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돈 하는 사람이나 돈부터 내세우는 사람을 보면 우스운듯 하지마는 이 것이 또한 사회의 진상인즉, 돈 빼놓고 어찌하랴. 돈이란 대체 무엇인데 세 살된 어린아이라도 돈 돈 하는가? 생명이 중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라도 돈 모르는 자는 없으니 과연 돈이란 생명보다 더 귀할까. 물론 귀하지 않음은 아니다.

이 세상은 돈이 있어야 먹고 돈이 있어야 사는 소위 금전시대이다. 아니 다. 금전시대라 함보다는 금전 전횡시대(專橫時代)라 함이 더욱 적당한 말 일 것이다. 그런즉 돈만 있고 보면 못할 것이 없으니 어찌 귀하지 않으랴. 그러나 돈으로써 생명과 바꾸며 돈을 위하여는 생명을 내놓은 일이 없지 아니하니 참 이상한 현상이다. 천지를 움직일 만한 돈이라도 한 사람의 꾀 와 재주로 능히 좌우할 수 있거늘, 하늘이 주신 귀한 생명을 이같이 더러운 돈과 바꿈은 무슨 까닭인가.

그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이보다 더 두렵고 무서운 현상이 있나니, 곧 돈의 세력으로 생명을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한다.

크게 말하면 전 구주 대전란도 그 내막의 한 부분은 금전 전쟁이다. 우선 국가가 부강하여야 하느니 군비가 튼튼하여야 하느니 함은 모두 금전의 많 고 적음을 의미함이다. 그렇지만 돈이 무엇보다도 귀중하고 만일 돈이 없으 면 자기의 생명을 보전할 수가 없기에 자기의 안전함과 안락함을 취할 것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나는 돈 돈 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돈을 위하여 생명을 희생하는 자들을 볼 때에 결코 그른 일이 아니라고 한다.

나도 역시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며 너도 역시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아 니다, 온 나라가 돈을 요구하며 온 천하가 돈을 탐내는 것이다. 그리고 본 즉, 돈 좋아하는 나와 돈 좋아하는 너도 사람 가운데에 경쟁이 일어날 것은 정한 이치요 돈 좋아하는 이 나라와 돈 좋아하는 저 나라끼리 생명을 없애 가며 서로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러므로 나는 이 세상을 볼 때에 돈 이 그른 물건이 아니라 그것을 탐욕하는 사람이 그르다 하며, 돈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럽다고 한다. 보라! 이 세상에는 돈 많음으로 인하여 한 몸을 그르치고 한 집을 망하게 하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를.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돈이 없어서 할 일을 못하고 한 생명을 녹녹히 지내는 사람은 얼마인가.

실로 돈이라는 것은 우리 사람에게 없어도 아니 되고 있어도 아니될 것이 로다. 이 사회의 진상으로 말하면 이같은 것이 다 이같이 모순이 되는 것이 다. 하필 돈뿐이랴. 무슨 것이든지 유형(類型)을 물론하고 다 이러한 것이 다.

그러나 여기에도 또 한 가지 모순이 있으니 말하자면 꼭 있어야할 사람에 게는 없고, 꼭 없어야 할 사람에게는 있는 일이 있다.

여기서 불평이 생기고 여기서 못된 결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 금 말하려는 것은 옛적 이야기도 아니려니와 장래의 어떻게 될 것을 예언함 도 아니다. 다만 이 시대 이 사회에 있어서 듣고 보는 바에 자기의 어리석 은 의견을 비쳐보려 함에 지나지 않는다. 이같이 남녀 노소의 구별없이 입 있는 자는 모두 돈 돈 하니 그들이 돈을 요구하는 목적이 어디 있는가! 부 귀 영화를 취하고자 함인가, 혹은 남을 위하여 사회나 국가를 위하여 유익 하게 쓰고자 함인가!

남에게 자선을 한다든지 국가 사회의 공공사업에 쓰는 돈도 귀하려니와 일 신의 부귀와 쾌락을 취함에 쓰는 돈도 역시 귀한 것이다.

