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속엔 이때까지 발표된 내 작품의 거의 대부분이 수록되었다. 그중엔 발표된 가운데서도 부득이 빼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있으며, 또한 미발표대로 들어간 것도 있으나, 내가 작품 위에서 걸어온 정신적 행정을 짐작하기엔 과히 부족됨이 없을 줄 안다.

실상은 지난 가을에 처음 어느 친구로부터 이때까지 쓴 작품을 모아 출판했으면 어떻겠느냐는 즐거운 권유를 받았을 때, 비로소 사산(四散)된 구고(舊稿)들을 모으기 비롯하여 한 권이 되었으나, 그간의 여러 가지 형편으로 초지(初志)를 이루지 못하고 새 작품을 쓰기 시작했었다.

현해탄이란 제(題) 아래 근대 조선의 역사적 생활과 인연 깊은 그 바다를 중심으로 한 생각, 느낌 등을 약 이삼십 편 되는 작품으로 써서 한 책을 만들어볼까 하였다.

이 가운데 맨 뒤에 실린 바다가 많이 나오는 일련의 작품이 그것이다.

그러나 재능의 부족과 생각의 미숙 등 외의 여러 가지 곤란에 부닥쳐, 끝까지 써나갈 용기와 자신을 다 잃어버렸다.

그래 할 수 없이, 그 전에 한 권에 모았던 가운데서 얼마를 빼고 새로 쓴 작품과 어울러서, 이 한 책이 된 셈이다.

편순(編順)은, 대략 연대순으로 하였는데, 그렇다고 반드시 발표 연월을 고사(考査)하여 차례를 매지도 않았다.

이 중엔 약간 그런 의미의 연대는 어긋나는 곳이 한두군데 있으나 전체로서 이해를 방해할 만한 정도에는 이르지 않았다.

단지 「네거리의 순이(順伊)」로부터 「세월」에 이르는 동안 내 작품 경향 발전상 한 개 새 시대였다고 볼 수 있는 몇 작품이 들지 않았다.

그 밖에도 「네거리의 순이(順伊)」 한 편으로 그 때 내 정신과 감정(感情)생활의 전부를 이해해 달라 함은 좀 유감되나 할 수 없는 일이고, 「세월」에서 「암흑(闇黑)의 정신(精神)」 그러고 「주리라 네 탐내는 모든 것을」에 이르는 한 시기로부터, 그 뒤의 한두 번 변한 내 작품 경향을 이해하기엔 충분한 작품이 거의 전부 모여 있다.

맨 끝에 실린 「바다의 찬가(讚歌)」는 이로부터 내가 작품을 쓰는 새 영역의 출발점으로서 특히 넣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더 이런 경향의 작품을 넣으려 하였으나, 매수도 너무 많고 하여 일후 다행의 다시 작품집을 하나 더 가질 수 있다면 하는 요행을 바라고 욕심을 덮어두어 버렸다.

자꾸 변명 같아서 구구하지만 하나 더 미진한 점을 말하면 「네거리의 순이(順伊)」 이전 내 전향기의 작품과 그보다도 전, 어린 다다이스트이었던 시기의 작품을 넣고 싶었다가 구할 수도 없고 초고(草稿)도 상실되어 못 넣은 것이다.

이것은 내 지나간 청춘과 더불어 영구히 돌아오지 않는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생각하면 쓸 때에 그렇게 열중했던 소위 노력의 소산이란 것이 뒷날 돌아보면 이렇게 초라한가를 생각하면 부끄럽다느니보다도 일종 두려움이 앞을 선다.

내 자신이 이럴 바에야 하물며 인연 없는 제군에게 있어선 이 가운데 단 한편이라도 나의 이름과 더불어 기억되리라고는 차마 믿을 수가 없다.

단지 바라는 것은 나의 앞날을 위하여 매운 비판의 회초리로 이 작품들이 읽혀짐을 열망할 따름이다.

끝으로 일년 넘어 이 책의 탄생을 위하여 노력해주신 동광당 이남래(李南來) 형과, 일산(逸散)된 원고들을 모아준 젊은 우인들에게, 정성을 다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이들 없이는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가 도저히 없었을 것이다.

또한 난잡한 글을 일일이 한글로 고쳐주신 이극로(李克魯) 씨에게 삼가 후의를 감사하는 바이다.


정축(丁丑) 동짓달,
합포(合浦)에서
저자(著者) 식(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