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청조 새와 개성 송씨
- 女丈夫의 復讐 奇談
- 파랑새와 開城 宋氏
수년 전에 어떤 신문에는 경성 시내 수창동 사는 모 기생이 자기 정랑과 실연한 관계로 한강에 투신 자살을 하였는데 난데없는 파랑새가 그 집에 와서 며칠 동안을 비명하고 돌아다니다가 소리를 감추고 사라지고 그 뒤를 이어서 그 기생의 정랑의 집에는 또 노랑새가 나타났기에 죽은 여자의 집으로 갖다 두었더니 그 새는 도무지 갈 줄을 모르고 그 집에 있으므로 그 집 사람들은 그 새가 혹여 죽은 여자의 원혼으로 화해 나온 새나 아닌가 하고 잘 위하여 주며 따라서 그 소문이 점점 퍼져서 날마다 그 집에는 구경꾼이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계재되어 한참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꺼리가 된 것은 누구나 잘 기억할 것이다.
아무리 그 여자가 원통히 죽었기로 그 원혼이 화해서 청조(靑鳥)나 황조(黃鳥)가 되었다는 말을 과학이 발달된 오늘날에 있어서 누구나 믿지 않을 일이지마는 진소위 오비이락 격으로 그 여자가 원통하게 죽자 난데없는 새가 보이니까 일반이 그렇게 괴이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파랑새 이야기는 지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옛날에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옛날 숙종대왕(肅宗大王) 때였다. 개성에는 고준실(高俊實)이란 청년이 있었으니 그 청년은 지금의 개성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외방으로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였다. 한번은 개성의 특산인 인삼(人蔘)을 가지고 중국 지방으로 가서 팔아오려고 말에다 한 마리를 잔뜩 싣고 중국을 향하여 가는데 그럭저럭 며칠 동안을 간 것이 국경 지방인 의주(義州)에까지 이르러서 박춘건(朴春建)이란 사람의 객주 집에서 며칠을 머므르게 되었다. 박춘건은 원래 상업 관계로 평소부터 피차에 잘 알고 있는 까닭에 자기의 가지고 간 인삼과 말을 다 맡겨 두었었다.
그러나 진소위 물욕이 교폐하면 형제 숙질간에도 서로 살육을 한다고 박춘전은 그 지방에서 물상 객주를 하고 또 고씨와 아무리 친한 터이지마는 그 귀중하고 값많은 인삼을 보고는 불의의 욕심이 불같이 일어나서 평소의 친분이고 의리고 다 불고하고 고씨를 죽이고 그 물건을 빼앗을 야심이 생겼다. 그리하여 하루 밤은 고씨에게 술을 권하여 잔뜩 취하게 하고 자는 틈을 타서 칼로 목을 찔러 죽인 다음에 그 죄상을 감추기 위하여 그 시체를 들어다가 압록강(鴨綠江)에다 띄워버리고 또 증거를 없애기 위하여 그의 말까지 죽여서 감쪽같이 강에다 던지니 경찰이 밝지 못한 그 시대에 있어서 누구나 그 사실을 알 사람이 없고 다만 아는 이가 있다면 죄악을 지은 자기와 천지신명 뿐이었다.
그때 고씨의 본집에는 아무도 없고 다만 그의 사랑하는 처 송씨(宋氏) 한 사람만 있었다. 젊은 두 부부의 사랑하는 정으로 말하면 다만 한 시간이라도 피차에 서로 떨어질 수가 없는 터이지마는 다만 장사를 하여 돈을 모은다는 그 욕심에 사랑하는 정도 다 잊어버리고 항상 그 남편을 이별하고 적적한 공방을 지키니 상인중리경별이—商人重利輕別離—란 옛사랑의 눈물겨운 노래를 그대로 부르고 다만 그 남편이 몸 성하게 잘 다니며 장사 잘 하기를 축원하였다. 그때에도 남편을 먼 지방으로 떠나보내고 날마다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남의 손에서 원통한 죽음을 하고 그 시체까지도 물속에 파묻히게 된 그 남편이 어찌 돌아올 가망이나 있을 수 있으랴.
그 부인은 자기 집에 있어서 한 달 두 달 그 남편이 오기를 기다려도 도무지 소식이 없으므로 밤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항상 눈을 뜬 그대로 지내더니 주사야몽이라 할지 하룻밤은 우연히 꿈을 꾸니까 자기의 남편이 평소와 같이 말을 타고 왔는데 온몸에 피투성이를 하고 말도 또한 유혈이 낭자하였다. 부인은 깜짝 놀라 깬 후 심신이 더욱 산란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더니 하루아침에는 또 난데없는 파랑새 한 마리가 자기의 머리 위에 와서 앉았다. 부인은 남편이 온다는 기한에 오지 않을 뿐 아니라 몽조와 파랑새 뵈는 것이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되어서 이리 생각 저리 생각하다가 최후에는 자기 남편을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집안일을 남에게 다 맡겨두고 자기는 남복을 하고 국경방면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연약한 일개 여자의 몸으로 교통이 불편하고 도로가 험난한 천여 리의 길을 떠나니 몸의 피곤함도 여간이 아니어니와 가지고 간 노자가 또한 다 떨어졌다. 최후에 부인은 할 수 없이 거지의 행색을 하고 이 집 저 집에 들어가서 밥을 빌어먹으며 의주까지 갔다.
그곳에 가서 여러 사람에게 탐문을 하여도 자기 남편의 종적을 알 수가 도무지 없더니 하루는 우연히 자기 남편을 죽인 박춘건(朴春建)의 집으로 들어간즉 뜻밖에도 자기 남편의 가지고 다니던 말채찍(鞭)이 그 집에 있고 그 채찍에는 아직 피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부인은 그 집을 퍽도 의심하고 그 근처로 돌아다니며 탐문을 한즉 과연 자기의 남편이 몇 달 전에 그 집에 와서 유하던 사실이 분명하였다. 그는 그 피묻은 채찍을 증거품으로 가지고 의주부(義州府)에 들어가서 부윤에게 고소를 하였으나 부윤은 그저 심상히 여기고 조사도 잘 하지 않았었다. 그 부인은 다시 호소할 곳도 없어서 밤낮으로 압록강 연안으로 돌아다니며 하늘을 부르짖고 통곡만 하였다. 그렇게 한 일주일 동안을 하였더니 그 정성에 무슨 소감이 있었든지 하루는 별안간에 강물 소리가 쏴하고 터져 나오며 송씨 남편의 죽은 시체가 물 위에 떠오르고 죽은 말까지 뒤를 따라 나왔다. 그 부인은 그 인마의 시체를 가지고 다시 순영(巡營)에 고소하니 순영도 또한 자서하게 그 사실을 조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관전에서 발악을 한다고 도리어 노하여 송씨를 처형하니 별안간에 보지 못하던 파랑새 한 마리가 송씨의 머리 위로 날아와서 슬픈 소리를 지르며 야단하니 순영관(巡營官)이 크게 놀라서 용천(龍川) 군수에다 명령하여 그 사실을 조사하여 박춘건을 죽이게 하니 그 부인은 그제야 그 남편의 원수를 갚고 자기 남편과 말의 시체를 운반하여 가지고 고향에 돌아와 장사 지내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부인의 정열을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또한 그 파랑새를 고씨의 죽은 원혼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