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신년연설문

2006년 신년연설문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2006년 1월 18일 수요일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지난해에도 어려움이 많으셨지요? 지난 3년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 기간 전체가 제 임기 중이라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반가운 경제회복의 신호들

그러나 국민 여러분, 반가운 소식도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수출이 3년 연속 두 자리 수로 늘어나고, 지난해에도 235억 달러 흑자를 냈습니다. 3년간 합치면 679억 달러 흑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입니다.

더 반가운 것은 내수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1/4분기 1.4%로 출발해서 2/4분기 2.8%, 3/4분기 4.0%, 그리고 4/4분기에 그 이상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수가 살아나면 서민 여러분의 체감경기도 좀 좋아질 것입니다.

소비의 발목을 잡고 있던 신용불량자 문제도 이제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2003년 3월, 295만 명에서 2004년 4월, 382만 명까지 늘어났다가 지금은 297만 명 수준으로 다시 줄어들었습니다. 이 모두가 국민 여러분이 어려움을 참고 열심히 노력해주신 덕분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경쟁력 강화 핵심전략은 연구개발, 기술혁신, 인재양성

국민 여러분, 그런데 앞으로 5년 후는 그리고 10년 후는 어떻게 될까, 혹시 중국에게 밀리는 것은 아닐까 이런 걱정을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그냥 손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정부도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미 2003년 8월에 차세대 10대 성장동력을 선정해서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부품소재산업, 그리고 전통산업의 IT화, 그리고 금융과 물류, 서비스산업도 착실하게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경쟁력입니다. 핵심전략은 연구개발, 그리고 기술혁신, 인재양성입니다. 정부는 혁신주도형 경제로 확고하게 방향을 잡고 과학기술 혁신정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연 구개발 예산을 전체 예산 증가율의 두 배로 계속 늘려가고 있습니다. 연구개발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과학기술혁신체계도 완전히 새롭게 정비했습니다. 연구 인력의 처우개선, 연구 성과에 대한 평가체계 등은 지금 계속 보완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속도로 가면 머지않아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잘하면 앞지를 수도 있습니다. 국제평가기관인 IMD 평가에서 이미 과학경쟁력은 세계 15위, 기술경쟁력은 세계 2위까지 올라왔습니다.

대학교육이 기업의 수요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불만도 있고, 아직도 노사관계가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우려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학도 달라지고 있고, 노사문제도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양극화 해소의 핵심은 일자리 문제

그러나 국민 여러분,

걱정도 있습니다. 경제 전체를 보면 잘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양극화의 문제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소득계층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습니다. 표에서 보시듯이, 중소기업의 이익률은 표를 좀 보시죠. 중소기업의 이익률은 대기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란선이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이고 노란선이 중소기업의 이익률을 표시한 것입니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급은 대기업 근로자의 60%정도에 머물러 있고,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60%수준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더구나 이 격차는 90년대부터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비정규직 비율이 급속하게 증가했고, 영세자영업자의 형편도 그 동안 많이 나빠졌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서, 일자리부터 얻는 우리 국민들의 소득도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그림을 한 번 더 보시지요. 지난 10년 간 고소득자의 일자리와 저소득자는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중간소득 계층은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결국 소비가 위축되고 그에 따라서 내수시장이 줄어들어 우리 경제가 장기적으로 저성장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습니다.

양극화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양극화는 세계화, 정보화 시대의 일반적 현상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가 지금 다 그 현상 때문에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양극화가 가장 결정적으로 악화된 원인은 경제위기입니다. 다시 그림을 한번 보시지요.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와 소득 5분위배율을 나타내는 표입니다. 그래프가 높을수록 불평등이 심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IMF 위기 때 결정적으로 악화되고 2003년 불황 때 다시 나빠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IMF경제위기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그리고 자영업으로 밀려났습니다. 지난 3년 간 국민 여러분이 겪었던 불황의 고통도 IMF위기의 후유증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후유증까지도 거의 극복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위기는 다시 재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동안 정부는 우리 경제를 원칙에 따라서 안정적으로 운영해왔고, 위기의 징후를 사전에 발견해서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운용하고 있습니다.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일자리입니다.

