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천고 정녀 윤아랑
— 金碧이 寃血
- 千古貞女 尹阿娘
경부선 차를 타고 경남 경남 밀양역(密陽驛)을 지나려면 비단껼 같이 곱게 곱게 흘러가는 乙字江(一名 凝川江)이 눈앞에 보이고 그 강 위에는 영남의 第一名樓라 稱呼하는 금벽찬란한 영남루(嶺南樓=前名 金碧樓)가 우뚝히 솟아 있다. 그 누에서 동으로 약 수십보를 가면 대숲폴이 우거진 속에 아랑 유지(阿娘 遺址)라 새긴 조그마한 석비가 무슨 애원을 띠운 듯이 홀로 서서 있고 또 그 동편에는 한 간 남짓한 아랑각(阿娘閣)이라는 집이 바람과 비에 많이 닦여 나서 절반이나 쓰러져 있는데 이 아랑각에는 참으로 눈물나고 가련한 千古 애화가 숨어 있다. 이 아랑은 언젯적 여자인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옛날(대개 李朝 中葉인 듯)에 尹某라는 밀양 부사의 따님으로 얼굴이 天下 절색이요 재조가 또한 남보다 초월하여 누구나 그를 한번 보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니ㅎ지 못하던 아리따운 처녀였다. 그는 방년이 二八 시절에 그의 아버니를 따라 밀양 군아(郡衙)에 와서 있었는데 그때에 그 군아에 통인으로 있는 丁가란 자는 항상 그 처녀를 사모하여 어떤 기회만 있으면 자기의 전 생명을 희생하고라도 한 번 정을 통하여 보려고 고심하였다. 그러나 아랑은 당시 부사의 딸일 뿐 아니라 품행이 방정하고 바깥출입이라고는 절대로 없으니 어데 가서 말이나 한 번 부처 볼 도리가 있으랴. 그자는 외기러기 짝사랑으로 항상 타는 가슴을 두드리며 홀로 고민할 뿐이러니 생각하고 생각하던 끝에 한 개 흉계를 내서 그 처녀의 유모에게 뇌물을 많이 주고 그 유모로 하야금 처녀를 꾀어서 어느 날 달밝은 밤에 영남루 달구경을 가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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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처녀는 그놈의 흉계에 빠진 줄도 알지 못하고 다만 유모를 따라서 영남루로 갔었다. 밤은 고요하고 바람은 잔잔한데 순결한 그 처녀는 달빛을 사랑하여 이리로 배회하고 저리로 배회할 즈음에 그 간악한 유모는 별안간 소변을 하러 간다 하고 몸을 잠깐 피하자 놈이 돌연히 달려들어 그 처녀의 몸에 더러운 손을 대게 되었다. 그러나 원래에 白玉보다도 도 정결한 아랑이야 천만번 죽은들 어찌 그놈에게 몸을 허락할 수 있으랴. 죽을 힘을 다하여 저항하다가 나중에는 회중에 있던 칼을 가지고 그놈의 손이 탔던 유방(乳房)까지 잘라버리니 그 통인놈도 어찌 할 수 없어서 최후에 그 처녀를 칼로 찔러 죽이고 자기의 죄적을 감추기 위하여 시체까지 그 영남루 밑 대숲풀 속에 던지고 (지금 石碑 있는 곳) 달아나니 그의 원통한 사정은 부모까지도 알지 못하고 다만 하늘과 귀신만 알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원한은 맺치고 맺쳐서 비록 생명은 끊어졌을찌라도 그의 원혼은 의연이 남아있어서 꽃피고 달밝은 때와 날 흐리고 궂은비 올 때면 항상 슬피 울고 또 밀양 부사가 재로 올 적마다 자기의 애원을 하소연하고 현령(現靈)을 한층 부사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다만 귀신에게 놀라서 기절즉사할 뿐이었다. 이와 같이 二三次나 부사가 도임하면 즉시로 죽으니 밀양을 흉지로 생각하여 누구나 부사 되기를 싫어하여 얼마간은 밀양부청이 공청이 되다시피 하였다. 그때에 마침 李上舍라 하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본래 기개가 있고 담력이 장대하여 무엇이나 거리까지를 않는 사람이라 그 소문을 듣고 자청하여 밀양 부사가 되었다. 李上舍는 도임한 뒤에 영남루 동쪽방(其時 客舍로 使用)에서 향을 피우고 정숙히 앉았더니 밤이 점점 깊어 사오경이 가까우매 음풍이 스르르 불고 방문이 저절로 열리더니 一個 편발 여자가 머리를 산산히 흩으리뜨리고 온몸에 선혈이 낭자하며 목에 칼이 꽂치운 채로 헌연히 땅에 엎대어서 울며 말하되 「小女는 모의 딸로 모년 모월에 원통히 죽었사온데 이 설원을 하려고 여러 번 부사에게 말씀하고자 하였사오나 인간과 귀신이 다른 까닭으로 부사께서 알으시지 못하고 기절까지 하여 죽은 일이 많으매 스스로 죄송함을 이기지 못하겠삽더니 금번에 비로소 부사도를 뵈옵게 되니 만 번 다행이로소이다. 