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제1장
야학을 마치고 돌아온 허숭(許崇)은 두 팔을 깍지를 껴서 베개삼아 베고 행리에 기대어서 비스듬히 드러누웠다. 가만히 누워 있노라면, 모기들이 앵앵 하고 모깃불 연기를 피하여 돌아가는 소리가 멀었다 가까웠다 하는 것이 들린다. 인제는 음력으로 칠월에도 백중을 지나서, 밤만 들면 바람결이 선들선들하는 맛이 난다.
이태 동안이나 서울 장안에만 있어서 모깃소리를 들어 보지 못한 허숭은 고향에서 모깃소리를 다시 듣는 것도 대단히 반가웠다.
"어쩌면 유순이가 그렇게 크고 어여뻐졌을까."
하 고 숭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럴 때에 숭의 앞에는 유순(兪順)의 모양이 나타났다. 그는 통통하다고 할 만하게 몸이 실한 여자였다. 낯은 자외선이 강한 산지방의 볕에 그을려 가무스름한 빛이 도나 눈과 코와 입이 다 분명하고, 그리고도 부드러운 맛을 잃지 아니한 처녀다. 달빛에 볼 때에는 그 얼굴이 달빛 그것인 것같이 아름다웠다. 흠을 잡자면 그의 손이 거친 것이겠다. 김을 매고 물 일을 하니, 도회 여자의 손과 같이 옥가루로 빚은 듯한 맛은 있을 수 없다. 뻣뻣한 베 치마에 베 적삼, 그 여자는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그는 맨발이었다. 발등이 까맣게 볕에 그을렸다. 그의 손도, 팔목도, 목도, 짧은 고쟁이와 더 짧은 치마 밑으로 보이는 종아리도 다 볕에 그을렸다. 마치 여름의 햇빛이 그의 아름답고 건강한 살을 탐내어 빈틈만 있으면 가서 입을 맞추려는 것 같았다.
허 숭은 유순을 정선(貞善)과 비겨 보았다. 정선은 숭이가 가정교사로 있는 윤참판 집 딸이다. 정선은 몸이 가냘프고 살이 투명할 듯이 희고 더구나 손은 쥐면 으스러져 버릴 것같이 작고 말랑말랑한 여자다. 그는 숙명에서도 첫째 둘째를 다투는 미인이었다.
물 론 정선은 숭에게는 달 가운데 사는 항아(姮娥)다. 시골, 부모도 재산도 없는 가난뱅이 청년인 숭, 윤참판 집 줄행랑에 한 방을 얻어서 보통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가르치고 있는 숭으로서는 정선 같은 양반집, 미인 외딸은 우러러보기에도 벅찬 처지였다.
그러나 유순이 같은 여자면 숭의 손에 들 수도 있다. 지금 처지로는 유순의 부모도 숭이에게 딸을 주기를 주저할 것이지마는, 그래도 학교나 졸업하고 나면 혹시 숭을 사윗감으로 자격을 붙일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숭은 자기 신세를 생각하여 한숨을 쉬었다.
숭 은 이 동네에서는 잘산다는 말을 듣던 집이었다. 숭의 아버지 겸(謙)은 옛날 평양 대성학교(大成學校) 출신으로 신민회사건이니, 북간도사건이니, 서간도사건이니, 만세사건이니 하는 형사사건에는 빼놓지 않고 걸려들어서 헌병대 시절부터, 경무총감부 시절부터 붙들려 다니기를 시작하여 징역을 진 것만이 전후 팔 년, 경찰서와 검사국에 들어 있던 날짜를 모두 합하면 십여 년이나 죄수생활을 하였다.
이렇게 기나긴 세월에 옥바라지를 하고 나니, 가산이 말이 못되어 숭의 학비는커녕 집을 보존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겸은 남은 논마지기, 밭날갈이를 온통 금융조합에 갖다 바치고, 평생에 해보지도 못한 장사를 한다고 돌아다니다가 저당한 토지만 잃어버리고, 홧김에 술만 먹다가 어디서 장질부사를 묻혀서 자기도 죽고 아내도 죽고 숭의 누이동생 하나도 죽고, 숭이 한 몸뚱이만 댕그렇게 남은 것이다.
현재의 숭에게는 집 한 간 없다. 지금 숭이 잠시 와서 머무는 집은 숭의 당숙 성(誠)의 집이다.
유 순의 집은 이 집에서 등성이 하나 넘어가서 있다. 순의 부모는 순전한 농부다. 순의 아버지 진희(鎭熙)는 아직도 젊었거니와 그 늙은 조부 유초시는 글을 공부하여 초시까지 한 사람이다. 원래 이 동네는 수백 년래로 허씨가 살고, 등성이 너머 동네에는 유씨가 살았는데, 허씨나 유씨나 다 이 시골에서는 과거장이나 하고 기와집간이나 쓰고 살아왔다. 그러나 유초시의 말을 빌리면,
"갑오경장 이후에야 글이나 양반이 다 쓸데 있나."
하 여 이 두 동네도 점점 쇠퇴하여서, 용감한 사람들은 모두 관을 벗어 버리고 수건을 동이고, 책과 붓대를 집어던지고 호미를 들고 들로 나갔다. 그러나 그 중에는 여전히 옛 영화를 생각하여 관을 쓰고 꿇어앉은 이도 한둘은 있고, 또 숭의 아버지 모양으로 '개화에 나서서'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고 다니다가 옥살이를 하는 이도 이삼 인은 있었다. 이를테면 유순의 집은 약아서 제 실속을 하는 패의 대표요, 허숭의 집은 세상 일을 합네, 학교를 다닙네 하고 날뛰는 패의 대표였다.
예정한 일주일의 야학이 끝나고 내일은 허숭이가 서울로 올라간다는 마지막 날 야학에, 허숭은 더욱 정성을 다하여 남은 교재를 가르치고, 또 강연 비슷하게 여러 가지 권유를 하였다.
야 학은 부인반과 남자반 둘로 갈렸었다. 부인반에는 숭의 아주머니 할머니뻘 되는 사람도 있고, 숭의 누이뻘 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숭이가 설명하는 위생 이야기, 땅이 둥글다는 이야기, 해가 도는 게 아니라 땅이 돌아간다는 이야기, 비행기 전기등 이야기, 무엇이 비가 되고 무엇이 눈이 되는 이야기 같은 것을 다 신기하게 들었다.
"그 원 그럴까."
하고 혹 의심내는 이도 있었으나 반대하는 이도 없었다.
그러나 남자반은 이와 달라서 질문하는 이도 있고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
"대관절, 어째서 차차 세상이 살아가기가 어려워만 지나."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도 있었다.
"요새는 대학교 조립(졸업)을 하고도 직업을 못 얻는대."
하는 세상 소식 잘 아는 이도 있었다.
"너도 그만큼 공부했으면 인제는 장가도 들고 살림을 시작해야지, 공부만 하면 무엇 하니?"
하고 할아버지뻘, 아저씨뻘 되는 이가 말을 듣다 말고 교사인 숭에게 뚱딴지 훈계를 하기도 하였다.
대부분이 허씨들인 중에 간혹 등 너머 유씨네들도 와서 섞였다. 여자반에도 그러하여서 유순이도 이렇게 와 섞인 이 중의 하나였다.
유순이는 보통학교를 졸업했지마는 야학에 출석하였다. 그는 가장 정성 있게 듣는 이 중의 하나였다.
내일이면 떠나는 날이라고 생각하니 허숭은 자연 서운한 맘이 생겼다. 숭은 이야기하는 중에도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순을 바라보았다. 순의 눈도 숭의 눈과 가끔 마주쳤다. 숭은 이야기를 끝내기가 싫었다.
남녀반의 야학이 끝난 뒤에, 늙은 느티나무 밑에 남자들만 수십 명이 모여서 숭의 송별연을 열었다. 참외도 사오고 술도 사오고 옥수수도 삶아 오고, 모두 둘러앉아서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너 이번 가면 또 언제 올래?"
"글쎄요, 내년에나 오지요."
"조립이 언제야?"
"내후년입니다."
"법과라지?"
"네."
"그거 조립하문 경찰서장이나 되나?"
"……"
"군 서기도 되겠지. 군수는 얼른 안 될걸."
"변호사를 하면 돈을 잘 버나 보더라마는―---그건 또 시험이 있다지?"
"네."
"걔야 재주가 있으니까 변호사도 되겠지."
"변호사는 사뭇 돈을 벌데."
"돈벌이는 의사가 제일이야."
"큰 돈이야 그저 금광을 하나 얻어야."
"조선에야 돈이 있어야 벌지. 물 마른 것 모양으로 바짝 마른걸."
"우리네같이 땅이나 파먹는 놈이야 십 원짜리 지전 한 장 손에 쥐어 볼 수 있다구."
"자, 채미 한 개 더 먹지."
"아압, 밤이 꽤 깊었는걸."
이 러한 회화였다. 숭은 이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혹은 낯도 후끈하고, 혹은 한숨도 쉬었다. 그러나 숭은 이 무지한 듯한 사람들이 한없이 정답고 귀중하였다. 그들의 말 속에는 한없는 호의가 있는 듯하였다. 저 인사성 있고, 눈치 밝고 쏙쏙 뺀 도회 사람들보다 도리어 사람다움이 많은 것이 반가웠다.
이 밤에 숭은 협동조합 이야기를 하여 다수의 찬성을 얻었으나, 조직하기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새벽차를 타려고 가방과 담요를 들고 당숙의 집을 떠나, 길가 풀숲에 우는 벌레 소리를 들으며 정거장을 향하고 나갈 때에, 무너미로 갈리는 길에서 숭은 깜짝 놀랐다.
"내야요."
하고 나서는 유순을 본 까닭이었다. 숭은 하도 의외여서 깜짝 놀랐다가 부지불식간에 유순의 손을 잡았다.
"언제 와요?"
"내년 여름에 오께."
하고 숭은, 자기의 가슴에 이마를 대고 기대어 선 유순의 머리를 쓸었다. 떠날 때에 순은 숭에게 삶은 옥수수 네 자루를 싼 수건을 주었다.
숭이가 탄 기차가 새벽 남빛 어둠 속으로 씩씩거리고 지나 무너미 모루를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순은 손을 내어두르며 눈물을 지었다.
숭 은 무너미 모루를 돌아갈 때에 행여나 순이가 보일까 하고 승강대에 나와서 바라보았다. 그러나 새벽빛은 반 마일이나 떨어져 산그늘에 서 있는 처녀의 몸을 숭의 눈에서 감추었다. 숭은 순이가 섰으리라고 생각하는 방향을 향하여 손을 두르며,
"순이, 내 내년 여름에 오께."
하고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차 는 살여울의 철교를 건넌다. '살여울!' 어떻게 정다운 이름이냐, 하고 숭은 철교 밑으로 흐르는 물을 들여다보았다. 아직도 여름밤을 머금은 검은 물. 눈이 그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초가을의 특색인 골안개가 뽀얗게 엉긴 것이 보인다. 촉촉하게 젖은 땅 위에, 들릴락말락한 소리를 내이고 흘러가는 물 위에 꿈같이 덮인 뽀얀 안개, 그것은 자연의 아름다움 가운데 가장 인정다운 아름다움의 하나다.
살 여울의 좌우 옆은 살여울 물을 대어서 된 논이다. 한 마지기에 넉 섬씩이나 나는 논이다. 본래는 그것은 풀이 무성한 벌판이었을 것이다. 혹은 하늘이 아니 보이는 수풀이었을 것이다. 사슴과 여우가 뛰노는 처녀림 속으로 살여울의 맑은 물이 흘렀을 것이다. 지금도 흰하늘이고개라는 고개가 있지 아니하냐. 그 고개를 나서서야 비로소 흰하늘을 바라보았다는 말이라고, 숭은 어려서 그 아버지에게 설명받은 일이 있었다.
그 것을 숭의 조상들이―---아마 순의 조상들과 함께 개척한 것이다. 그 나무들을 다 찍어 내고 나무뿌리를 파내고, 살여울 물을 대느라고 보를 만들고, 그리고 그야말로 피와 땀을 섞어서 갈아 놓은 것이다. 그 논에서 나는 쌀을 먹고 숭의 조상과 순의 조상이 대대로 살고 즐기던 것이다. 순과 숭의 뼈나 살이나 피나 다 이 흙에서, 조상의 피땀을 섞은 이 흙에서 움돋고 자라고 피어난 꽃이 아니냐.
그 러나 이 논들은 이제는 대부분이 숭이나 순의 집 것이 아니다. 무슨 회사, 무슨 은행, 무슨 조합, 무슨 농장으로 다 들어가고 말았다. 이제는 숭의 고향인 살여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마치 뿌리를 끊긴 풀과 같이 되었다. 골안개 속에서 한가하게 평화롭게 울려 오던 닭 개 짐승, 마소의 소리도 금년에 훨씬 줄었다. 수효만 준 것이 아니라, 그 소리에서는 한가함과 평화로움이 떠나갔다. 괴롭고 고달프고 원망스러웠다.
차 가 가는 대로 숭은 가고 오는 산과 들과 촌락을 바라보았다. 알을 밴 벼와, 누렇게 고개를 숙인 조와 피와, 머리를 풀어헤치고 피를 흘리는 용사와 같은 수수를 보았다. 새벽 물을 길어 이고 가는 여자들을 보았다. 아침 햇빛이 물 묻은 물동이를 비치어 금빛을 발하였다. 물동이를 인 여자는 한 손으로 물동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쳐내어 버리고, 한 손으로는 짧은 적삼 밑으로 나오려는 젖을 가리었다. 기차가 우렁차게 달리는 소리를 듣고, 빨강댕이 아이들이 만세를 부르고 내달았다. 긴 장마를 겪은 초가집들은 마치 긴 여름 일을 치른 농부들 모양으로 기운이 빠져서 축 늘어졌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속이 썩은 모양으로 지붕의 영도 꺼멓게 썩었다. 그 집들 속에는 가난에 부대끼고, 벼룩 빈대에 부대끼고, 빚에 졸리고, 병에 졸리고, 희망을 빼앗긴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뭉개는 것이다.
정거장에를 왔다. 역장과 차장과 역부와, 순사의 모자의 붉은 테와, 면장인 듯한 파나마 쓴 신사와, 서울로 가는 듯싶은 바스켓 든 여학생과, 그의 부모인 듯싶은 주름잡힌 내외와…….
호각 소리가 나고 고동 소리가 나고…… .
큰 도회와 작은 정거장을 지나 숭은 배고픔을 깨달았다. 순이가 싸다 준 옥수수를 꺼내었다. 두 이삭을 뜯어 먹고는 좀 창피한 듯하여 도로 싸놓았다.
경성역에 내린 때에는 숭은 꿈에서 깬 것 같았다. 바쁜 택시의 떼, 미친년 같은 버스, 장난감 같은 인력거, 얼음 가루를 팔팔 날리는 싸늘한 사람들.
숭 은 전차를 타고 삼청동 윤참판의 집으로 들어왔다. 방에 짐을 놓고 큰사랑에 가니, 윤참판은 없고 웬 갓 쓴 사람만 이삼 인이 앉았다. 작은사랑에 가니 윤참판의 맏아들 인선(仁善)도 없다. 돌아나오다가 찌개 뚝배기를 든 어멈을 하나 만났다.
"학생 서방님 오셨어요?"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맏서방님이 대단히 편찮으시답니다. 영감마님도 안에 계세요."
한 다. 원체 일개 가정교사, 시골학생 하나가 다녀왔기로 윤참판 집에 대하여서는 이웃집 고양이 하나 들어온 이상의 중요성이 있지 아니할 것이다. 더구나 맏아들 인선이 중병으로 죽을지 살지 모르는 이 판에, 온 집안이 난가가 된 이 판에 허숭이 따위가 왔대야 아랑곳할 사람은 밥 갖다 주는 어멈 하나밖에 없다.
허숭은 어멈을 통하여 인선의 병 증상을 들었다.
원 래 인선은 체질이 허약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인선이가 난 지 몇 달이 아니 되어서 폐병으로 죽었다. 본래 폐병이 있는 이가 아이를 낳고는 죽은 것이었다. 인선은 그 어머니의 체질을 받아 살빛이 희고, 피부가 엷고, 여자같이 부드럽고, 가슴이 좁고, 몸이 가늘고 길었다. 미남자는 미남자지마는 퍽 약하였다. 그러나 재주는 있어서 학교에서는 성적이 좋았다.
인선과는 반대로, 그 아내는 몸이 건강하고 또 육감적인 여자였다. 숭도 그를 가끔 보았거니와 눈웃음을 치고 교태가 있는 여자였다. 인선의 친구들은 인선이가 아내 때문에 몸이 늘 허약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 러던 것이 인선이가 금년에 석왕사에 피서를 갔다가 설사병을 얻어 가지고 돌아와서부터는 신열이 나고 소화불량이 되고 잠을 못 잤다. 윤참판은 이것을 성화하여 의사도 불러 대고 한방의도 불러 대었으나 병은 낫지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약 일주일 전에 어느 유명하다는 (지리산에서 이십 년 공부했다는) 한방의를 불러다가 보인 결과, 녹용과 무슨 뽕나무 뿌리 같은 약과를 달여 먹였다. 이것을 먹고 병자는 전신이 뻘겋게 달고 정신을 잃고 헛소리를 하고 웃고 날뛰었다. 그러기를 일주야나 한 뒤에 의사가 와서 주사를 놓고 약을 먹여서 잠이 들었으나, 그로부터 영 말도 못 하고 먹지도 못 한다고 한다.
지 금도 사랑에는 갓 쓰고 때묻은 두루마기 입은 무슨 진사, 무슨 사과 하는 한방의가 이삼 인이나 모여 앉아서, 서로 금목수화토 오행을 토론하고 갑을병정의 육갑을 주장하여 병인 머리 둘 방향을 날을 따라 고치고, 약 달이는 물을, 혹은 동쪽에서 혹은 서쪽에서 방위를 가리어 길어 오게 하고, 혹은 약물을 붓는 시간을 묘시니 진시니 하여 큰 문제나 되는 듯이 논쟁을 하였다.
약을 달일 때에도 제가 처방한 것은 제가 지키고 앉아서 달이고, 그 곁에는 심부름하는 계집애 종이 시중들고 섰었다. 갓 쓴 의원은 그 계집애더러 담배를 붙여 들이라고 연해 명령하였다.
인 선은 윤참판의 맏아들일 뿐더러 어려서 어미 잃은 아들이요, 또 허약한 아들이기 때문에 특별히 맘에 늘 두었다. 더구나 윤참판이 나이 환갑을 지나면서부터는 재산에 관한 사무, 가사에 관한 사무를 거의 다 인선에게 맡기고, 자기는 다만 최고 권위자로 비토권만 가지고 있었다. 인선도 다른 부잣집 아들 모양으로 허랑방탕하지 아니하고 적어도 돈 아낄 줄을 알았다. 윤참판에게는 그 아들의 돈 아낄 줄 아는 것이 가장 기쁘고 믿음성 있는 일이었다.
이러하던 인선이가 앓는 것을 보는 윤참판은 화를 내어 조석도 잘 아니 먹고 담배와 술만 마시었다.
허숭이가 돌아온 이튿날 아침에 큰사랑에 가서 윤참판을 만나 절을 하였다. 윤참판은,
"오, 댕겨왔냐."
한마디를 하고는, 돌아앉은 갓 쓴 의원들에게,
"어디 그 약이 효험이 있나."
하고 화를 내었다.
또 의원들간에는 상초가 어떻고 하초가 어떻고, 명문이 어떻고 수기니 화기니 하는, 말하는 자기들도 잘 알지 못하는 토론이 시작되었다.
마루의 약탕관에서는 꼬르륵꼬르륵하는 소리가 나고, 덮은 종이를 통하여 야릇한 향기를 가진 김이 올랐다. 날은 맑고 더웠다.
인 삼도 녹용도 쓸데없이, 허숭이가 온 지 닷새 만의 새벽에, 인선은 마침내 죽어 버렸다. 인선이가 위태하단 말을 듣고 초저녁부터 친척들이 모여들어서 안팎이 웅성웅성하였다. 그 중에는 참판의 삼종형이요 사회에 명망이 높은 한은(漢隱) 선생이라고 세상이 일컫는 이도 오고, 또 죽은 이의 재종 삼종 되는, 혹은 일본 유학도 하고, 혹은 구미 유학도 한 젊은이들도 오고, 또 숭이 알지 못하는 사내들과 부인들도 왔다. 또 허숭과는 고등보통학교 선배 동창이요, 지금 경성제대 법과에 다니는 김갑진(金甲鎭)이라는 학생도 왔다. 갑진은 칠조약 때에 관계 있어 남작을 받은 김남규(金南圭)의 아들로서 보통학교 시대부터 교만한 수재로 이름이 높았다. 다만 그 아버지 남규가 주색과 투기사업에 돈을 다 깝살리고, 마침내는 파산을 당하고 또 사기로 몰려 불기소는 되었으나, 남작 예우는 정지되고 죽었기 때문에 갑진은 가난하고 또 습작(襲爵)도 못 하였을 뿐이다. 그는 아버지와 윤참판과 막역한 친구이던 인연으로 윤참판이 학비를 대어서 지금까지 공부를 시키고, 그러한 까닭으로 마치 친척이나 다름없이 세배 때나 기타 무슨 일이 있을 때에는 윤참판 집안에도 출입하였다.
인선이가 죽은 뒤로, 사람들의 시선―---부러워하는 듯한 시선은 윤참판의 딸 정선에게로 쏠렸다.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는 정선의 모양은 더욱 아름다움을 더한 듯하였다.
정 선은 윤참판의 둘째 아내의 몸에 난 딸이다. 정선의 어머니는 윤참판이 전라감사로 갔을 때에 도내에 제일 부호라는 말을 듣던 남원 김승지의 딸에게 장가들어 얻은 아내로, 인물이 아름답기로 재산을 많이 가져오기로 유명한 부인이다. 그때 서울에서는 윤참판이 돈을 탐내어서 시골 상놈의 딸에게 장가든 것이라고 비웃었거니와, 그 비웃음은 사실에 가까웠다.
이 김씨 부인은 만 석을 가져왔다고도 하고, 오천 석을 가져왔다고도 하거니와, 어쨌으나 윤참판이 전라감사 이태에 약 만 석의 재산이 불은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 중에는 뇌물받은 것, 학정한 것도 있겠지마는, 적어도 그 중에 삼분지 이는 김씨 부인이 가지고 온 것이었다.
김씨 부인에게 장가를 듦으로, 또는 전라감사를 다녀옴으로부터 윤참판은 일약 장안에서 부명을 듣게 되었고, 세상이 바뀌고 호남철도가 개통됨으로부터는 곡가와 지가가 몇 갑절을 올라서 윤참판의 재산은 무섭게 늘었다.
