결과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한 공범과 전체 범행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공범이 근저당권설정계약서에 서명·날인을 얻은 직후 체포 등으로 차용금 취득에까지 이르지 못한 경우를 상정해 본다. 반대의견에 따르면 문서위조의 공범이 성립한다고 할 수 있으나, 다수의견에 따르면 문서위조의 공범이 되는 것인지, 사기미수의 공범이 되는 것인지, 공범 중 한 명은 문서위조로, 다른 한 명은 사기미수로 달리 보아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게 된다. (6) 여러 가지 측면에서 행위자의 범의를 살펴보았는데, 다수의견이 말하는 행위자의 범의가 책임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책임주의 원칙에 따라 행위자의 범의를 살펴보면, 행위자의 범의는 서명·날인을 사취하고자 하는 범의와 차용금을 사취하고자 하는 범의로 나뉘게 되고, 전자는 문서위조의 범의로, 후자는 사기의 범의로 구별된다. 그럼에도 다수의견은 전자와 후자를 모두 사기의 범의로 인식하고 특히 전자에 있어서는 차용금이라는 금전 취득의 최종 결과에 이르는 행위자의 일련의 범행계획을 사기죄의 성립요소 전부인 행위자의 범의의 인식 대상으로 봄으로써 책임주의 원칙과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책임주의 원칙에 따라 행위자의 범의를 바라보는 이상 처분행위에서도 재산의 이전이라는 결과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게 되고, 행위자의 범의는 피기망자의 처분행위와 동전의 앞뒷면 관계에 있게 된다.

마. 결론적으로 의사를 떠난 행위가 무의미하듯이, 처분의사와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처분행위란 있을 수 없으며, 재산을 처분하였는지조차 모르는 피기망자에게 그 재산을 처분한다는 의사가 있다거나 처분행위를 하였다고 인정할 수 없다. 행위자와 처분행위자 사이에 재산을 넘겨주고 넘겨받는다는 인식이 없다면 행위자에게 사기의 성립요소인 재물의 교부 또는 재산상 이익의 취득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고, 처분행위자에게 처분행위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어서 사기로 될 수 없다. 그런데 다수의견이 문서에 대한 서명의 사취에 관하여 피기망자의 처분행위 및 처분의사가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구체적인 결과에 관한 피기망자의 내적 의식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이와 배치되는 문서 작성 결과를 가지고 피기망자 자신의 의사인 처분의사에 의한 것으로 보아 처분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그동안 대법원판결이 일관되게 밝혀 온 행위론에 기초한 법리 및 사기죄의 본질에 배치되는 것이어서 찬성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다수의견은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 즉 범의가 없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책임주의 원칙에 배치되는 것이어서 찬성할 수 없다. 이상과 같이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밝힌다.

9.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조희대의 보충의견은 다음과 같다. 가.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이른바 ‘서명사취’ 사기는 기망행위로 인하여 피기망자가 내심의 의사와 다른 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을 함으로써 행위자가 근저당권설정등기에 따른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경우이다.

나.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행위자의 기망행위, 피기망자의 착오와 그에 따른 처분행위, 그리고 행위자 등의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 있고, 그 사이에 순차적인 인과관계가 존재하여야 한다. 특히 사기죄에서 처분행위는 피기망자의 행위를 이용하여 재산을 취득하는 것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사기죄와 피해자의 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행위자가 탈취의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는 절도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처분행위에 관하여 종래 대법원은 주관적으로 피기망자에게 처분의사 즉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고, 객관적으로 이러한 의사에 지배된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판시하여 왔다.

