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경희대학교 교수 시국 선언

민주주의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노무현 전(前)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에 대해 우리 국민이 깊은 애도와 슬픔을 보인 것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 그의 죽음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가 피땀 흘려 이룩한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문과 양심의 전당인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상황에 이르는 동안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성하면서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밝히는 바이다.

공직자 비리 수사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검찰 조사는 다수 국민에게 정당한 절차와 과정을 따른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정치적 동기를 의심하게 하는 표적 수사,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언론에 유포함으로써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인격 모독적 수사로 비쳐졌다. 이는 검찰 스스로 밝힌 “절제와 품격 있는 수사”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언론 역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여과 없이 무책임하게 보도했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현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행태와 권력 남용이 민주주의의 시계를 되돌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 ‘촛불집회’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헌법에 보장된 시민 기본권인 언론, 집회, 표현, 결사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경찰에 구금되고,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위한 시민들의 집회가 불법으로 규정되며, 정부 입장과 다른 의견을 인터넷에 올린 사람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되는 등의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집회를 열 수 있는 국민의 자유는 철저히 봉쇄되고, 공익에 봉사해온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불법시위단체로 분류되어 배척당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국민 여론의 충분한 수렴이나 여야 합의 없이 6월 국회에서 미디어 관련 법안을 강행처리하려 함으로써 언론 자유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현직 대법관의 촛불 집회 재판 개입사건에서 보듯이 재판의 독립은 무너지고 있으며, 국세청, 경찰, 검찰 등의 공안권력을 정권 유지 목적에 동원하는 구시대적 행태가 부활하고 있다. 낡은 냉전적 인식에 기초한 대북정책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 민족화해와 평화공영의 기조를 무너뜨리고 있다. 용산 철거민 농성에 대한 과격 진압이 초래한 참사는 정부의 정국 운영이 사회적 약자를 고려하는 포용과 화해의 방식이 아니라 일부 집단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편향적 방식으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쟁력 제일주의의 정책기조는 살벌한 사회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들은 최소한의 생존권조차 위협 당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수월성 위주의 교육을 지향하는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은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민주사회의 시민이 지녀야 할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데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헌법을 수호하며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일은 정부의 위중한 책임이자 의무이다. 우리는 현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방식과 위헌적 권력남용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인권과 시민 기본권을 존중하고 사회의 다양한 집단들과 소통하는 열린 정치, 관용과 포용의 정치,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나아가기를 희망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공식 사과해야 하며,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는 전면적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1. 현 정부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 집회, 출판, 결사,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협하는 일체의 권력남용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1.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강압과 배척의 정치를 지양하고, 권위주의적 국정운영기조를 쇄신하여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진정한 소통과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2009년 6월 9일

민주주의의 회복을 염원하는 경희대학교 교수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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