김 씨 부인은, 그러나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 놓고 아직 사십이 다 못 되어서 죽었다. 아들은 얼마 아니 하여 죽고, 그의 유일한 혈육으로 남은 것이 정선이다. 정선은 그 모습이 천연 그 어머니를 닮았다고 한다. 키가 호리호리하고 살이 희고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죽은 오라버니와 같이 허약한 빛이 없고, 부드러운 중에도 단단한 맛이 있었다. 코가 너무 오똑하고, 눈에 젖은 빛을 띠어 여염집 처녀로는 너무 애교가 있는 것이 흠이면 흠이랄까.
정 선은 숙명에서도 두어 번 수석을 한 일이 있고, 이화전문학교 음악과에 들어간 뒤에도 미인, 수재의 평이 높다. 천만장자요, 양반의 따님이었다, 미인이었다, 수재였다, 그 어머니가 친정에서 가지고 온 재산의 적어도 한 부분은 상속할 수 있다는 정론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들 가진 사람, 재주 있는 청년의 시선이 그리로 모일 것은 물론인데다가, 이제 윤참판의 맏아들 인선이 죽으니, 윤참판의 평소의 성미로 보아서 이 딸의 남편이 될 사위가 윤참판의 작은아들 예선이 자랄 때까지 윤참판 집에 채를 잡을 것이 분명한 줄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정선의 몸으로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가 이러한 정선의 남편이 되는 행운의 제비를 뽑을 것인가―---사람들에게는 이런 것이 중대 문제였다.
아들이 운명하는 것을 본 윤참판은 사랑으로 뛰어나와서, 갓 쓴 의원이며 음양객들을 모두 몰아내었다.
"이놈들, 아무것도 모르고 내 아들 죽인 놈들!"
하고 호령하는 서슬에 갓 쓴 무리들은 혼이 나서 쫓겨 나갔다. 나가다가 한 사람이 돌아와서,
"집으로 갈 노자나 주시지요."
하고 애걸하였으나, 윤참판은,
"저놈들이 또 기어들어와! 네, 저놈들 몰아내어라.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서 저놈들 깡그리 묶어 가게 하여라."
하는 바람에 다시 입도 벙긋 못 하고 다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윤참판은 화로에 놓인 약탕관을 집어던졌다. 약탕관은 사랑 마당에, 끓는 검은 물을 토하며 데굴데굴 굴렀다.
문 뒤에 붙어 섰던 허숭은 윤참판의 성난 것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윤참판의 앞에 나서며,
"무어라고 여쭐 말씀이 없습니다."
하고 조상하는 인사를 하였다.
"응, 인선이 죽었어."
하고 윤참판은 허숭을 바라보았다. 허숭은 더 할 말이 없었다.
"그 귀신 같은 놈들 잘 내쫓으셨습니다."
하고 안으로서 나오는 것은 김갑진이었다. 갑진은 안에서 밤을 새운 모양이었다. 이러한 때에도, 그는 J자 붙인 검은 세루대학 정복을 입고 손에 '大學'이라는 모장 붙인 사각모자를 들기를 잊지 아니하였다.
"인선이가 죽었다."
하고 윤참판은 갑진을 보고도 같은 소리를 하였다.
"글쎄올시다, 그런 변고가 없습니다. 그 귀신 같은 놈들이 독약을 먹여서 그랬습니다. 애초에 제 말씀대로 입원을 시키셨더면 이런 일은 없는 것을 그랬습니다. 그런 귀신 같은 놈들이 사람이나 잡지 무엇을 압니까."
하고 갑진은 모든 것을 다 아는 듯이 단정적으로, 훈계적으로 말을 한다. 안하무인한 그의 성격을 발로한다.
"왜 의사는 안 보였다든?"
하고 윤참판은 갑진의 말에 항변한다.
"의사놈들은 무얼 안다더냐. 돈이나 뺏으려 들지."
"애초에 조선 의사를 부르시기가 잘못이지요. 그깟놈들, 조선놈들이 무얼 압니까. 요보놈들이 무얼 알아요? 등촌 박사나 이등 박사 같은 이를 청해 보셔야지요. 생사람을 때려잡았습니다."
하고 갑진은 여전히 호기를 부린다.
윤참판은 갑진을 한번 흘겨보고 일어나서 무어라고 누구를 부르면서 안으로 들어간다.
허숭은 차마 갑진의 말을 들을 수가 없어서,
"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하고 갑진을 나무랐다.
"왜? 자네 따위 사립학교 부스러기나 다니는 놈들은 가장 애국자인 체하고, 흥, 그런 보성전문학교 교수 따위가 무얼 알어? 대학에 오면 일년급에 붙지 못할 것들이. 자네도 그런 학교에나 댕기려거든 남의 집 행랑 구석에서 식은밥이나 죽이지 말고, 가서 조상 적부터 해먹던 땅이나 파. 괘니시리 아니꼽게 놀고 먹을 궁리 말고……."
하고는 입을 삐죽, 고개를 끄떡 하고 나가 버린다. 아마 밤을 새웠으니까 졸려서 어디로 자러 가는 모양이었다.
허숭은 그만한 소리는 갑진에게서 밤낮 듣는 것이니까 별로 노엽게도 생각하지 아니하였다. 다만,
'서울 사람, 시골놈, 양반, 상놈이 아직도 남았구나.'
하는 것을 한번 더 생각하고 한숨을 지을 뿐이었다.
그 러나 허숭의 맘은 자못 편안치를 못하였다. '행랑구석에서 남의 집 식은밥이나 죽이고' 하는 것이나, '아니꼽게 놀고 먹어 보겠다고' 하는 것이나, '조상 적부터 파먹던 땅이나 파!' 하는 것이나, 갑진의 이런 말들은 갑진이가 생각하고 한 것과는 다른 의미로, 그의 경멸적인 의도와는 다른 의미로, 허숭의 가슴을 찌르는 바가 있었다.
그 것은 사실이다. 조상 적부터 해먹던 땅 파기가 싫어서 아니꼽게 놀고 먹어 보겠다고 시골 남녀 학생들이 서울로 모여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선조 대대로 피땀 흘려 갈아 오던 논과 밭과 산―---그 속에서는 땀만 뿌리면 밥과 옷과 채소와 모든 생명의 필수품이 다 나오는 것이다―---을, 혹은 고리대금에 저당을 잡히고, 혹은 팔고 해서까지 서울로 공부하러 오는 학생이나, 자녀를 보내는 부모나, 그 유일한 동기는 땅을 파지 아니하고 놀고 먹자는 것이다. 얼굴이 검고 손이 크고 살이 거칠고 발도 크고, 눈이 유순하고 몸이 왁살스러운, 대체로 농촌의 자연에서 근육노동을 하던 집 자식이 분명한 청년 남녀가, 몸에 잘 어울리지 아니하는 도회식 옷을 입고 도회의 거리로 돌아다니는 꼴―---아무리 제 깐에는 도회식으로 차린다고 값진 옷을 입더라도, 원 도회 사람의 눈에는 '시골 무지렁이, 시골뜨기' 하는 빛이 보여 골계(滑稽)에 가까운 인상을 주는, 그러한 청년 남녀들이 땅을 팔아 가지고, 부모는 굶기면서 종로로, 동아, 삼월, 정자옥으로, 카페로, 피땀 묻은 돈을 뿌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 일종의 비참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지 아니하냐.
그 렇게까지 해서 전문학교나 대학을 마친다 하자. 그리고는 무엇을 하여 먹나. 놀고 먹어 보자던 소망도, 벼슬깨나, 회사원, 은행원이나 해먹자던 소망도 이 직업난에 다 달하지 못하고, 얻은 것이 졸업장과, 고등 소비생활의 습관과 욕망과, 꽤 다수의 결핵병, 화류병, 자연 속에서 생장한 체질로서 부자연한 도시생활에 들어오기 때문에 생기는 건강의 장애와―---이것뿐이 아닌가. 조상 적부터 해먹던 땅을 파자니 싫고, 직업은 없고, 그야말로 놀고 먹자던 것이 놀고 굶게 되지 아니하는가.
"나는 그 중의 하나다."
하고 숭은 낙심이 되었다. 도리어 갑진의 기고만장한 어리석음이 유리한 듯도 하였다.
안으로서는 이따금 세 줄기 여자의 곡성이 흘러나왔다. 하나는 정선의 소리요, 또 하나는 죽은 인선의 아내 조정옥(趙廷玉)의 소리였다. 그리고 하나는 아마 인선의 계모의 소리일 것이다.
인 선의 아내 조정옥은 재동 조판서라면 지금도 양반계급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는 이의 손녀요, 남작 조남익(趙南翊)의 딸이다. 재동여자고보를 졸업하고, 또 기모노에 하카마를 입고 제이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이왕직 인연으로 동경도 한 일년 다녀온 여자다. 윤참판 집은 아들 복은 없어도 미인복이 있다는 말을 듣느니만치 정옥은 미인이었다. 다만 위에 말하였거니와 그가 눈웃음을 치고 여염집 부녀로는 너무 애교가 많았다. 그리고 그가 받은 교육에는―---가정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보통학교나 고등보통학교, 또 고등여학교나―---개인주의, 이기주의 이상의 아무 자극과 훈련이 없었다. 애국이라는 말은 원래 조선 교육에서 찾을 수가 없거니와, 전인류를 사랑하는 그리스도교적 인도주의라든지, 또 삼세 중생을 다 동포로 알고 은인으로 알아 그것을 위하여 제 몸을 희생하여 봉사하는 석가모니의 사상이라든지, 또는 조선 사람이니, 조선 사람의 불행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그들에게 조그마한 기쁨이라도 더하여 주기 위하여 네 몸을 희생하라는 말이라든지, 또는 실제적 훈련이라든지는 받아 보지 못하고, 기껏 부모에게 효도를 하라든지, 남편을 수종하라든지, 돈을 아껴 쓰라든지, 자녀를 사랑하고 깨끗이 거두라든지 이러한 개인주의 내지 가족주의 이상의 교육과 훈련을 받아 본 일이 없었다. 게다가 그의 친정인 조남작 집은 가정이 문란하기로 이름이 있는 집이요, 그의 시집인 윤참판 집도 금전에 대한 규모밖에는 아무 높은, 깊은, 넓은 인생의 이상이 없는 집이요, 정옥이가 교제하는 사람들도 거의 다 정옥과 어슷비슷한 개인주의자, 이기적 향락주의자 들이었다.
이러한 정옥이가 삼십이 넘을락말락해서 남편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인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다.
정옥은 절제를 잃었다. 그의 남편의 숨이 넘어간 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슬픔이 더하였다. 그는 마침내 완전히 절제력을 잃어 통곡하였다. 방바닥을 두드리고 풀어 놓은 머리채로 목을 매려 들고 한없이 울었다.
"언니, 언니."
하고 올케를 말리던 정선도 같이 울었다. 집안 어른들이,
"아버님 계신데 그렇게 우는 법이 아니다."
하고 책망하였으나 정옥의 귀에는 그런 말이 들어오지 아니하였다.
"요새 계집애들은 저래서 병야. 부모도 모르고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렇게 늙은 부인들은 정선의 흉을 보았다. 그 늙은 부인들은 자기네가 젊었을 때에 지키던 엄격한 풍기가 깨어지는 것을 슬퍼하고, '요새 계집애'들의 방종한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윤 참판의 슬픔은 돈이 구제할 수 있었다. 돈은 윤참판의 삼위일체 신 중에 제일위다. 첫째가 돈, 둘째가 계집, 셋째가 아들. 비록 인선이가 죽었다 하더라도 아직 미거하나마 예선이가 있고, 또 돈이 있지 아니하냐. 백만 원 가까운 돈을 주고 받아들이고 지키고 하는 사무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비록 밑에 부리는 사람이 많다 하더라도 사람도 유만부동이다. 은행 통장이나 도장이라도 맡길 만한 사람은 인선이밖에 없었는데, 이 충실한 사무원 하나를 잃은 것이 아들을 잃은 데 지지 않을 큰 타격이었다. 그래도 윤참판은 아들의 장례가 끝나자 곧 예사대로 생활을 계속하고 사무를 계속하였다. 비록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은 있다 하더라도.
그 러나 인선의 처 정옥에게는 무엇이 있느냐. 이러한 가정에 자라고 이러한 교육을 받은 여자로, 특별한 천품이나 있기 전에는, 남편과의 재미와 새 옷 만드는 낙밖에 있을 수 없지 아니하냐. 새 옷도 남편을 위하여 입는 것이 주라 하면, 남편 인선을 잃은 정옥에게는 슬픔 캄캄함 막막함밖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예전에는 늙은이의 마누라인 시어머니(학교시대에는 서너 반 윗동무다)라 하여 속으로 멸시하던 이가 도리어 청승스러운 청상과부라고 자기를 멸시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자식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잊기도 하련마는 정옥은 일남 일녀를 낳아 다 말도 하기 전에 죽이고, 한 번 낙태를 하고는 다시 소생이 없었다.
무 시로 정옥의 방에서 들리는 울음 소리―---그것은 차마 못 들을 것이었다. 그를 위로하는 이로는 오직 정선이가 있을 뿐이나, 구월 새 학기가 되어서 정선이마저 낮에는 온종일 학교에 가게 되어서부터는 정옥은 혼자 한없이 울 뿐이었다. 친정이나 가까우면 거기라도 가련마는 그의 친정은 충청남도 예산(禮山)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 돌아가고, 간댔자 난봉 오빠와 올케가 있을 뿐이었다.
허 숭은 그럭저럭 이 집에는 없지 못할 사람이 되었다. 한가지 두가지 심부름을 시켜 본 윤참판은 차차 숭을 신임하게 되어, 은행 예금, 서류 정리, 통신을 맡게 되어, 마치 윤참판의 비서 모양으로 되고, 마침내는 가장 비밀한 장부까지도 맡아서 아들이라는 자격을 제하고는 인선이가 보던 사무 전부를 맡게 되었다. 윤참판은 숭을 줄행랑에서 옮겨서 인선이가 있던 작은사랑에 있게 하고, 하인들도 차차 '시골 서방님'이니 '학생'이니 하는 칭호를 고쳐서 작은사랑 서방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숭 은 이 복잡한 사무가 공부에는 방해를 줌이 적지 아니하였지마는 늙은 윤참판의 신임이 결코 불쾌하지는 아니하였다. 더구나 예전 같으면 인사를 해도 잘 받지도 아니하던 문객들까지도 이제는 제 편에서 먼저 인사를 하는 양이 통쾌도 하였다.
하루는 큰사랑에서 윤참판의 지휘로 장부 정리를 하고 있는데, 김갑진이가 들어왔다. 갑진은 일본식으로 윤참판의 앞에 인사를 하고는,
"자네 요새 승격했네그려."
하고 장부를 기입하고 앉았는 숭을 보고 빈정거렸다. 숭은 여전히 붓을 움직이며 픽 웃었다.
"이놈을 반토(사무장)로 쓰십시오?"
하고 갑진은 윤참판을 향하였다. 윤참판은,
"내 비서관이다."
하고 빙그레 웃었다.
"명년에 내 판사 되거든, 재판소 서기로 써줄까."
하고 갑진은 허허허허 하고 웃었다.
"시골놈이 양반댁 청지기가 되면 명정(銘旌)에 고이고 위패에 고이지 않나."
하고 갑진은 여전히 빈정대었다.
장부가 다 끝난 뒤에 숭은 갑진을 끌고 작은사랑으로 왔다. 갑진은 작은사랑에 숭의 모자와 외투가 걸리고 책상이 놓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숭이가 작은사랑으로 승차한 것을 처음 보는 것이다.
"이게 자네 방인가?"
하고 갑진은 눈이 둥글했다. 그는 진정으로 놀란 것이었다.
"아니, 인선 군 방이지. 방이 비니까 날더러 같이 있으라시데그려."
하고,
"왜 섰어? 앉게그려."
하고 갑진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갑진은 숭이가 앉으라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숭이가 행랑으로부터 이 방에 올라오게 된 것을 보고 놀란 갑진의 심장은 용이히 진정되지를 아니하였다. 과연 윤참판의 말마따나 숭은 반토나 청지기가 아니라 '비서관' 대우였다.
'그러나 설마―---'
하고 갑진은 숭을 바라보았다. 숭의 손발이 크고 얼굴이 좀 거친 맛이 있는 것이 비록 시골티가 있다 하더라도, 아무리 시골 사람을 낮추 보는 갑진의 눈에도 숭은 당당한 대장부였다.
체 격뿐 아니라 숭의 두뇌(이것은 갑진이가 심히 존중하는 것이었다)는 고보시대부터 좋기로 이름이 있었다. 또 숭은 풋볼 선수(이것은 갑진이가 부러워하지 아니하는 것이었다)요, 일본말을 썩 잘하였다(이것은 갑진이가 심히 존중하는 것이었다). 만일 숭도 갑진과 같이 대학에를 다닌다 하면, 갑진은 시골 상놈이라는 것밖에는 숭을 낮추 볼 아무 조건도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갑진의 눈에는 조선 사람이 하는 것은 (자기가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 낮게 보이고, 값없이 보였다. 그래서 숭을 사립전문학교 생도라고 보면 자기보다 한없이 떨어지게 보였다.
'그러나 설마, 윤참판이 허숭이로 정선의 사위야 삼을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갑진은 한번 더 숭을 바라보았다.
'나, 김갑진을 두고 누가 정선의 남편이 되랴.'
이 렇게 갑진은 속으로 믿어 왔던 것이다. 대학만 졸업하는 날이면 자기는 정선과 혼인을 하고, 그리 되면 정선은 적더라도 천 석 하나는 가지고 올 것이요, 또 그리고, 또 그리고―---이렇게 다 셈쳐 놓았던 것이다. 혹시 갑진에게 청혼하는 집이 있더라도 갑진이가,
"아, 나는 아직 혼인할 생각 없소. 공부하는 사람이 혼인이 무슨 혼인이오?"
하 고 뽐낸 것도 다 이러한 배짱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갑진에게 있어서는, 가난한 귀족의 아들인 그에게 있어서는 혼인이란 재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자야 어디는 없느냐. 카페에 가도 수두룩하고 여학생을 후려 내더라도 미처 주체를 못 할 형편이다. 오직 돈 있는 아내―---그것이 갑진에게는 가장 귀하고 또 필요품이었다.
그런데 윤참판 집 작은사랑을 독차지한 대장부 허숭을 대할 때에는 갑진의 분홍빛 장래에는 일종의 회색 안개가 낌을 아니 깨달을 수 없었다.
"자네 한턱내야겠네그려."
하고 갑진은 소침한 기운을 억지로 회복하여 농치는 웃음을 웃으며 숭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한턱? 줄행랑에서 이리로 승차한 턱인가?"
하고 숭도 웃었다.
"암, 자네 조상 적에야 윤참판 집에 오면 정하배할 처지 아닌가. 이만하면 자네 고향에 가면 소분(掃墳)해야겠네그려."
하는 갑진의 말은 농담을 지나서 일종의 독기를 품었다.
"마찬가지지."
하고 숭도 농담으로 대꾸를 하였다.
"무엇이 마찬가지어?"
"우리 조상같이 시골 사는 상놈은 자네네 같은 양반집에 정하배를 하였지마는, 그 대신에 자네네 같은 양반은 호인의 집에 정하배를 하였거든. 지금은 일본 사람의 집에 정하배를 하고…… 안 그런가."
갑진의 얼굴에 떠돌던 빈정거리는 웃음이 사라지고 낯빛은 파랗게 질리려 하였다.
"갑 진 군, 자네는 너무도 양반에 관심을 가지는 모양이야. 지금 우리 조선 사람은 모조리 세계적 시골뜨기요 상놈이 아닌가. 그런데 이 조그마한 조선, 몇 명 안 되는 조선 사람 중에서 양반은 다 무엇이고 상놈은 다 무엇인가. 서울 사람은 다 무엇이고 시골 사람은 다 무엇인가. 또 관립학교는 다 무엇이고 사립학교는 다 무엇인가. 김갑진이나 허숭이나 다 한 가지 이름밖에 없는 것일세―--- '조선 사람'이라는."
"상 놈인 걸 어쩌나. 자네 같은 사람은 특별하지만 시골놈은 원체 무지하거든. 내흉하고, 또 시골놈들이란 지방열이 강해서, 서울 사람이라면 미워하고 배척한단 말야. 안 그런가. ○○학교로 보더라도 교장이 시골놈이니깐으로 교원들도 시골놈이 많거든. ○○은행도 안 그런가. ○○신문사도 안 그런가. 그러니깐으로 시골놈들이 고약한 게지, 우리네 서울 사람 탓이 아니란 말야. 그야말로 인식 착오, 자네의 인식 착올세, 인식 착오."
하고 갑진의 말은 연설 구조다.
"그 건 말 안 되는 말야. ○○학교에 시골 사람이 많다고 하나, ○○학교에는 서울 사람뿐이 아닌가. ○○은행에는 시골 사람이 있던가. ○○신문사에는 대부분이 서울 사람이 아닌가. 그러면 그 기관들이 다 서울 사람들의 지방열로 나온 기관이란 말인가. 자네 눈에는 시골 사람만 눈에 띄는 게지. 서울 사람들만 있는 것은 당연한 일로 보이고, 시골 사람이 한두 사람 섞이면 아마 수상하게 보이는 겔세. 아마 옛날부터 조정에는 시골 상놈은 하나도 아니 섞이고, 뉘 집 자식이라고 알 만한 사람들끼리만 모여 있다가, 보학에 들지 아니한 시골 사람이 하나 옥관자라도 얻어 붙이면 변괴로나 알던 그 인습이 남아 있는 게지. 그렇지만 자네 같은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까지 그런 생각을 가져서 쓰겠나. 자네와 나와 같이 친한 경우에야 무슨 말을 하기로 허물이 있겠나마는 시골놈, 상놈 하고 입버릇이 되어 말하면 민족 통일상 불미한 영향을 준단 말야. 자네나 내나, 더구나 자네와 같이 귀족의 혈통을 받은 사람이 나서서 양반이니 상놈이니, 서울놈이니 시골놈이니 하는 걸 단연히 깨뜨리고 오직 조선 사람이라는 한 이름 밑에 서로 사랑하도록 힘써야 될 것 아닌가."
숭의 말에는 정성과 열이 있었다.
갑진은 눈을 멀뚱멀뚱하고 듣고 앉았었다. 숭은 그가 의외에 빈정대지도 않고 듣는 것을 기쁘게 여겼다. 그러나 숭의 말이 다 끝난 뒤에 갑진은,
"인제 시조 다 했니? 이런 전 쑥이. 누굴 보고 강의를 하는 게냐, 훈계를 하는 게냐."
익 선동 한(韓)선생이라면 다만 배재학당 계통과 보성전문학교 학생들에게만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내 중등 이상 학교 학생간에는 아는 이가 많았다. 그는 본래 배재고보에 영어 교사로 있다가 보성전문학교 강사로 와 있게 된, 그러면서도 여전히 배재와 이화에 영작문 시간을 맡아 보는 한 오십 된 사람이다. 그는 계통적으로 공부한 학력이 없기 때문에 전문학교에도 교수가 되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고등보통학교에서도 교원 자격이 없다. 그래서 월급이 싸다.
