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최서해)

먼 산은 푸른 안개에 윤곽이 아른하고 담 밑에 저녁연기가 솔솔자자 흐를 때였다. 추근한 땅 위에 부드럽게 내리는 이른 봄 궂은비는 고독한 나그네의 수심을 한껏 돋운다.

전등도 켜지 않은 방 미닫이를 반쯤 열어 놓고 컴컴한 황혼 속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 나의 몸과 마음은 농후한 자줏빛 안개 속으로 점점 스러져 들어가는 듯하였다. 나는 눈을 감고 머리를 숙였다. 기름을 붓는 듯이 미끄럽게 들리는 빗소리, 삼라만상을 소리 없이 싸고 도는 으슥한 빛, 모든 것은 끝없는 솜같이 부드러운 설움을 휩싸서 여지없는 듯하다. 그 설움은 내 옷을 추근히 적시고 온 모공(毛孔)으로 살금살금 기어 들어서 혈관을 뚫고 붉은 피를 푸르게 물들여서 내 온몸을 안팎 할것없이 속속이 싸고 도는 듯이 안타깝고 아쉽고 그리워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애수를 가슴에 부어 넣는다.

아아 감개무량한 날이요, 감개무량한 황혼이다. 나는 이 봄을 당할 때마다 칠년 전 옛 봄을 생각한다. 한 번 간 후로 소식이 묘연한 김군을 생각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때는 일구일구년 삼월 이십오 일이었다.

나는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 김우영 군께서 그가 고국을 떠난다는 마지막 편지를 받은 날이다. 그것은 내가 그에게 써 보낸 편지의 회답이었다.

김우영의 회답


군의 편지는 어저께 받았다.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여 무어라 하면 좋을지 모른다. 꿈같기도 하고 거짓 같기도 하다. 그러나 또렷한 군의 필적이거니 이제 무엇을 다시 의심하랴? 나는 밤새껏 가슴을 쥐어뜯으면서 울었다. 울기는 벌써 때가 지난 줄 내 모르는 것이 아니건만 나오는 눈물을 어찌하랴? 집 떠난 지 오 년 사이에 내 사랑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린것이 죽고 이제 남았던 아내까지 죽었으니 아아 무슨 바람과 무슨 면목으로 이제 다시 고향을 밟으랴?

올해는 어떨까 명년에는 어떨까 하여 해가 갈 때마다 집으로 돌아가기를 맹세하고 바랐으나 몸은 점점 괴로울 뿐이고 모든 것은 뜻같이 되지 않아서 고향으로 못 돌아갔다. 이리하여 세월도 나를 속였거니와 나도 세월을 속였으며 내 사랑하던 식구까지 속였구나.

작년 가을에 이곳으로 온 것은 이역상설에 너무도 고향이 그리워서 고국 땅이라도 밟아서 한걸음이라도 고향 가까이 있어 보려는 진정으로 온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도 노동자의 무리에서 비지땀을 짜게 됨에 역시 낭탁이 비었다. 가난에 우는 처자를 버리고 떠나서 한 푼 없이 어찌 돌아가랴. 그네들은 죽는 때에 눈을 못 감았으리라. 아아 이 무정한 나를 얼마나 바라고 기다렸으랴. 나도 목석이 아니거니 어찌 그것을 모르랴. 생각할수록 가슴이 터지는 듯하다.

나는 가련다. 저즘께 차 버렸던 만주나 시베리아로 가련다. 그러나 나는 고국에 많은 애착을 두고 간다. 이 몸이 떠나는 때 그 자국자국에 괴일 눈물의 뜻을 군은 알 것이다.

죽어서 만약 영혼이 있다 하면 나는 고향으로 가련다. 부모처자의 영혼을 따라 고향 가서 이 가슴의 설움을 끝까지 아뢰고자 한다.

잘 있거라. 그러나 군의 목숨이 붙어 있는 때까지 이 세상에는 김우영이라는 친구가 있었더라는 것을 잊지 말아 다오.

