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담 사화 전집 (차상찬)/출천 대효
- 출천대효(出天大孝)
소설이란 원래가 작자의 머리 속에서 흘러 나오는 위대한 창작의 힘으로 구성되는 것이로되 흔히 어느 일정한 「모델」 밑에서 얼굴을 그리고 분칠을 하고 옷을 입히고 그 위에 의식적인 행동을 집어 넣어서 한개의 사람을 만들고 한 조각의 사회상(社會相)을 따 놓은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자고로부터 효(孝)와 절(節)의 두개의 대표적 큰 작품은 심청전(沈淸傳)과 춘향전(春香傳)이었다.
그러면 이 두작품은 과연 모델이 없는 허구적(虛構的)인 두 작품이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두 편이 모두 출처가 분명하니 사실로 그 작자가 이 사실을 모델로 했느냐 안했느냐 하는 것은 논증(論證)할 필요도 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 기록하여 독자와 더불어 더듬어 볼가 한다.
때는 벌써 일천 오백 칠십년 전(一千五百七十年前) 우리 나라는 고구려 고국양왕(故國壤王) 육년(六年) 기축(己丑)이며 중국에는 동진(東晋) 효무제(孝武帝) 십사년(十四年)이었다.
그 당시 대흥(大興)땅, 지금의 충남 서산(忠南端山) 지방에 한 장님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성(姓)은 원(元)이오 이름은 양(良)이었다.
그는 불행하게도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두 눈이 모두 폐맹(閉盲)이 되어 사람으로 가장 슬픈 속에서 살고 있는데 게다가 가세(家勢) 또한 빈한하여 살아가기조차 기가막힐 지경이더니 어려서 양친(兩親)을 여의고 젊은 나이에 마침 남의 중매로 아내(妻)를 만나 딸 하나를 낳은 뒤에 그 아내 마저 그를 버리고 이 세상을 떠나니 그에게는 더 말할 수 없는 슬픔이요 불행이었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란 옛말과 같이 그에게는 사람으로서 당하기 어려운 모든 비애를 당하고 보니 그는 실로 이 세상이 무섭고 원수와 같았다.
그가 상배(喪配)한 그 즉시 같아서는 당장에 그의 목숨을 자기 손으로 끊으려고까지 하였으나 눈 앞에서 재롱을 떨며 보채는 어린 딸의 정경을 생각하여 그는 하는 수 없이 지긋지긋하고 몸서리가 치는 세상을 하루라도 좀 더 살아 볼려고 하였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딸 홍장(洪莊)이를 데리고 없는 살림을 살아가는 동안에 어느덧 세월은 물 흐르듯 하여 홍장의 나이 열 여섯 살이 되었는데 어려서부터 비범(非凡)한 홍장이는 용모가 단정 한데다가 재주가 탁월하고 그의 효심이 또한 장하여 눈이 어두운 부친을 공경하고도 남의 집에 방아 찧어주기와 바느질품 등 가진 궂은 일이란 가릴 것이없이 모두 찾아 하여 맛난 음식과 따뜻한 의복으로 그 부친을 위하니 동리 사람들이 모두 그 아이를 가리켜 하늘이 낳은 대효녀(大孝女)라고 말하였다.
어느 날 원봉사는 무슨 볼일이 있어 대(竹) 지팽이를 뚜닥거리면서 밖으로 나갔다가 공교롭게도 어떤 중 하나를 만나 평생을 두고 그의 가슴에 못을 박은 커다란 일을 저지르게 되었다.
때는 바로 이른 봄이었다. 홍법사(弘法寺) 화주승(化主僧) 성공대사(性空大師)가 홍법사를 건축할려고 권선책(勸善冊)을 끼고 시주(施主)를 얻으려고 나섰던 길이었다.
성공대사는 길가에서 봉사 원량(元良)이를 만나자 그만 그를 붙잡고 반가이 절을 한 뒤에
『여보 봉사님, 잘 만났읍니다. 나는 홍법사 화주승 성공이온데 지금 절을 지어줄 시주를 얻으려고 권선책을 끼고 나온 길이오니 두 말 마시고 이 기회에 시주를 하시어 소승과 함께 커다란 복(福)을 얻도록 하십시다.』
하고 그의 손에 책을 쥐어 주며 권하였다.