한 선생의 이름은 민교(民敎)다. 그는 한민교라는 그 이름이 표시하는 대로, 조선 청년의 교육자로도 일생의 사업을 삼는 이다. 그는 일찍 동경에서 중학교를 마치고는 정칙영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역사, 정치, 철학 이러한 책을 탐독하였다. 그리고 조선에 와서는 그러한 조선 사람이 밟는 경로를 밟아 감옥에도 들어가고, 만주에도 가고, 교사도 되고, 예수교인도 되었다. 그가 줄곧 교사 노릇을 하기는 최근 십 년간이다.
한 선생의 집은 익선동 꼬불꼬불한 뒷골목에 있는 조그마한 초가집이다. 대문이 한 간, 행랑 겸 사랑이라고 할 만한 것이 한 간, 안방이 간 반, 건넌방이 한 간, 그런데 웬일인지 마루만은 넓어서 삼 간, 그리고는 광이라고 할 만한 것이 뒷간 아울러 두 간, 그리고 장독대, 손바닥만한 마당, 부엌이 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익선동 조그만 초가집이라면 한선생 집이다.
방 이 좁고 내객은 많으니까 턱없이 넓은 삼 간 마루에는 당치도 아니한 유리분합을 들였다. 이 방을 놀러 다니는 학생들은 한선생네 양실이라고 일컫는다. 딴은 양실이다. 조선식 방은 아니니까 양실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하나씩 기부한 교의가 너덧 개 있다. 혹은 졸업하고 가면서 제가 앉던 교의, 혹은 초전골 고물전에서 사온 교의, 그러니까 둘도 같은 것은 없고 형형색색이다. 나무만으로 된 놈, 무늬 있는 헝겊을 씌운 놈, 가죽으로 된 놈, 그 중의 한 개는 아주 빨간 우단으로 싼 놈까지 있다.
선 생의 부인은 벌써 백발이 다 된 할머니다. 선생보다 사오 년은 더 늙어 보였다. 가족이라고는 내외밖에는 금년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딸 하나가 있을 뿐이요, 아들은 기미년에 의전에 다니다가 해외로 달아나서 이따금 편지가 있을 뿐이었다.
허숭도 물론 이 집에 다니는 학생 중의 하나다. 김갑진도 배재 시대 관계로 가끔 놀러 온다. 이화의 여학생들도 간혹 놀러 온다.
하루는 한선생 집에 만찬회가 열려서 학생이 십여 명이나 모였다. 눈 오는 어느 날, 한선생네 양실에는 방울만한 난로가 석탄불이 달아서 방이 우럭우럭하고, 난로 뚜껑 위에 놓인 주전자에서 하얀 김이 소리를 지르고 올랐다.
부엌에서는 한선생의 부인이 이웃집 행랑어멈을 임시로 청하여다가 음식을 만들고, 한선생의 딸 정란(廷蘭)은 들며 나며 심부름을 하고 있다. 이때에,
"문 열어라."
하는 이는 한선생이다.
"아버지."
하고 정란은 앞치마로 손을 씻으며 뛰어나간다.
"아이, 아버지 외투에 눈 봐요."
하고 정란은 하얀 조그만 손으로 한선생의 외투 가슴과 어깨에 앉은 눈을 떤다.
"아직 아무도 안 오셨니?"
하고 한선생은 쿵쿵 하고 발에 묻은 눈을 떤다.
"어느새에."
하고 정란은 아버지의 모자를 받고 신끈을 끄른다.
"내 끄르마."
"아녜요, 내 끄를게요."
한선생은 양실에 들어가서 외투를 벗어 정란에게 주고, 정란이가 오늘 손님을 위하여 애써 차려 놓은 방을 둘러보고 만족한 듯이 웃었다.
정 란은 아버지의 책상과 이 양실을 아버지의 뜻에 맞도록 차려 놓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알았다. 분합문의 문장은 정란이가 손수 자수한 것이었다. 아직 솜씨는 서투르다 하더라도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는 정성을 담은 것이다. 한선생은 딸의 그 정성을 잘 알아줄 만한 아버지였다.
또 정란은 나무때기 교의에는 수놓은 방석을 만들어 깔았고, 테이블에는 테이블보를 수놓아 깔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책상(이것은 또 집에 어울리지 않게 큰 서양식 데스크였다)에는 잉크병 놓는 쿠션, 팔 짚는 쿠션, 필통 놓는 쿠션, 벼루 놓는 쿠션 등 큰 것, 작은 것 귀찮으리만치 많은 쿠션이 있었다. 정란의 생각에는 난로 뚜껑에까지 무엇을 짜서 깔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면 무지한 난로는 정란이가 정성들여 만든 예술품을 탐내어 집어먹었을 것이다.
한선생이 정란이가 아버지를 위해서 난로 앞에 놓은, 나무때기 팔 놓는 의자에 앉았다. 수척한 한선생에게는 바깥 날이 추웠던 것이다.
"과히 덥지 아니하냐."
하고 한선생은 난로 문을 열어 보며, 안방에서 아버지의 조선옷을 내어 아랫목에 깔고 있는 정란에게 물었다.
"아녜요, 바로 아까 육십오도던데."
하고 양실로 뛰어나와서 아버지 책상에 놓은 한란계를 본다.
"칠십도야."
하고 정란은 웃는다.
"건넌방 문을 좀 열어 놓아요?"
하고 아버지 뜻을 묻는다.
한 선생은 퍽 수척하였다. 광대뼈가 나오고 볼은 들어갔다. 약간 벗어진 머리는 반나마 희었다. 오직 그 눈만이 힘있게 빛난다. 본래는 건장한 체격이던 것은 그의 골격에만 남았다. 그는 일생의 고생―---가난의 고생, 방랑의 고생, 감옥의 고생, 노심초사의 고생, 교사 노릇의 고생, 청년과 담화하는 데 고생으로 몸은 수척하고 용모에는 약간 피곤한 빛을 띠었다.
그 러나 아무도, 그와 일생을 같이한 부인도 일찍 그가 낙심하거나 화를 내거나 성을 내는 빛을 보지 못하였다. 그는 언제나 태연하고 천연하였다. 그는 도무지 감정을 움직이는 빛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는 야멸차거나 냉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딸을 사랑하고 친구와 후배를 사랑하였다. 더구나 그는 조선이란 것을 뜨겁게 사랑하였다. 그의 책상머리 벽에는 조선 지도가 붙고, 책상 위에는 언제든지『삼국유사(三國遺事)』,『삼국사기(三國史記)』같은 조선의 역사나 또는 조선 사람의 문집을 놓고 있었다. 그는 매일 반드시 단 한 페이지라도 조선에 관한 무엇을 읽는 것으로 규칙을 삼고 있었다.
손님들이 모이기를 시작하였다. 손님은 다 학생들이었다. 맨 처음 온 이가 경성대학 문과에 다니는 김상철(金相哲)이었다. 그는 키가 작고 얼굴이 가무잡잡한 사람이었다.
이 어서 경성의전, 세브란스의전, 보성전문, 고등상업, 고등공업 등 정모와 정복을 입은 학생들이 오고, 이화전문의 여학생이 둘이 왔다. 한 여학생은 미인이라고 할 만하였으나, 한 여학생은 체조 선생이라고 할 만하게 다부지게 생긴 여자였다. 그들은 심순례(沈順禮), 정서분(鄭西芬)이라는 이름이었다.
전 기가 들어오고 시계 바늘이 여섯시를 가리킬 때에 세비로 입은 두 청년이 왔다. 하나는 키가 후리후리하고 혈색이 좋은, 눈이 어글어글한 서양식 하이칼라 신사요, 하나는 키가 작고 몸이 가냘프고 눈만 몹시 빛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이건영(李健永) 박사와 윤명섭이라는 발명가였다.
곰국을 끓이고 갈비와 염통을 굽고 뱅어저냐까지도 부쳐 놓았다. 정란은 수놓은 앞치마를 입고 얌전하게 주인 노릇을 하였다.
"자, 변변치 않지마는 다들 자시오."
하고 한선생이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오래간만에 조선 디너를 먹습니다."
하고 미국으로부터 십여 년 만에 새로 돌아온 이건영은 극히 감격한 모양으로 감사하는 인사를 하였다.
"미국 계실 때에도 조선 음식을 잡수실 기회가 있어요?"
하고 체조 교사같이 생긴 정서분이가 입을 열었다.
"예스, 프롬 타임 투 타임(예, 이따금)."
하고 이박사는 분명한 악센트로, 영어로 대답을 한다. 그리고는 이어서 조선말로,
"서방(캘리포니아 등지)에 있을 때에는 우리 동포 가정에서 조선 음식을 먹을 기회가 있습니다. 김치도, 그렇지마는 이렇게 김치 맛이 안 나요. 선생님 댁 김치 맛납니다."
하면서 김칫국을 떠서 맛나게 먹는다.
"김치 맛이 아마 조선 음식에 있어서는 가장 조선 정신이 있지요."
하고 대학 문과에서 조선 극을 전공하는 김상철이 유머러스한 말을 한다.
"브라보우!"
하고 이박사가 영어로 외치고,
"참 그렇습니다. 김치는 음식 중에 내셔널 스피릿(민족정신)이란 말씀이야요."
하고 그 지혜를 칭찬한다는 듯이 상철을 보고 눈을 끔쩍한다. 상철은 픽 웃고 갈비를 뜯는다.
"갈비도 조선 음식의 특색이지요."
하고 어떤 학생이,
"갈비를 구워서 뜯는 기운이 조선 사람에게 남은 유일한 기운이라고 누가 그러더군요."
"응, 그런 말이 있지."
하고 한선생이 갈비 뜯던 손을 쉬며,
"영국 사람은 피 흐르는 비프스테이크 먹는 기운으로 산다고."
하고 웃는다.
"딴은 음식에도 각각 국민성이 드러나는 모양이지요."
하고 또 한 학생이,
"일본 요리의 대표는 사시미(어회)지요. 청요리의 대표는 만두, 양요리의 대표는 암만해도 토스티드 치킨(닭고기 구운 것)이지요."
"여기는 토스티드 하앗(염통 구운 것)이 있습니다, 하하."
하고 이건영 박사는 염통 구운 것을 한 점을 집어 먹으며, 서분과 순례 두 여자를 본다. 순례의 입에는 눈에 띌 듯 말 듯 적은 웃음이 피었다가 번개같이 스러진다.
"김군, 어째 오늘 그렇게 얌전하오?"
하고 한선생이 김갑진을 바라본다.
"제야 언제는 얌전하지 않습니까."
하고 커다란 배추김치를 입에 넣고 버적버적 요란하게 소리를 내고 씹는다.
"이 사람은 변덕쟁이가 되어서 그렇습니다."
하고 어느 동창이 웃는다. 다들 따라 웃는다. 사람들, 더구나 처음 보는 두 손님의 시선이 갑진에게로 향한다.
"그런데."
하고 갑진은 입에 물었던 밥을 김칫국과 아울러 삼키며,
"그런데 미국 유학생들은 왜들 다 쑥이야요? 그놈들 영어 한마디 변변히 하는 놈도 없으니 웬일야요?"
하고 아주 천연스럽게 이박사를 본다. 이박사는 하도 의외의 말에 눈이 뚱그래지고, 순례는 제가 창피한 꼴이나 당하는 듯이 고개를 푹 수그린다. 다른 학생들은 픽픽 웃는다.
"이 사람아."
하고 허숭이가 갑진의 옆구리를 찌른다.
"선생님, 제 말이 잘못되었어요? 이 사람들이 픽픽 웃으니."
하고 갑진은 더욱 천연스럽다.
"그야 미국 유학생이라고 다 공부를 잘하겠소.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지."
하고 한선생도 빙그레 웃는다.
"어디, 미국서 박사니 무엇이니 해가지고 온 사람치고 무어 아는 사람은 어디 있고, 하는 사람은 어디 있어요? 다들 쑥이지."
하고 갑진은 이박사를 바라보며,
"아마 이박사는 안 그러하시겠지마는."
하고 그도 웃는다. 다들 웃는다.
"미국도 하버드나 예일 같은 대학은 그래도 괜찮다지요?"
하고 갑진은 여전히 미국을 낮추 보는 주의자다.
"프린스턴 대학도."
하고 갑진은 이박사가 프린스턴 출신인 것을 생각하고 한마디를 첨부한다. 다들 갑진의 말을 어떻게 수습할지를 모른다.
이박사는 아직도, 이 경우에 무슨 말을 해야 옳을는지 몰라서, 마치 방망이로 되게 얻어맞은 사람이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양으로 우두커니 앉아서 밥만 먹는다.
"선생님, 안 그렇습니까."
하고 갑진만 혼자서 기운이 나서,
"그 박사 논문이란 것들을 보니까는, 우리들 보통학교에 다닐 때에 작문한 것만밖에 더해요? 그런 논문으로 박사를 한다면 이 애들도 박사 다 됐게요."
하고 동창들을 가리킨다.
"그건 또 싸구려 박사라고 있다네."
하고 연극 학생 김상철이가 한마디 던진다.
갑진의 말로 해서 깨어진 흥은 용이하게 회복할 도리가 없었다. 마치 탈선하여 철교에서 떨어진 열차와 같아서 원상회복은 절망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밥도 거진 끝이 났다.
한선생은 밥숟가락을 주발 위에 뉘어 놓고 인사말을 시작하여 이 파열된 원탁회의를 계속하려 하였다.
"오 늘 저녁 여러분을 오시게 한 것은 다들 아시겠지마는, 존경할 만한 친구 두 분을 소개하기 위함이외다. 한 분은 이건영 박사, 또 한 분은 윤명섭 씨. 이박사는 배재고보를 졸업하시고 미국으로 가셔서 스탠포드 대학에서 에이 비, 프린스턴 대학에서 엠 에이와 피 에이치 디 학위를 얻으셨습니다. 전공은 윤리학과 교육학, 그리고 예일 대학에서 신학사의 학위도 얻으셨습니다. 놀라운 독학자시요, 또 십여 년을 고학으로 공부하신 이입니다. 우리 조선에 이러한 큰 학자와 일꾼을 얻은 것은 참으로 큰 힘이요, 기쁨입니다."
이 말에 이박사는 한선생과 여러 사람을 향하여 골고루 목례한다. 갑진은 코가 밥상에 닿도록 고개를 숙인다.
"또 이 윤명섭 씨는."
하고 한선생은 눈에 일층 빛을 내며,
"윤 명섭 씨는, 조선에서는 보통학교도 고등보통학교도 다닌 일이 없으십니다. 그 대신, 윤명섭 씨는 종교와 실인생의 학문을 하셨습니다. 윤명섭 씨는 혹은 농가의 머슴이 되시고, 혹은 상점의 사환, 혹은 도장을 새기고, 혹은 인력거를 끌고, 혹은 자동차 운전수가 되어 어디까지든지 희망과 자신의 신앙으로 조선을 위하여 무슨 큰 공헌을 하려고 힘을 쓰셨습니다. 윤명섭 씨는 '모세의 지팡이'를 구하는 것으로 인생의 임무를 삼으신다고 합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여러분 다 아시는 바와 같이, 바다를 치면 바다가 갈라지고, 바위를 치면 샘물이 솟아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 지팡입니다. 그렇게 믿고 힘쓴 결과로 윤명섭 씨는 벌써 삼십여 종의 발명을 하여 전매 특허권을 얻으셨고, 그보다도 세계를 놀랠 만한 대발명, 그것은 아직 비밀이나 거의 완성된 대발명을 하시는 중입니다. 금후 일년이면 이 발명이 아주 완성되어서, 다만 세계의 학계를 놀라게 할 뿐 아니라 전세계 인류의 생활에 대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위대한 발명가를 낳은 것을 민족의 자랑으로 기쁨으로 알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일동의 시선은 윤명섭의 초라한, 조그마한 몸으로 쏠렸다.
한선생은 무엇을 적은 종이 조각을 꺼내어 들고,
"나는 이 윤명섭 씨의 일상 생활 좌우명을 여러분께 읽어 드리려 합니다. 내가 깊이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여러분께도 그 감동을 나누려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맹세한 나의 일상 생활
일, 아침에 삼 분간 기도(자리 속에서 하루의 계획).
이, 밤에 삼 분간 점고, 그날을 반성하여 기도, 성경 낭독.
삼, 과거의 고생을 생각하여 삼 분간 묵상(위인의 과거를 생각), 더욱 분투를 결심, 모든 이의 은혜를 잊지 아니할 것.
사, 사명―---이상과 희망을 실현하기에 노력하고 평생 노력하고 평생 생각할 일.
오, 연구와 범사에 충실할 일.
육, 기회로 생각하면 주저치 말고 할 일.
칠, 물건을 살 적에는 삼 분간 생각할 일.
팔, 건강에 주의할 일.
나의 시간
일, 학교 수업 일곱 시간.
이, 통학, 식사, 편지 회답, 기타 세 시간.
삼, 학교 학과 복습 예습 세 시간.
사, 돈벌이 세 시간.
오, 발명 연구 네 시간.
육, 수면 네 시간. 도합 스물네 시간.
일요일은 교회, 오락, 독서, 방문.
이러합니다."
한선생의 이박사와 윤명섭 소개가 끝나자, 일동은 이상하게 고요한 침묵 속에 있었다. 저마다,
'나도 한 가지 조선을 위해서 무슨 큰일을 해야겠다. 그리하자면 이씨나 윤씨와 같은, 또는 한선생과 같은 극기, 헌신, 분투의 생활을 해야겠다.'
하는 심히 단순한, 그러나 심히 감격 깊은 생각을 하였다.
'옳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고 허숭은 생각하였다.
'농 민 속으로 가자.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몸만 가지고 가자. 가서 가장 가난한 농민이 먹는 것을 먹고, 가장 가난한 농민이 입는 것을 입고, 그리고 가장 가난한 농민이 사는 집에서 살면서, 가장 가난한 농민의 심부름을 하여 주자. 편지도 대신 써주고, 주재소, 면소에도 대신 다녀 주고 그러면서 글도 가르치고 소비조합도 만들어 주고, 뒷간, 부엌 소제도 하여 주고, 이렇게 내 일생을 바치자.'
이러한 평소의 결심을 한번 더 굳게 하였다. 대규모로 많은 돈을 얻어 가지고 여러 사람을 지휘하면서, 신문에 크게 선전을 하면서 빛나게 하자는 꿈을 버리기로 결심하였다.
'나부터 하자!'
하는 한선생의 슬로건의 맛을 더욱 한번 깨달은 것같이 느꼈다.
대 학에서 극 연구를 하는 김상철이나, 이전에서 음악을 배우는 심순례나, 다 저대로 조선 사람의 생활을 돕기에 일생을 바치기 위하여 한번 더 결심을 굳게 하였다. 조선 민중예술―---가장 가난한 조선 민중을 기쁘게 할 만한 소설과 극과 음악을 지어 내는 것, 이것도 한선생의 말에 의하건댄 큰일이요, 필요한 일이요, 새로운 조선을 짓는 데 각각 한 주추요, 기둥이었다.
김 갑진은 우선 명재판관이 되어 이름을 높이고 다음에 조선에 일등가는 변호사가 되어 돈도 많이 벌고 인권을 옹호하는 큰 인물이 되자는 것으로 자기의 천직을 삼는다고 하였다. 한선생의 말에 의하면 그것도 조선에 필요한 일이라고 하였다.
무 릇 조선과 조선 사람을 생각하여 저를 희생하고 하는 일이면, 그리하고 그것을 동일한 이데올로기와 동일한 조직하에서 하는 일이면 다 좋은 일이라고 하였다. 더구나 부패하고 마비된 양반 계급에서 갑진과 같이 활기 있고 야심 있는 청년을 찾은 것을 한선생은 기뻐하였다.
심순례의 맘은 차라리 윤명섭에게로 끌렸다. 만일 어느 편으로 끌린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러나 정서분의 맘은 단정적으로 이건영 박사에게로 끌렸다.
순 례의 맘이 명섭에게로 끌린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대개 그의 아버지는 본래 가난한 집 유복자로서, 그 어머니조차 일찍 여의고 외가로 고모의 집으로 불쌍하게 자라나서 종로 어느 지물전에 사환으로 다니다가, 점원이 되었다가 그가 삼십이나 되어서 월수로 돈을 좀 얻어 가지고 독립하여 지물전을 내어서, 이래 근 이십 년간 신용과 근검과 저축으로 볏백이나 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치부책에 치부를 할 만한 글밖에 몰랐다.
그는 술도 아니 먹고, 놀러도 아니 다니고, 재산이 생긴 뒤에도 첩도 아니 얻고(종로 상인은 열에 아홉은 중년에 돈이 생기면 첩을 얻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꼭 가게와 안방을 세계로 삼고 왔다갔다할 뿐이었다.
순 례의 어머니 역시 그 남편과 근검, 저축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였다. 그의 동무들이 모두 금비녈세, 비취비녈세, 하부다일세, 굿일세, 물맞으럴세 하건마는 그는 소화불량(그의 본병이었다)이 심하기나 해야 악박골 약물에나, 그것도 다른 사람들 오기 전에 이른 새벽에 다녀올까, 그리고는 시흥 사는 친정에도 큰일이나 있기 전에는 가지 아니하였다. 오직 내외가 늦게 얻은 딸 순례 하나를 기르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을 뿐이었다.
그래서 순례는 여자 보통학교, 여자 고등보통학교를 거쳐서, 남들은 그만하면 시집을 보내라는 것도 물리치고 순례에게 음악 재주가 있다고 하여 이화전문학교의 음악과에 넣은 것이었다.
"내야 음악이 무엇인지 전문학교가 무엇인지 아오? 그저 재산 물려 줄 것도 없으니깐두루 나중에 무슨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굶어 죽지나 말라고 자격이나 하나 얻어 주려고 그러지요."
하는 것이 순례의 아버지의 순례 전문교육에 대한 의견이었다.
이 러한 자립, 근검, 절제하는 가정에서 자라난 순례는 예술적 천품을 가지면서도, 마치 시골 농가에서 세상 모르고 귀히 자라난 처녀와 같이 모양 낼 줄도 모르고, 말 숱도 없고, 천연스럽고 정숙스러웠다. 처음 보면 무언하고 유치한 것도 같지마는, 속에는 예술가의 예민한 감정이 있었다.
이러하기 때문에 순례는 호화로운 이박사보다도 저와 같이 검소하고 겸손한, 어찌 보면 못생긴 듯한 명섭이가 도리어 맘을 끈 것이었다.
순 례는 아직 학교 선생 외에는(그것도 교실에서만), 일찍 남자와 교제해 본 일이 없었다. 있었다면 전차 차장일까. 간혹 그의 뒤를 따르는 남자 학생들이 없음이 아니었지마는 그는 천연하게 본체만체하였다. 그 남학생들은 얼마를 따라다니고 건드려 보다가는 실망하고 달아났다.