부사께서는 밝히 살피시사 이 원통한 한을 풀게 하시옵소서」 하고 애원하였다. 부사는 크게 괴이히 여겨 다시 그 여자에게 범인이 누구인 것과 시체의 있는 곳을 물으니 아랑은 또 대답하되 「시체는 모처에 있삽고 범인은 현재 군아에서 이속으로 있사온데 그자를 알읏려면 내일 아침에 조련을 받으실 때에 그중 한자의 갓 위에 흰나비(白蝶)가 앉아 있을 터이오니 그자가 곧 범인이올시다………」 하고 흔연히 간 곳이 없으니 부사는 그것이 꿈 같기도 하고 이상하여 그 이튿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혼자 영남루 부근으로 돌아다니며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과연 어떤 처녀의 시체가 하나 있는데 죽은 지는 오래서 의복은 비록 다 썩었을찌라도 몸은 형체가 그대로 있어서 조금도 썩지를 않았다. 부사는 더욱 신기하게 생각하고 급히 군아로 가서 여러 아전을 일시에 불러서 점고를 하니 난데없는 한 쌍의 백접이 공중으로 날아와서 丁가라는 통인의 갓 위에 앉았다. (或은 朱旗라는 吏屬이라고도 하나 密陽에 當時 通引 丁哥 子孫이 아직 있다고 한즉 丁哥가 分明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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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는 별안간에 호령을 추상같이 하고 丁가를 잡아 꿇리고 볼기를 때리며 전후 죄상을 다 자백하라고 하니 그자는 조금도 숨기지 못하고 사실을 자백하였다. 부사는 그 자리에서 그 丁가를 때려 죽이고 또 유모도 잡아다 죽인 다음에 아랑의 시체를 수습하여 본 집으로 보내 장사를 지내게 하고 그 시체 있던 곳에는 돌비를 해 세우고 또 아랑의 정신각(貞信閣)을 지어 그의 정절을 표하였다. 그 뒤에 어느 부사가 와서 백일장(白日場)을 보는데 「영남루 달밤에 리상사를 만나서 전쟁의 설원을 말한다」고 문제를 내었는데 한 십오륙세 된 아이가 시를 짓느라니까 별안간에 붓이 벌벌 떨리더니 마치 무당에게 신이 내린 것과 같이 詩가 물 쏟아지듯 하고 詩도 또한 天下 절창이어서 휘장 장원을 하였다. (그 詩는 아래에 揭載하는 바 嶺南 一帶에서는 只今도 글자나 하는 申光洙의 關山戎馬와 같이 傳誦한다) 그런데 그 아이는 그 뒤 집에 돌아가서 즉시 죽었는데 일 좋아하는 세상 사람들은 그 아이에게 아랑의 귀신이 접하여 그 詩를 짓고 또 아랑이 그 아이와 같이 저생에 가서 결혼을 하려고 죽게 하였다고도 한다. 그다음에도 이 사랑의 죽은 귀신은 가끔 현령하여 군주나 아전의 앞에 산 사람과 같이 보이면 군에 무슨 큰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매년 한 번씩 영남루 동편 기둥에서 아랑의 제사를 지냈었는데 (名曰 注祭) 만일에 제를 지내지 않으면 통인이 꼭꼭 한 사람씩 죽고 또 군수 도임할 때에는 응향문(凝香門은 卽 郡衙門) 서쪽에서 무당이 군수의 살풀이로 아랑의 굿을 한 일까지 있었다 한다. 지금은 역시 시대변천의 결과로 그러한 일까지는 없지마는 이 아랑각이라 하면 밀양 사람치고 별로 모를 사람이 없고 또 영남루의 구경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그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아— 불쌍하고 가련한 처녀의 원통한 죽음! 언제나 그 원한이 다 할까? 사명대사(四溟大師)의 出生地로 유명한 밀양! 銀魚회와 막걸리로 여러 사람의 침을 흘리게 하는 밀양! 慶南에서 蠶業 발전으로 有名한 밀양! 이 아랑각이 있으므로 또한 영원히 이름 높을 것이다. 끝으로 참고 삼아 위에 말한 백일장 시 몇 구를 기록한다. (奇聞叢話漫錄補入, 及密陽傳說)
- ◇ 嶺南樓月夜逢李上舍說前生雪寃
斂痕欲磨春江碧, 恨愁年年花血瀉. 林烟曳雨郭南村, 竹風吹雨北堂榭. 黃昏環佩乍延佇, 走燐踈螢凄上下. 樓頭月上可憐宵, 江上初逢李上舍. 寃魂凄滯九原讎, 孤語寒生五更夜. 阿娘豈識嶺南樓, 千里曾隨大人駕. 深閨慣讀內則篇, 貞玉芳姿年未嫁. 良宵己違母氏戒, 玩月那知乳媼詐. 芙蓉堂外倚小軒, 花佛西園人影乍. (餘不盡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