삼월 이십삼 일 김우영 씀.
이우춘 군.

그날도 이렇게 비가 뿌렸다. 사랑하는 벗의 쓰라린 편지를 고즈넉한 봄비 속에서 읽을 때 나는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감개의 가슴을 만졌다.

김우영 군이 고향 있을 때 일이다. 하루는 그리 몹시 불던 바람이 자더니 곧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었다. 우중충한 날이 반나절이나 계속되다가 해 넘어 갈 때부터 함박꽃 같은 눈이 펄펄 내렸다. 눈은 밤새껏 퍼 부어서 온 거리에 솜같이 쌓인 위로 새벽부터 바람이 건너기 시작하였다.

해 오를 임박에는 바람 형세가 맹렬하였다. 노한 바다 소리같이 우―하고 서북으로부터 쏠려 내려올 때면 지진 난 것처럼 집까지 흔들흔들하는 듯하였다. 눈가루가 창문을 치는 때면 모래를 뿌리는 듯이 쏴―하며 뚫어진 구멍으로 막 뿌려들었다. 울타리 말장이 부러지는지 뉘 집 지붕이 떠나가는지 우지끈 뚝딱 덩그렁 철썩 하는 소리는 온 생령으로 하여금 점점 몸을 옹송그리게 한다.

식전부터 순사들은 돌아다니면서 눈을 치우라고 야단이다. 그러나 쓸어 놓으면 또 뿌려 오고 낯을 들면 눈이 뿌려서 옴짝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경관들은 칼 소리를 내고 돌아다니면서 못 견디게 굴었다.

나는 화로를 끼고 앉았다가 하는 수 없이 밖에 나섰다. 천지는 뿌여서 눈안개 속에 잠기고 칼 같은 바람은 뺨을 후린다. 나는 바로 우리 집 앞에 있는 우영 군 집으로 갔다. 둘이 협력하여서 눈을 치워 보려고 생각한 까닭이다. 우영 군 집 마당에 들어서니 그 집 온 식구들은 벌써 밖에 나왔다. 우영 군의 아내는 맨발에 떨어진 짚세기를 끌고 낯이 파랗게 질려서 흙마루에 뿌린 눈을 쓸고 있다. 그리고 우영 군은 차디찬 눈 뿌린 툇마루를 짚고 앉아서 흑흑 느껴 가면서 눈물을 떨어뜨린다. 나는 웬일인가 하여 눈이 둥그레서,

“자네 왜 우나? 응?”

하고 물었다. 그러나 우영 군은 아무 대답이 없고 마루 밑에 떨어진 짚세기를 찾고 있던 그의 늙은 어머니가 머리를 돌려 나를 보면서,

“자네 왔나?”

하고 어색한 소리로 말한다.

“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그런데 우영 군이 왜 저러고 앉았어요?”

“응 그 급살을 맞을 놈들이 그 애를 때렸네! 에구 그 언 뺨을 그놈들이 사정없이도 때리데.”

“누가 때려요?”

“순사놈들이 때리지 누가 때리겠나!”

“순사가 왜 때려요?”

“눈치라 얼른 나오잖는다구 그 구둣발로 차고 그것도 부족해서 뺨까지 때렸다네! 에구 망할 놈의 세상두…….”

그 어머니는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우영 군을 본다. 나도 보았다. 팔뚝이 빠진 헌 양복저고리를 입고 울던 우영 군은,

“내가 아무 때든지 이 설치를 해야지.”

하며 마루를 꽝 때린다.

“이 사람아! 울 것 있나?”

“너무도 억울해서 그러네! 이놈의 사회가 언제까지 이 모양으로 갈는지?”

우영 군과 나는 들채에다 눈을 담아서는 앞개울로 내다 버렸다. 그런데 우영 군은 우리 노동자 가운데서는 꽤 든든한 편인데 이날 아침에는 숨이 차서 헐떡헐떡하며 이마에 땀이 내돋아서 서리가 뿌―옇다. 그리고 몇 걸음 걷다가는 휭 하고 자빠지거나 비틀비틀 하고 잘 걷지도 못한다.