순례가 한선생을 알게 된 것은 이화에 들어가서부터였다. 순례는 이화에 들어가서 비로소 조선 사람 남자 선생을 대해 보았다. 그전에는 보통학교에서나 고등보통학교에서나 늘 조선 남자 선생 담임 밑에 있을 기회가 없었다.
순례는 그 부모에게 한선생 말을 하였다.
"아주 점잖으시고, 엄하시고도 친절하시고, 잘 가르치시고, 또 사회에 명망도 높대."
이 것이 순례가 그 부모에게 한, 한선생에 대한 보고였다. 그 부모는 교육계나 사회에 나와 다니는 인물을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딸 순례를 믿기 때문에 그의 말을 믿었다. 그래서 한번은 순례의 아버지가 한선생을 찾아가서 딸의 장래를 부탁하였다.
"제야 장사나 해먹는 놈이 무얼 압니까. 그저 공부가 좋다니, 자식이라고 그것 하나밖에 없구 해서, 학교에를 보냅지요."
하고 순례의 아버지는 한선생에게 말을 붙였다. 그는 얼굴이 둥그레하고 눈이 크고 턱이 둥글고, 아래와 위에 조선식 수염이 나고, 골격이 크고 뚱뚱하다고 할 만한 조선 사람 타입의 신사였다.
한 선생도 순례 아버지의 꾸밈없는, 순 조선식인 성격에 많이 호감을 가졌다. 조선식 겸손, 조선식 위엄, 조선식 대범, 조선식 자존심, 조선식 점잖음(태연하기 산 같은 것)―---이런 것은 근래에 바깥 바람 쏘인 젊은 사람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한선생은 생각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청년 남녀들의 일본 도금, 서양 도금의 경망하고 조급하고, 감정의 움직임이 양철 냄비식이요, 저만 알고, 잔소리 많고, 위신 없는 양을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순례의 아버지의 이 간단한 말 속에는, 순례가 학교에 있는 동안 잘 감독하고 훈육할 것과, 또 부모에게는―---특히 옛날 조선식 부모에게는 가장 큰 관심사가 되는 혼인까지도 맡아서 해달라는 뜻이 품겨 있었다.
한선생은 순례 아버지의 청을 쾌하게 받았다.
며 칠 뒤에 순례 아버지는 한선생 집에 강원도에서 온 것이라 하여 꿀 한 항아리를 보내었다. 한선생이 담배도 아니 먹고 술도 아니 먹는다는 말을 들은 순례 아버지는 생각하고 생각한 결과로 꿀을 보낸 것이었다. 오늘 이박사와 윤명섭을 주빈으로 이 만찬회를 베푼 데는 순례의 신랑 될 이를 고르는 뜻도 있었던 것이었다.
그 러면 한선생의 심중에 있는 후보자는 누구던가. 그것은 이건영 박사였다. 한선생은 순례를 지극히 믿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자기가 지극히 믿고 사랑하는 남자에게 시집 보내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건영은 배재에 있을 때에 가장 재주 있고 얌전하기로 한선생의 사랑을 받은 학생이요, 또 서양 간 뒤에도 몇 대학에 있는 동안에 항상 뛰어나는 성적을 가졌을 뿐더러 일찍 남녀간에든지 무엇에든지 좋지 못한 풍문을 낸 일이 없었고, 또 그 학식이나 표현능력으로 말하면 그곳 일류 신문과 잡지에 여러 번 기서(奇書)하여 칭찬을 받을 정도였었다. 그래서 한선생은 이박사를 일변 보전이나 연전이나, 이전의 교수로 추천하는 동시에 순례의 남편을 삼았으면 하고 내념에 생각한 것이었다.
며 칠 후에 한선생은 건영과 단둘이 만나서 순례에게 대한 인상을 물었다. 건영은 백 퍼센트로 좋다는 뜻을 표하였다. 그리고 건영의 청으로 순례는 건영과 십여 차나 만나 단둘이서 이야기할 기회도 얻었다. 이삼 차는 단둘이서 호텔에서 저녁도 같이 먹고, 극장에서 활동사진도 보았다.
순 례는 그리 뛰어난 미인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아버지와 같이 얼굴이 둥그스름하고, 눈이 조선식 인자하고 유순함을 보이고 피부가 희고 윤택하고 사지가 어울리고, 특히 손과 코가 아름다웠다. 건영의 말을 듣건댄 그 목소리와 웃음 소리가 가장 좋고, 그보다도 맘이 가장 아름다웠다.
순 례는 일찍 누구와 다툰 일이 없고, 큰소리 한 일이 없고, 많이 웃지도 아니하고, 우는 것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는 그의 아버지와 조선의 선인들과 같이 좀처럼 희로애락을 낯색에 나타내지 아니하고 마치 부처의 모양과 같이 항상 빙그레 웃는 낯이었다. 그의 말은,
"네."
"아니오."
가 대부분이었다. 그는 옛날 조선의 딸이었다.
"순례의 값과 아름다움은 아는 사람만 알지."
하는 한선생의 말에, 건영은,
"참 그렇습니다. 이건영이 저 하나만 압니다."
하였다.
봄이 되어 허숭은 졸업시험을 막 치르고 집으로―---윤참판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은 웬일인지 윤참판이 사랑에 혼자 앉아 있었다.
"댕겨왔습니다."
하는 허숭의 인사에, 윤참판은,
"이리 들어오게."
하고 친절하게 불렀다.
허숭은 들어가서 윤참판의 앞에 읍하고 섰다. 윤참판은 양실 사랑에 난로를 피워 놓고 테이블 앞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거기 앉게."
하고 윤참판은 턱으로 맞은편 교의를 가리켰다.
허숭은 앉았다.
"시험 다 치렀나?"
"네, 마지막 치르고 왔습니다."
"내가 오늘은 자네게 할 말이 있네."
하고 윤참판은 턱수염을 한번 만졌다. 그 수염은 하얗다.
허숭은 다만 윤참판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을는지 모르겠네마는, 나는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일이야. 인제는 자네도 졸업을 했으니 혼인도 해야 아니 하겠나?"
하고 윤참판은 허숭의 눈치를 보았다.
"아직 혼인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고 허숭은 분명히 말하였다.
"혼인할 생각이 없어? 왜?"
하고 윤참판은 눈을 크게 떴다.
"공부도 더 하고 싶구요."
하고 허숭은 누구나 하는 말로 대답을 하였다. 직업도 없고 재산도 없이 어떻게 혼인을 하느냐고 말하기는 싫었다.
"공부는 또 무슨 공부를?"
하고 윤참판은 물었다.
"이왕 법률을 배웠으니 변호사 자격이나 얻어 두고 싶습니다."
"암, 그래야지."
하고 윤참판은 뜻에 맞는다는 듯이,
"변호사가 되려면 고등문관 시험을 치러야 한다지?"
"네."
"갑진이도 금년에 고등문관 시험을 치르러 간다니까 자네도 같이 가 치르지. 칠월이라지?"
"네."
"그럼, 유월쯤 해서 동경으로 가지."
허숭은 동경 갈 노자가 없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동경에 가서 시험을 치르고 오자면 안팎 노자 쓰고 적어도 이백 원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윤참판을 보고 그 돈을 달라고 할 명목은 아무것도 없었다.
허숭이 대답을 못 하고 앉았는 뜻을 윤참판도 짐작하였다. 그래서 허숭을 괴로운 생각에서 건져 주려는 듯이,
"그럼 동경은 가기로 하고……."
하고 잠깐 머물렀다가,
"그 런데 내가 자네 보고 하자는 말은 그것이 아니고, 또 하나 중대한 말일세. 내 딸자식 말이야, 정선이 말일세. 그거, 변변치는 않지마는 자네 혼인해 주지 못하겠나. 나도 인선이 죽은 뒤로는 도무지 의탁할 곳이 없고, 또 자네가 두고 보니까 요새 젊은 사람들 같지는 아니해. 그래서 내가 오래 두고 생각했어. 내 자식을 내가 말하는 것도 무엇하지마는 그리 못쓸 자식은 아니구, 또 자네를 보고 직접 말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지마는 어디 말할 데가 있나. 그러니까 자네도 어떻게 알지 말게."
하였다.
이 말은 허숭에게 있어서는 과연 청천에 벽력이었다. 일찍 이런 일은 몽상도 아니 한 일이었다. 허숭은 기실 어떻게 대답해야 옳은지를 몰랐다. 다만 저도 모르게,
"변호사 자격을 얻기까지는 혼인 문제를 생각하지 아니하겠습니다."
하고 물러나왔다.
윤참판은 이날 아침에 그가 가장 존경하는 재종형 윤한은 선생을 찾아갔다. 가서 정선의 혼인 문제를 말하고 허숭이가 사위로 어떠랴 하고 뜻을 물었다. 한은 선생은 깜짝 놀라며,
"자네, 어찌 그 사람과 혼인을 할 생각이 났나?"
하였다.
"두고 보니까 사람이 진실하고, 문벌은 없지마는 양반다운 점이 보이더군요."
하고 윤참판은 자기의 지인지감을 자랑하였다.
"허게, 해!"
하고 한은 선생은 당장에 찬성하였다. 기실 한은 선생은 자기의 손녀 은경(恩卿)과 허숭과 혼인할까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었다. 한은 선생의 손녀 은경은 지금 동경 성심여학원에서 영문학을 배우고 있는 이였다.
이 렇게 한은 선생의 찬성을 얻은 윤참판은 집에 돌아오는 길로 딸 정선을 불러 허숭에 대한 의향을 물었다. 정선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실상 정선은 일찍 허숭에게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자기를 허숭 같은 시골 사람에게 주려는가 하는 아버지의 뜻을 알 수 없다 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윤참판은 딸의 말 없음을 이의 없는 것으로만 해석하였고, 그뿐더러 딸이 혼인에 대하여 가부를 말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혼인은 되는 것으로 혼자 작정한 것이었다. 허숭이가 윤참판의 청혼에 거절할 리가 있느냐고 생각하였다.
그 러나 허숭에게는 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아니하였다. 왜 그런고 하면 허숭에게는 두 가지 의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얻으면 농촌에 돌아가 농민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다는 것과, 또 하나는 유순에게 대하여 그의 어깨를 안고 머리를 만지며,
"내 또 오께."
한 약속이었다. 이 약속은 물론 약혼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 허숭은 속으로,
'이 여자와 일생을 같이하자.'
하고 생각도 하였거니와, 적어도 유순은―---꾸밈도 없고 옛날 조선식 여성의 맘을 가진 유순은, 허숭의 가슴에 제 이마를 대었다는 것이,
'나는 이 몸을 당신께 바칩니다. 일생에, 죽기까지 나도 당신의 사람입니다. 나는 이것으로써 맹세를 삼습니다. 내 맹세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는 것을 표한 것이었고, 이러한 조선식 신의 관념을 가진 유순으로는, 반드시 자기는 허숭의 처가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매, 허숭은 자기는 이미 혼인한 사람과 같은 책임감을 아니 가질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이유, 즉 농촌으로 가자는 이유도 정선과의 혼인을 불가능케 하는 것이었다. 서울서 여러 십 년 동안 흙이라고 만져 본 일도 없는 정선이 농촌으로 들어가기는 불가능보다 더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허숭은 단연히 윤참판의 통혼을 거절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다시 윤참판이 말하거든 자기는 단연히 거절하리라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윤참판은 허숭은 벌써 자기의 사위가 된 것으로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하기 때문에 다시 허숭에게 말도 하지 아니하였다.
유 월 어느 날, 허숭은 김갑진과 함께 동경역을 향하여 경성역을 떠났다. 허숭은 윤참판이 해입으라는 양복도 거절하고, 학교시대 옷을 그냥 입고, 새 맥고모자 하나를 사 쓰고 윤참판이 주는 가방 하나를 들고 길을 떠났다. 김갑진은 세비로에 스프링 코트를 입은 훌륭한 신사였다. 역두에는 두 사람의 동창들의 정성스럽고도 유쾌한 전송이 있었다.
날 은 맑고 더우나 차창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들어왔다. 차가 차차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모내는 일이 바쁜 듯하였다. 어제, 그제 이틀 연해서 온 비가 넉넉지는 못해도 모를 낼 만하게는 논에 물이 닿았다. 해마다 모낼 때에는 가문다. 죽는다는 소리가 난다. 그러나 사흘만 더 가물면 죽겠다 할 만한 때에는 대개는 비가 오는 법이다. 금년에도 그러하였다. 마치 하느님이 나는 나 할 일을 다한다, 너희들만 너 할 일을 하여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없는 줄 알지 말아라, 나는 있다, 너희가 하느님이 없나 보다 할 만한 기회에 내가 있다는 것을 보인다, 하는 것 같다.
허 숭은 나불나불 바람에 나부끼는 모를 보고, 허리를 굽히고 모를 심는 농부들을 볼 때에, 하늘에 찬 볕과 땅에 찬 생명이 모두 그들을 위하여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 중에 오직 농사하는 일만이 옳고 거룩하고 참된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 차에 올라앉은 사람들은 다 저 농부들의 땀으로 살아가는, 그러면서도 저 농부들의 공로를 모르고, 그들에게 감사할 줄을 모르는 사람들같이 보였다.
"자네 무얼 그리 내다보고 앉었나."
하고 김갑진은 어디로 돌아다니다가 자리에 돌아와서 허숭의 무릎을 턱 친다. 그리고 허숭이가 바라보는 곳을 바라본다. 갑진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저 모내는 것을 보고 있네."
하고 숭은 갑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건 무엇 하러?"
하고 갑진은 한번 더 허숭이가 바라보던 곳을 내다보았으나 이때에는 벌써 열차는 벌판을 다 건너와서 어떤 산 찍은 틈바구니를 달리고 있었다.
"자네네 조상이 대대로 해오던 짓이니까 그리운가 보에그려. 그러니까 개 꼬리 삼 년이란 말이거든."
하고 또 빈정대기를 시작했다.
"자네 눈에는 농사가 그렇게 천해 보이나?"
하고 숭은 약간 감상적이었다.
"그 럼, 요새 상공업시대에 농사라는 게야 인종지말이 하는 게지 무에야. 다른 건 아무것도 해먹을 노릇이 없으니까 지렁이 모양으로 땅을 파는 게 아닌가. 이를테면 자네 같은 사람은 똥 개천에서 용이 오른 심이고, 하하. 지렁이 속에서 용이 올랐다는 게 더 적절할까, 하하."
갑진은 차바퀴 굴러가는 소리보다도 더 큰 소리로 떠들었다. 곁에 앉은 사람들도 갑진의 말을 듣고 빙긋빙긋 웃었다. 그래도 갑진의 천진난만한 태도에 악의나 미운 생각이 섞이지 아니하였다.
"자네 그게 진정인가?"
하고 허숭은 엄숙하게,
"그렇게도 농사와 농민을 이해하지 못하나. 자네 눈에는 그처럼 농민이 벌러지같이 보이나. 만일 진실로 그렇다면 참말로 큰 인식 착오일세."
"어 럽시오, 이건 또 훈계를 하는 심이야. 흥, 농자는 천하지대본야라, 그것을 설법을 하는 심야. 아따 이놈아, 집어치워라. 우리집에도 시골 마름놈들이 오지마는, 그놈들 모두 음흉하고 돼지 같고 어디 사람놈들 같은 것 있더냐. 시골 구석에서 땅이나 파먹는 놈들이 순실키나 해야 할 텐데, 도무지 그놈들 서울 사람 한번 못 속여먹으면 삼 년 동안 복통을 한다더라. 그저 그런 놈들은 꾹꾹 눌러야 해. 조금만 늦구면 버릇이 없어지거든. 안 그러냐, 이놈아. 너는 인제는 전문학교깨나 졸업을 했으니 좀 시골놈 껍질을 벗어 보아. 괘니시리 없는 가치를 붙이려고 말고…… 머 어째? 네가 농촌에 들어가서 농민들과 같이 살 테야? 그럴 게면 공부는 무얼 하려 해? 허기는 그렇기도 하겠다. 고등문관 시험에 낙제나 하는 날이면 그 밖에는 도리가 없겠지, 아하하."
기 차는 산 끊은 데를 지나고 산굽이를 돌아서, 게딱지 같은 농가들이 다닥다닥 붙은 촌락을 지나고, 역시 남녀가 바쁘게 모를 내는 논들을 바라보며 달아났다. 갑진도 숭의 말에 자극이 되어, 그 대단히도 가난해 보이는 농가들과, 대단히도 힘들어 보이는 모 심는 광경을 주목해 보았다. 갑진은 장안 생장으로 이러한 농촌의 광경은 마치 자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어떤 외국의 것과 같이 보였다.
갑진은 낯을 숭에게로 돌리며,
"그러니 저런 집에서 어떻게 하룬들 사나?"
하고 탄식하였다.
"겉으로 보기보다 속에 들어가면 더하다네."
하고 숭은 갑진이 농가에 대하여 새로운 흥미를 느끼는 것이 신기한 듯이,
"저 집 속에를 들어가면 말야, 담벼락에는 빈대가 끓지, 방바닥에는 벼룩이 끓지, 땟국이 흐르는 옷이나 이불에는 이가 끓지, 여름이 되면은 파리와 모기가 끓지. 게다가 먹을 것이나 있다던가. 호좁쌀 죽거리도 없어서 풀뿌리, 나무껍질을 먹고 사네그려……."
하는 숭의 말을 다 듣지도 아니하고 갑진은,
"아따, 이 사람아, 초근목피라는 옛말은 있다데마는, 설마 오늘날 풀뿌리, 나무껍질 먹는 사람이야 있겠나. 자네도 어지간히 풍을 치네그려, 하하."
하고 숭의 어깨를 아파라 하고 철썩 때린다.
숭은 깜짝 놀랐다. 어깨를 때리는 데 놀란 것이 아니라, 갑진이가 조선 사정을 모르는 데 놀란 것이었다. 숭은 이윽히, 벙벙히 갑진을 바라보고 있다가,
"자네 신문 잡지도 안 보네그려?"
하고 물었다.
"내가 신문을 왜 안 보아?《대판조일》,《경성일보》,《국가 학회잡지》,《중앙공론》,《개조》다 보는데 안 보아? 신문 잡지를 아니 보아서야 사람이 고루해서 쓰겠나?"
하고 갑진은 뽐내었다.
"그런 신문만 보고 있으니까 조선 농민이 요새에 풀뿌리, 나무껍질 먹는 사정을 알 수가 있겠나? 자네는 조선 신문 잡지는 영 안 보네그려?"
하고 숭은 기가 막히려 하였다.
"조선 신문 잡지?"
하고 갑진은 도리어 놀라는 듯이,
"조선 신문 잡지는 무엇 하러 보아. 무엇이 볼 게 있다고. 그까짓 조선 신문기자놈들, 잡지권이나 하는 놈들이 무얼 안다고. 그런 걸 보고 있어, 백주에 낮잠을 자지."
숭은 입을 딱 벌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말문이 막혀 버렸다. 갑진은 더욱 신이 나서,
"그 어디 조선 신문 잡지야 보기나 하겠던가. 요새에는 그 쑥들이 언문을 많이 쓴단 말야. 언문만으로 쓴 것은 도무지 희랍말 보기나 마찬가지니, 그걸 누가 본단 말인가. 도서관에 가면 일본문, 영문, 독일문의 신문 잡지, 서적이 그득한데, 그까짓 조선문을 보고 있어? 그건 자네같이 어학 힘이 부족한 놈들이나, 옳지 옳지! 저기 저 모 심는 시골 농부놈들이나 볼 게지, 으하하!"
하고 갑진은 유쾌한 듯이 좌우를 바라보며 웃는다.
"왜 자네네 대학에도 조선문학과까지 있지 아니한가."
하고 숭은 아직도 갑진을 어떤 방향으로 끌어 보려는 뜻을 버리지 아니하였다.
"응, 조선문학과 있지. 나 그놈들 대관절 무얼 배우는지 몰라. 원체 우리네 눈으로 보면 문학이란 것이 도대체 싱거운 것이지마는 게다가 조선문학을 배운다니, 좋은 대학에까지 들어와서 조선문학을 배운다니, 딱한 작자들야. 저 상철이놈으로 말하더라도 무엇이―---춘향전이 어떻고, 시조가 어떻고, 산대도감이 어떻고 하데마는 참말 시조야, 미친놈들."
하고 갑진은 가장 분개한 빛을 보인다.
"미치기로 말하면."
하고 숭은 기가 막혀 몸을 흔들고 웃으면서,
"미치기로 말하면 자네가 단단히 미쳤네."
"누가 미쳤어?"
하고 갑진은 대들듯이 눈을 부릅뜬다.
"자네 말야."
"자네가 누구야?"
"법학사 김갑진 선생이 단단히 미쳤단 말일세."
"어째서?"
"모든 것을 거꾸로 보니 미치지 아니하고 무엇인가. 자네 눈에는 모든 것이 거꾸로 비친단 말야."
"무엇이?"
하고 갑진은 대들었다.
"글쎄, 안 그런가."
하고 숭은,
"자 네는 가치 비판의 표준을 전도한단 말일세. 중하게 여길 것을 경하게 여기고 경하게 여길 것을 중하게 여긴단 말야. 조선 하면 농민 대중이 전인구의 팔십 퍼센트가 아닌가. 또 사람의 생활 자료 중에 먹는 것이 제일이 아닌가. 그 다음은 입는 것이고―---하고 보면, 저 농민들로 말하면 조선민족의 뿌리요 몸뚱이가 아닌가. 지식계급이라든지 상공계급은 결국 민족의 지엽이란 말일세. 그야 필요성에 있어서야 지엽도 필요하지. 근간 없는 나무가 살지 못한다면 지엽 없는 나무도 살지 못할 것이지. 그렇지마는 말일세, 그 소중한 정도에 있어서는 지엽보다 근간이 더하지 않겠나. 그러하건마는 조선 치자계급은 예로부터―---그 예라는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말할 것 없지만―---지엽을 숭상하고 근간을 잊어버렸단 말일세.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고래로 조선의 치자계급이던 양반계급이 말야, 그 양반계급이 오직 자기네 계급의 존재만을 알았거든. 자기네 계급―---그것이야 전민족의 한 퍼센트가 될락말락한 소수면서도―---자기네 계급이 잘살기에만 몰두하였거든. 그게야 어느 나라 특권계급이나 다 그러했겠지마는, 조선의 양반계급이 가장 심하였던 것이 사실이 아닌가. 그래서는 국가의 수입을 민중의 교육이라든지, 산업의 발달이라든지 하는 전국가적 민족적 백년대계에는 쓰지 아니하고, 순전히 양반계급의 생활비요 향락비인―---이를테면 요샛말로 인건비에만 썼더란 말일세. 그 결과가 어찌 되었는고 하면 자네도 아다시피 전민족은 경제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모든 방면으로 다 쇠퇴하여져서 마침내는 국가 생활에 파탄이 생기게 하고, 그리고는 그 결과가 말야, 극소수, 양반 중에도 극히 권력 있던 몇십 명, 몇백 명은 넘을까 하는 몇 새 양반계급을 남겨 놓고는 다 몰락해 버리지 않았느냐 말야."