중소기업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수출의 효과가 내수로 확산되고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정부는 2004년 7월부터 중소기업 정책을 근본적으로 혁신해가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실태를 철저히 조사·분석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해서, 구태의연한 지원방식을 과감하게 털어버리고 벤처생태계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시장친화적인 방식으로 정책의 내용을 완전히 바꿔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해가면 이번에는 반드시 달라질 것입니다.

대기업들도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에 나서고 있습니다. 기술지원, 인력지원, 자금지원에 모범적인 협력사례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스스로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혁신형 중소기업이 늘어나고 있고 벤처기업도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과감하게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는 중소기업도 많이 있습니다.

서비스산업도 매우 중요합니다. 서비스산업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고학력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비스산업 중에서도 고급 서비스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학진학률이 80%를 넘어섰습니다. 고급인력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금융, 물류, 법률, 회계, R&D, 컨설팅과 같은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야 합니다. 일부 회의적인 시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금융중심, 물류중심, 전문대학원 정책을 이런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교육과 의료서비스는 국민을 위한 보편적 서비스는 또한 그 정책의 중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학교육과 의료서비스는 고급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산업적 측면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일자리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개방하고 서로 경쟁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질 높은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전략적 산업으로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대학교육과 의료서비스를 산업으로 발전시켜서 국민들이 해외에 나가서 돈을 쓰게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돈을 쓰게 만들어야 합니다. 다만 그렇게 하더라도 정부는 국민에 대한 보편적인 서비스, 공공서비tm는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확실하게 할 것입니다.

문화·관광·레저와 같은 서비스산업도 다양하게 육성하고 고급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관광레저형 기업도시, 서남해안 개발사업, 부산영상도시, 광주문화중심도시, 농촌관광의 활성화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골프와 같은 고급서비스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도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합니다. 사치와 소비라고 비난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소비무대가 세계화됐습니다.

지난 해 우리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해외를 다녀왔습니다. 우리나라 가계 소비 100만원 중에서 4만 5천원을 해외에서 쓰고 있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그 중 일부라도 국내에서 쓰게 하고, 또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돈을 쓰게 그렇게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분야는 또 있습니다. 보육, 간병, 교통, 치안, 식품안전, 재해예방, 환경관리와 같은 말하자면 정부가 하는 일 들입니다. 이와 같은 전통적으로 정부가 해왔던 사회적 서비스 일자리입니다.

정부는 그 동안 사회적 일자리를 통해 이 분야 일자리를 많이 늘려왔습니다. 올해는 지난해의 두 배 가까운 13만개의 일자리를 공급할 예정입니다만. 그러나 그 동안에는 이 분야를 사회적 일자리를 일시적인 실업대책 수준에서 공공근로 형태로 운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 정책으로 이 사회적 서비스 정책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공공서비스 분야 종사자는 선진국의 6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작은 정부’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이 분야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대국민 서비스의 품질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나가야 합니다.

비정규직 문제, 정부정책만이 아니라 노사 간 대타협 이끌어내야

국민 여러분, 그 동안 정부는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를 좁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비정규직 보호 법안을 지금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고, 임금체불, 불법파견에 대한 근로감독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특수직 근로종사자를 위한 종합적인 보호대책도 함께 세우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자금과 경영기술의 지원 등 영세자영업자에 대한 대책도 이미 마련해서 착실하게 추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고용지원서비스는 일자리 대책의 핵심 인프라입니다. 정부는 고용지원서비스제도를 일자리 불안을 해소해가는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3년간 6조원을 투입해서 직업능력개발과 직업알선이 결합된 튼튼한 고용안정망을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올해 그 확실한 토대를 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과 제도만으로는 임금격차,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이 달라져야 합니다.

기업이 정규직 고용을 기피하고 비정규직 고용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장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기업의 계산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경영여건이 나빠졌을 때 해고가 어렵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법과 제도로만 보면 우리나라 노동의 유연성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대기업 노조는 단체협약 상 높은 고용보장을 받고 있어서 일단 고용하면 실제로는 해고가 매우 어렵고, 이것이 시장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의 유연성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불만이 높은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교섭력이 강한 소수의 노동자들은 두터운 고용보호를 받고 있는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점차는 늘어나는 상황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기업 노동조합의 양보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경제계도 때로는 과감하게 양보해서 노사 간 대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기업들도 노사관계에 대한 태도와 경영전략을 바꾸어야 합니다. 잘 훈련되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인적자원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인식을 갖고, 정규직을 늘리고 교육훈련을 강화해 서 장기적인 대비를 해 나가야 합니다.

