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전주대학교 교수 시국 선언

6·10항쟁 22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수많은 희생의 대가로 일궈낸 민주주의가 눈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다. 촛불로 드러난 민심을 외면한 채 국민의 눈과 귀를 틀어막는데 혈안이 되었던 정부는 급기야는 전직 대통령까지 죽음으로 내몰았다. 우리는 과연 정부가 멈출 줄 모르는 추모의 발길을 보기나 한 것인지, 수백만 조문객들의 분노의 목소리를 듣고나 있는지, 그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를 깨닫고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현 정부는 노 전(前) 대통령 주변 세력에 대해 대대적인 정치보복성 세무조사를 벌였고, 이를 지휘했던 국세청장은 현재 수사를 피해 미국에 도피 중이다. 사정정국을 10개월이나 지속하면서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하고 망신 주기에 혈안이 됐던 검찰이나, 온갖 악의적 왜곡보도로 노무현이라는 인간 자체를 말살시키려 했던 일부 보수언론 모두 현 사태에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고 있다. 경찰은 오히려 추모하는 시민이 잘못인양 분향소를 부수고 광장을 봉쇄하더니 추모문화제에 참가하는 시민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잡아들였다. 누구 하나 책임지거나 반성하지 않은 채 민심만 처참하게 짓밟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다.

해마다 5월과 6월이면 우리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간 수많은 열사들의 넋을 달래며 그러한 죽음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을 믿고 빌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시민들은 다시 거리로 나오고 있으며 촛불시민의 분신, 용산 철거민 살인 진압,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살, 전직 대통령 서거와 같은 불행한 사태들이 이어지고, 며칠 전에는 민주화운동에 평생을 바친 한 원로인사가 오랜 단식 끝에 목숨을 끊었다. 이렇게 이 땅엔 또다시 소중한 생명들이 역사 앞에 희생되는 비극이 되풀이 되고 있다.

현 정부는 국민의 정당한 의사표현을 선동으로 왜곡하면서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네티즌까지 구속해가며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그것도 부족해 언론사 장악과 미디어법 개정을 통해 언론마저 정권의 입맛에 맞게 통제하고 공명성이 생명인 언론을 재벌화, 상업화하려 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십 수 년 간 가까스로 물꼬가 트인 남북 간의 화해와 교류 또한 지금의 정부 하에선 돌이킬 수 없을 수준의 긴장과 갈등으로 위협받고 있다.

한국 사회는 지금 급변하는 국제 사회에 창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미래경쟁력 강화와 사회적 통합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에 놓여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가진 자만을 위한 정책으로 서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어, 사회적 양극화와 고용불안은 심화되고 사회적 약자의 안전망 또한 급속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또 포기하겠다고 약속한 대운하사업을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다시 밀어붙임으로써 토목건설 외에는 다른 정책적 대안이 없는 무능한 정부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평범한 시민과 청소년들이 촛불과 추모의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는 지식인의 양심과 책임을 저버릴 수 없어 오늘 이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부디 우리의 요구가 현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정부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1. 이명박 정부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성 수사를 진정성 있게 사과하고, 법무부장관을 포함한 관련자들을 즉각 해임해야 한다. 아울러 정치검찰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근본적인 제도개혁을 국민과 함께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1. 정부 실정에 대한 책임을 물어 내각은 총사퇴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통합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1. 기만적인 4대강 정비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구시대적인 토목성장 정책을 버려야 한다.

1. 미디어 악법의 제정을 즉각 포기하고,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

1. 소수의 가진 자만을 위한 시장만능주의 정책을 버리고, 사회적 양극화와 고용, 그리고 서민의 민생문제 해결에 힘을 기울여라.

1. 남북관계를 평화와 화해의 방향으로 전환하라.

우리는 정부가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국민과의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지 않을 경우 엄중한 역사적 심판이 뒤따를 것임을 경고한다.

2009년 6월 9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전주대 교수 일동

■ 명단

강성, 강흥구, 권수태, 권용석, 고준석, 고태욱, 김광혁, 김명식, 김미진, 김보경, 김성환, 김연형, 김용진, 김인규, 김정수, 김정호, 김종윤, 김종진, 김종훈, 김주란, 김진성(경영), 김창순, 김철수, 김현, 김호준, 김홍렬, 남상윤, 류두현, 류인평, 박광서, 박동규, 박병도, 박명선, 박상업, 박성희, 박소연, 박승환, 박완식, 박장경, 변주승, 서은혜, 소강춘, 소현성, 송광인, 송영숙, 송해안, 신명숙, 신용호, 심상욱(영문), 심영국, 안세길, 안정훈, 안종석, 엄수원, 은희천, 오영택, 오재록, 유수열, 유정숙, 윤인선, 윤찬영, 은종성 이기훈, 이병순, 이상곤, 이병훈, 이상우, 이용욱, 이영욱, 이인홍, 이재운, 이존걸, 이종우, 이호준, 이희중, 임성진, 임철호, 전기흥, 전준구, 전영상, 전용석, 전일환, 정명채, 정호연, 조정근, 조완구, 조윤숙, 조은영, 차진아, 최경호, 최동주, 최용욱, 최은복, 최종수, 최지은, 최진희, 최원철, 최흥식, 편영수, 한광현, 한동욱, 한동숭, 홍현미라, 황선문, 황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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