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비록 피기망자가 처분행위의 의미나 내용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피기망자의 작위 또는 부작위가 직접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재산적 처분행위로 평가되고, 이러한 작위 또는 부작위를 피기망자가 인식하고 한 것이라면 처분행위에 상응하는 처분의사는 인정되며, 피기망자가 자신의 작위 또는 부작위에 따른 결과까지 인식하여야 처분의사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이 사건과 같은 서명사취 사안에서, ① 피기망자가 행위자의 기망행위로 인하여 착오에 빠진 결과 내심의 의사와 다른 효과를 발생시키는 내용의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처분문서의 내용에 따른 재산상 손해가 초래되었다면 그와 같은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을 한 피기망자의 행위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하고, ② 아울러 비록 피기망자가 처분결과, 즉 문서의 구체적 내용과 그 법적 효과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어떤 문서에 스스로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그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하는 행위에 관한 인식이 있었던 이상 피기망자의 처분의사 역시 인정된다고 한다. 이러한 다수의견에는 이미 반대의견에서 밝힌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으므로 아래에서 살펴본다. (1) 다수의견은 피기망자가 어떤 문서에 스스로 서명 또는 날인하는 인식을 가지고 서명 또는 날인하였는데, 그 문서에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처분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면, 비록 피기망자가 문서의 구체적 내용과 법적 효과를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피기망자의 처분행위와 처분의사는 인정된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형법상 행위와 의사를 그 인식의 내용을 전혀 도외시한 채 외부적인 결과만 가지고 파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어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2) 다수의견은 어떤 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하는 피기망자의 행위를 처분행위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기죄에서 처분행위는 행위자 등에게 재물이 교부되거나 직접 재산상 이익의 취득을 초래하는 행위를 말한다. 서명사취 사안에 관하여 예를 들면, 채무 면제의 의사표시가 기재된 처분문서에 대한 서명을 사취한 경우에는 처분문서를 통해 확인되는 의사표시만으로도 직접 재산상 이익이 취득될 수 있으므로 이를 다수의견이 말하는 처분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달리 근저당권설정계약서에 대한 서명을 사취한 경우에는, 민법이 부동산에 관한 법률행위로 인한 물권의 득실변경은 당사자의 의사표시만으로는 효력이 생기지 않고 등기를 갖추어야만 비로소 효력이 생기는 성립요건주의를 택하고 있으므로(민법 제186조), 채권행위와 물권적 의사표시가 함께 이루어진다는 견해를 취하더라도 근저당권설정계약서 작성만으로는 물권변동의 효력이 생기지 않고, 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갖추어 등기를 경료하여야만 재산상 이익이 취득될 수 있다. 따라서 피기망자가 어떤 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재산의 이전을 내용으로 하는 처분문서가 작성되었고, 그로 인해 외부적으로 인식되는 채권적 또는 물권적 의사표시가 인정된다는 사정 자체만으로는 행위자에게 사문서위조죄가 되거나 증서편취죄가 성립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직접 재산상 이익 취득의 결과를 초래하는 형사법적 처분행위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하면, 피기망자가 내용을 모르는 어떤 문서에 서명·날인한 행위 자체는, 비록 그 문서가 처분문서인 근저당권설정계약서라고 하여도 처분적 의사표시가 담긴 문서 작성행위로 볼 수 있을 뿐이지 행위자 등으로 하여금 직접 근저당권설정등기 완료에 따른 담보가치 상당액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형법상 처분행위로 볼 수는 없다. (3) 다수의견은 처분의사가 필요하다고 하고, 또 처분의사는 처분행위에 상응한 의사여야 함을 전제로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다수의견이 설시한 대로 근저당권설정이 아닌 처분문서 작성 행위를 처분행위로 본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처분문서의 내용에 상응하는 인식은 있어야 처분의사가 있다고 할 것인데, 다수의견은 처분문서의 내용에 상응하는 의사가 없고 단순히 어떤 문서에 서명·날인한다는 인식만 있으면 처분의사가 있다는 것이어서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반대의견에서 언급한 것처럼 재산의 처분에 대한 인식과 그에 기초한 의사결정만이 사기죄의 본질과 특성에 부합하는 처분의사일 수 있고, 이러한 의사에 의한 행위만이 처분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 그 결과 처분문서의 내용과 결과에 대한 아무런 인식이 없는 서명사취 사안에서는 피기망자의 처분의사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4) 우리 형법은 절도죄와 사기죄를 별도로 규정하면서, 사기죄에 관하여는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경우를 모두 처벌하고 있는 반면, 절도죄의 경우에는 그 객체를 재물로 한정하고 있으며, 또 사기죄의 법정형을 절도죄보다 훨씬 높게 정하고 있다. 한편 사기죄와는 별도로 미성년자의 지려천박 또는 사람의 심신장애를 이용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를 처벌하는 규정을 따로 두고 있다(형법 제348조). 따라서 사기죄를 특징짓고, 재산침해행위의 객체가 재물인 경우 사기죄와 절도죄를 구별하는 역할을 하며, 그 객체가 재산상 이익인 경우 가벌적인 사기죄와 불가벌적인 이익절도를 구별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사기죄의 구성요건으로서 처분행위와 처분의사는 형법 해석의 일반 원칙에 따라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이 사건 서명사취 사안의 경우에 사기죄 성립을 긍정하는 다수의견의 논리는, 사기죄의 구성요건인 처분행위와 그 요소인 처분의사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여 사기죄의 처벌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으로, 사기죄와 절도죄에 관한 우리 형법의 체계와 규율 내용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법치국가 원리의 근간을 이루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해석이다.

라. 다수의견은 재산죄 관련 형사법 규정을 엄격히 해석하고 있는 근래 대법원판결의 경향에도 맞지 않는다. 대법원은 배임죄와 관련하여, 채무자가 대물변제예약에 따라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는 차용금반환채무의 이행 확보를 위해 채무자에게 요구되는 부수적 내용이어서 이를 가지고 배임죄에서 말하는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여야 하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4. 8. 21. 선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또한 업무상배임죄에서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평가될 수 있는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은 구체적·현실적인 위험이 야기된 정도에 이르러야 하고 단지 막연한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15. 9. 10. 선고 2015도6745 판결 등 참조). 횡령죄와 관련하여서도, 횡령죄의 본질이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위탁된 타인의 물건을 위법하게 영득하는 데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위탁신임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으로 한정함이 타당하다고 보아,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에 위반하여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이 이루어진 사안에서 수탁자의 신탁부동산 임의 처분행위는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대법원은 근래 이러한 판결들을 통해 외견상 형사처벌의 필요성이 있어 보이고, 심지어 오랜 기간 형사처벌을 해 왔던 사안에서조차 형사법규 해석의 기본원칙에 충실하게 구성요건을 엄격히 해석함으로써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고, 이를 통해 재산죄에서 국가형벌권의 자의적인 행사를 경계하는 일련의 판례 흐름을 형성해 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다수의견이 개별 사안에서 구체적 처벌 필요성만을 내세워 오랜 기간 사기죄 해석과 관련하여 합리적 이유를 가지고 유지되어 온 다수의 판례들을 명쾌하고 분명한 이론 구성 없이 폐기하고 이를 새삼스럽게 처벌하려는 것은 대법원의 이러한 경향에 전혀 맞지 않고, 그 결과 사기죄는 물론이고 재산죄 해석론의 방향에 관해 다시 혼란을 야기하는 것으로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상과 같이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밝혀 둔다.


재판관 양승태(재판장) 이상훈 박병대 김용덕 박보영 김창석(주심) 김신 김소영 조희대 권순일 박상옥 이기택 김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