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담 사화 전집 (차상찬)/고자 대감

고자대감(大監)

우리나라 안에서도 그 지방 지방에 따라서 제각기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경상도(嶺南[영남])사람이라면 성질이 우악하고 굳세고 똑똑하고 튼튼해서 한번 먹은 마음은 끝까지 굽히지 않고 기어이 용왕매진(勇往邁進) 끝장을 보고야 마는 그런 갸륵한 성격을 가졌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조 오백년 동안에도 반역자(叛逆者)가 많이 나던 곳으로 유명하고 지금 형편으로 보아도 민중운동자(民衆運動者)라는 운동자는 경상도에서 많이 나오는 것은 순전히 이 성격이 낳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에 경상북도 군위(軍威)땅에 김병권(金秉權)이라는 천하 만고 우주간에 둘도 없는 장난군이 있었다. 문벌이 그다지 혁혁하지 못하니까 그때 그 사회에서는 어디로 가던지 훌륭한 대접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산골 토반(土班)인지라 초사(初仕) 한장 따보기 어려운 그런 형편이므로 가는 곳마다 푸대접만 받는 것이 김병권의 어려서부터의 눈꼴 사나운 일이었다.

차차 커져서 경서(經書)도 읽고 철이 나서 세상 물정을 알게 될수록, 백성들 사이에 아주 떡 버티고 사는 호족(豪族〓兩班[양반])들의 토호질이며 조금 더 크게는 수령 방백(守令方伯)들의 잔인횡포(殘忍橫暴)한 권세 부림에 어찌나 울분의 불덩어리가 치밀던지 그의 호협 쾌활한 기상과 완력으로 이따금 양반놈 욕질하기, 육방(六房) 관속 때려주기, 사또 행차에 똥 끼얹기, 이 따위 과격한 행동만 하기 때문에 사나운 개가 콧등이 성한 날이 없더라고 옥에 잡혀 갇힌다 항쇄족쇄 주릿대 방망이에 형벌에도 몹쓸 형벌을 다 받아 오다가 끝에 가서는 귀양살이(流刑[유형])도 몇 차례 치렀다.

그러나 이 사람이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기상이 꺾인다거나 의지(意志)가 소진된다거나 그런 빛은 추호만치도 볼 수가 없었다. 꺾으면 꺾을수록 탁 퉁기는 성격을 가진 까닭에

『에라 ─ 그까짓 개천 물에서 조고만 고기돌을 가지고 그럴 것이 아니라 기왕이면 훨씬 큼직한 물로 뛰어가서 큼직한 고기를 한번 다루어 보겠다.』

이렇게 생각한 김병권은 그날 즉시로 단봇짐을 싸 가지고 불원천리 길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무슨 큰 목적이나 있는 듯이 돈을 흠뻑 들여 벼슬이나 구하는 것처럼 꾸며 가지고 대가로만 돌아다니면서, 국권을 손에 쥐고 삼천리 강산과 이천만 민중을 다스리겠다고 묘당(廟堂)에 서서 호령을 하는 소위 대관들의 구린내 나는 수작을 죄다 검토하고 다녔다. 그리고 오다 가다 그 아니꼽고 비위 상하는 꼴을 보면 그만 화약이 탁 터지는 것처럼, 재상이고 높은 대관이고 할 것 없이 왜깍제꺽 부수어대고는 또 귀양을 간다 가진 형벌을 받는다 별의 별 고경을 치르는 것이 그의 일평생의 일이었다.

그리해서 나중에는 세상 사람들이 그를 지목하여 미친 사람으로 돌려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여러 큰 집으로만 여러 해 동안 드나들면서 하도 무엇 하나 간청하는 거동은 볼 수 없고 이런 과격한 탈선(脫線)적 행동만 해서 급기야 제 몸에 몹쓸 형벌만 받곤 하니 이런 어리석은 자가 또 어디 있으며 미친 놈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 어떤 뜻있고 인정 깊은 재상은 오히려 김병권의 정상을 깊이깊이 동정하여 어떻게든지 그 마음을 돌리게 해서 지방 수령의 지위를 주려고 무척 애도 써 보았으나 그의 의향을 들어 보면 그런 환로(宦路)에는 조금도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 참 애닲은 일도 많다. 그 인격과 그 식견에다가 환로에 발만 한번 던지고 보면 어떠한 성공이든지 하고야 말 것인데 도무지 싫다는 뜻은 알 수가 없으며 애닲고도 가엾은 일이다.』

이것은 후덕하고 인간성을 잘 알아 보는 재상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동정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그는 그런데는 조금도 생각이 없이 이집 저집으로 문객(門客)질 하러 돌아다니면서 대관 욕질하기 양반 봉변 주기, 거기에만 눈을 뜨고 그런데만 마음이 항상 쏠리었다. 그리하여 이 사람이 대관들에게 봉변주던 일화(逸話)는 참말로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많지만서도 그 중에서 한가지만 이야기 하기로 한다.

