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다46440
손해배상(기) [대법원 2002. 7. 12., 선고, 2001다46440, 판결] 【판시사항】 [1] 불법행위에 있어서 고의의 요건으로 위법성의 인식이 포함되는지 여부(소극) [2] 채무가 고의의 불법행위로 인한 것이라는 이유로 채무자의 상계가 불허된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불법행위에 있어서 고의는 일정한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알면서 감히 이를 행하는 심리상태로서, 객관적으로 위법이라고 평가되는 일정한 결과의 발생이라는 사실의 인식만 있으면 되고 그 외에 그것이 위법한 것으로 평가된다는 것까지 인식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2] 채무가 고의의 불법행위로 인한 것이라는 이유로 채무자의 상계가 불허된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민법 제750조
[2]
민법 제496조 ,
제750조
【전문】
【원고(탈퇴)】
김철수
【원고승계참가인,상고인】 이강재 외 8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안용득)
【피고,피상고인】 망 노창구의 소송수계인 강연란 외 1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신성 담당변호사 석용진)
【원심판결】 부산고법 200 1. 6. 15. 선고 99나4702 판결
【주문】 원심판결의 우럭 및 광어치어의 폐사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중 금 44,800,000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원고 승계참가인들의 나머지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이유】
1. 원심이 인정한 기초사실
가. 원고(탈퇴, 이하 '원고'라고 그대로 칭한다)는 황용재와 함께 1992. 6. 30.경 노창구로부터 부산 해운대구 송정동 711-5 전 2,257㎡를 임차한 후 그 지상에 어곡수산이라는 상호로 광어, 우럭 등 어류 양식장(이하 '이 사건 양식장'이라 한다)을 설치·경영하다가 1994. 4. 30.경 황용재의 지분을 모두 인수하여 단독으로 이를 경영하면서, 1994. 11. 5. 노창구와 사이에 위 부동산에 관하여 임차기간은 1995. 7. 1.부터 1996. 6. 30.까지로 하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다(당초의 임대차계약을 갱신한 것으로 보인다).
나. 노창구는 1995. 7.경 원고가 주식회사 부산은행으로부터 금 150,000,000원을 대출받음에 있어 원고를 위하여 연대보증을 하면서 자기 소유의 토지 4필지를 물상담보로 제공하여 위 은행 앞으로 근저당권을 설정하고, 다시 원고가 위 은행에 대하여 부담하고 있는 어음할인거래상의 채무 금 10,000,000원에 대하여 연대보증을 하였는데, 원고가 1995. 10. 28.경 부도를 내어 위 은행에 대한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게 되자, 위 은행은 1995. 11. 1. 담보부동산인 위 4필지를 포함하여 노창구 소유의 부동산 합계 11필지에 대하여 가압류를 하였다.
다. 노창구가 원고에게 위 은행에 대한 채무를 조속히 변제할 것을 촉구하였으나, 원고는 이를 계속 미루어 오다가 1996. 2. 28.경 노창구에게 1996. 5. 15.까지는 위 은행에 대한 모든 채무를 변제하여 노창구 소유의 토지에 대한 근저당권 및 가압류를 말소하되, 만일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이 사건 양식장 시설과 그 곳의 생물을 모두 철거하여도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하여 교부하였다.
라. 원고가 위 약정기한까지 위 은행에 대한 채무를 변제하지 아니하자, 노창구는 위 약정에 기하여 1996. 5. 20. 인부 3명을 동원하여 보일러실의 천장지붕 보온덮개를 낫으로 찢으면서 보일러실의 천장 보온덮개를 전부 걷어내게 하고, 다음날인 5. 21.과 5. 22.에도 인부 3∼5명을 동원하여 철골로 된 수조관의 보온덮개를 낫과 칼로써 전부 걷어내었으며, 같은 달 29.과 30. 포크레인 1대와 인부 2명을 동원하여 수조관 외벽 7∼10m를 부수고 포크레인을 진입시켜 수조관으로 들어가서 수조벽을 포크레인으로 부수었다.
