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이월사 부인 권씨

月沙 (월사) 李廷龜 (이정귀) 夫人 (부인) 權氏 (권씨)

조선에서 저명한 인물 중에 모범 부부를 말하자면 월사선생 이정귀(月沙先生 李廷龜)와 그 부인 권씨를 또한 빼어놓을 수 없다.

월사는 선조 때(宣祖 時)에 문장이요 또 명재상으로 유명한 분이어니와 그의 부인 권씨는 판서 권극지(判書權克智)의 딸입니다. 학식과 덕행이 겸유하여 집을 다스리는데도 항상 검소한 것을 숭상하여 평생에 비단옷과 진귀한 패물을 몸에 대지 않았으며 자기 남편이 일국의 재상이요 현주(玄洲) 백주(白洲) 두 아들이 또한 현달하였지마는 노래에까지 자기 손으로 남편의 밥상과 아들들의 밥상을 친히 설비하고 감독하였다. 그에게는 이러한 일화가 있다.

한번 정명공주(貞明公主) 집에서 혼인 잔치를 하는데 만조백관의 부인이 모두 모이고 사람마다 호사란 호사는 할 대로 다하여 찬란한 의복과 광채 나는 패물이 여러 사람의 눈을 현란ㅎ게 하였다. 그중 추후에 장보교 한 채가 오고 그 속에서 늙은 부인 한 분이 지팽이를 짚고 나오는데 의복인즉 순전히 굵은 벼와 미명 등속으로 입어서 얼른 보면 시골 농사하는 집 부인 같았다. 그러나 마루에 올라오기 전에 주인 공주가 맨발로 마당까지 내려가서 맞아들이니 여러 사람들이 누구인 줄 아지 못하고 모두 웃고 놀라며 연하여 맞아다 상좌에 앉히고 극히 공손한 예절로 대접하니 여러 사람들이 더욱 의심하였다. 그리고 상을 받은 뒤에는 그 부인이 먼저 일어나서 집으로 가겠다고 하므로 주인이 붙잡고 아직 날이 저물지 않았으니 더 노시다 가라고 한즉 그 부인은 말하기를 우리 집 대감이 약방 도제조(藥房 都提調)로 첫 새벽에 궐내에 들어가시고 맏아들은 정관(政官)으로 정석에 출근하고 작은 아들은 또 승지(承旨)로 입즉하였은즉 내가 가야만 저녁밥 반찬을 준비하여 보내겠다 하니 좌중이 그제야 월사상공의 부인인 줄 알고 서로 치어다 보며 정탄함을 마지않았다 한다. 이 한 가지 일만 보아도 그가 평소에 그 남편에 대하여 어찌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에 소위 신여자로서 자기 남편의 저녁밥을 잘 지어주지 않고 설렁탕 신세를 가끔 지게 하는 일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 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얼마나 차이가 있고 기막힌 일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