그러나 집은 말할 수 없이 곤난하고 천지의 광명까지 못보는 원량이니 어찌 이 중의 권선에 쉽사리 입을 벌릴 수 있었으랴? 그는 한참 깎아 세운 사람처럼 멍하니 섰다가
『여보, 대사 내 말을 좀 들으시우 대사가 보다시피 나는 두 눈이 모두 폐안이 된 장님이요. 더구나 내집이란 빈궁하기 짝이 없는데 제가 이렇게 시주가 되다니 경우에 닿지 않는 일이올시다. 공연히 날 붙잡고 사정하다가는 대사의 큰 사업에 시간만 허비하실터이니 어서 다른 데로나 가 보시요.』
하고 거절을 하였다.
이 말을 하면 물론 그 중은 자기를 알어줄 줄 알었는데 그 중은 다시
『아니올시다. 소승이 이 권선책을 처음 받던 날 밤에 꿈을 꾸니 부처님이 나타나서 하시는 말씀이 네가 아무날 아무 땅을 지나갈 것 같으면 한 장님을 만날 것인데 그 장님이 너의 소원 대로 절(寺)을 지어 줄 만한 큰 시주이니 부디 내 말을 잊지 말고 그 장님을 권하여 시주를 삼으라고 하십디다. 그리하여 오늘 이곳을 지나다가 과연 봉사님을 만나고 보니 이 어찌 부처님이 지시한 것이 아니오리까? 두말 마시고 무엇이든지 좋으니 시주를 하십시요. 무엇보다도 부처님을 보시고 절을 짓는데 시주 하시는 복(福)처럼 크고 훌륭한 일은 없으니까요, 또 시주만 하시면 봉사님도 다시 광명한 천지를 보실 일이 있을는지 어찌 아십니까?』
하여 부득부득 권하였다.
원봉사는 졸리다 못하여 그 청을 거절하면서
『내 집에 가야 쌀 한톨 없고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오. 지금 집에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어린 딸년 하나밖에 없으니 그럼 그거라도 시주로 받겠오?』
하고 소리를 벌컥 질렀다.
그랬더니 그 중은 서슴치 않고
『예, 아무 것이든지 상관 있읍니까, 따님이라도 내어주시면 받겠읍니다.』
하고 추근추근하게도 떨어지지 않고 뿌리치는 원봉사의 소매를 붙잡고 따라 섰다.
원체 효녀로서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해 보지 못한 홍장(洪莊)이기 때문에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홍법사(弘法寺)에 시주하기로 하였다는 말을 듣고도 거역은 아니하였다.
그러나 부녀(父女)의 애정(愛情), 더구나 앞을 못보는 아버지를 두고 갈 홍장의 마음이며 지팽이 같이 믿고 있던 어린 딸을 내놓아야만 되는 원량의 심정(心情)이야 어찌 애달프고 아프지 않았으랴?
보내는 아버지나 가는 딸이 서로 껴안고 한바탕 우니 이웃 사람들도 따라서 울고 불고 야단들을 하였다.
성공대사의 뒤를 따라가는 홍장은 차마 걸리지 않는 걸음을 걸으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다보며 앞 못 보는 아버지를 못잊어 울음을 우는 동안에 어느덧 소랑포(蘇浪浦〓서해안 서산지방 西海岸瑞山地方)에 이르러서 언덕에 앉아서 아픈 다리를 쉬면서 집에 계신 아버지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에 서쪽 바다 위로부터 붉은 배 두 척이 떠서 이곳을 향하여 화살같이 달려 왔다.