마. 노창구가 위와 같이 이 사건 양식장 시설을 철거하기 시작할 당시 그 곳 수조관에는 우럭치어와 광어치어 등이 들어 있었는데 위 노창구가 수조관을 덮고 있던 지붕을 걷어내는 과정에서 수조관에 이물질이 들어가고 햇빛에 노출되어 수조관 내에 있는 우럭과 광어의 치어가 모두 폐사하였다.
바. 노창구는 1998. 2. 21. 사망하여 상속인으로는 처인 피고 강연란과 아들인 피고 노병희가 있다.
사. 원고 승계참가인(이하 '참가인'이라고 한다)들은 원고로부터 원심 판시 별지 2 기재와 같이 원고의 노창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하여 채권압류 및 전부 또는 추심명령, 채권양도를 각 받았다.
2. 참가인들 소송대리인 및 참가인 이강재의 각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원심은, 피고들은 노창구의 상속인으로서 원고에게 노창구가 이 사건 양식장을 파손하였음으로 인하여 손괴된 원심 판시 별지 1 기재 시설물 및 기계·기구의 가액 상당 손해와 폐사한 우럭과 광어치어의 각 거래가액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 ① 원고가 노창구에게 위와 같이 각서를 작성·교부함으로써 노창구의 자력구제에 의한 철거행위를 승낙하였으므로, 노창구가 이 사건 양식장을 철거한 행위 자체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인 별지 1 기재 순번 1 내지 5 기재 각 시설물의 손괴로 인한 손해는 피해자의 승낙에 따른 것으로서 위법성이 없어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별지 1 기재의 순번 6 내지 16 기재의 각 기계·기구를 노창구가 손괴하였거나 위 기계·기구들이 위 양식장 시설물 철거행위로 인하여 손상되었다는 점에 부합하는 증거들은 믿을 수 없고 그 이외의 증거들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이유로 별지 1 기재 각 시설물 및 기계·기구에 관한 참가인들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② 다만 노창구는 원고의 승낙에 따라 이 사건 양식장 시설물을 철거함에 있어서 원고에게 미리 양어장 시설 내에 있는 치어 등을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촉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더라도 다른 수조관으로 치어 등을 옮겨 보관하는 등 원고 소유의 물건에 대한 피해를 가능한 한 줄이는 조치를 취한 다음 철거에 착수하여야 할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가 있다고 할 것임에도 이를 게을리 한 채 약정기한이 지나자 5일만에 수조관 내 치어 등에 대한 아무런 보존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철거를 단행함으로써 치어 등을 폐사 또는 손상시켜 원고에게 손해를 입힌 것이라 할 것이므로, 피고들은 노창구의 위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관련 증거들을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고가 노창구의 이 사건 양식장 철거를 승낙하였다는 원심의 사실인정과 이 사건 양식장 시설물 중 위 별지 1의 순번 1 내지 5 기재 각 시설물의 철거행위는 원고의 승낙 범위 내에 포함되어 그 위법성이 없고, 위 별지 1의 순번 6 내지 16 기재 각 기계·기구의 손괴사실에 대하여는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한 원심의 판단은 모두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채증법칙 위배로 인한 사실오인 또는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원고가 원심 제1차 변론기일에 진술한 1999. 7. 2.자 항소장에 의하면(기록 1513쪽), 원고는, 원고가 위 망인으로부터 미리 작성해 온 각서에 서명날인할 것을 강요받고 전혀 글을 모르는 문맹자로서 그 내용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위 망인의 강요에 못이겨 하는 수 없이 위 각서에 날인하게 되었던바 이는 불공정 법률행위로써 무효이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바가 있으나, 원심은 이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았음은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다. 그러나 기록을 살펴 보아도, 원고의 위 각서 작성이 원고의 궁박·경솔·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히 공정을 잃은 것이라고 볼 만한 사정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어 이를 불공정 법률행위라고 볼 수 없으므로, 원심의 위와 같은 잘못은 판결 결과에 영향이 없다. 