하루는 김병권이 대안동(大安洞) 조판서 (趙判書)집 큰 사랑을 찾아 들어갔다. 마침 조판서 혼자서 매우 심심하게 앉아 있다가 그를 보고는 대단히 반가워 하면서 주효(酒肴)를 차려다가 대접을 한다, 바둑을 내다 놓고 대국(對局)을 한다, 이렇게 종일토록 날을 보내다가 저녁때 돌아올 임시에 주인 대감은 여러 가지 정담을 끝에

『여보게 이사람 ─ 자네는 말도 잘하고 국량도 도저한 사람이니, 자네한테 내가 특히 간청할 일이 한 가지 있는데 들어 주겠는가?』

『천만에 말씀이올시다. 시생이 무슨 국량이 도저하오며 말을 잘 할 수 있사오리까마는 그저 그처럼 하시니 어디 말씀이나 들어 볼가하옵니다.』

『아닐세 자네 구변이면 능히 될 만한 일이니까 그러는 것이니 꼭 이 청만은 들어 주어야 할 일일세. 들어주고난 뒤에는 충주목사(忠州牧使)나 동래부사(東萊府使)는 떼어논 당상 일세.』

『아따 ─ 너무 농담만 말으시고 말씀만 하십시요. 우선 들어 보아야 하겠으니…….』

『그럼 말하겠네. 자네는 아마 모르지만 다방골(茶房洞)사는 권이명이라는 내시(內侍)가 있는데, 이놈의 천성이 호매하고 구변이 청산유수라, 이따금 내 집에 놀러 오는데 그놈의 구변으로 꼭 나를 망발을 시켜 놓고는 가고하는데, 원 아무리 해도 그놈의 말문을 막어낼 재간이 없네 그려 ─. 이것은 비단 나뿐이 아니라 북촌(北村)의 사랑이라는 사랑에서는 누구나 다 당하고 있는 여간 두통이 아닐세. 그러하니 자네의 기품과 그 구변으로 그놈의 말문만 한번 틀어막아 주면 북촌 여러 사람에게 상의해서 한턱을 내도 크게 한턱을 내겠으니 자네 의향이 어떠한가?』

『그러면 권 내시가 대감 댁에는 어느 날 어느 시간에 오기로 무슨 약속이 계셨읍니까?』

『아니 아무 약속은 없었지만 자네가 한번 만나겠다면 내가 무슨 기회를 만들든지 여러 대신들과 그 내시를 내 집으로 모아 놓을 수는 있겠지!』

『그러면 그렇게 한번 해보십시요. 제아무리 혼천동지(渾天動地)하는 놈이기로서니 김병권을 당할 놈이 이 세상에 있겠읍니까?』

이렇게 말하고 그날은 작별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 조판서는 자기의 생일이었던지, 누구의 무엇이 었던지, 구실을 하나 만들어 가지고는 자기의 친구 대감, 영감이며 고자 대감(권내시)까지 십여 명을 어느 날 그 집 온 사랑에다 죽 청해 놓았다. 그 방 제일 윗목 한 귀퉁이에 김병권도 끼어 시골 티가 뚝뚝 떨어지게 꾸미어 가지고 처음부터 아무 말 없이 가장 공손히 무릎을 탁 꿇고 앉자 있었다.

이것은 권내시 한 사람에게만 딱 비밀을 감추고 있을 뿐이지, 온 방안 사람들은 죄다 그것이 만고 호협아 김병권으로 아는 동시에 그 자리에서 장차 호걸 내시와 일대 설전(一大舌戰)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기 때문에 좌중의 공기는 매우 흥미있게 되었다. 이것도 태평성대(泰平聖代)를 노래하던 그때인만큼 아무 일이 없으니까 이것을 한가지 소일 거리라고 하는 셈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 놈의 내시가 나기는 썩 걸출로 잘 낳던 것이라, 키가 큼직하고 몸집은 깍지통만 한데 기골과 풍채도 대단하였다. 수염은 없지만……. 어찌 되었던 간에 회리밤 같이도 되고 양금채 같이도 된 포류지질(蒲柳之質) 그 여러 대관들 틈에 권내시가 떡 버티고 앉아서는 한잔마신 흥(興)김에 그의 예에 따라서 호걸 놀음을 늘어 놓는데, 뭇 닭의 총중에 한 마리 학이 노는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았다.

이렇게 얼마를 떠들어 대다가는 그 내시가 가만히 생각해 본즉 날마다 만나는 만좌 대관들만 상대로 꺼떡대는 것은 조금 싱거운것 같이 생각되던 차에 마침 웃묵에 앉아 있는 껄렁껄렁해보이는 어떤 시골뜨기가 눈에 뜨이었다.