책임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

그러나 국민 여러분, 일자리만으로 양극화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또 아닙니다. 일할 능력이 없거나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분들은 사회안전망으로 국가가 보호를 해줘야 합니다.

그 동안 재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사회안전망을 최대한 확충해 왔습니다. 97년에 비해 사회보장예산은 세 배 이상 늘었습니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도 40% 이상 확대했습니다.

올해에도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를 12만 명 정도 더 늘리고, 갑자기 위기에 몰린 분들을 대상으로 긴급복지지원제도도 시행할 예정입니다. 특 히 가족들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치매·중풍노인과 중증장애인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돌봐 드리도록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요양시설 확충과 노인수발보험제도, 그리고 장애수당 확대 등을 통해 2009년까지는 이분들에 대한 문제는 확실하게 해결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서민생활의 핵심은 역시 부동산과 사교육비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8.31 대책의 후속 입법이 다행히 완료되었습니다. 앞으로 투기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집값을 안정시키고,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주택의 공급도 확실하게 늘려나가겠습니다.

학생들은 아직도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있고, 서민들은 과중한 사교육비로 허리를 펴기 어렵습니다. 2004년만 해도 사교육비가 약 8조원 가량 들었다고 합니다.

이 교육문제는 우리 사회의 과열경쟁과 왜곡된 경쟁구조 때문입니다. 대학입시 하나로 인생의 성패가 결정되는 이런 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대학입시에 집중해 놓고 모든 것을 걸고 경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도 점차 해결돼 갈 것입니다. 대학교육이 특성화 돼 가고 있습니다. 입시방법도 다양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공교육은 점차 정상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중등교육 현장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있고, 정부도 ‘방과후학교’ 등을 통해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갈 것입니다.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비 지원도 강화해서 가정형편 때문에 교육기회를 잃고 빈곤이 대물림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나가면 적어도 지금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입시지옥에서 해방되고, 우리 부모님들도 10년 내에 사교육비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우리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새로운 도전입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오늘의 과제입니다.

정부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대책에 착수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5년간 총 19조원을 투자하는 저출산 종합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고령화문제는 국가가 최소한의 효도를 책임져야 한다는 자세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노인들이 건강하고 품위 있게 살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노인 일자리 창출과 고령친화산업의 발전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입니다.

나아가 2030년을 내다보는 종합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아이 키울 걱정이 없고, 평생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고, 건강과 노후가 보장되는 사회로 가기 위한 새로운 전략과, 이를 뒷받침하는 재정계획을 마련해서 지금부터 준비해 나갈 것입니다.