이 부분에 관한 참가인들의 상고이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 원심은 위에서 인정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하여 노창구의 이 사건 양식장 철거행위로 인하여 이 사건 양식장 내 수조관에 있던 우럭(조피볼락)과 광어(넙치) 중 자어(子魚) 단계를 지나 재산상 가치가 있는 치어(稚魚) 상태의 우럭 700만 마리와 광어 10만 마리가 폐사하였는데, 당시의 우럭치어 1마리당 거래가격은 금 500원, 광어치어 마리당 거래가격은 금 600원이 되므로, 피고들은 위 우럭과 광어치어의 숫자와 거래가격을 곱한 금액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참가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그 내세운 증거들을 종합하여, 이 사건 불법행위 당시 이 사건 양식장에는 크기 8∼12㎜ 정도의 우럭새끼 총 240만 마리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산되고, 위 크기 정도의 우럭새끼의 생산단가는 1마리 당 금 30원 정도(기록에 의하면, 우럭치어는 그 크기가 5㎝정도가 되어야 매매대상이 되므로, 원심은 이 사건 우럭새끼에 대하여 시중거래가격을 적용하지 아니하고 생산단가를 적용하여 그 손해액을 계산한 것으로 보임)인 사실, 한편 이 사건 양식장에는 광어새끼가 10만 마리 정도 양식되고 있었고, 그 크기 정도의 광어새끼의 1마리당 거래단가는 금 400원인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에 반하는 증거들은 믿기 어려우므로, 결국 우럭과 광어새끼의 폐사로 인한 원고의 손해액은 그 판시와 같이 금 112,000,000원이 된다는 이유로 그 인정금액을 초과하는 참가인들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원심이 내세운 증거들을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노창구가 이 사건 양식장을 철거함으로 인하여 폐사한 우럭과 광어새끼의 각 숫자 및 그 가격에 관한 원심의 사실인정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채증법칙 위배로 인한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상고이유는 원심의 전권에 속하는 사실인정 및 증거취사를 비난하는 것이거나 원심이 인정한 사실과 다른 사실을 전제로 원심판결을 탓하는 것에 지나지 아니하여 받아들일 수 없다.
다. 불법행위에 있어서 과실상계 사유에 관한 사실인정이나 그 비율을 정하는 것은 그것이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인정되지 않는 한 사실심의 전권사항에 속한다고 할 것인데, 기록에 의하여 원심판결을 살펴보면, 원심의 과실상계 사유에 관한 사실인정이나 그 비율 판단이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점에 관한 상고이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 원심은 내세운 증거를 종합하여, 피고들이 원고에 대하여 금 143,554,774원 상당의 구상금 내지 사전구상금 채권을 취득한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 이로써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과 대등액에서 상계하면 결국 원고의 손해배상채권(금 112,000,000원 × 40/100 = 금 44,800,000원)은 모두 소멸하였다고 판단한 다음, 노창구의 원고에 대한 이 사건 손해배상채무는 노창구의 고의의 불법행위로 인한 것이므로 그 채무를 상속한 피고들은 민법 제496조에 의하여 상계로 대항할 수 없다는 참가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노창구의 이 사건 불법행위는 과실에 의한 것이라는 이유로 참가인들의 위 주장을 배척하였다. 불법행위에 있어서 고의는 일정한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알면서 감히 이를 행하는 심리상태로서, 객관적으로 위법이라고 평가되는 일정한 결과의 발생이라는 사실의 인식만 있으면 되고 그 외에 그것이 위법한 것으로 평가된다는 것까지 인식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원심이 채택한 을 제2호증의 12(기록 395쪽)와 기록에 의하면, 노창구는 이 사건 양식장의 차양막을 걷어내면 수조관에 있는 위 우럭과 광어치어들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위 각서로 인하여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고 믿고서 위 치어들을 살리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강구하지 아니한 채 임의로 양식장의 시설을 철거함으로써 위 치어들을 모두 폐사시킨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노창구의 위 불법행위는 고의에 의한 것이라고 할 것이므로, 노창구의 상속인들인 피고들로서는 민법 제496조에 의하여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에 대하여 상계로써 대항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노창구의 이 사건 불법행위가 과실에 의한 것이라고 본 나머지 노창구의 상속인인 피고들의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가 상계로 인하여 소멸하였다고 판단하였던바, 거기에는 불법행위에 있어서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 결론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다.
3. 그러므로 원심판결의 우럭 및 광어치어 폐사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중 금 44,800,000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 부분(피고의 상계 주장과 관련된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참가인들의 나머지 상고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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