『이게 웬 놀림감이냐?』

이렇게 생각하는 즉시로

『저기 앉은 저 친구 우리 인사나 합시다.』

하고 먼저 말을 건네었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 기다리고 있는 판에 김병권은 어찌나 좋은 기회라는 것을 쾌감하는 동시에 아주 일부러 어색하고 어리석어 보이게

『아 이거 참 대감께 황송합니다. 그저 시생의 성명은 김병권이라는 사람이올시다.』

『그래요? 나는 권의명이요. 그래 고향은 어디요.』

『아 이렇게 까지는 너무나 황송합니다. 제 고향은 경상도 군위(軍威) 땅이올시다.』

이렇게 인사는 간단하게 마쳤다. 보통 때에는 그렇게 호협 방탕하던 김병권이가 오늘 이자리에서는 별안간 이렇게 어색하게 보이게 구는 것이 좌중에 한층 더 흥미를 끌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한동안 있다가 내시는 무엇을 생각했던지 또 다시 시골 문둥이 선비를 건너다 보면서

『여보시오, 우리는 여지껏 시골이라고는 구경도 못해 보았오마는 이야기로 들어 보면 그 시골이라는 데는 이상 야릇한 풍속이 많읍디다그려.』

『예, 그렇습니다. 저도 시골 삽니다마는 정말 괴상한 풍속이 많습니다.』

『여보시오, 내 이런 말을 들었는데, 나 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천상 거짓말 같애서 무엇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는 없으나 좌우간 오늘 시골 친구를 만난 김에 그 말이 참말인가 거짓말인가 좀 물어 봅시다.』

『예, 무슨 말씀이든지 물어 주시면 제가 아는 대로 대답하겠읍니다.』

『시골 사람은 농촌 구석에서 집을 크게 짓고 살수가 없으니까 식구는 많은데 흔히 기어 들어가고 기어 나오게 된 게딱지만한 집을 짓고 산답니다 그려』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방은 하나나 둘쯤 밖에 안 되니까 무어 안방이고 사랑이고 하는 구별도 없답니다 그려』

『예 ─ 그렇습니다.』

『그런 집에서 여러 형제가 한집에 살기 때문에 여자는 시어머니 큰 며누리 둘째 며누리 셋째 넷째 며누리 누이 동생 할것 없이 모두 한방에다가 쓸어넣고 남자는 남자대로 따로 또 한데 뭉쳐서 바깥 방에서 거처를 한답디다그려 ─.』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다 남자가 혹 안방에 가까이 가고 싶을 때에는, 자식을 만들고 싶으면 그저 덮어 놓고 아닌 밤중에 그 컴컴한 안방으로 달려 들어서 한번 어떻게 아무데나 대고 그 일을 치르고 나간답디다 그려.』

『예 ─ 그렇습디다.』

『그래요, 정말 그렇습니까?』

『예, 정말이지요. 흔히 그런 수가 많습니다.』

『저런 변괴가 어디 있을고? 나는 처음 그런 말을 들을 적에 그래두 거짓말이지 설마 그럴럴리가 있을라구 그렇게 생각했더니만 오늘 저 친구 말을 듣고 보니 정말이로구먼…… 그러니 여보시요, 형이 들어 가서 둘째 제수(弟嫂)도 붙고 아우놈이 들어 가서 형수(兄嫂)도 붙고 혹은 제 누이 동생도 붙고 해서 자식이라구 주섬주섬 낳아 놓으니 그것이 정말 제 자식인지 형이 맨든 자식인지 아우가 맨든 것인지 알 수가 있읍니까?』

『알다니요 알 수가 있읍니까?』

이것은 정말로 시골뜨기라고 너무 깔보며 넘겨다 보고서 하는 말이라, 그 말의 속뜻은「너도 그렇게 해서 나온 놈이다」하는 의미로 아주 모욕 중에도 정말 큰 모욕을 한 것이다.

내시는 다시

『그러니 그렇게 해서 나온 자식을 어디다 쓰겠읍니까?』

『몹씁니다. 몹씁니다 ─ 그 자식을 어디다 쓰겠읍니까? 그렇게 해서 나온 자식은 아무데도 쓸데가 없거던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부모가 그 자식이 어렸을 때에 불알을 까서 서울로 올려 보냅니다. 그러면 그것이 고잣감이 되는 법이지요.』

이말 한 마디로 김병권은 시치미를 딱 떼고 앉아있었다. 좌중은 별안간 웃음 판이 탁 벌어 졌다.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혼자서 잘났다고 꺼떡대던 권내시 고자대감은 얼굴이 벌개지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한동안 앉었다가 아무 말 없이 슬며시 일어나서 그만 나가 버렸다.

그러니 어떻게 되었겠는가. 칭찬 소리가 자자하며 그 여러 대감들이 돌려 가면서 한턱씩 톡톡히 내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망신을 당한 뒤에는

그 잘난 체 하던 권내시는 다시는 아무데서도 꺼떡대는 버릇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