"어 느 서양 사람이 조선을 시찰하고 비평한 말을 어디서 보았네마는, 그 사람의 말이 나무 없는 산, 물 마른 하천, 좋지 못한 도로, 양의 우리 같은 백성들의 집, 어리석고 쇠약한 사람들, 조선에서 눈에 띄는 것이 모두 다 맬러드미니스트레이션(실정)의 자취라고."
"이 사람의 말에 자네 반대할 용기가 있나. 조선의 모든 쇠퇴가 정치를 잘못한 자취라는 말을? 그것이 다 양반계급의 계급적 이기욕과 가치판단의 전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말야. 아냐, 내 말을 끝까지 듣게. 그런데 말야, 자네와 같은 지식계급이 아직도 그러한 전도된 가치판단을 한다는 것은 심히 슬픈 일이 아닌가. 우리네 새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여러 백 년 동안 잊어버렸던, 아니 잊어버렸다는 것보다도 옳지 못하게 학대하던 농민과 노동 대중의 은혜와 가치를 깊이 인식해서 그네에게 가서 봉사할 결심을 가지는 게 옳지 아니하겠나?"
숭은 말을 끊었다.
두 사람이 부산 부두에 내린 때에는 여름의 긴 날도 저물었다. 낮에 날이 좋던 모양으로 밤도 좋았다. 바다로 불어오는 바람은 온종일 차중에서 부대끼던 허숭, 김갑진 두 사람에게는 소생하는 듯한 상쾌함을 주었다. 더구나 오륙도 위에 달린 여름의 보름달은 상쾌, 그 물건이었다.
두 사람은 짐을 들고 연락선으로 향하였다. 정거장에서 부두까지에는 일본으로 향하는 노동자가 떼를 지어 오락가락하였다. 머리를 깎은 이, 상투 있는 이, 갓 쓴 이조차 있었고, 부인들도 여기저기 보였다. 그 중에는 방직 여공으로 가는 듯한 처녀들도 몇 패가 있었다. 고무신을 신은 이, 게다를 신은 이, 운동 구두를 신은 이, 잘 맞지도 않고 입을 줄도 모르는 시마 유카다(일본 여름옷)를 입은 이, 도무지 형형색색이었다. 말씨도 대개는 경상도 사투리지마는 길게, 가냘프게 뽑는 호남 말도 들리고, 함경도 말, 평안도 말도 들리고, 이따금은 단어의 첫 음절과 센턴스의 끝음절을 번쩍번쩍 드는 경기도 시골 사투리도 들렸다. 각 지방에서 모여든 모양이다.
쓰메에리, 무르팍 양복을 입고 왼편 팔에 붉은 헝겊을 두른 사람들이 위압적 태도와 언사로 군중을 지휘하는 것은 이른바 노동 귀족인 패장인가 하였다.
배에 오를 때에는 보통 여객과 노동자와는 특별한 취급을 받는 모양이었다. 사다리 밑에 좌우로 늘어선 사복 형사는 용하게도 조선 사람을 알아내어서는 붙들고 여행증명서를 검사하였다. 허숭도 김갑진도 증명서를 내어보였다.
"여행권 검사요?"
하고 갑진은 불쾌한 듯이 경관에게 물었다.
"여행권이 아니야, 증명서야, 신분증명서야!"
하고 형사는 굳세게 여행권이라는 말을 부인하였다. 그리고 갑진을 눈을 흘겨보았다.
"어서 가세."
하고 허숭은 또 갑진이가 무슨 말썽을 부리지나 아니할까 하여 소매를 끌었다. 갑진은 형사에게 대꾸로 한번 눈을 흘기고 허숭의 뒤를 따랐다.
갑진이가 배만은 이등을 타자고 하는 것을 숭은 삼등을 주장하여 뒷갑판 밑 삼등실로 내려갔다.
삼 등실에서는 후끈하는 김이 올랐다. 구역나는 냄새가 올랐다. 벌써 들어와서 자리를 잡은 객들―---그 중에 반수 이상은 조선 노동자였다―---은 저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담요 조각을 깔고 드러누웠다. 뒤에 들어가는 사람은 먼저 들어간 사람이 잡은 자리의 한 부분을 얻어서 궁둥이를 붙였다.
숭 도 한편 구석에 자리를 잡았으나, 갑진은 아무리 하여도 여기는 있을 수 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고 서 있었다. 숭은 갑진의 가방을 빼앗아다가 제 가방 곁에다가 놓고, 갑진의 팔을 잡아 잡은 자리로 끌어다가 어깨를 눌러서 앉혔다. 갑진은 숭이가 하는 대로 복종하였다.
사 람은 많건마는 다들 떠들지는 아니하였다. 마치 앞날의 알 수 없는 운명을 바라보는 듯이, 또 두고 온 고향의 산천과 이웃―---그것은 그다지 유쾌한 기억을 자아낼 재료도 못 되련마는―---을 생각하는 듯이 눈을 껌벅껌벅하고 앉았을 뿐이었다.
"자, 이 사람."
하고 숭은 갑진의 모자를 벗겨서 가방 위에 놓으며,
"오 늘은 자네 평생에 처음 조선 대중과 함께하는 날일세. 저 사람들이 얼마나 가난한지, 얼마나 영양불량인지, 얼마나 무식한지, 또 얼마나 더러운지, 또 무엇을 생각하는지, 또 어찌하여 고향을 버리고 처자를 버리고 떠나는지, 저 사람들의 장래가 무엇인지 좀 알아보게."
하고 웃었다. 갑진은 끄덕끄덕하였다.
삼등 선실은 찌는 듯이 더웠다―---무더웠다. 배가 떠나기도 전에 벌써 땀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처 음 배를 타보는 모양인 노동자들과, 그 중에도 여자들은 멀미 나기 전에 잠이 들려고 베개에다가 이마를 박고 애를 쓰지마는, 애를 쓰면 쓸수록 잠이 들지 아니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전전반측하는 불안의 상태는 그들 자신의 생명의 불안, 그 물건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젖먹이가 어미의 젖에 매달려서 보채는 양이 실내의 공기를 더욱 암담하게 하였다. 반백이나 된 늙은이가 멀거니 허공을 바라보고 앉았는 양도 갑진에게 무겁게 내리누르는 무엇으로 느껴졌다.
쿵 쿵쿵쿵 하고 배는 진동하기 시작하였다. 쇠사슬 마찰되는 소리가 울려 왔다. 가만히 앉아서도 배가 방향을 돌리는 것이 감각되었다. 여러 번 이 뱃길을 다녀 본 듯한, 이들 중에는 개화꾼인 듯한 젊은 패 몇 사람이 일본 사람 식으로 다리를 꼬고, 두 팔로 무릎을 짚고 앉아서 서투른 일본말로 떠드는 것만이 있고는 모두 고요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갑판에 올라가서 해풍을 쏘인다든지, 또는 멀어 가는 고향산천을 바라본다든지 할 맘의 여유도 기운도 없는 것 같았다. 그저,
'나를 어디나 편안히 살 곳으로 실어다 주오. 그저 살려 주오. 못 살 데로 데려다 주더라도 또한 어찌할 수 없소.'
하는 것 같았다.
"나가세, 좀 밖으로 나가세."
하고 갑진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듯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몸의 더움에, 맘의 압박에 견딜 수가 없었다. 숭도 갑진을 따라 갑판으로 나왔다. 갑판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에이, 시원하다."
하고 갑진은 체조할 때 모양으로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시원한 해풍은 그의 명주 와이샤쓰를 보기 좋게 팔랑거렸다.
검푸른 바다, 밝은 달, 시원한 바람, 드문드문 반짝거리는 하늘의 별과 바다의 어선. 때때로 보이는 하얀 물결의 머리.
"어, 시원해."
하고 갑진은 구조정 밑 조용한 난간에 가슴을 기대고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부산항의 불이 신기루 모양으로 보였다. 오륙도 작은 섬들도 물결 틈에 앉은 갈매기와 같았다. 동으로 보면 망망대해다. 어디까지 닿았는지 모르는 물과 물결. 숭도 가슴에 막혔던 것이 쏟아져 나온 것같이 가벼워짐을 깨달았다.
"참 바다는 좋의그려. 밤바다는 더욱 좋은데."
하는 갑진의 긴 머리카락도 기쁨에 넘치는 듯이 춤을 추었다.
"바다에 나와 보면 우주도 꽤 크이."
하고 숭은 맘없는 대꾸를 하였다.
두 사람은 가지런히 서서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선실에서 보던 모든 무거운 생각을 해풍에 날려 보내고 잠시 신선이나 되려는 듯이. 이 때에 뒤에서,
"여보세요!"
하는 여자의 소리가 들렸다.
숭과 갑진은 깜짝 놀라서 돌아섰다. 눈앞에는 머리를 땋아 늘인 열 오륙 세나 되었을까 한 여자가 서 있다. 달빛에 비친 그 얼굴은 마치 시체와 같이 창백하였다. 바람에 펄렁거리는 그 치마는 분명 남 인조견이었다.
숭과 갑진은 대답할 바를 모르고 멍멍히 섰다.
"저를 살려 주세요."
하 고 여자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속삭였다. 어느 사람에게 의지할 것인가 하는 듯하였다. 여자는 사람의 눈을 피하는 듯이 염치 불고하고 두 사람이 섰는 틈에 들어와 끼여 섰다. 숭은 두어 걸음 물러나서 여자가 설 자리를 비켜 주었다.
갑진은 곧 놀란 것을 진정하고 그 여자와 가지런히 서서 갑진의 특색인 쾌활하고 익숙한 어조로,
"웬일요?"
하고 물었다.
여자는 또 한번 좌우를 돌아보았다. 숭은 여자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큰 갑판에서 바라보이는 곳을 막아 섰다. 여자는 그제야 안심하는 듯이,
"저는 밀양 삽니다."
하고 여자는 억양 있는 경상도 말로 시작하였다.
"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의 빚을 져서 빚값에 저를 팔았어요. 아버지는 일본으로 시집을 간다고 속이시지마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이니까 갈보로 팔려 가는 거래요."
하고 말이 아주 분명하다.
"빚은 얼마나 되오?"
하고 갑진이가 묻는다.
"촌 에 농사하는 사람치고 빚 없는 사람 어디 있나요? 우라버지 빚은 일백오십 원이랍니다. 소를 한 마리 사느라고 오십 원을 꾼 것이 자꾸만 이자는 늘고, 농사는 안 되고 해서 그렇게 많아진 거래요. 소는 빼앗기고도 일백오십 원이랍니다. 그러니 죽으면 죽었지 일백오십 원을 어떻게 갚습니까. 그래서 저를 빚값에 팔았습데다. 오십 원 더 받고……."
하고 부끄러운 듯이 여자는 고개를 숙인다. 갑진의 맘에 '이만하면 갈보로 살 생각이 나겠다' 하리만큼 그 여자는 이쁘장하였다.
"학교에 다녔소?"
하고 숭이가 물었다.
"네, 우리게 보통학교 졸업했습니다."
갑진과 숭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만하기에 말이 이렇게 조리가 있는 것이다 하였다.
"대관절, 그럼 어떡허란 말요?"
하고 갑진은 성급한 듯이 결론을 물었다. 여자는 어린 듯이, 또 애원하는 듯이 갑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그럼 날더러 이백 원을 내어서 물러 달란 말요?"
하고 갑진은 또 물었다,
"네."
하고 여자는 더욱 고개를 숙이면서,
"선생님 댁에 가서 무엇이든지 시키시는 일은 다 해드릴게 저를 물러 주세요. 밥도 질 줄 알고 방도 치울 줄 압니다. 갈보 되긴 싫어요!"
하고 여자는 울기를 시작했다.
"어, 이거 큰일났군."
하고 갑진은 숭을 돌아보며 기막힌 웃음을 하였다.
이때에 웬 작자가 무르팍 바지를 입고 허둥거리며 오는 것이 달빛에 보였다. 그 작자는 분명 무슨 소중한 것을 찾는 모양이었다.
"저 사람야요, 저 사람야요."
하고 여자는 두 주먹을 가슴에 꼭 대고 갑진의 곁에 바싹 다가선다. 마치 무서운 것을 보고 숨는 어린애 모양으로.
그러나 그 작자는 마침내 바람에 펄렁거리는 여자의 치맛자락을 보았다. 그리고는 붉은 헝겊을 본 소 모양으로 길을 막아 선 숭을 떠밀치고 여자의 곁으로 달려들어 여자의 팔을 꽉 붙들었다.
"이년이 왜 여기 나와 섰어?"
하고는 불량한 눈으로 갑진과 숭을 둘러보며 일본말로,
"웬 사람들인데 남의 계집애를 후려 내어, 고얀놈들 같으니."
하고 여자를 끌고 가려 하였다. 여자는 안 끌리려고 난간을 꼭 붙들었다. 여자의 모시 적삼 소매가 끊어져서 동그스름한 팔이 나왔다. 여자는 소리를 내어서 울며,
"살려 주세요, 네."
하고 갑진과 숭을 애원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건 웬놈이야."
하 고 갑진은 그 작자를 때릴 듯이 주먹을 겨누었다. 그러나 분이 난, 갑진이가 그 여자를 꼬여 내는 줄만 안 그 작자는 다짜고짜로 갑진의 따귀를 떨었다. 그러는 동안에 옷소매를 찢긴 여자는 숭의 곁으로 와서 숭의 등에 낯을 비비며 울었다. 숭은,
"여보!"
하고 그 작자의 멱살을 잡아 홱 끌어내었다. 그 작자는 숭의 주먹에 끌려 비틀거리며 갑진에게서 물러났다. 숭은 그 작자의 목덜미를 꽉 내리누른 채로,
"왜 말로 못 하고 사람을 때린단 말요? 세상에 당신헌테 얻어맞고 가만 있을 사람 있는 줄 알았소? 우리가 이 여자를 꼬여 냈다고 하니 누가 꼬여 냈단 말요. 이 여자가 설운 사정을 하니까 우리가 듣고 있었을 뿐요."
하고 타이를 때에, 갑진은 분을 못 이겨,
"이놈은, 이것은 웬 도둑놈야. 남의 집 딸을 도적하여다가 숫제 갈보로 팔아먹으려 들어 이놈! 너는 좀 콩밥 먹지 못할 줄 알았디?"
하고 들이대어도, 그 작자는 암말도 못 하고 눈만 껌벅거렸다.
"여보."
하고 숭은 그 작자의 목덜미를 놓아 주며,
"이 여자가 당신을 따라가기를 싫어해. 또 법률로 말하더라도 제 뜻에 없는 것을 창기 노릇은 못 시키는 법이오. 허니까, 이 여자를 제 집으로 돌려보내시오. 우리가 이 일을 안 이상에 하관에 가서라도, 동경까지 가서라도 가만 있지는 아니할 것이니까, 어서 이 여자를 돌려보내시오."
하였다.
"나도 돈 주고 샀소. 돈 주고 산 것을 어느 법률이 내노란단 말요?"
하고 그 작자는 숭에게 꼭 달라붙은 여자의 손목을 잡아 끌며,
"가자, 들어가!"
하고 되살았다.
"여보."
하고 숭은 그 작자의 팔을 꽉 붙들며,
"당신이 이백 원에 이 여자를 샀다지? 옜소, 이백 원 줄 테니 이 여자를 돌려보내시오."
하고 숭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주었다. 이백 원은 숭이가 가진 돈의 전부였다. 그 작자는 깜짝 놀라는 빛을 띠더니 싱글싱글 웃으며,
"하하, 당신 이 여자가 퍽 맘에 드시는 모양입니다그려. 그렇지마는 본값에 파는 장사가 어디 있어요? 하나만 더 내시오."
하고 왼손 식지를 내밀었다.
"삼백 원?"
하고 숭은 물었다.
"계집애 이만하면 삼백 원도 싸지요. 열여섯 살이야요, 다 길렀지요."
하고 아주 흥정하는 상인의 어조였다. 그러나 숭에게는 백 원은 없었다. 숭은 갑진을 바라보았다. 갑진은 픽픽 웃더니,
"옜다, 이 더러운 놈아, 백 원 더 받아라."
하고 십 원 지폐 열 장을 세어 주려다가,
"가만있거라, 이 여자를 사올 때에 무슨 증서가 있겠지. 그걸 받아야지."
하고 돈 든 손을 움츠렸다.
그 작자는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두어 적삼 단추를 끄르고, 그 속주머니에서 쇠사슬 맨 지갑을 꺼내어서 달빛에 비치인 여러 가지 서류를 뒤져 인찰지에 쓰고, 수입인지 붙은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달빛에 읽어 보고,
"자, 여기 있습니다. 당신은 대단히 분명하신데, 헤헤."
하고 누구를 줄까 하고 갑진과 숭을 둘러보다가 돈을 쥐고 있는 갑진에게 내어 주었다.
배 에서 내릴 때에는 아침 볕이 하관의 시가에 찼다. 또 형사의 조사가 있었다. 그때에는 숭과 갑진을 따른 어린 계집애에게 대한 조사가 더 까다로웠다. 갑진은 어젯밤 배에서 삼백 원을 주고 샀다는 말을 웃음 섞어 말하고 그 표지까지 내어 보였다. 형사도 웃고 감복한 듯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그래 이 여자를 어찌하시려오?"
하고 형사는 직업의식을 버린 듯이 은근하게 물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소이다."
하고 갑진은 숭을 건너다보며,
"이 사람이 이백 원을 내고 내가 백 원을 내어서 샀는데, 이 계집애를 어떻게 분배를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법률깨나 배우고 지금 사법관 시험을 치르러 가는 길이지마는, 아직 실제 경험이 없으니 어디 당신이 판결을 내려 주시구려."
하고 시치미떼고 말하는 바람에, 형사 두 사람은 픽 웃고 다른 데로 가고 말았다.
"이 사람, 웬 수다야?"
하고 숭이 갑진의 팔을 끌었다. 형사들은 웃으며 두 사람을 힐끗 돌아보았다. 형사들 생각에 갑진과 숭과 계집애와 셋이 걸어가는 꼴이 우스웠던 것이었다.
"얘."
하고 갑진은 가방을 벤치 위에 놓으며 숭더러,
"이놈아, 돈을 다 없앴으니 동경 가서 무얼 먹고 사니? 이 색시를 잡아먹고 살 수도 없고."
하고 정말 걱정이 되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자네, 아직도 백 원은 있지?"
하고 숭도 미상불 걱정이 되었다.
"백 원은 있지마는 백 원을 가지고 둘이―---둘이라니 이 색시도 먹고야 살지. 얘, 이거 뭣이고 큰일났다."
하고 갑진은 머리를 득득 긁더니,
"아무려나 통쾌하기는 했다."
하고 숭의 어깨를 두들기며,
"글쎄, 이 시골뜨기놈의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통쾌한 생각이 났어? 나도 얘, 모두 이백 원밖에 없는 돈에서 백 원 타내 꺼내려니까 손이 떨리더라. 뽐내기는 했지만두, 한번 뽐낸 값이 일금 삼백 원야라는 좀 비싼데, 하하하하."
하고 갑진은 유쾌하게 웃는다.
"헌데 이 색시를 동경으로 데리고 갈 수야 있나."
하고 숭은 그 여자더러,
"집으로 가오, 표 사주께."
하고 물었다.
"싫어요. 집에 가면 아버지가 또 팔아먹을걸요."
하고 여자는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의붓아버지야?"
하고 갑진이가 물었다.
"아니야요, 친아버지입니다."
하고 여자는 낯을 붉히며 대답하였다.
"아, 친애비가 제 자식을 팔아먹는담."
하고 갑진은 눈을 부릅떴다.
"우라버지만 그런가요. 우리 동네에서 딸 안 팔아먹은 사람이 몇이나 돼요? 빚에 몰리면 다 팔아먹는답니다. 장사 밑천 할라고도 팔구, 먹을 거 없어서도 팔구, 빚에 몰려서도 팔구……."
"제 몸뚱일 팔지, 그래 백제 제 자식을 판담. 에익!"
하고 갑진은 더욱 분개하며,
"그러니까 시골놈들은 무지하단 말야. 안 그런가."
하고 발을 탕탕 구르며, 성냥을 뻑 그어서 담배를 피워 문다.
"자식을 팔아먹는 아비의 맘은 어떠하겠나.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나를 생각해 보게."
하고 숭은 추연해진다. 숭의 눈앞에 눈에 익은 농촌의 참담한 모양이 나뜬다.
할 수 없이 숭과 갑진은 그 여자(이름은 옥순이었다)를 데리고 차를 탔다. 도무지 어울리지 아니하는 일행이었다.
그 러나 벤또를 사도 셋을 사고, 과일을 사도 세 개를 사지 아니하면 아니 되었다. 옥순은 얌전한 계집애였다. 아무쪼록 적게 먹고 잠도 적게 자고 두 사람에게 매양 미안한 빛을 보였다. 그것이 가련하여 옥순이 듣는 곳에서는 두 사람은 돈 걱정은 아니하였다. 그래도 속으로는 여비가 걱정이 되었다. 무어라고, 무슨 체면에 윤참판에게 돈을 더 청하나, 그러지 아니하여도 본래 넉넉하게 준 돈을 무엇에다가 다 써버리고 무슨 염치에 돈을 더 달라나.
구월 어느 날 아침. 허숭은 윤참판의 심부름으로 예산에 가고 없을 때, 저녁때나 되어 윤참판이 내객 몇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 전보 한 장이 왔다.
"거 웬 전보냐."
하고 윤참판이 물을 때에 문객은,
"기오수우, 기오수우."
하고 '가타카나'를 그냥 읽었다.
"오, 허숭에게 왔구나. 이리 주게."
하여 윤참판은 전보를 받아서 뜯어 보았다.
"고문 시험, 본일 발표, 귀하 입격."
이라고 하였다. 허숭은 고문 시험에 입격한 것이었다.
"응, 허숭이가 고등문관 시험에 급제했네그려."
하고 윤참판은 자기 아들의 일이나 되는 듯이 기뻐하였다.
"허숭이가 누구오니까."
하고 어떤 객이 물을 때에, 윤참판은,
"내 사윌세, 사위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선이 어디 갔느냐."
하고 노인은 안 대청을 바라보고 불렀다.
"아가씨 후원에 계십니다."
하고 계집 하인이 뒤꼍으로 뛰어갔다.
윤참판은 대청 안락의자에 앉아서 딸이 오기를 기다렸다.
정선은 학교 동창인 동무 두 여자와 함께 후원으로부터 돌아왔다. 정선은 경의복(輕衣服)도 벗어서 하늘빛 하부다이 남 치마에 은조사 깨끼저고리를 입었다. 날은 구월이지마는 아직 더웠다.
