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탄/골프장
까만 발들이 바쁘게 지나간다.
이슬방울이 우수수 떨어지며,
흙 새에 끼었던 흰 모래알이
의붓자식처럼 한 귀퉁이에 밀려난다.
그러면 어린 풀잎들이 느껴 운다.
뭐, 인젠 그 연한 풀잎이
알몸으로 뙤약볕을 쏘여야 하니까……
정말 가는 이파리들은 아직 나이 어려도,
염천(炎天) 아래서 찌는 듯한 폭양(暴陽)을 온종일 받아야 할 쓰라림을 잘 알고 있다.
외국말을 쓴 세모난 다홍 기가
승리자처럼 흰 깃대 위에 너울거린다.
흘러가는 흰 구름이나 엷은 바람,
모두가 그에겐 행복스런 음악 같다.
딱! 모진 소리가 까만 저 끝에서,
푸른 하늘의 파문을 일으키며 울려온다.
기다란 커브가 끝나자
패랭이의 분홍꽃, 클로버의 긴 줄기,
모두다 사태에 밀리듯 쓰러지며,
너희들은 사냥개처럼 풀밭 위를 뛰어간다.
뒤이어 짜그르르 끓는 손뼉 소리에 섞여,
신여성의 외국말이 고양이 소리처럼 날카롭다.
참말 등(藤)나무 시렁 밑이란 무척 시원하렷다.
해는 벌써 버드나무 위에 이글이글하다.
그 위에를 달리고 있는 까만 머리 아래 가는 목덜미 마른 잔등이가 가죽처럼 탔구나!
잠방이만 입고, 아이들아! 너희는 저고리를 잊었니?
아하! 궁둥이가 뚫어졌구나.
그럼 필연코 너희들은 해진 잠방이밖엔 없던 게구나.
바가지 모자를 쓴 신사어른들도 잠방이를 입었다.
허나 누런 빛 월천꾼이 바지는
몹시 값진 옷감이다.
그이들이 아까 공채를 둘러매고 자동차로 왔다.
물론 신여성이 어깨에 매어달려 달게 웃고,
너희를 욕하던 뽀이 놈이 날아갈 듯 인사를 했다.
월천꾼이가 도랭이 먹은 개처럼 몸을 비틀면,
“어쩌면 저렇게 스타일이?”……
뽀이 놈은 아가리를 벌리고, 신여성은 고양이 소릴 치며 술잔을 든다.
이래서 담뱃대 같은 공채가 땅만 긁다가 비뚜로라도 공을 맞히면,
만세! 소리 박수 소리 찌어지는 여자의 목소리 똑 가축시장 같다.
별로 공이 가본 일도 없는 싱거운 삼백 야드 말뚝이,
어제 정신을 잃고 집으로 업혀 간,
그애의 이마를 깠구나.
죄 없는 풀 이파리가 함부로 짓밟히고,
네들은 홧김에 말뚝을 걷어찼다.
그때도 이놈에 손뼉과 웃음은 멎지 않았다.
아마 그들은 이런 유별난 병에 걸렸나 보다.
아이들아, 너희들은 공을 물어오는 사냥개!
월천꾼들은 눈먼 포수(砲手)!
그러나 사냥개란 집에서 놀릴 때도 고기를 주지만,
그렇게 너희들은 온종일 마당에 풀만 뜯다
비를 맞으며 강아지처럼 달달 떨고,
둑을 넘어서 집으로 가 내놀 것이란 빈손뿐이니, 들앉았던 아버지는 화를 내실밖에?
그럼 너희들은 이곳에 놀러 온 것은 아니로구나.
이곳은 어른들이 장난하는 곳,
공이란 놈은 너희들의 설은 속도 모르고,
제 갈 대로 떴다 굴렀다 달아만 난다.
누구가 알까?
넘어지는 풀잎의 아픔이나 네들의 설음을!
멀리 가면 멀리 갈수록 좋아라 즐겨하는 월천꾼이 신여성의 마음은 공보다 더하다.
아이들아! 네들의 운명은 공보다도 천하구나?
왜 이렇게 넓은 곳에 곡식을 심지 않았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보던 네 아우에게,
착한 아이들아! 네들은 무어라 대답했니?
이곳은 우리들의 미움을 심는 곳!
그러고……가만히 귓속 해줄 제 고운 풀잎들은 즐거움에 떨었다.
네 귀여운 동생은 네 가슴에 안기며 머리를 꼭 박고 언니,
우리 한 푼도 쓰지 말고 아빠 갖다가 줍시다…….
네 불쌍한 동생은 눈깔사탕을 단념했다.
아이들아! 내 아이들아!
만일 우리로 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대체 무엇을 아끼겠는가? 네들의 행복을 위하는데……
햇님까지도 그 큰 입을 벌리라 말하지 않니?
이따위 일은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