“이 사람이 오늘 아침에는 왜 이리 자빠지나? 허허!”

나는 농담을 하면서 들채를 들다가 쓰러지는 그를 보고서 웃었다.

“에구! 벌써 세 끼나 굶었으니 무슨 기운이 나겠나!”

마루에 서서 우리를 보던 우영 군의 어머니는 탄식처럼 뇌인다. 그 소리를 들은 나는 그만 맥이 풀렸다. 나는 겨죽이나마 배불리 먹고 굶은 그네들 앞에 선 것이 죄송스럽기도 하고 고생을 죽도록 해도 근근히 생명을 이어 가는 우리네 팔자가 너무도 억울하였다.

그 후 며칠을 지났었다. 하루는 우영 군이 나를 찾아와서,

“나는 떠나려네!”

“응, 어디로?”

“간도나 해삼위로 가려네!”

“거기는 가서?”

암만해도 이 상태로는 늘 이 꼴이 되겠으니 어느 금광이나 탄광에 가서 좀 벌어 보겠네.”

“이 사람아, 식구들은 어찌할 작정인가?”

“어쩌다니? 방책이 없지!”

“괜히 고생만 더하게 되기 쉬우니 잘 생각하게나!”

“자네 아직도 못 깨달았나? 우리가 여기서 고생을 더하면 얼마나 더하겠나! 나는 내 일생에 고생을 피하거나 벗으려고 하지 않네. 글쎄 그러면 그것은 마음만 상하지 쓸데 있나. 나는 어떤 고통이든지 지긋지긋 밟고 나가서 그것을 이기려고 하네. 어쨌든지 살아 보려고 하네. 내가 떠나는 것은 좀 웬만하면 식구들을 배나 주리지 않게 할까 함일세. 내가 굶은들 상관 있나마는 식구들 굶는 꼴은 참 못 보겠네. 어디 가 보아서 좋으면 몇 달에 얼마씩이라도 보내게 될 터이지.”

“글쎄 그렇다면 모르거니와 참 딱하네.”

그 후로 그는 시베리아로 북만주로 찬비와 쓰린 눈을 무릅쓰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집에는 돈 한 푼 못 보내었다. 그의 식구는 열흘이면 엿새는 굶었다. 그 후 오년 만에 우영 군은 경흥 웅기에 왔다는 편지가 있었다. 그 편지를 받던 후로 그의 식구들은 그의 오기를 더욱 기다렸다. 그 어머니는 늘 이런 편지를 그에게 부쳤다.

그러자 그 이듬해 봄에 독감이 유행하여 그의 식구들은 하나 남지 않고 죽었다.

“우리 우영이는 어째 안 오는가? 응! 우영이 왔나?”

그 어머니는 죽을 때에 곁에 앉은 나를 보고 여러 번 물었다.

이 식구들의 죽은 소식을 들은 김우영 군은 마지막 편지를 나에게 주고 웅기를 떠나서 또 해외로 갔다. 그것이 벌써 칠 년 전 옛일이다.

김우영 군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도 그 후로 고향을 떠나서 타관에 유리표박하게 되면서부터 다년 생활에 몰려서 어떤 때면 그를 잊다시피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이 봄을 만나고 더욱 궂은 봄비 뿌리는 때면 그가 그립고 고향이 그립다. 작년인가 풍편에 들으니 김우영 군은 모스크 XX회에서 활동한다 하나 자세한 소식은 못 된다.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그도 살아 있다 하면 내가 그를 생각하는 이만치 그도 나를 생각할 것이며 내가 고향을 그리는 것처럼 그도 고향을 그릴 것이다. 천리에 방랑하는 두 혼의 가슴에 타는 애수는 언제나 언제나 스러질까? 인생이 있는 동안에는 이 설움은 늘 있을 것이다. 창 앞에 빗소리는 그저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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