뱃머리가 언덕밑에 닿아 배가 문득 정지를 하더니 그 뱃속에 들어있던 금관옥쾌(金冠玉佩)를 갖춘 수의사자(繡衣使者)가 배에서 내려서 언덕 위로 올라오더니 한참 동안 홍장의 얼굴을 치어다 본후 그만 땅에 엎드려 절을 하고 나서
『참 정말 황후(皇后)이십니다. 우리 국모(國母)께서 어찌 이곳에 계실 줄을 알았사오리까?』
하며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다. 이 광경을 당한 홍장은 그만 얼굴이 새빨개지며
『아니 이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지금 이 대사를 따라 절로 가는 몸이온데 황후란 당치 않는 말씀입니다. 어서 딴 데로 가십시요.』
하고 일어서려고 하였다.
이때 옆에 앉았던 성공대사 또한 자기의 시주하려는 이야기와 홍장이를 데리고 나선 전후 전말(顚末)을 그 사자에게 자세히 이야기하니 이 말을 듣고 난 그 사자가 다시 말하기를
『예, 우리는 동진(東晋) 사람입니다. 삼년 전에 황후(皇后)께서 돌아 가셨는데 우리 성상(聖上)께서 항상 슬퍼하시어 돌아가신 황후를 잊지 못하시고 애를 쓰시더니 어느 날 밤 꿈에 어떤 신인(神人)이 성상에게 여쭙기를 새 황후께서 동국(東國)에 태어나시어 방금 나이 열여섯 살이시며 용모가 단정하시고 덕행(德行)이 숙정(淑貞) 하시기를 돌아가신 황후보다 배승하오니 과히 슬퍼 마십시요 하며 그 신인이 한폭의 그림을 내어 보인 뒤에 곧 사람을 시켜 찾으라고 하드랍니다. 그리하여 그 이튿날 우리 성상께서 화공(畵工)을 시켜 꿈에 보신 그 처녀의 얼굴대로 그림 한폭을 그리어 신(臣)들로 하여금 이리로 가라고 하였삽기에 마침 이 자리에 와서 뵈오니 과연 그 그림과 틀림이 없읍니다.』
하고 그 사람은 뱃속에 있는 그림 한 장을 꺼내어 홍장의 앞에 내놓았다.
성공대사도 그 그림과 홍장이의 얼굴을 대조해 보니 조금도 틀림이 없어 보였다.
그제서야 홍장은 빙그레 웃으며 그 사자를 향하여
『여보세요 나는 내 몸을 마음대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이 몸을 우리 아버지의 복짓기를 위하여 이 대사님에게 맡긴 것이오니 나를 데려가고 안 데려 가는 것은 오로지 이 대사님의 허락에 있사온데 나를 데려 가실려거든 그만큼 보화(寶貨)를 내놓으셔야 합니다.』
하고 말을 하였다.
그 사자는 허리를 굽히며
『예, 염려 마십시요. 이 두 뱃속에 가득한 금은 보화를 모두 드릴 터이오니 어서 배에 오르십시요.』
하고 배타기를 재촉하며 한편으로는 성공대사에게
『여보 대사님, 절을 지으시려면 사람보다 돈이 더 필요하실 터이니 이 두 배 속에 가득한 보물을 다 맡으시고 이 아가씨를 우리에게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그러니 화주승의 본뜻이 돈 걷는데 있거늘 어찌 그들의 청을 물리쳤으랴?
『예, 도리어 고맙습니다. 소승에게 보물이 더 필요하지 처녀는 쓸데가 없읍니다.』
하고 그 뱃속에 들어 있는 보물 전부를 받았다.
그리고 홍장이는 그 사자와 함께 붉은 배에 몸을 실어 낙조(落照)의 서천(西天)을 바라보며 푸른 바다를 떠나 멀리 동진(東晋)의 대궐을 꿈꾸며 흘러 갔다.
홍장(洪莊)이 동진(東晋)나라의 사자(使者)를 따라서 붉은 배에 몸을 싣고 서해를 건너 가지고 동진 나라 서울에 이르기는 소랑포(蘇浪浦)를 떠난지 사흘 만이었다.
궁중에 들어가니 황제(皇帝)가 잃었던 황후(皇后)를 만나는 듯이 기뻐하며 반가워 하였다.