그러나 돈이 귀하고 좋은 줄 알거든 이것을 얻을 때에는 그 만한 노력을 들이라. 무릇 무엇이든지 귀중할수록 얻기가 어려운 것인즉, 만일 힘들이지 않고 애쓰지 않고 얻는 것은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깊이 없는 것이다. 깊이 가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해를 받은 것이 아닌가!

보라. 남은 종일토록 땀을 흘리고 노동하여 그날그날의 먹고 살것을 얻음 에도 애를 쓰는데 한편에서는 부랑패류들이 주사청루(酒肆靑○)에서 세상일 을 모두 생각지 않고 돈을 물쓰듯 하니 노동자들이 하루 먹을 돈 몇 푼과 부랑패류들이 매일 쓰는 수백 수천의 돈이 어떤 것이 더 귀할까!

그러나 돈은 매일 밤이라도 다만 쓰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서 귀하기도 하 고 천하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마는 아무리 부랑패류기로 돈귀한 줄 모를 이가 어디 있으랴마는 이 자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저희 부모의 끼친 재산으로 호강하고 지내는 까닭이나 한번깊이 생각해 보라.

너희 부모가 재산을 모을 때 얼마나 고생을 하고 얼마나 노력하였는지를.

부모가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입고 싶은 것을 못 입고 한푼 두푼 모아 놓 은 것을 어찌 하려고 한 번에 없애버리는가? 이 어찌 한심하고 통곡할 바가 아니랴. 그러나 나는 결코 돈을 함부로 쓰는 부랑패류만 그르다 함이 아니 다. 그의 부모가 또한 그름이 아닌가 생각하노니 그대들은 조반석죽(朝飯夕 粥)을 해가면서 푼푼 전전히 모은 돈을 무엇에다 못써서 자식으로 하여금 패가망신할 장본을 만들어 주는가? 그대들이 만일 돈 귀한 줄을 알거든 귀 한 돈을 가졌거든 또한 귀한 곳에 쓰라고 말하고 싶다. 자식에게 물려줌이 결코 좋지 않음은 아닐지나 그보다 더 좋고 더 귀한 것이 어찌 없으랴?

옛말에 자손에게 천금을 물려줌 보다 책 한 권을 줌이 낫다고 하지 않았는 가? 이 세상에서는 제 손과 제 발 가지고 싸우고 노력한이가 상당히 많으니 이야말로 사람의 본분이요 직책이다. 그러므로 자식에게 많은 돈을 물려줌 보다 그 돈을 가지고 자식이 장래에 활동할 만한 기관(機關)을 만들어 주 라. 당당히 입신출세케 하라. 이것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요 국가 사 회에 대한 공헌이라 하노라. 각 사람이 이같이 자각하고 이같이 실행한다면 사회야말로 향상하고 개발될 것이다.

대학교가 무엇이며 도서관이 무엇이랴. 그보다 더 큰 것이기로 못할 것이 무엇이랴. 만일 그대들이 참으로 사랑한다면, 참으로 귀중하다고 한다면 귀 중하고 필요한 데 쓰라. 값있고 이익 있는 데 활용하라.

만일 그리할 생각이 없거든 당초에 돈이란 말은 입밖에 내지도 마라. 그날 의 먹을 것은 그날에 얻어도 족할지며 이튿날 쓸것은 이튿날 얻어도 될 것 이어늘, 무슨 필요와 무슨 야심이 있어서 쓸데없는 돈을 탐내는가?

이 세상에는 돈은 있으나 쓸 줄 몰라 못 쓴 사람도 있고 쓸줄은 아나 돈이 없어 못 쓰는 사람도 있다. 흔히는 쓸 줄 아는 사람에게는 없고 쓸 줄 모르 는 사람에게는 있다. 그러나 쓸줄을 알던 모르던 돈이라면 다 좋아한다.