정선의 두 동무는 윤참판을 보고 경례하고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동무들과 같이 건넌방으로 들어가려는 정선을 불러 윤참판은,
"숭이가 고등문관 시험에 급제했다는 전보가 왔다. 옜다, 보아라."
정선은 마지못하여 아버지의 손에서 전보를 받아 들고 읽었다. 건넌방에 있는 두 동무들은 정선을 향하여 눈짓을 하고, 아웅을 하였다.
"잘됐어요."
하고 그 전보를 탁자 위에 놓았다.
윤참판은 정선의 표정을 보려는 듯이 빙긋 웃는 눈으로 정선을 바라보았다. 정선은 아무 감동도 없는 듯이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얘, 숭이가 누구냐?"
하고 한 동무가 정선의 귀에다 입을 대었다.
"누구는 누구야, 정선이 허즈번이겠지."
하고 다른 동무가 코를 흥 하였다.
"이애는."
하는 정선은 코 흥 하는 동무의 콧등을 손가락으로 때렸다.
"그러냐, 네 서방님 될 사람이냐."
하고 귀에 대고 말하던 동무가 묻는다.
"아냐, 우리집에 있는 학생야―---고학생야."
하고 정선은 시들하게 대답하였다.
"오, 그 저 행랑에 있던 그 사람이로구나, 보성전문학교 학생?"
하고 한 동무가 눈을 크게 떴다.
"에?"
하고 코 맞은 동무가 놀란다.
"너 그 사람헌테 시집가니?"
하고 또 한 동무가 눈을 크게 뜬다.
"이애들은."
하고 정선은 몸을 뿌리친다.
그날 저녁차에 허숭이가 왔다.
"전보 왔다."
하고 윤참판은 숭이가 인사도 다 하기 전에 서랍을 열고 전보를 꺼내어 숭에게 주었다.
숭은 그 전보를 받아 읽었다. 숭은 기뻤다. 그의 숨결은 높았다. 그것이 무엇이 그리 끔찍한 것이길래, 하면서도 역시 기뻤다. 숭은 팔백여 명 수험생, 전일본에서 모인 수재 중에서 뽑힌 소수 중에 자기가 든 것이 기뻤다.
"갑진 군은 어찌 되었습니까?"
하고 숭은 자기의 기쁨을 감추고 물었다.
"갑진인 아직 소식이 없다."
하고 윤참판은 숭의 손에서 다시 전보를 받아 들었다.
"거기 앉어."
하여 윤참판은 숭을 앉힌 뒤에,
"인제 고등문관 시험도 지났으니, 혼인 일을 작정해야지."
하고 혼인 문제를 꺼내었다.
"저 를 지금까지 공부를 시켜 주시고, 또 일본 갈 여비까지 주시고, 또 따님과 혼인 말씀까지 하시니, 그 은혜를 무어라고 말씀할 수가 없습니다마는, 저같이 집 한 간도 없고 돈 한푼도 없는 놈이 지금 혼인을 어떻게 합니까. 시험에 합격을 했댔자 곧 취직이 되는 것도 아니요……."
하고 숭은 거절하는 뜻을 표하려 하였다.
"그 건 염려할 것 없지. 내가 그것을 모르는 배가 아니고, 그러니까 그것은 염려할 것 없고, 만일 내 딸이 맘에 안 들면 그것은 할 수 없지마는…… 나는 접때에도―---인제 작년이지마는―---접때에도 말한 것과 같이 너를 자식같이 믿으니까. 아다시피 내가 나이 많고 집 일을 보살펴 줄 사람이 없거든. 사람이야 얼마든지 있겠지마는 어디 믿을 사람이 쉬운가. 또 정선이도 인제 이십이 다 되었으니 혼인을 해야지. 도무지 안심이 안 되어. 요새 이십이 넘도록 시집 안 가는 계집애들이 많지마는 어디 다들 믿고 맘을 놓을 수가 있다고. 나는 사람만 보지, 문벌이나 재산이나 도무지 보지 않어."
하고 윤참판은 아버지로의 걱정, 재산가로의 걱정, 세상을 위한 걱정까지도 하여 가며 숭의 승낙을 구하였다.
숭은 한마디로,
'고 맙습니다. 그러나 저는 따님과 혼인할 수는 없습니다. 제게는 유순이라는 여자가 있고, 또 저는 일생을 농촌에서 농민교육운동을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따님과 혼인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따님과 혼인을 하면은, 첫째로 유순이라는 여자에게 대한 의리를 저버리게 되고, 둘째는 농촌에, 농민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게 됩니다. 저는 단연히 농민에게로 돌아가야 하고, 저를 믿고 기다리고 있는 유순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숭의 인격의 명령이요, 양심의 명령이었다. 만일 이렇게 대답했더면 숭은 얼마나 갸륵하였을까. 그러나, 그러나…….
그 러나 숭에게는 그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의 눈앞에는 서울에서도 미인으로 이름 있는 정선이가 있지 아니하냐. 정선은 숭의 마음을 아니 끌지 아니하였다. 지금까지는 종과 상전과 같아서 평등의 지위에서 교제한 일은 없지마는, 이삼 년간 숭이가 이 집에 있는 동안에는 먼 빛에 가까운 빛에 볼 기회도 많았고, 인선이가 죽고 숭이가 이 집 살림의 대부분, 그 중에도 회계 사무를 맡은 뒤로부터는 숭과 정선이 마주 서서 이야기할 기회도 없지 아니하였거니와, 정선의 옥 같은 살빛, 조그맣고 모양 있는 손, 무엇을 생각하는 듯한 눈, 양반집 아가씨다운 기품, 그것은 울려 나오는 피아노 소리와 아울러 숭의 맘을 끌지 아니할 수 없었다―---그러한 정선이가 있지 아니하냐. 게다가 그는 재산이 있다. 누구나 말하기를 정선에게는 삼천 석 이상이 돌아오리라고 한다. 그 어머니가 전주 친정에서 가지고 온 재산의 절반은 당연히 정선에게로 오리라고 한다.
어 디로 보면 이 청혼에 거절할 이유가 있나. 숭은 속으로는 백 번 승낙하였다. 그러나 숭은 무슨 말이나 한마디 거절하는 말을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거절하는 말은 정말 거절이 아니 될 정도의 말이 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숭 은 한참이나 말을 못 하고 가만히 앉았다. 그는 고향에 있는 유순이를 생각하였다. 유순이가 옥수수 삶은 것을 치맛자락에 싸가지고 아직 어두운 새벽에 정거장 길에 나와서 자기를 기다리던 것, 말은 못 하면서도 자기의 가슴에 안기던 것, 자기가 그 등을 만지고 머리를 만진 것, '내, 내년에는 오께' 하고 자기가 그에게 약속을 준 것과, 순진한 유순은 그 가슴에 자기의 모양을 그리고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였다. 숭은 동경에 가서 고등문관 시험을 치르느라고, 또 서울 돌아와서는 성적 발표를 기다리느라고 구월이 되도록 고향에를 못 갔다. 유순은 얼마나 숭을 기다렸을까. 몇 번이나 아침 저녁으로 서울서 오는 차를 바라보고 이번에나, 이번에나 하고 기다렸을까. 만일 숭이가 윤참판의 딸 정선과 혼인을 하여 버린다 하면 유순은 얼마나 슬퍼할까. 얼마나 실망하고 울고 인생을 원망할까. 조선의 딸의 매운 맘으로, 혹은 물에 빠져 죽지나 아니할까. 그뿐 아니라 숭 자신은 의리를 배반하는 것이 아닐까.
'또 농민에게 간다던 맹세는 어찌하나. 일생에 내 한몸의 고락을 생각지 아니하고, 이 몸을 가루를 만들어서라도 불쌍한 농민―---조선 민족의 뿌리요 줄거리 되는 농민을 가르치고 인도하여 보다 힘있고 보다 안락한 백성을 만들자던 맹세는 어찌하나. 한선생과 여러 동지들에게 큰소리하던 것은 어찌하나. 아니다, 아니다. 나는 윤참판의 청혼을 거절하여야 한다. 그리고 유순과 혼인을 해가지고 농촌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숭은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서 윤참판을 바라볼 때에는 그러한 담대한 말이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싱거운 일이다!'
하고 숭은 다시 생각을 돌려 본다.
'내 가 유순과 약혼을 하였느냐. 그의 몸을 버렸느냐. 내가 유순에게 대하여 지킬 의리가 무엇이냐. 내가 유순을 사랑하는 것은 내 맘밖에 아는 이가 없고, 유순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유순의 맘밖에 아는 이가 없지 아니하냐. 하느님? 신명? 그런 것이 정말 있느냐. 있기로니 내가 유순에게 죄를 지은 것이 무엇이냐?'
또 숭은 이렇게 생각해 본다.
'유 순은 좋은 여자다. 얼굴이나 몸이나 또 맘이나 다 든든하고 아름다운 여자다. 그러나 정선은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유순은 보통학교밖에 다닌 일이 없는 시골 계집애, 정선은 신식으로 구식으로 모두 다 컬처가 높은 서울 양반집 딸…….'
하 고 숭은 여기서 스스로 제 생각에 아니 놀랄 수 없었다. 왜 그런고 하면 평소에 갑진이가 시골, 서울, 상놈, 양반 하는 것을 비웃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자기에게도 시골보다도 서울을, 상놈보다도 양반을 좋아하는 생각이 뿌리 깊이 숨은 것을 깨달은 까닭이다.
'나와 같이 고등한 교육을 받고, 고등한 정신생활을 하는 사람이.'
하고 숭은 생각을 계속한다.
'일 개 무식한 시골 여자하고 일생을 같이할 수가 있을까. 불만이 아니 생길까. 아니다! 도저히 불만이 아니 생길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유순과 혼인을 할 생각을 하는 것은 일종의 호기심이다, 실수다. 그것은 다만 나 자신을 불행하게 할 뿐이 아니라, 그보다도 더 유순이라는 죄 없는 여자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나를 불행하게 할 권리는 있다 하더라도 남, 유순을 불행하게 할 권리는 없지 아니하냐. 그렇고말고!'
숭은 마치 큰, 무서운 꿈에서 깨어난 듯한 기쁨과 가여움을 깨달았다. 이러한 분명한 진리를 어떻게 지금까지 생각지 못하였던가 하고 앞이 환하게 열림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농촌사업은?'
하고 숭은 또 양심의 한편 구석에서 소리를 침을 깨달았다. 그러나 숭의 머리는, 양심(?)은 마치 지금까지 가리어졌던 모든 운무가 걷힌 것같이 쾌도로 난마를 끊듯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었다.
'농촌사업은 정선이하고 하지. 정선이야말로 훌륭한 동지요, 동료가 될 수 있는 짝이 아닌가. 아아,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다.'
하고 숭은 한 번 한숨을 내어 쉬었다. 가슴에 막힌 것이 다 뚫린 듯이 시원하였다. 그리고 자기 전도가 백화가 만발한 꽃동산같이 보였다. 그의 양심, 의리감, 진리감, 이러한 것들은 그 분홍 안개 속에 낯을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어서 대답해."
하는 윤참판의 말이 떨어진 것을 다행으로 허숭은,
"그처럼 말씀하시니 저를 버리시지 아니하신다면 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분명히 승낙하는 뜻을 표하였다.
허 숭과 윤참판의 딸 정선과의 약혼은 성립되었다. 정선으로 말하면 원래 숭을 사랑한 것이 아닐 뿐더러 집에 와서 심부름하던 시골 사람을 제 남편으로 삼으려는 아버지의 처사가 불쾌하기조차 하였다. 그렇지마는 정선은 아버지의 뜻이 곧 제 뜻인 것을 안다. 딸은 혼인지사에는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할 것이라는 조선의 딸의 전통적 생각을 가졌으므로, 그는 이에 반항하려는 생각은 없고 도리어 숭을 사랑하려고 힘을 썼다. 숭의 좋은 점을 종합해 보았다. 숭의 건강, 도저히 서울 양반계급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차라리 야만적이라고 할 만한 건강, 그의 남성적인 행동, 힘있게 다문 입, 보기에는 좀 흉업지마는 억센 손, 어깨, 가슴통, 그의 재주, 그의 아첨하는 빛 없는 솔직한 표정과 음성, 여자에 대하여 심히 범연한 듯한 것, 그의 거무스름한 살빛, 좀 과히 많은 듯한 눈썹, 두툼한 입술, 얼른 보기에 둔하다고 할 만하도록 체격과 태도가 무거운 것, 이런 것들을 종합하여 정선은 숭을 남성적이요, 영웅적인 남편을 만들었다. 숭의 깊이 있는 눈과 힘있게 뻗은 코는 더구나 정선에게 인상이 깊었다. 다만 꺼리는 것은 그가 고래로 천대받던 시골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마치 외국 사람과 같은 생각을 주었다. 시골 사람이라면 물지게장수, 기름장수, 마름, 산소 주인 이런 것밖에 더 상상할 수 없는, 해라나 하게 이상으로 말할 사람이 없는 듯한 그런 관념을 가진 정선이, 더욱이나 그의 어머니가 문벌 낮은 시골 여자라는 것으로 일가간에서도 수군거리는 것을 아는 정선이에게는 이것이 고통이 아니 될 수 없었다.
다 만 한 가지 위로되는 것은 윤씨 집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른인 한은 선생이 그 딸들을 모조리 시골 사람에게 시집을 보낸 것이었다. 한 사위는 함경도, 한 사위는 평안도, 한 사위는 황해도, 그리고 한은 선생이 가장 사랑하는 손녀 은경도 시골 사람에게 시집 보낸다고 노 말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한은 선생은 계급타파, 지방감정 타파를 위하여서도 이러한 혼인정책을 쓰지마는, 또 한 가지는 강건한 혈통을 끌어들이려는 것도 한 까닭이었다.
이 모양으로 정선은 그 아버지의 자기 혼인에 대한 처분을 순복하였다.
정 선보다도 이 약혼에 타격을 받은 이는 갑진이었다. 갑진은 떼논 당상으로 정선은 자기의 아내로 생각하였고, 또 윤참판 집 재산의 반분은 으레 제게로 올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리하던 것이 그는 고문 시험에 불합격이 되고(이것은 갑진의 변명에 의하면 자기가 치른 행정과 시험이, 숭이가 치른 사법과 시험보다 어렵다는 것과, 또 자기는 원래 학자 되기를 지원하기 때문에 시험을 도무지 중대시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이었다), 이제 또 그것이 이유가 되어(갑진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름다운 정선과 그 재산을 허숭에게 빼앗긴다는 것은 차마 못 할 일이었다.
사실상 숭이라는 경쟁자가 아니 나섰던들 정선은 갑진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숭이가 고문 시험에 합격을 못 하였더라도 아마 그러하였을 것이다.
"이놈아, 국으로 있지, 백제 네깟놈이 고문 시험을 치러?"
하 고 동경 가는 차 속에서 뽐내던 갑진의 코가 납작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배에서 삼백 원에 산 계집애도 동경에 있는 동안에 숭보다도 갑진을 따랐다. 그래서 마침내 갑진의 것이 되어 버렸다. 이 계집애는 지금 밀양 제 친정에 있거니와 불원에 갑진의 혈육을 낳을 것이다. 갑진이가 울고불고 안 떨어진다는 이 여자를 밀양으로 쫓아 보내고 서울로 온 것은 이 말이 윤참판의 귀에 들어갈 것을 두려워함이었다. 허숭과 윤정선과의 약혼이 발표된 후로 갑진은 윤참판 집에서 발을 끊어 버렸다.
혼 인날은 시월 보름이었다. 시월 보름은 공교하게도 음력으로는 구월 보름이었다. 시월 십오일 오후 세시, 정동예배당에서 허숭과 윤정선은 만인이 다 부러워하는 혼인식을 하기로 되어 시월 초승에 벌써 청첩이 발송되었다. 허숭측 주혼자로는 숭의 청에 의하여 한민교의 이름을 썼다.
한선생은 속으로 숭의 이 혼인에 반대의 생각을 가졌으나, 이왕 약혼이 된 것을 보고는 오직 내외 일생에 행복되기를 빌었다.
"허군."
하고 한선생은,
"그리 되면 서울서 변호사생활을 하시오."
하고 약혼했다는 보고를 듣던 날, 숭에게 질문의 뜻을 품은 권고를 하였다.
숭은 한선생의 이 간단한, 평범한 말이 심히 가슴을 찌름을 깨달았다. 마치 한선생이 자기의 비루한 속을 꿰뚫어보고 조롱하는 것같이도 생각하였다.
"농촌으로 갑니다."
하고 숭은 대답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 럴 수 있나. 서울서 생장한 부인이 농촌생활을 견디오? 또 농촌사업만이 사업의 전체는 아니니까, 변호사생활을 하는 것도 민족봉사가 되지요. 돈벌기 위한 변호사가 되지 말고 백성의 원통한 것을 풀어 주는 변호사가 된다면 그것도 민족봉사지요. 또 변호사란 사람을 많이 접촉하는 직업이니까 좋은 사람을 많이 고를 기회도 있겠지요. 링컨도 변호사 아니오?"
하 고 한선생은 숭의 마음을 안정케 하였다. 숭은 마치 연기가 자욱하여 숨이 막힐 듯한 방에 갇혀 있다가 환하고 시원한 바깥으로 나아갈 문을 찾은 듯하였다. 한선생의 이 말은 숭 자기의 맘을 안정시키는 말임을 잘 안다. 그러하기 때문에 숭은 한선생의 발 앞에 엎드려 그 발등을 눈물로 씻고 싶도록 고마웠다.
나중에 한선생은,
"무 엇이든 개인주의로, 이기주의로만 마시오. 허군 한몸의 이해와 고락을 표증하는 생각을 말고 조선 사람 전체를 위하여 하겠다는 일만 하시오. 그 생각으로만 가시면 서울에 있거나 시골에 있거나, 또 무슨 일을 하거나 허물이 없을 것이오."
하였다.
이 말에 허숭의 가벼워졌던 몸은 다시 무거운 짐으로 눌리는 것 같았다.
'과연 내 이 혼인이 조선 사람 전체를 위하여 내 몸을 바치기에 가장 적당한 혼인일까.'
하고 허숭은 생각하고 거기 대한 대답을 아니 하기로 힘을 썼다.
허숭이 집에―---윤참판 집에, 지금은 처가에 돌아왔을 때에는 양복집에서 와서 기다리는 지가 오래였다.
"글쎄 어딜 갔다가 인제 오시우?"
하고 정선이가 숭을 대하여 눈을 흘겼다. 벌써 그만큼 친밀하여진 것이었다.
"왜? 걱정하셨어요?"
하는 허숭의 말에,
"하셨어요는 다 무에야? 했소? 그러지. 그저 시골뜨기 티를 못 버리는구려."
하 고 정선은 서양 부인이 하는 모양으로 숭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했다. 허숭은 약혼한 뒤에도 정선에게 극존칭을 썼다. 말이 갑자기 고쳐지지를 아니한 것이다. 정선은 그럴 때마다 오금을 박았다. 정선은 아무도 다른 사람이 없을 때에는 숭에게 와서 안기기도 하고, 제 조그마한 손을 숭의 큼직한 손에다가 갖다 쥐어 주기도 하였다.
"자 겨냥해요. 감은 내가 골랐으니."
하고 정선은 숭의 저고리 단추를 끌렀다. 귀에 연필을 낀 젊은 양복장이는 권척을 들고 빙그레 웃으면서 사랑하는 두 남녀의 하는 양을 보았다.
"무슨 양복이오?"
하고 숭은 저고리를 벗으며 웃었다.
"아이, 참! 자, 어서!"
하고 정선도 기가 막히는 듯이 웃었다.
숭은 연미복과 모닝과 춘추복 한 벌, 동복 한 벌(딴 바지 하나씩 껴서) 춘추 외투 한 벌, 겨울 외투 한 벌을 맞추고, 정선도 혼인식에 입을 드레스, 기타 철 찾아 입을 양복 일습을 맞추었다.
그 리고 안에서는 집에 있는 침모 외에 임시로 여러 침모들을 고용하여 신랑 신부의 의복 금침을 마련하고, 또 서양식 장롱과 조선식 장롱과 침대 같은 것도 마련하였다. 그것뿐 아니라 윤참판은 허숭이가 장차 변호사를 개업할 것을 고려하여 재판소도 가깝고, 조강도 한 정동에 한 사십 간 되는 집을 사서, 일변 수리도 하고 일변 도배하고 살림 제구를 준비하였다. 살림 제구뿐 아니라 남녀 하인들까지도 준비하였다.
"너희들이 살 집이니 너희들의 맘대로 꾸며라."
하여 윤참판은 숭과 정선에게 집을 수리하는 전권을 주었다.
정 선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쯤 하여서는, 숭이 미국 영사관 모퉁이에서 기다리다가 둘이 나란히 새 집으로 들어가서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하고 도배장이와 하인들에게 잔소리를 하였다. 그리고는 장차 어떻게 할 것까지도 의논을 하였다. 그 계획은 거진 날마다 변하는 것이었다.
정선은 이 집이 친정집만 못한 것이 불평이었다. 더구나 양실이 없는 것과 넓은 정원이 없는 것이 불평이었다.
"이 집이 협착해서 어떻게 살어!"
하고 정선은 가끔가다가 짜증을 내었다. 그럴 때에는 숭은 놀랐다. 사십 간 집, 이렇게 좋은 집이 협착하다는 정선을 어떻게 섬겨 가나 한 것이었다.
"가만 있으우, 내 변호사 노릇 해서 돈벌어서 저 석조전만한 집을 하나 지어 드리리다."
하고 웃었다. 그러나 이 말을 한 끝에는 숭은 스스로 놀랐다. '어느새에 나는 내 집만을 크게 꾸미려는 생각이 났는가, 이것이 과연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아니요, 조선 전체를 생각함인가'고.
둘째로 정선이가 이 집에 대하여 불평하는 것은 대문이 평대문인 것과, 바로 대문 앞까지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숭은 변호사로 돈을 벌어서 해결하기로 하였다.
서울에서는 숭과 정선과의 약혼은 청년 남녀간에 상당한 센세이션은 일으키었다. 일개 시골 고학생과 서울 양반 만석꾼의 딸과의 배필, 청년 수재와 미인 재원과의 배필, 어느 점이나 센세이션거리 아니 되는 것이 없었다.
모모 잡지의 시월호에는 숭과 정선과의 사진이 나고, 시와 같이 아름다운 기사가 났다.
이 혼인과 한 쌍이 되는 혼인이 동일 동처에서 거행되게 되었으니, 그것은 곧 한은 선생의 손녀 은경과 청년 발명가 윤명섭과의 혼인이다.