책임있게 생각하고 책임있게 행동하는 사회로

국민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 문제들에 대해 나름대로 정부정책과 대안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양극화를 비롯해서 우리가 부닥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미래의 도전에 대비해 나기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져야 합니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가 보다 책임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임 있게 생각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는 그와 같은 사회가 될 때 우리 사회가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책임 있게 생각하고 책임 있게 행동한다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비판과 문제 제기도 사리에 맞는 ‘대안 있는 비판’이 되어야 하고, 이를 책임 있게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의 주장과 이익만을 관철하려 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를 이루어 낼 줄 아는 상생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장과 비판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참여정부에서도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의 정치적 자유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했습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아시아 국가들의 언론자유에 대한 평가에서 우리나라를 첫 번째 언론 자유국가로 꼽았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대안 없는 주장과 비판 때문에 반드시 해결되어야 될 문제를 그르칠 뻔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아직 해결이 지체되고 있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이미 해결되었다고 하는 문제들도 엄청난 시간과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참여정부 초기에, 카드사태로 금융시스템이 붕괴될 상황에 처했을 때 이 사태에 대해서는, 금융기관들의 책임이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금융기관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뜻 나서지 않았습니다. 언론과 전문가들도 시장에 맡길 일이지,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원론적 주장만 펼쳤을 뿐,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일 정부가 나서지 않고 90조원에 이르는 카드채가 지급불능의 사태에 빠졌다면 지금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찔한 일입니다. 그러나 더 힘들었던 것은 끊임없는 위기설과 파탄론이었습니다. 경제는 심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함께 대안을 제시하고 힘을 모아야 할 우리 사회의 지도층까지 우리 경제에 대해서는 지난 3년간 끊임없이 비관적 전망을 쏟아냈습니다. 2004년 경제가 한 고비를 넘긴 다음에도 뜬금없이 위기론을 들고 나와서 우리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그때 우리 경제 위기가 아니라고 했다가 얼마나 혼쭐이 났는지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부동산 문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해 8.31 대책을 내놓았을 때, 일부 정치권이나 일부 언론의 태도를 보면 입으로는 부동산 정책에 찬성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마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쌀시장 개방문제를 한번 돌이켜 봅시다. 94년 당시 개방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지만, 우리 정치권은 아무런 준비 없이 개방 반대만 외치다가 결국은 문을 열고 말았습니다. 변화하는 현실을 외면했던 것입니다. 농민들은 스스로 벼랑 끝에 선 처지라서 다른 어떤 선택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하여 우리 정치권이 보여준 태도는 참으로 무책임한 것이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이후의 10년입니다. 10년의 유예를 받았으면 철저히 대비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10년 후에 다가올 제2차 개방에 대해서 역시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번에 또 다시 엄청난 홍역을 치렀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어렵게 협상해서 다시 유예기간을 연장했지만, 정치권은 본질이 아닌 문제를 가지고 국정조사로 비준의 분위기를 흐트러 놓았습니다. 그리고 대문을 막고 쪽문을 하나 열어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마치 이번 협상과 비준으로 쌀 시장이 새롭게 개방되는 것처럼 그렇게 왜곡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몇 가지 사례들을 말씀드렸습니다만, 결코 저는 아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이런 일들이 지난 일들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문제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연금법 개정안이 국회에 간 지 2년이 되었지만 아직 해결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한 데도 모두가 남의 일처럼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또 앞에서 말씀드린 일자리 대책, 사회안전망 구축, 그리고 미래 대책을 제대로 해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재원이 필요합니다. 2030년까지 장기재정계획을 세워보면 아무리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출구조를 효율적으로 바꾸더라도 재정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미래를 위해서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면, 어디선가 이 재원을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감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론조사를 해보아도 세금을 올리자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껴 쓰고, 다른 예산을 깎아서 쓰라고 합니다. 이미 톱다운 예산을 도입해서 예산절약과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탈세를 막기 위해 거래의 투명성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동안 참여정부의 정책이 분배위주라는 여러 가지 주장들도 있었고, 심지어 ‘좌파정부’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정말 그런지, 우리의 재정규모를 그림으로 한번 봐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재정규모는 GDP 대비 27.3%입니다. 미국 36%, 일본 37%, 영국 44%, 스웨덴 57% 여기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라고 할 것입니다. 복지예산의 비율은 더 적습니다. 앞의 나라들이 중앙정부 재정의 절반이상을 복지에 쓰고 있는데 반해서 우리는 1/4밖에 되지 않습니다. 정부정책에 의한 소득격차 개선효과도 아주 낮습니다. 아니 거의 없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좌파정부 논란은 결코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마치 복지 과잉으로 경제 성장에 무슨 큰 지장이나 생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이해관계에 따라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그리고 정책이 다르더라도 사실을 왜곡할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정치권과 경제계, 언론과 학계도 책임 있는 자세로 대안을 마련하는 데 지혜를 모아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대화와 타협, 상생의 민주주의 실현할 때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결국 상생협력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과거 70~80년대에는 부당한 독재와 맞서 싸우는 것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과제였습니다. 87년 이후에는 권력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높이는 것이 우리 민주주의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문제들은 대부분 해결되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것은 대화와 타협, 그리고 상생의 민주주의로 우리 민주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일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수준은 이미 앞서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자원봉사자 수가 8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기부문화도 대단히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공동모금회의 모금실적이 목표를 이미 초과하고 있습니다. 노사 합의로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정년을 연장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각계와 지도층들이 결단을 해야 할 때입니다. 각자의 목소리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대화하고 타협하고 서로 양보하는 새로운 사회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특히 교섭력이 취약한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우리 경제계가 먼저 한 발 양보해서 대화의 물꼬를 터줘야 합니다. 이러한 결단이 노·사·정 대화로, 그리고 사회적 대타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새롭게 사고해야 합니다.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대화와 타협으로 상생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국민 여러분, 우리 정부도 더욱 책임 있게 해나가겠습니다. 바로 책임 있는 정부가 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겠습니다.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일관성 있게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정경유착의 고리가 끊어지고 선거문화도 깨끗해졌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올해 지방선거만 잘 치르고 나면 깨끗한 선거문화는 이제 확고하게 뿌리를 내릴 것입니다. 당내 선거는 민주주의의 기초입니다. 어떤 선거보다 투명하고 공정해야 합니다.