우리 조선에는 여간한 쌀부자는 있지마는 돈부자는 많지 않은즉,무슨 큰 사업에 큰돈을 턱턱 내놓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적은 돈 을 쓸데없는 곳에다 허비해 버리니 이 어찌 한심한일이 아니랴. 돈 적은 사 회에서 여간 돈푼이나 가진 사람은 그의 책임이 자뭇 중하다 하노니 만일 그대들이 돌아보지 않고 그대들이 공헌하지 않으면 그 사회를 누가 개발시 키리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하기를 돈을 탐하기 전에 먼저 돈 쓸 곳을 찾으 라 한다. 소용 없는 곳에 생색없이 쓰려고 돈 돈하는 사람은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요 사회의 대적이다.

보라. 우리 사회에는 돈 없어 못하는 것이 몇몇이며 돈 있고도 쓸줄 몰라 못 쓰는 사람이 몇몇인가.

우리 사회에는 교육기관이 불완전하며 실업과 산업 방면이 캄캄하여 날마 다 늘어가는 것이 배고파 죽는 사람이요 이구동성으로 떠드는 것이 생활난 이 아니가. 그와 반대로 나날이 심하여가는 것은 부랑패류 뿐이니 이 사회 는 어찌 이다지 불공평하며 이다지 모순이 되는가?

그러므로 나는 사회의 진상을 생각해 볼 때에 실로 통탄함을 금치못한다. 지금 나는 돈 가진 사람들과 돈 모으려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말로 권고하 노니 돈 가진 자여! 그 귀하고 중한 돈을 공연히 썩혀 버리지 말고 사회를 위하여 금고문을 열어 놓으라.

쌀 가진 자들아.... 곡간에 곡식이 줄어드는 것만 원통하다 말고 주위에서 울고 있는 불쌍한 동포들을 생각하라. 이것이 그대들의 할일이 아니고 누구 의 일이며, 그대들의 책임이 아니고야 누구의 책임이랴. 돈 많이 가지고 쓰 지 못해서 애쓰지 말고 이같이 유익하고 공중을 위하는 일에 공헌하라.

그 다음에 돈 모으는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그대들은 돈을 모아서 무엇에 쓰려는가? 전일의 야망몽매하던 때와 같이 자손에게 물려주어 패가망신하는 장본을 만들려는가? 만일 조금이라도 이같은 생각이 있거든 애쓰고 힘써서 돈을 탐하지 마라. 이렇게 말하면 너무 심하다고 하겠지마는 사회가 다 썩 어지고 동리가 다 망하는데 그대 홀로 돈만 가지고 않았으며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러나 이 위에서도 말하였거니와 지금은 금전 만능시대인즉, 돈 없이는 못 살 것이지마는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그대들의 먹고 입을 것까 지 다 내어놓으라 함이 아니다. 먹고 입고 쓰고 남은 것이 있거든 남을 위 하여 후생들을 위하여 인색하지 말고 쓰라. 사회를 위하여 공헌하라. 이같 이한 후라야 그 사회는 향상할 것이요 그 백성은 문명할 것이다. 금전만능 이라 할 적부터 금전의 위대한 능력을 말함이지마는 관연 금전의 능력이란 무서운 것이다. 다 사회와 국민의 향상 개발함에 금전이 무슨 상관이 있으 랴 하겠지마는 돈 없는 나라는 야만의 나라요 돈 없는 사회는 미개한 사회 이다.

당장에 야만 미개한 사람의 짓인 줄을 알면서도 돈 없이 못하는데야 어찌 하랴.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금전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고 세상 일과는 도 무지 상관하지 않고 산수 좋고 경치 좋은 곳에 찾아가서 숨어 지내는 사람 도 있지마는 이것도 역시 자기일신의 먹고 살것이 넉넉한 사람이나 할 것이 다. 그런즉 길게 말할 것 없이 우리는 싸우고 노력하여 돈을 모을지며 삼가 하고 생각하여 잘 쓸 것이로다.

