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연세대학교 교수 시국 선언

우리는 작년 이맘때 이명박 정부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촛불집회에서 표출된 국민들의 뜻을 국정운영 전반에 걸쳐 반영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지난 1년여 동안 국민들의 정당한 의사표현을 더한층 억압하고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훼손함으로써 사회 갈등을 증폭시켜 왔다. 그리고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국민들의 순수한 애도와 추모에 대해서조차도 폭력시위를 미리 막는다는 미명 하에 봉쇄와 통제로 대응하였다. 우리는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성취인 민주주의가 최근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는 현실에 심각한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민주주의가 심대한 위기에 처해 있음은 사회 여러 영역에서 관찰할 수 있다. 국정운영의 기초인 인사는 법이 정한 임기와 절차를 무시함으로써 권력을 남용한 독재체제의 망령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국민의 반대에 아랑곳없이 권력통제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의 무력화를 시도함으로써 인권보장을 강화하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 그리고 국민의 언로를 틀어막는 사이버악법이나 언론독점의 우려 때문에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미디어관련법을 통과시키려고 입법전쟁을 불사해 왔다. 일부 소수의 폭력을 빌미로 다수 국민의 평화집회를 위한 광장을 원천봉쇄하고 마구잡이식 집회탄압을 노골화하여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라는 헌법적 명령을 훼손하고 있다. 또한 사회안전망의 구축에는 인색한 대신 소수의 부유층을 우선하는 조세 및 사회정책을 통해 다수의 국민을 경제위기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도 대안부재의 강경한 대북정책을 지속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조정자 역할을 포기하고, 지난 10년 간 이루어 놓은 개성공단 등의 경제협력과 한반도 평화공존 노력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검찰, 경찰, 국세청, 국정원을 통한 공안통치가 강화되면서 자유민주주의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화의 성취 속에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던 과거의 권력기관들이 본연의 기능에서 벗어나 정권유지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 국민의 일상적 인권을 유린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 민주주의가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여실한 증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자기들의 잘못된 정책을 지적하는 많은 국민들과 언론인들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 집행을 내세우면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국세청 조사와 검찰 수사 과정에 있어서는 자의적인 법 집행으로 일관하여 많은 국민들이 의문을 갖도록 만들었다. 또한 검찰은 인명살상의 결과를 낳은 용산참사와 관련한 수사기록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명령마저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초법적 권력으로서의 오만을 드러내었고, 심지어는 공정성과 독립성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사법부마저 부당한 재판 개입을 통해 공작정치의 악습을 되살리고 있다.

우리는 과거 군사독재정권과의 오랜 싸움을 통해 이룩해온 민주화의 성취물들이 이처럼 일순간에 거품처럼 소멸되는 것을 결코 좌시할 수 없다. 이에 우리는 국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룩해 온 우리 사회의 기본가치인 자유와 민주의 이름으로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쇄신을 아래와 같이 촉구한다.

1.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의 위기를 초래한 현 시국에 대해 국민 앞에 진솔히 사과하고, 현 위기를 초래한 법무부장관을 포함한 내각의 전면적인 쇄신을 단행하라.

1. 정부와 국회는 검찰, 경찰, 국세청, 국정원 등 법집행기관의 권한남용을 척결하기 위하여 이들 기관의 제도개혁을 추진하라.

1. 정부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가 자유로이 소통될 수 있도록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언론 악법을 당장 철회하라.

1. 정부는 부유층 중심의 경제정책과 무분별한 국토개발정책을 포기하고 국민 다수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지속가능한 경제 사회정책을 수립하라.

2009년 6월 10일 민주주의의 회복을 열망하는 연세대학교 교수 일동

■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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