권력기관도 더 이상 정권을 위한 기관이 아닙니다. 이제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떤 기관도 과거처럼 특별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경제에 있어서도 원칙을 지켜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무리한 경기부양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힘겹게 버티면서 원칙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국민여러분들이 오래 좀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상승기간은 더 오래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개혁도 이제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학법 개정’도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여가기 위한 것입니다. 재산권을 박탈하거나 교육을 간섭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론과의 관계도 저는 원칙대로 해왔습니다. 그 동안 언론과의 갈등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많은 사람들이 적당하게 타협하라고 제게 권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서 저는 우리 언론문화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정권과 언론과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유착관계는 없습니다. 이제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각자 자기의 책임을 다하면서 국가를 위해서, 그리고 역사를 위해서 함께 협력하는 창조적 협력관계를 만들어 갈 것을 제안합니다.

마치 대청소를 할 때처럼 나라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좀 혼란스럽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만 잘 넘기면 우리 사회의 투명성이 아주 몰라보게 높아질 것입니다.

미래 위해 꼭 필요한 일 뒤로 미루지 않을 것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은 반드시 하겠습니다. 뒤로 미루지 않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책임 있게 해나가겠습니다.

19년을 미뤄왔던 방폐장 문제가 마침내 해결됐습니다. 개방문제도 거역할 수 없는 대세입니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서 우리 경제를 선진화하는 기회로 삼아나가겠습니다.

그 동안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해 왔습니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 앞으로 미국과도 자유무역협정을 맺어나가야 합니다. 지금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조율이 되는대로 협상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국가제도의 기반을 튼튼하게 정비하겠습니다. 통계, 기록관리와 같은 기본적인 행정인프라부터 새롭게 구축해 나가겠습니다. 부동산 보유와 거래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부동산 데이터베이스, 그리고 조세와 연금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부과하기 위한 소득 파악 시스템도 완비해 가고 있습니다. 당장 제품 한두 개보다 생산설비 자체를 정비한다는 자세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시스템을 선진국 수준으로 갖추어 나갈 것입니다.

행정의 과학화로 정책의 품질을 높여나가겠습니다. 작년 7월부터 정책품질관리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정책의 입안에서부터 평가까지 각 단계마다 점검할 사항들을 빠짐없이 챙겨 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전략적 감사를 통해 국책사업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점도 하나하나 고쳐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계속 강조해왔지만 아직 성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정책들도 더러 있습니다. 이제 이런 일도 없도록 하겠습니다. 국민과 약속한 정책은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겠습니다. 중소기업정책, 균형발전정책, 이런 정책을 이번에는 확실히 성과가 있도록 그렇게 해 나가겠습니다.

이렇게 일하도록 공직문화를 혁신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공무원들도 더 이상 ‘철밥통’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민간기업 수준으로 행정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올해는 신상필벌의 평가시스템과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도입해서 책임 있게 일하고 경쟁하는 공직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 공직사회 혁신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모범사례를 더 많이 만들어서 ‘혁신한국’을 세계 일류의 브랜드로 내놓도록 하겠습니다.

멀리 내다보고 가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자랑하는 CDMA기술도 십 수 년 전에 준비했던 것이고, 오늘 우리가 고생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도 따지고 보면 10년 전 IMF위기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듯이 제가 하고 있는 일도 성과가 나든 부작용이 생기든 그것은 대부분 다음 정부 이후에 나타날 것입니다. 임기 안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고 할 일은 뚜벅뚜벅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새해를 맞이해서, 국민 여러분께 ‘희망이 있다’, ‘잘 될 것이다’ 이런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다소 부담이 되는 말씀까지 드렸습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잘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에 불가능하다고 했던 많은 일들을 이루어 냈습니다. 마음먹으면 못 해낼 일이 없을 것입니다. 희망과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에 대비 해 나갑시다. 올해, 그리고 그 이후에도 대한민국 기적의 대행진을 계속 이어갑시다.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2006년 신년연설문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2006년 1월 18일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