이 혼인에도 한민교가 관계가 되었다. 그것은 한선생이 한은 선생에게 윤명섭을 소개하고 그 연구비 보조를 청촉하였더니, 한은 선생은 윤명섭의 인물과 내력을 듣고 내념에 사위의 후보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는 복잡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이건영 박사 문제. 이건영 박사가 심순례라는 여자와 의혼이 되어 서로 사랑의 말을 주고받고, 또,
"선생님, 심양은 참으로 제가 바라던 여자입니다."
라고까지 하다가 약 일 개월 전부터 돌연히 태도가 변하였다. 이박사는 순례에 대하여 피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이 태도를 본 순례는 그 아버지 심주사에게 말하고 심주사도 한선생을 청하여 말하였다. 한선생은,
"그럴 리 없으니 염려 마시오."
하고 심주사를 돌려보내고는 곧 이박사를 찾아서 그 연유를 물었다. 그때 이박사의 대답은,
"제가 생각한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심양과의 혼인이 저보다도 심양에게 큰 불행일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로는 관계가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끊는 것이 심양을 위한 도리인가 합니다."
이 박사의 말을 들은 한선생은 크게 놀랐다. 이 일은 도저히 있을 일이 아니었다. 그가 믿었던 이건영은 이러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건영이가 심순례에 대한 약속을 헌신짝같이 내어버리는 것은, 그가 의리라는 관념을 잊어버렸거나 또는 여자를 희롱한 것이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이 중의 어느 것도 한선생이 평소에 믿고 있던 이건영 박사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게 정말요?"
하고 한선생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박사에게 물었다.
"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고 이박사는 자신 있는 듯이 대답하였다.
"그러면 이박사는 심순례를 사랑하지 아니한단 말이오?"
하고 한선생은 다시 물었다.
"심순례를 사랑은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지마는 순례 씨와는 아직 혼인을 약속한 일은 없었습니다."
"여자를 사랑하는 것과 혼인을 약속하는 것과는 다른 일이오?"
하고 한선생은 다시 물었다.
"사랑이 혼인의 전제는 되겠지요. 그러나 사랑과 혼인과는 전연 다른 것인가 합니다."
"그러면 심순례를 사랑은 하지마는 혼인은 못 하겠단 말씀이오?"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오?"
"이 혼인이 두 사람에게 행복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왜 행복되지 못해요?"
"……"
"그러면 처음부터 이 여자와는 혼인할 생각을 아니 두고 사랑을 시작하셨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혼인할 생각을 가지고 사랑하였소?"
"네."
"그러면 어째서 그 사랑이 변하였소?"
"사랑이 변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변하였소?"
"……"
"그 여자와 혼인해서는 아니 될 무슨 사정이 생겼나요?"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어찌해서 그 동안 거진 반년이 가깝도록 그 여자에게는 혼인한다는 신념을 주어 놓고, 그 여자의 집에서는 혼인 준비까지 하고 있는 이때에 돌연히 그 여자와 교제를 끊는다고 하시오?"
"기실은 부모가 반대를 하십니다."
하고 이박사는 고개를 숙인다.
"부모께서?"
"네."
"부모께서 무에라고 반대를 하시는가요?"
"이 혼인이 합당치 아니하다고요."
"무슨 이유로?"
"그것까지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박사는 부모의 반대를 예상하지 아니하고 심순례와의 혼인을 목적하고 심순례라는 여자를 사랑하였는데, 불의에 부모께서 반대를 하시니까, 못 한단 말씀이오?"
"그렇습니다. 자식 된 도리에, 십여 년이나 못 뫼시던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여서까지 제가 사랑하는 여자와 혼인을 할 수야 있습니까."
하고 이박사는 가장 엄숙한 태도를 취하였다.
한선생은 이윽히 이건영을 바라보며 그의 얼굴과 눈에 나타난 양심의 말을 읽으려는 듯이 가만히 생각하고 있더니, 비창하다고 할 만한 어조로,
"나 는 이박사를 지사로 믿고 또 친구로 사랑하오. 그러니까 나는 이박사에게 생각하는 바를 꺼리지 아니하고 말하오마는, 이박사의 이번 일은 크게 잘못된 일이오. 이박사는 자기의 인격의 약점을 부모에게 대한 의리라는, 듣기에 매우 노블한 말로 꾸미려는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아니하오."
"선생님, 그것은 저를 너무 무시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이건영은 분개하였다.
"내가 이박사를 크게 믿던 바와 어그러지니까 하는 말이오."
하고 한선생은 이건영을 책망하는 눈으로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제가 부모에게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을 어찌해서 이해하시지 아니합니까."
하고 이건영은 자못 강경한 어조로 항의하였다.
"이박사는 그러면 심순례라는 여자가 부모께서 반대하시는 바와 같이 이박사의 배필이 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오?"
하고 한선생은 다시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그 렇지는 않습니다. 절대로 저는 심양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부모가 반대하시니까, 자식이 되어서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까지 제가 좋아하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어찌해서 옳지 아니합니까. 저는 요새 청년들이 연애는 자유라고 해서 부모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에 반감을 가집니다. 자식 된 자는 혼인 같은 중대사에 있어서는 부모의 의사를 존중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고 건영은 뽐내었다.
"이박사의 말씀이 대단히 옳소이다."
하고 한선생은 앉은 자세를 고치어 몸을 교의에 기대고,
"허 지마는, 이박사에게는 두 가지 과실이 있소이다. 첫째는 만일, 그렇게 부모의 의사를 존중한다 하면 심순례를 사랑하기 전에 먼저, 부모의 의향을 듣지 아니한 것이외다. 둘째는 이박사가 부모의 받으실 타격과 심순례라는 여자가 받을 타격과의 경중을 잘못 판단한 것이외다. 만일에 이박사가 부모께서 반대하심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심순례와 혼인을 하신다면, 부모께서는 응당 불쾌하심을 가지실 것이니 그만한 정도의 타격을 받으실 것이외다. 그러나 이제 이박사가 심순례와 혼인을 아니 하신다면, 심순례는 여자의 일생에 그 이상이라고 할 것이 없는 대타격을 받을 것이외다. 혹 그 여자는 자살을 할는지도 모르고, 혹 그 여자는 일생에 혼인을 아니 하고 혼자서 불행한 생활을 할는지도 모를 것이외다. 그렇다 하면 부모께서 받으실 타격은 가벼운 타격, 스러질 수 있는 타격이지마는, 심순례가 받을 타격은 회복할 수 없는 무거운 타격일 것이외다."
하고 한선생은 다시 어조를 고치어,
"그 뿐 아니라, 원래 의리란 사회존립을 중심으로 보면, 가까운 데보다 먼 데 더 무거울 것이외다. 가령 채무로 본다 하면, 형제간에 또는 친우간에 갚을 빚보다도 서투른 이에게 갚을 빚이 더 무거운 빚이외다. 왜 그런고 하면 가까운 이는 여러 가지 사정을 이해할 수도 있고 용서할 수도 있지마는, 서투른 남은 그러할 수가 없는 것이외다. 원래 도덕이란 나와 및 내게 속한 이를 위하여 나 이외 사람에게 손해를 주지 않는 것이 본의이니까, 윤리학을 연구하신 이박사는 나보다도 그 점을 잘 아실 줄 압니다."
하고 한선생은 한층 소리를 높이고 한층 힘을 더하여,
"별 로 이유도 없는(부모께서는 심순례라는 여자를 모르시니까 심순례 개인에 관한 무슨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오), 별로 이유도 없는 부모의 반대를 이유로 혼인을 믿게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한 뒤에 그 여자를 차버린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칭찬할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지 아니하시오?"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아니합니다. 행복될 가망이 없는 혼인은 미리 아니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이건영은 대항하는 어조였다.
"이박사는 조선의 지도자가 되려거든 그 개인주의 행복설의 도덕관을 버리시오!"
하고 한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선생은 일어나서 마루 끝에 서서 남산을 바라보면서도 가끔 고개를 돌려 이건영을 엿보았다. 그는 이건영의 입에서,
'제 생각이 잘못되었습니다.'
하는 말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한 선생은 이미 누구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그것은 한은 선생이 이건영으로 그 손녀 은경의 사위를 삼으려 한다는 말이었다. 한은 선생은 그 집에 이건영을 청하여 만찬을 대접하고 그 석상에서 그 부인 이하 모든 가족을 이건영에게 소개하였고, 그 자리에서 은경도 소개하였다.
은 경은 그날 이건영이 보기에 대단히 귀족적이었다. 몸이 가냘프나, 그 가냘픈 것이 도리어 건영에게는 귀족적으로 보였다. 그 얼굴이나 몸맵시나 이 세상 사람은 아닌 듯한 우아함이 있었다. 이건영의 생각에 이 우아함은 도저히 심순례에게서 찾을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때에 이건영은,
'아아, 내가 왜 벌써 심순례라는 여자와 깊이 사귀었나. 그를 내 아내로 알고 있었나. 내게는 그보다 더 훌륭한 아내가 있지 아니한가. 아아, 내가 경솔하였다!'
이렇게 후회하였다. 그러나 이건영은 다시 도망할 길을 찾아내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내가 심순례와 약혼한 것은 아니거든, 약혼을 발표한 것은 아니거든.'
하고 혼자 다행으로 여겼다. 딴은 이건영은 심순례와 약혼은 아니 하였다. 한선생이 심주사의 뜻을 받아 이건영에게 약혼을 청할 때에, 이건영은,
"선생님, 그것은 일편의 형식이 아닙니까. 약혼은 다 무엇입니까."
하 였다. 이 말을 한선생은 그대로 믿고 심주사 내외나 심순례도 그대로만 믿었다. 그리고 이박사의 취직 문제가 해결이 되는 대로 혼인식은 거행될 것으로 믿었다. 사실상 심주사 집에서는 혼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건영이가 공주에 가 있는 동안에 순례에게 하루 건너 한 장씩 보내는 편지를 보고는 아무도 이 혼인을 의심할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 편지들 중에 아무것이나 한 장을 골라 눈에 띄는 대로 읽어 보자.
어젯밤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였소. 그것은 웬일인지 아시오? 그대 때문이오. 그대를 내 품에 품어 영원히 놓지 아니하고 싶은 때문이오.
또 어떤 곳에는,
아아, 내 순례여. 이 세상에 오직 하나인 내 순례여. 그대는 어떻게 이렇게도 내 피를 끓이는가. 내게서 사라졌다고 생각하였던 정열이 어떻게도 그대의 고운 눈자위, 보드라운 살의 감촉으로 이렇게도 불이 타게 하는가. 아아, 그대의 살의 감촉, 그 체온!
이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편지가 온 뒤로는 통신이 뚝 끊겼다. 그가 공주를 떠나 광주로 목포로 다니는 동안에도, 그가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그는 순례에게 대해서는 편지 한 장, 말 한마디 없었다.
이 것이 곧 은경에게 관한 말을 들은 뒤였다. 이 말을 들은 것은 공주에서였다. 한은 선생은 공주에 있는 그의 족질을 시켜 이건영에게, 서울 오는 대로 만날 것을 말하였고, 그 족질은 이것이 혼인에 관한 일이라는 것을 말하였다. 한은 선생의 족질이라는 이는 미국에서 이건영과 동창이었던 사람이다.
한선생은 이러한 사정을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나 대강은 들었다.
'그러나 설마.'
하고 한선생은 이건영을 믿어서 스스로 부인하였다. 은경과 건영과의 혼인말이 심주사 집에까지 굴러 들어가서 심주사가 한선생을 찾아왔을 때에도, 한선생은,
"이박사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십 년을 못 볼 곳에 있더라도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하여 굳세게 부인하였었다.
"선생님, 저는 갑니다."
하고 이건영이 일어났다.
"내게 더 할 말이 없소?"
하고 한선생은 힘있게 물었다.
"없습니다."
하고 이건영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대문 밖에 나섰다.
한선생이 이건영을 따라 대문 밖에 나설 때에, 무심코 한선생 집을 향하고 걸어오던 심순례가 이건영을 보자마자,
"악!"
한마디 소리를 지르고는 비틀비틀 땅에 쓰러지려 하였다. 한선생은 얼른 순례를 안아 일으키었다.
순례가 한민교의 팔에서 기절하는 것을 보고 이건영은 손에 들었던 지팡이를 땅에 떨어뜨리도록 놀랐다. 그러나 그는 곧 지팡이를 집어 들고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가 버렸다.
한민교는 순례를 안아서 방에 들여다 뉘었다. 부인과, 한선생의 딸 정란은 놀라 어안이 벙벙하였다.
"냉수 떠와!"
하고 한선생은 소리를 질렀다. 한선생은 해쓱한 순례의 낯에 냉수를 뿌리고 손발을 주물렀다.
이 때에 허숭이가 말쑥한 스코치 춘추복에 스프링 코트를 벗어 팔에 걸고 들어왔다. 그는 학생복을 입었을 때보다 훨씬 훌륭한 신사가 되었다. 아무도 그를, 바로 몇 달 전까지 남의 집 심부름을 하고 고학하던 사람으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벌써 만족의 빛이 나타나고 분투하려는 힘이 줄었다.
허숭은 혼인에 관한 의논을 하려고 한선생을 찾아온 것이었다. 허숭은 순례의 꼴을 보고,
"웬일입니까?"
하고 한선생에게 물었다.
이때에 순례는 정신을 돌려서 눈을 떴다. 한선생은 허숭의 말에는 눈으로만 대답하였다. 그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허 숭은 안동 네거리에서 이건영을 만난 것을 연상하여, 얼른 이건영과 심순례와의 사이에 일어난 비극을 연상하였다. 그도 어디서 얻어들은 이건영과 은경과의 혼인말도 연상하였다. 그리고는 한선생의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이 다 의문이 해결된 듯하였다.
허숭은 가슴에 무엇이 찔림을 깨닫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 합당치 아니함을 느껴 한선생의 집에서 나왔다.
'유순!'
하 는 생각이 허숭의 가슴을 찌른 것이다. 만일 자기가 정선과 혼인하는 것을 안다고 하면 유순도 저렇게 되지나 아니할까, 저보다 더한 비극을 일으키지나 아니할까 할 때에 허숭은 전율을 깨달았다. 허숭은 정처없이 발 가는 데로 걸었다.
정신을 차린 순례는 한선생 앞에 엎드려서 울기를 시작했다.
"순례!"
하고 한선생은 손으로 순례의 어깨를 흔들었다. 순례는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저는 어떡허면 좋습니까."
하고 물었다.
"큰사람이 되지!"
하고 한선생은,
"지 금까지는 이건영이란 사람의 아내가 되는 것으로 목적을 삼았지마는, 이제부터는 조선의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기로 목적을 삼어.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아서 순례에게 소개한 것을 가슴이 아프게 생각하지마는, 그것도 다 순례를 큰사람을 만들려는 하느님의 뜻으로 알고, 새로운 큰 길을 찾을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하고 한선생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래도 제게는 너무도 견디기 어려운 아픔입니다."
하고 순례는 또 느껴 울기를 시작하였다. 순례의 어깨가 흔들리는 것을 볼 때에, 한선생도 눈을 감아 눈에 맺힌 눈물을 떨어 버렸다. 정란도 구석에 서서 울었다.
순 례는 오랫동안 오랫동안 건영에게서 소식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알았고 또 여러 가지 풍설도 들었지마는, 그는 한선생을 믿는 것과 같이 건영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학교 동무로부터서 건영과 은경이가 오늘 저녁에 은경의 집에서 약혼식을 한다는 말을 들은 것이었다.
순례는 그저 울다가 돌아갔다.
"너 이박사를 한번 만나 보련?"
하고 한선생이 물으면, 순례는,
"만나면 무얼 합니까."
하고,
"그러면 네 생각에는 어찌하면 좋으냐?"
고 물으면,
"어떡헙니까."
할 뿐이었다. 순례의 말은 오직 눈물뿐이었다. 불완전한 말로는 이 짓밟힌 처녀의 가슴의 아픔을 도저히 발표할 수 없는 듯하였다.
"그까짓 녀석을 무얼 생각하니?"
하고 그 어머니가 위로할 때에도, 순례는 다만,
"그래두."
한마디를 할 뿐이었다.
"한번 만나 보고 실컷 야단이나 쳐주렴."
할 때에도, 그는,
"그건 그래서 무엇 하오?"
할 뿐이었다.
순례는 이건영으로 하여서 받은 아픔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오직 제 가슴에 싸두고 혼자 슬퍼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밤중이면 제 방에서 일어났다 누웠다 부시럭거리는 양을, 그 부모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이 아팠다고 한다.
순례는 한선생의 집에서 돌아오는 길로 이건영에게서 온 편지와 사진을 꺼내어 모두 불살라 버렸다.
"그건 왜 살라 버리니? 두었다고 증거품으로 그놈을 한번 혼을 내지."
하면, 그는,
"그건 무얼 그러우?"
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혼자 울 뿐이었다.
순례가 돌아간 뒤에 한민교는 한참이나 괴로워하였으나, 마침내 모자를 쓰고 나가 버렸다.
"아버지, 저녁 잡수세요."
하고 대문까지 따라 나가서 묻는 정란에게, 한선생은,
"오냐."
하고 가버렸다.
한은 선생은 사랑에 있었다.
"아, 청오시오?"
하고 한민교를 반가이 맞았다. 청오라는 것은 한민교의 당호였다.
"아, 참, 마침 잘 오셨소이다."
하고 한은 선생은 희색이 만면하여 하얀 아랫수염을 만지며,
"그렇지 아니해도 지금 사람을 보내서 오시랄까 하였던 길이외다."
하고 한은은 매우 유쾌하였다.
"오 늘 이건영 군과 내 손녀와 약혼을 하기로 되어서, 약혼 피로랄 것도 없지만 집안 사람들끼리 저녁이나 같이 먹으려고 해서. 들으니까 건영 군은 선생께 수학도 하였고 또 많이 지도를 받았다고도 하고…… 어, 그런데 마침 잘 오셨소이다."
하고 한선생은 말을 꺼낼 새도 없이,
"이애, 저 이박사 이리 오시라고 하여라."
하고 곁에서 놀고 있는 칠팔 세나 되었을 손자를 시킨다. 손자는 조부의 명령을 듣기가 바쁘게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래 건강은 어떠시오?"
하고 그제야 한은은 한민교에게 인사를 하였다.
"괜치않습니다."
하고 한민교는 모든 말하기 어려운 사정을 누르고,
"그런데 제가 선생께 온 것은 약혼이 되기 전에 한 말씀 여쭐 말씀이 있어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벌써 약혼이 되었다면, 저는 이 말씀을 아니 하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 벌써 약혼은 되었습니까."
하였다.
한은 선생은 그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놀라는 빛을 보였다.
"이 약혼에 관한 말씀이오?"
하고 한은은 겨우 물었다.
"그렇습니다."
하는 말은 더욱 한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날 밤에 탑골공원 벤치에는 어떤 젊은 신사 하나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앉아 있었다―---그는 이건영이었다.
공 원 벤치에 앉은 이건영―---그는 마치 구만 리나 높은 하늘에서 나락의 밑으로 떨어진 듯하였다. 그에게는 이제는 재산 있고, 양반이요, 명망 높은 집 딸인 은경도 없고, 그를 따라올 재산도 없고, 또 아마도 열에 아홉은 다 될 뻔하였던 연전 교수의 자리도 틀어져 버렸다. 왜 그런고 하면 한은 선생은 연전의 이사요, 아울러 유력하게 이건영을 추천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래 일도 장래 일이거니와, 아까 한은 집에서 일어난 일―---자기의 망신을 생각할 때에 건영은 마치 앉은 벤치와 함께 땅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한민교가 한은과 같이 앉은 것을 보고 건영은 가슴이 내려앉았었다. 그러나 설마 하고 건영은 다만 하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손님들이 오고 나중에는 시골서 올라온 건영의 아버지까지도 왔다. 저녁상이 나왔다.
한은 선생은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세상 이야기를 꺼내었다. 마치 약혼에 관한 것은 잊어버리기나 한 듯이.
건 영은 초조한 맘으로 한은 선생의 입에서 오늘 모임의 목적인 혼인말이 나오기를 바랐으나 식사가 거진 다 끝이 나도록 아무 말이 없는 것을 보고는, 한은 선생의 입에서 무슨 무서운 선고나 아니 내릴까 하여 도리어 그 음성이 무서워서 감히 한은 선생 쪽으로 눈을 향하지를 못하였다. 건영도 남과 같이 수저를 움직이기는 하였지마는 무엇을 집었는지, 무엇이 입에 들어갔는지 말았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식사가 다 끝난 뒤에 한은 선생은 한참이나 입을 우물우물하고 침묵을 지켰다. 손님들은 어리둥절하였다.
마침내 한은 선생의 입이 열렸다.
"오늘, 이건영 박사와."
하고 한은 선생의 말이 열릴 때에 건영은 등에다가 모닥불을 끼얹는 듯하고 눈이 아뜩하였다.
"오늘, 이건영 박사와 내 손녀와 약혼을 하려고 하였는데 의외의 사정이 생겨서 아니 하기로 되었소이다. 그 사정이 무엇인지는 내가 말하기를 원치 아니하지마는, 다만 내가 분명치 못해서 그리 된 것만은 사실이외다."
하고 냉랭하게, 그러나 엄숙하게 말을 맺고, 특별히 건영의 아버지 되는 이장로를 향하여,
"모처럼 먼길을 오셨는데, 일이 이렇게 되니 미안하기 그지없소이다."
하였다.
건 영의 등에서는 기름땀이 흐르고, 이장로의 낯은 파랗게 질렸다. 이장로도 벌써 이 일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이장로는 건영과 순례와의 관계를 알았고, 또 기뻐하였던 사람이다. 그러나 한은 선생의 손녀인 은경과의 혼인말이 있다는 것을 그 아들 건영에게서 듣고는 그 아들과 함께 순례로부터 은경에게로 맘이 옮아온 것이었다.
이장로는 그래도 체면상 이 망신에 대해서 한마디 항의를 아니 할 수 없었다.
"지금 선생께서 영손애와 제 자식과 혼인 못 할 사정이 있다 하시니, 그 사정을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였다. 그의 음성은 심히 냉정하지마는, 떨림을 머금은 것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니 물으시는 것이 좋겠소이다. 만일 묻고 싶으시면 자제에게 물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한은 선생은 대답을 거절하였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건영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와 버렸다.
나와 가지고는 발이 가는 대로 가는 것이 탑골공원이었다. 그가 나온 뒤에 어떤 광경이 연출된 것을 건영은 모른다. 그러나 건영의 일생이 파멸된 것만은 분명히 느꼈다.
이리하여 건영과 은경과의 혼인이 틀어지고 말았고, 그 결과로 발명가 윤명섭과 은경과의 혼인이 맺게 된 것이었다. 그것이 또 우연한 인연으로 허숭과 정선과의 혼인과 한날인 시월 십오일에 정동 예배당에서 거행되게 된 것이었다.
