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탄/밤 갑판 위
너른 바다 위엔 새 한 마리 없고,
검은 하늘이 바다를 덮었다.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
배는 한 곳에 머물러 흔들리기만 하느냐?
별들이 물결에 부딪혀 알알이 부서지는 밤,
가는 길조차 헤아릴 수 없이 밤은 어둡구나!
그리운 이야 그대가 선 보리밭 우에 제비가 떴다.
깨끗한 눈가엔 이따금 향기론 머리같이 날린다.
좁은 앙가슴이 비둘기처럼 부풀어 올라,
동그란 눈물 속엔 설음이 사무쳤더라.
고향은 물도 좋고, 바다도 맑고, 하늘도 푸르고,
그대 마음씨는 생각할수록 아름답다만,
울음소리 들린다, 가을바람이 부나 보다.
낙동강 가 구포벌 위 갈꽃 나부끼고,
깊은 밤 정거장 등잔이 껌벅인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고, 누이도 있고, 아이들도 있고,
건넛마을 불들도 반짝이고, 느티나무도 꺼멓고, 앞내도 환하고,
벌레들도 울고, 사람들도 울고,
기어코 오늘밤 또 이민열차가 떠나나보다.
그리운 이야! 기약한 여름도 지나갔다.
밤바람이 서리보다도 얼굴에 차,
벌써 한해 넘어 외방 별 아래 옷깃은 찌들었다.
굶는가, 앓는가, 무사한가?
죽었는가 살았는가도 알 수 없는
청년의 길은 참말 가혹하다.
그대 소식 나는 알 길이 없구나!
어느 누군 사랑엔 입맛도 잃는다더라만,
이 바다 위 그대를 생각함조차 부끄럽다.
물결이 출렁 밀려오고, 밀려가고,
그대는 고향에 자는가?
나는 다시 이 바다 뱃길에 올랐다.
현해(玄海) 바다 저쪽 큰 별 하나이 우리의 머리 위를 비칠 뿐,
아무것도 우리의 마음을 모르는 않는다만,
아아, 우리는 스스로 명령에 순종하는 청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