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송랑요와 최경
- 送郞謠와 最卿
—新婚夫婦의 斷腸 哀話—
때는 바로 선조 임진란(宣祖 壬辰亂) 때라 한다. 경상북도 고령(慶北 高靈) 어떤 촌에는 이경필(李敬弼)이라는 젊은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집안 형세가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부모 형제가 다 구존하여 과히 남부럽지 않게 사는 팔자 좋은 소년이었다. 그리고 그의 매부되는 옥동필(玉東弼)이란 사람도 또한 그와 비슷하게 자라난 사람으로 한 동리에 살며 피차 남매의 관계까지 맺어가지고 날마다 의좋게 지냈다. 이경필은 또 나이 二十세 청년 시대에 그 근처에서 최경(最卿)이란 처녀와 결혼을 하여 온 집안이 경사스럽게 잔치를 하고 신랑 신부는 어린 원앙의 무리 모양으로 재정을 붙여서 자미스럽게 지냈다. 이렇게 하루 이틀을 지내고 아무 고장도 없이 지나 백년까지 해로하게 되었다면 우리 인간으로서 그 얼마나 행복스러웠으랴. 그러나 조화옹의 작희라 할지 우리 인간의 불행이라 할지 제삼일이 되던 날 밤에 그 두 사람의 머리 위에는 청천벽력보다도 더 무서운 벼락불이 떨어졌으니 그것은 그때에 임진란이란 그 무시무시한 큰 난리가 일어나서 강제로 증병령을 내리어 전국에 십팔 세 이상의 장정이란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모조리 뽑아서 전지로 보내게 되었는데 이 이경필과 옥동필 남매 두 사람도 역시 병정에 뽑히어 가게 된 그것이었다. 누구의 명령이라 감히 아니 갈 수 있으랴. 그의 부모 이하 집안사람들은 전지로 보내는데 밤을 새워가며 의복을 짓고 가다가 먹을 음식도 장만하며 일방으로 전지를 팔아서 마필을 장만하여 주었다. 부모의 슬하에서 그때까지 아무 향방도 모르고 편히 살고 그중에도 신혼지초 따뜻한 사랑의 꿈을 꾸다가 별안간 죽을 땅으로 가는 경필의 심정도 어떠할 것을 짐작하겠지마는 산 설고 물 설은 곳으로 다만 신랑 하나를 바라고 시집을 왔다가 남편의 이름도 잘 모르고 단 사흘 되던 밤에 뜻밖에 그 남편을 죽을 땅으로 보내게 된 신부의 심정이야 더구나 어떠하다고 말할 수 있으랴. 그나마 그들이 전지에 가서 적군과 잘 싸워 승전고를 울리고 개선가를 부르며 집에를 잘 돌아왔다면 그러한 고맙고 영광스러운 일이 없겠지마는 불행히 이경필은 밤중에 말을 타고 복잡한 중에 여러 사람들과 같이 낙동강을 건느다가 말이 실족하여 가엾게 물에 빠져 죽었다. 그의 신부 되는 최경은 그 소문을 듣고 자기 남편의 시체를 찾으려고 도보로 낙동강까지 와서 며칠 동안을 애를 썼으나 그 시체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최후에 죽기로 결심하고 그 남편이 죽던 물로 뛰어들어가서 빠져 죽었으니 그 지방 사람들이 그를 불쌍히 여겨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천지를 돌아보니
이 지났든 별이 났네
그 말이 짓듯 말듯
나라묵이 잡혔다네 —나라묵은 徵兵令—
우루마씨 지은 쾌자
열에 닷죽 우하바씨
지은 신도 열에 닷죽
우리 놉우 지은 줌치 —줌치는 주머니—
열에 닷죽 우리 최경
지은 버선 열에 닷죽 —최경은 妻名—
집 안해라 내달라서
개똥 전지 배판하야 —배판=放賣—
피마 사고 봉매 사고
피마 등에 온짐 싣고 —피마=雄馬—
봉매 등에 반짐 싣고
책절입을 숙여 쓰고
무직일랑 작지 짚고
아바님께 하직이요
천금 같은 내 아들아
넘내두룩 가는 길에
질이나 곱기 댕기 오게
어머님께 하직이요
만금 같은 내 아들아
넘대두룩 가는 길에
질이나 곱기 당기 오게
누으님께 하직이요
천금 같은 내 동생아
넘대두룩 가는 길에
질이나 곱기 당기 오게
우리 최경 하직하니
기아 질아 가그들랑 —기아=旣往—
이름이나 짓고 가서
자내 이름 옥동필이
이내 이름 이경필이
앞에 가는 처남 손아
뒤에 가는 매부 손아
내 집까지 가거덜랑
편지 한 장 전코 가소
우라바지 들었으면
되동산이 문어질나 —되동산==뒷동산—
우로마니 들었으면
앞동산이 문어질나
우리 누우 들었으면
옥끝은 괴멋해라
눈물이 솟아났다
우리 최경 들었으면
행주치마 떨처 입고
기칸청에 썩 나서며
삼칸청에 색 나서며
삼산 밑에 남도령아
삼산 나ᇚ을 다비나마
조죽대랑 비지 마라
올 키우고 래년 키워
이경필이 낚을나네
못 낚으면 상사 되고
낚으면은 농사 되고
농사 상사 고로 매자
풀이도록 살아 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