탑 골공원 벤치에 앉은 건영은 이른바 윗절에도 못 믿고 아랫절에도 못 믿는 격이어서 순례와 은경을 둘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모두 한민교의 책동인 것을 생각하면 한민교를 찾아가서 그 다리라도 분질러 주고 싶었다. 그러나 건영에게는 그런 용기도 없었다. 다리를 분지르기는커녕, 한선생과 면대하여 톡톡히 항의를 할 용기도 없었다. 그것은 제 잘못도 잘못이거니와 원체 그만한 기력이 없었다.
건영은 가슴이 텅 비인 것 같아서 도무지 맘을 둘 곳이 없었다. 조선에는 젊은 여자가 많다. 순례나 은경이 아니기로 여자 없어서 사랑 맛 못 보랴―---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순례나 은경이만한 여자는 쉽사리 얻어 만날 것 같지를 아니하였다.
'그러면 순례헌테로 다시 돌아갈까.'
이렇게도 건영은 생각해 보았다.
'순 례는 참된 여자라, 만일 내가 돌아간다면 반드시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환영해 줄 것이다. 그렇고말고, 순례는 그렇게도 맘이 착하고 너그러운 여자다. 한 번 맘을 작정하면 변할 줄 모를 여자다. 그렇고말고, 나는 순례헌테로 돌아갈까.'
건영은 이렇게 생각하매 맘이 가벼워지고 캄캄한 앞길에 한 줄기 빛이 비치어 옴을 깨달았다.
"요, 이거 누구요? 이박사 아니오?"
하는 술취한 소리와 함께 건영의 어깨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김갑진이었다. 그리고 모를 청년 둘이었다.
건영은 비밀히 하던 생각을 들키기나 한 듯이 일변 놀라고 일변 낯을 붉히며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웬일이야?"
하고 갑진은 건영의 목에 팔을 걸어 앞으로 잡아 끌며,
"들으니까 한은경이허고 약혼을 했다데그려. 자, 오늘 한잔 내게."
하고 두 동행을 한 팔로 끌어당기며,
"이 놈들아, 이리 와. 이 양반은 누구신고 하니 말이다, 저 아메리카 가셔서 닥터 오브 필로소피를 해가지고 오신 양반이란 말이다, 하하. 이박사, 여보 이박사, 이놈들은 내 동문데, 대학을 졸업하고도 소학교 교사 하나 못 얻어 하고 꼬르륵꼬르륵 밥을 굶는 못난놈들이란 말요. 내님도 그렇지마는, 하하."
"이놈아."
하고 동행 중의 하나가 갑진의 뺨을 손가락으로 찌르며,
"이놈아, 네놈은 계집까지 빼앗기지 않았어? 못난놈 같으니. 우리는 직업은 못 얻고 카페 사진(仕進)은 할망정 오쟁이는 안 졌단 말이다, 오라질놈."
"이놈들아."
하고 갑진은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득득 긁으며,
"아 서라 이놈들아, 그 말일랑 제발 말어라, 하하하헙. 이런 제길. 이박사, 이놈들의 말 믿지 마시우. 내가 어디로 보면 오쟁이질 양반이오? 하하하홉. 자, 이박사, 폐일언하고 우리 카페 가서 한잔 먹읍시다. 이박사와 같이 만사가 순풍에 돛을 달고 뜻대로 되는 이는 우리네 같은 룸펜을 한잔 먹여야 한단 말이오. 경칠것, 가자."
하고 갑진은 두 팔로 세 사람의 목을 멍에를 매어 끌었다. 건영은 후배인 갑진에게 이러한 대접을 받는 것이 불쾌하였으나, 갑진의 팔을 뿌리칠 기운이 없었다.
갑진은 공원을 나와서 이박사와 두 동무를 끌고 낙원동 어느 카페로 들어갔다.
붉은 등, 푸른 등, 등은 많으나 어둠침침한 기운이 도는 방에는 객이라고는 한편 모퉁이에 학생인 듯한 사람 하나가 웨이트리스 하나를 끼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 아직 손님은 많지 아니하였다.
"이랏샤이."
하는 여자,
"어서 오십시오."
하 는 여자, 사오 인이나 마주 나와서 네 사람을 맞았다. 모두 얼굴에는 횟됫박을 쓰고, 눈썹을 길게 그리고, 입술에는 빨갛게 연지를 발라 금시에 쥐를 잡아먹은 고양이 주둥아리 같고, 눈 가장자리에는 검은 칠을 해서 눈이 크게 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들은 고개를 갸우듬하고 엉덩이를 내어두르고, 사내 손님에게 대해서는 마치 남편이나 되는 듯이, 적어도 오라비나 되는 듯이 응석을 부렸다.
"아이, 왜 요새에는 뵙기가 어려워요?"
하고 양복 입은 계집애는 갑진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아다가 제 뺨에 비볐다.
"요것이 언제 보던 친구라고 요 모양이야?"
하고 갑진은 주먹으로 그 여자의 볼기짝을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아야, 아야, 사람 살리우!"
하고 그 여자는 갑진의 뺨을 꼬집어뜯고 성낸 모양을 보이며 달아났다.
네 사람은 테이블 하나를 점령하였다. 의자는 푸근푸근하였다. 테이블에는 오일 클로오드를 깔아서 살을 대기가 불쾌하였다.
"위스키, 위스키!"
하고 갑진은 집이 떠나갈 듯이 호령하였다. 그리고 나서는 갑진은 예쁘장한 계집애 하나를 무르팍 위에 앉히고 으스러져라 하고 꼭 껴안았다. 다른 사람 곁에도 계집애들이 하나씩 앉아서 껴안아 주기를 기다리는 듯하였다.
유리잔에 위스키 넉 잔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이년들아, 너희들은 안 먹니?"
하고 갑진은,
"에이! 멘도우쿠사이! 병째로 가져오너라. 백마표, 응!"
"오라잇!"
하고 한 여자가 술 벌여 놓은 곳으로 갔다. 거기는 회계 당번인 여자와 남자 사무원 하나가 점잔을 빼고 앉아 있었다. 여덟 잔에 노르무레한 위스키가 따라진 뒤에 갑진은 술잔을 들며,
"제군! 미국 철학박사 이건영 각하와 한은경 양과의 약혼을 축하하고 두 분의 건강을 빕니다."
하고 잔을 높이 들었다. 다른 두 사람도 갑진과 같이 잔을 높이 들었다. 오직 이박사만이 술잔을 들지 아니하였다.
"드세요!"
하고 한 친구가 재촉하였다.
갑진은 술잔을 든 채로 로봇 모양으로 물끄러미 건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갑진의 눈은 '이놈!' 하는 빛을 띠고.
"나, 나, 나는."
하는 건영의 입술은 떨렸다.
"나는 약혼한 것이 아니야요. 또 장차도 약혼할 생각도 없고, 또……."
"이건 왜 이래."
하고 갑진은 들었던 잔을 도로 놓으며,
"대관절 어찌 된 심판야. 약혼 축하 건배를 하다 말고 정전이 되니 이거 될 수 있나."
다른 사람들도 들었던 잔을 도로 내려놓았다.
"아, 약혼하셨어요?"
하고 건영의 곁에 앉은 계집애가,
"나는 멋도 모르고 짝사랑야."
하고 팔을 들어 건영의 목을 안는다.
"약혼 아니오."
하고 건영은 힘없이 말하였다.
"대관절 웬일이오?"
하고 갑진은 아주 점잖게 건영을 보고 동정 있는 음성으로,
"그래, 정말 약혼을 아니 했단 말요?"
하고 묻는다.
"아니 했어요."
하는 건영의 음성은 비창했다. 두 친구와 계집애들의 시선은 건영에게로 옮았다. 다들 이상하구나 하는 듯하였다.
"그럼, 오쟁일 졌구려?"
하고 갑진의 눈은 빛났다.
건영은 픽 웃었다. 다른 사람들도 웃었다.
"아따, 그러면 오쟁이 진 위로로 건배. 자, 다들 이박사의 오쟁이 진 위로로 잔을 들어, 하하하."
하고 갑진은 위스키를 죽 들이켰다.
다른 사람들도 들이켰다. 건영만 가만히 앉았다.
"이건 사내가."
하고 갑진은 건영의 잔을 들어 건영의 입에다가 대며,
"사 내가 오쟁이를 졌다고 여상고비하게 기운이 죽어서야 쓰나. 자, 벌떡벌떡 들이켜 보우. 세상에 계집애가 그 애 하나밖에 없나. 수두룩한데 무슨 걱정야. 자, 이년아, 이건 무얼 하고 있어? 자, 이 양반 입을 벌리고 이 술을 좀 흘려 넣어!"
하 고 건영의 곁에 앉은 시즈코라는 계집애를 향하여 눈을 흘긴다. 시즈코라는 계집애는 물론 조선 계집애지마는 다른 카페 계집애들 모양으로 일본식 이름을 지었다. 시즈코는 한편 눈이 좀 작은 듯하지마는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이라든지, 통통한 몸매라든지, 꽤 어여쁜 편이요, 또 천태도 적은 편이었다. 건영은 그 손이 순례의 손 비슷하다고 생각하였다.
"아, 잡수세요!"
하고 시즈코는 건영의 목을 껴안고 갑진에게서 받은 위스키를 건영의 입에 부어 넘겼다. 술은 건영의 입으로 흘러들어갔다.
한잔 두잔 독한 위스키는 사람의 양심이라는 알코올에는 심히 약한 매균을 소독하여 버렸다. 그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동물성을 폭로하였다. 계집애들을 껴안고 음담을 하고 못 만질 데를 만지고 입을 맞추고…….
"원체 혼인이란 것이 시대 착오거든―---약혼이란 것은 시대 착오의 자승이고. 안 그런가, 이 사람들아."
하고 갑진이가 또 화제를 꺼낸다.
"암, 그렇고말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문학사다. 눈이 가늘고 입이 좀 빼뚜름한, 약간 간사 기가 있을 듯한 사람이다.
"혼인은 해서 무얼 하나. 천하의 여성을 다 아내로 삼으면 고만이지. 오늘은 시즈코, 내일은 야스코, 안 그러냐, 요것아."
하고 문학사는 시즈코의 허리를 껴안는다. 그는 시즈코를 못 잊는 모양이었다.
"왜 이래?"
하고 시즈코는 문학사의 팔을 뿌리치며,
"나는 이 양반허구 약혼할 테야. 이 박사하고―---무슨 박사, 김박사? 아니, 이를 어째 용서하세요, 응. 이박사, 나구 약혼하세요, 응? 혼인은 말구 약혼만 해, 응?"
"얘, 시이짱, 너는 대관절 몇 번째나 약혼을 하니?"
하고 의학사가 묻는다.
"나요? 이 양반과는 첫번이지."
하고 시이짱이라는 시즈코는 의학사인 거무스름한, 건장한 키 작은 사람을 향하여 눈을 흘긴다.
"요것도 오쟁이를 졌다나."
하고 문학사는 시이짱의 뺨을 손가락으로 찌른다.
"여자도 오쟁이를 지우?"
하고 시이짱은,
"사내헌테 오쟁이를 지우지."
"요것이."
"왜 사람더러 요것이라우? 난 이박사가 좋아. 우리 약혼해요, 응. 자, 이 술잔 드세요. 반만 잡숫고 날 주셔야지."
하고 시이짱은 건영의 입에 술잔을 대어 준다.
윤참판 집에서는 내일이 혼인날이라 하여, 손님도 많이 오고 예물도 많이 들어와서 바쁘기가 짝이 없었다.
그날 저녁때에 허숭은 들러리 설 친구, 기타의 주선을 위하여 밖에 돌아다니다가 늦게 윤참판 집에 돌아왔다.
방에 돌아온 숭은 의외의 광경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정선이가 잔뜩 성을 내어 가지고, 들어오는 자기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사 람이란 성을 내면 흉악한 모상으로 변하는 것이지마는, 이때 정선의 얼굴은 실로 무서웠다. 숭은 그 눈초리가 좌우로 쑥 올라가고 입귀가 좌우로 축 처진 정선의 상을 볼 때에 몸에 소름이 끼침을 깨달았다. 그것은 평상시에 보던 정선은 아니었다. 그 맘에는 독한 불이 붙고, 눈에서는 수없는 독한 칼날이 빗발같이 쏟아져 나와서 허숭의 가슴을 쏘는 듯하였다.
허숭은 어안이 벙벙하여 섰다. 섰다는 것보다도 다리의 근육이 굳어지고 말았다.
"웬일이오?"
하고 허숭은, 마침내 이 의문을 해결하는, 처음으로 입을 열 사람은 자기라는 것을 깨닫고 말을 붙였다.
"에익, 더러운 놈!"
하는 것이 정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더런 놈!"
이 말에 숭은 한번 더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일종의 모욕과 분노를 깨달았다.
"말을 삼가시오."
하고 허숭은 남편의 위엄을 부려 보았다.
"말을 삼가, 흥?"
하고 정선은 코웃음을 쳤다. 그 얼굴은 분노의 형상에서 조롱의, 냉소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대관절 무슨 일이오?"
하고 허숭은 교의에 앉았다. 그때에 허숭은 정선의 손에 쥐어진 종이 조각을 보았다. 숭은 거의 반사적으로 '유순'을 생각하였다.
"그건 무엇이오?"
하고 숭은 손을 내어밀었다.
"자, 실컷 잘 보우."
하고는 정선의 낯에는 경련이 일어나더니 테이블 위에 엎더져 울기를 시작한다.
숭 은 정선의 손에 꾸기었던 편지를 펴가며 읽었다. 그리 익숙지 못한 연필 글씨로 보통학교 작문 책장을 찢어서 잘게잘게, 그러나 선생에게 바치는 작문 글씨 모양으로 분명하게, 오자는 고무로 지워 가며 쓴 편지다. 안팎으로 쓴 것이 석 장, 여섯 페이지요, 끝에는 '兪順'이라고 비교적 자유로운 글씨로 서명을 하였다.
그 편지는,
처음이요 마지막으로 이 편지를 올립니다.
를 허두로,
그 동안에도 편지라도 자주 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였사오나, 여자가 남자에게 편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와 편지도 못 올렸나이다. 그러하오나 재작년 여름에 작별하온 후로 작년 여름에도 여름이 다 가도록 서울서 오는 차마다 바라보고 기다렸사오나 마침내 오시지 아니하시고, 금년에도 여름이 다 가도록 기다렸사오나 소식이 없사와 혼자 어리석은 마음을 태우고 있사옵던 차에, 일전 어떤 동무의 집에서 잡지를 보고야 이번 어떤 유명한 부잣집 따님과 혼인을 하시게 되었다는 글을 보았나이다.
당신께서 고등문관 시험에 급제하셨단 말을 신문으로 볼 때에는 온 동네와 함께 저도 기뻐하였사오나, 이번 어떤 부잣집 따님과 혼인을 하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동네는 다 기뻐하지마는 저와 제 부모님은 슬픔에 찼나이다.
유순의 편지는 계속된다.
제 어리석음을 용서하세요. 저는 재작년 여름에 당신께서 저를 특별히 사랑하여 주시길래 그것을 꼭 믿고 저는 당신의 아내거니 하고 꼭 믿고 있었나이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아버지께서 자꾸만 시집을 가라고 조르실 때에 저는 어리석게도 당신께 허락하였다고 말씀하였답니다. 제 부모께서도 그러면 작히나 좋으냐고 기뻐하셨나이다. 작년에는 꼭 오실 줄 믿고, 작년 여름에 오시면은 부모님께서 약혼만이라도 하여 준다고 하시고 기다렸사오나, 도무지 오시지를 아니하시니 부모님께서는 그 사람이 너를 잊었으니 다른 데로 시집을 가라고, 또 조르시기를 시작하였사오나, 저는 울면서 아니 갑니다, 아니 가요 하였나이다.
당 신께서도 아시는 바거니와, 우리 동네에서는 아직 한 번 맘으로 허락하였던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로 시집을 간 사람은 없었나이다. 내 조고모께서는 사주만 받고도 그 남자가 죽으매 일생을 그 집에 가셔서 늙으셨고, 당신 댁에도 남편이 죽은 뒤에 소상을 치르고는 뒷동산 밤나무 가지에 목을 달아 돌아가신 이가 있다 하나이다. 그것을 다 구습이라고 동네에서는 말하는 이가 없지 아니하나 어리석은 제 맘은 그 본을 따를 수밖에 없다 하나이다. 부모님께서 정해 주신, 한 번 얼굴도 대해 보지 못한 남자를 위해서도 절을 지키거든, 저와 같이 제 맘을 사랑하고 또 비록 잠시라도 당신의 품에 안겨 본 당신께서 저를 잊어버리신다고 저마저 당신을 잊고, 이 몸과 맘을 가지고 또 다른 남자를 사랑할 생각은 없나이다.
그러하오나 당신께서는 부자댁 아름다운 배필과 혼인을 하시게 되시었으니 저는 멀리서 두 분의 행복을 빌겠나이다.
저 는 쓸 줄도 모르는 솜씨로 이런 편지를 쓸까말까 하고 쓰려다가는 말고, 썼다가는 찢고 하기를 오륙 일이나 하다가, 그래도 두 분이 혼인 예식을 하시기 전에 이러한 말씀이나 한번 드리고 싶어서 이 편지를 쓰나이다. 두 분이 혼인하신 뒤에는 다른 여자가 당신께 편지를 드리는 것이 옳지 아니하리라고 생각한 까닭이로소이다.
시월 오일 유순 올림
이라고 쓰고 그 끝에 추고 모양으로 이렇게 썼다.
이 편지를 써놓고도 부치는 것이 죄가 되는 것 같아서 못 부치고 일주일 동안이나 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이야 기운을 내어서 체전부에게 부탁해 보냅니다. 유순.
숭은 편지를 다 읽고 나서는 힘없이 방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날 밤이 새도록 잠을 못 이루고 고민하였다.
'밤중으로 달아나서 유순에게로 갈까.'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차라리 정선과 윤참판에게 남아답게 혼인을 거절하고 유순에게로 갈까.'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하기만 해도 맘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일이 혼인 예식인데, 내일 오후 세시만 지나면 만사는 해결되는데―---행복(?)된 길로 해결되는데.'
이렇게도 생각하였다.
숭은 이 세 가지 생각을 삼각형의 세 정점으로 삼고 개미 쳇바퀴 돌듯이 그 석 점 사이로 뱅뱅 도는 동안에 밤이 새고 혼인 예식 시간이 왔다.
숭 은 예복을 갈아입으면서도, 자동차로 식장에 가면서도 이 석 점 사이로 방황하였다. 그리고 목사의 앞에 정선과 나란히 서서 서약을 할 때에도 그러하였고, 반지를 낄 때에는 숭의 눈은 정선의 손가락을 바로 찾지 못하여 반지를 땅에 떨어뜨릴 뻔하여 깜짝 놀란 일도 있었다.
혼인 마치나 회중이나 모두 숭의 감각에는 들어오지 아니하였다. 신부의 팔을 끼고 마치에 발을 맞추어 식장에서 나올 때에도 숭은 신부의 발을 밟을 지경으로 무의식하였다.
허숭과 윤정선과의 결혼식은 끝이 났다.
그러나 이 부부는 과연 행복되게 살아갈 수가 있었는가. 만일 이 부부생활에 파탄이 생겼다 하면 무슨 이유로, 어떤 모양으로 생겼으며, 그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유순은 어찌 되었을까.
이건영 박사, 김갑진은 어찌 되었을까. 한선생은 무슨 일을 하고 이건영에게 버림이 된 심순례는 어떠한 길을 걸었는가.
발명가 윤명섭과 윤은경과는 어찌 되었나. 정서분은 어찌 되었나.
농촌으로 돌아가려던 허숭의 이상은 마침내 죽어 버리고 말았나.
필자는 이 모든 문제를 제2장으로 밀고 단군 유적을 찾는 길을 떠나게 되어, 약 3주간 이 소설을 중지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게 되었다.
그 러나 필자의 생각에는 이번 단군의 유적―---옛날 우리 조상이 처음으로 조선 문화를 이루노라고 애쓰던 자취를 찾아 태백산으로, 비류수로, 강동, 강서로, 반만년 역사의 증인인 대동강으로, 당장경으로, 강화로 헤매는 동안에는, 오늘날 조선의 사람과 흙을 그리려 하는 나에게는, 수십 년 도회 생활만 하고 농촌을 등졌던 나에게는 반드시 많은 느낌과 재료를 얻으리라고 믿는다. 나는 이러한 느낌과 재료를 제2장 이하의 흙을 그리는 데로 쓰려고 한다.
이러한 사정으로 흙의 제1장을 끝내고 잠시 중단하는 기회를 타서 나는 독자 여러분께 내가「흙」을 쓰는 동기와 포부를 고하여 두려 한다.
나 는 오늘날 조선 사람이―---특히 젊은 조선 사람이―---그 중에도 남녀 학생에게 고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 중에는 민족의 협상과 장래에 대한 이론도 있고, 또 내가 우리의 현재와 장래에 대하여 느끼는 슬픔과 반가움과, 기쁨과 희망도 있고, 또 여러분의 속속맘과 의논해 보고 싶은 사정도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서투른 소설의 형식을 빌려 여러분의 앞에 내어놓는 것이다.
이 소설「흙」이 재미가 없을는지도 모른다. 예술적으로 보아서 가치가 부족할는지도 모른다. 어떠한 분의 비위에는 거슬리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여러분 중에 내 감정에 공명하시는 이도 없지는 아니할 것이다. (나는 사실상「흙」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20여 장의 편지를 받았다. 그것은 나에게 깊은 감격을 주는 편지들이었다. 다 모르는 분들의 편지려니와 그러할수록 나에게는 더욱 깊은 감격을 주었고 또 힘을 주었다.) 어찌하든지「흙」은, 나라는 한 조선 사람이, 그가 심히 사랑한 같은 조선 사람에게 보내는 사정 편지다.
비록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은 있을 법해도 진정으로, 진정으로 쓴 편지―---이것 하나만은 독자 여러분께 고백하는 바다.
위 에도 말한 바와 같이 허숭, 윤정선, 이건영, 한민교, 김갑진, 심순례, 유순, 정서분, 이러한 인물들은 내가 보기에 조선의 현대를 그리는 데 필요한 타입의 인물로 본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인물로 하여금, 비록 처음에는 서로 미워하는 적도 되고 또는 인생관과 민족관의 인식 부족으로 생활에 많은 흠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 목자 잃은 양, 지남철 없는 배와 같은, 오늘날의 조선 청년계의 혼돈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시대의 탓이요, 그들 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한 목표, 한 이상, 한 주의를 위하여 한 팔이 되고 한 다리가 되어 마침내는 한 유기적 큰 조직체의 힘있는 조성분자가 될 사람들이요 또 되지 아니하면 아니 될 사람들이 되게 하고 싶다.
독자 여러분은 작자의 이 부족하나마 참된 동기만은 동정의 양해를 주시고 이 한 사람의 편지([흙]이라는 소설)의 하회를 기다려 주시기를 바란다.
6월 21일,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