돈의 노예가 되지 마라. 다음에 돈만 찾는 사람들과 돈 가지고 인색하여 쓰지 못하는 수전노들을 위하여 한 마디 말하고자 한다. 돈이란 것은 진실 로 무서운 것이다. 또한 있는 사람이나 돈을 위하여사는 사람들아! 너무 돈 만 알다가는 필경은 돈벼락을 맞을 것이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그리스도의 말씀도 있지마는 과연 그러하도다. 이 세상처럼 허망한것이 또 어디 있으 랴. 그대들이 살면 백 년을 살까, 천년을 살까.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 七 十 古來稀)라는 말도 있거늘 몇 해 못 사는 일생을 무엇에다 못 보내서 돈 의 노예가 되려는가. 참으로 가엾으며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겠도다.

이왕 부모에게서 끼쳐 온 것만도 잘 쓰지 못하여 패가망신을 하면서 무엇 이 부족하여 또다시 돈을 찾는가? 패가망신 할지라도 사회를 위하여거나 남 을 위하여 돈을 탐낸다면 모르거니와 자기 일신의 쾌락이나 영화를 위하여 그 귀한 일생을 돈 돈 하다가 사라져 버리니 이같이 하고야 모처럼 이 세상 에 왔던 보람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라. 처음에 돈을 부러워할 때에는 그 외의 여러 가지 좋은 사업 도 부러워할 것이지마는 차차 돈맛을 알면 사업은 고사하고 부모 형제들까 지도 몰라보게 되니 이 어찌 사람의 할일이랴.

이것을 실지로 비유해 보자.

처음에 돈을 볼 때에는 다른 물건도 마치 한 가지로 함께 보이지마는 차차 돈과 가까워질수록 다른 물건은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다가 만일 돈이 눈 앞에까지 와서 눈과 맞붙을진대 보이는 것은 돈뿐이나 맨 나중에는 돈도 안 보이게 될 것이 아니가? 그러면 그 사람은 장님이 된 것이다. 이것은 한갖 비유에 지나지 못하지마는 사실인들 무엇이 다를까. 이것을 볼진대 돈이란 귀하기는 하지마는 신성치는 못한 것이며, 돈으로 살기는 하지마는 돈만 생 각할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돈 가진 사람들에게 돈을 버리라는 말은 아니 요 돈을 잘 쓰라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는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도 많으니 이것은 모두 돈가진 자들 의 할 일이 아닌가? 대학교도 있어야 할 것이며 도서관도 있어야 할 것이 다. 큰 회사도 설립하고 큰 공장도 세워야 한다. 돈없어서 공부 못하는 학 생들과 돈 없이 일 못하는 청년들을 위하여 공헌하여야 한다. 억지로 돈을 빼앗아 오는 수는 없지마는 돈을 잔뜩 넣어 두고 이같이 필요하고 신성한 일을 쓰지 않으면 그대나 그대의 후손에게 언제든지 그만한 손해가 미칠 것 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그대의 처한 사회가 망하고 그대의 후생들이 못 생기게 되면 그것이 누구의 잘못이며 누구의 책임인가를. 나도 역시 돈 없어 공부 못하고 일 못하는 청년 중의 한 사람이다. 돈 없어서 일생을 녹녹히 지내며 돈 없어서 이름을 후세에 전치(前置) 못할 생각을 하면 가슴이 터질 것이다 마는, 나는 결코 돈 있고 쓰지 않는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이 돈을 쓰기 싫어함도 아니요 수전노가 되고 싶어서 그러함도 아니겠지마는 다만 쓸 줄을 모르고 어떻게 쓰면 적당한지를 모르는 까닭인즉, 나는 그대들에게 억지로 돈을 쓰라는 것보다도 먼저는 자던 잠을 깨우치고 깬 사람의 할 일 을 하라고 한다. 시대를 생각하고 처지를 살펴보아라고 한다. 그들의 주위 에 있는 모든 사람과 그들의 처해 있는 사회 전반이 그대가 깨기만 기다리 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나는 부르짖노니 깨어라, 깨어라, 다시 한번 부르짖노니 돈 있는 자들아, 수전노의 누명을 쓰지 말고 사회를 위하여 공헌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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