홍장의 그 달같이 어여쁜 얼굴과 별 같이 반짝이는 눈초리에 끌린 황제는
『해우첩역(海隅蝶域)에 어찌 이런 사람이 태어 났느냐?』
하면서 무한한 칭찬을 한 뒤에 이어서 황후를 날이 갈수록 사랑하기에 그칠 줄 모르니 원황후의 말이면 아니 듣는 것이 없었다.
이와 같이, 한 장님의 딸로 태어난 원홍장은 뜻밖에 이와 같은 황후의 몸이 되니 온갖 부귀(富貴)에 그리울 것이 없었으나 다만 잊지 못할 것은 그의 아버지의 소식이요 보고 싶은 것은 그의 아버지 얼굴이었다.
그러나 해륙수만리(海陸數萬里) 밖에 더구나 구중(九重)의 궁궐(宮闕) 속에 있는 몸이니 보고 싶은 아버지 얼굴과 듣고 싶은 아버지 소식을 뜻대로 듣고 맘대로 들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안타까운 사정속에 있는 원황후는 오직 그 아버지를 위하여 부처님에게 복(福)을 빌기 위하여 불상(佛像)과 탑(塔)을 만들어서 대흥홍법사(大興弘法寺)에 봉안시켰고 또 다시 자기의 원불(願佛)로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조성(造成)하여 돌배(石船)에 실어 동국(東國)으로 보내면서 어디든지 가다가 배가 닫는 곳에 봉안(奉安)하라 하였다.
그리 하였더니 그 배는 바다 위에서 일년이 지낸 뒤에 마침내 서해 낙안(樂安)의 땅 단교(斷橋) 근처에 닿았다.
마침 이 근처를 지나가던 성공대사(性空大師)가 이 배를 보고 뱃속에 관세음보살의 금상(金像)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자 곧 배에 들어가서 그 보살님을 등에 업고 나서서 발끝 향하는 곳으로 걸음을 걸어 갔었다.
처음에 이 보살상을 등에 업었을 때에는 그리 무거운 줄을 모르겠더니 옥과(玉果〓지금 전남곡성 화면 선세리(全南谷城火面善世里)땅 성덕산(聖德山) 고개 위에 이르니 그 무게가 태산 같이 무거워지므로 한 발자욱도 옮기지 못하고 있다가 그 자리에 내려 놓고 드디어 그 터에 절을 짓고 그 보살을 모시니 이것이 곧 원황후의 원불(願佛)을 모신 옥과 관음사(玉果觀音寺)라는절이었다.
그러면 원황후를 이처럼 만들어준 성공대사며 그의 아버지 소식은 어떻게 되었을가?
성공대사는 소랑포(蘇浪浦)에서 동진(東晋)사자(使者)에게 홍장 대신 두 배에 가득 찼던 폐백(幣帛) 사만끝(四萬端)과 금은 패물을 받아 가지고 곧 자기 절로 돌아가서 좋은 계절과 날자를 택하여 건축에 착수하여 일년이 못 되어 커다란 홍법사(弘法寺)를 지어 놓았고, 그의 아버지 봉사 원량(元良)은 딸을 이별한 그뒤부터 딸의 생각으로 너무도 애통(哀痛)이 여기고 이리 저리 유리(流離)하던 끝에 어느 날인가는 우연히 그 감았던 두 눈을 뜨게 되어 광명한 이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뒤에 원황후는 애를 태우던 끝에 어찌다가 자기 아버지를 찾게 되자 두고 두고 그립던 그 불쌍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고 원량이 또한 잃었던 딸을 만나게 되니 딸을 사랑하는 정이 다시금 새로워 구십오세(九十五)를 사는 동안에 그 초년(初年)에 불행하던 이야기를 하여가며 남은 세월을 안락하게 보내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백매선사(白梅禪師)란 분이 지은 전라남도 관음사(觀音寺)의 사적(事蹟)에 쓰인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에 불교(佛敎)가 들어온 후 불과 몇십 년 뒤의 이야기이며 그 구상(構想)이 일찌기 다른 기록에서 보기 드믄 것이어서 요점(要點)만 추려서 여기에 소개하는 바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