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김병사의 딸 창암
- 金兵使의 딸 蒼巖
같은 여자의 이야기를 쓰는데도 미인 이야기를 쓴다면 쓰는 사람도 기분이 좋고 붓끝에서 향내가 물씬물씬 나서 자미가 있지마는 추부의 이야기를 쓰자니까 어쩐지 기분이 그렇게 쾌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본인에 대하여 스스로 미안지심이 생기고 붓끝이 잘 돌지를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 추부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결코 그분들의 결점인 추모만을 드러내기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요 불이모취인(不以貌取人)이란 말과 같이 비록 외모가 추한 분이라도 그에게 어떠한 미덕이 있다는 것을 주안으로 삼고 쓰는 것인즉 다소 미안한 마음이 없어진다.
한담이 너무 길었다! 조선에서 추모의 여자 이야기를 하자면 누구누구보다도 연산조(燕山朝) 시대에 추모로 유명하던 김창암(金蒼巖)이라는 여자의 이야기를 먼저 할 수밖에 없다. 그는 사람들이 추모라고 하는 이보다 자기가 먼저 추모로 자처하고 자호(自號)를 창암(蒼巖)이라 하였다. 창암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검푸른 바위와 같다는 뜻이었다. 그는 광주 김씨(光州金氏)로 병사 석진(兵使 石珍)의 딸이었다. 외모는 비록 없고 씨거매고 검고 푸르고 하여 마치 여러 천년 묵은 바위돌 모양으로 험상스럽게 생겼지마는 진소위 엷은 구멍에 슬기가 든다고 천재가 비상하고 어려서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여 불과 십여 살 때에 시와 문을 능통하였다. 그중에도 유교의 예법을 존중히 여겨 집에 있을 때에도 항상 가례(家禮) 효경(孝經) 예기(禮記) 등 서를 많이 읽고 집을 다스리는데 예법을 잘 지키니 일반이 모두 그를 모범부인이라고 칭하였다.
중종 삼년 무진(中宗三年 戊辰)에 그는 우연히 꿈을 꾼즉 자기가 어떤 큰 바다 속에 있는 높은 산 속으로 들어갔는데 그 산에는 화초가 만발하고 안개와 구름이 자우륵한 중 화각 한 채(畵閣 一棟)가 늘어진 버들 속에 우뚝히 솟아 있어 단청이 찬란하고 어여쁜 새들이 처량하게 울며 네 여자가 나와서 영접을 하며 말하되 부인께서는 어찌 그리 늦게 오십니까 하고 부측을 하여 방으로 안내하더니 술을 부어주고 이런 노래를 하였다.
한 쌍의 난선이 가고 안 오니
운대의 벽도 덧없이 진다
빨르게 돌아오소 동해 우으로
거문고 타가면서 취ㅎ도록 노세
- —原 詞—
鸞仙一雙去不廻, 碧桃花老雲臺.
早歸來兮東海上, 瑤琴共醉綠葉盃.
그 꿈을 꾼 지 三日 후에 그는 이상하게도 병이 들어 그만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아마 그가 인간에 있어서 추모 여자 노릇 하는 것을 선계의 여자들까지도 애석히 여겨서 그렇게 다려갔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滄溪聞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