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55년)/별똥 떨어진데

별똥 떨어진데


밤이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濃灰色으로 캄캄하나 별들만은 또렷또렷 빛난다. 침침한 어둠뿐만 아니라 오삭오삭 춥다. 이 육중한 氣流가운데 自嘲하는 한 젊은이가 있다. 그를 나라고 불러두자.

나는 이 어둠에서 胚胎되고 이 어둠에서 生長하여서 아직도 이 어둠속에 그대로 生存하나 보다. 이제 내가 갈 곳이 어딘지 몰라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하기는 나는 世紀의 焦點인듯 憔悴하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내 바닥을 반듯이 받들어 주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내 머리를 갑박이 나려누르는 아모것도 없는 듯하다 마는 內幕은 그렇지도 않다. 나는 도무지 自由스럽지 못하다. 다만 나는 없는듯 있는 하로사리처럼 虛空에 浮遊하는 한點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하로사리 처럼 輕快하다면 마침 多幸할 것인데 그렇지를 못하구나!

이 點의 對稱位置에 또하나 다른 밝음(明)의 焦點이 도사리고 있는듯 생각킨다. 덥석 웅키었으면 잡힐듯도 하다.

마는 그것을 휘잡기에는 나 自身이 鈍質이라는것보다 오히려 내 마음에 아무런 準備도 배포치 못한것이 아니냐. 그리고 보니 幸福이란 별스런 손님을 불러 들이기에도 또다른 한가닥 구실을 치르지 않으면 안될가 보다.

이밤이 나에게 있어 어린적처럼 한낱 恐怖의 장막인 것은 벌서 흘러간 傳說이오. 따라서 이밤이 享樂의 도가니라는 이야기도 나의 念願에선 아직 消化시키지 못할 돌덩이다. 오로지 밤은 나의 挑戰의 好敵이면 그만이다.

이것이 생생한 觀念世界에만 머물은다면 애석한 일이다. 어둠속에 깜박깜박 조을며 다닥다닥 나라니한 草家들이 아름다운 詩의 華詞가 될수 있다는 것은 벌서 지나간 쩨네레슌의 이야기요, 오늘에 있어서는 다만 말못하는 悲劇의 背景이다.

이제 닭이 홰를 치면서 맵짠 울음을 뽑아 밤을 쫓고 어둠을 즛내몰아 동켠으로 훠—ㄴ히 새벽이란 새로운 손님을 불러온다 하자. 하나 輕妄스럽게 그리 반가워할 것은 없다. 보아라 假令 새벽이 왔다 하더래도 이 마을은 그대로 暗澹하고 나도 그대로 暗澹하고 하여서 너나 나나 이 가랑지길에서 躊躇 躊躇 아니치 못할 存在들이 아니냐.

나무가 있다.

그는 나의 오랜 이웃이요 벗이다. 그렇다고 그와 내가 性格이나 環境이나 生活이 共通한데 있어서가 아니다. 말하자면 極端과 極端사이에도 愛情이 貫通할수 있다는 奇蹟的인 交分의 標本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처음 그를 퍽 不幸한 存在로 가소롭게 여겼다. 그의 앞에 설때 슬퍼지고 惻隱한 마음이 앞을 가리군 하였다. 마는 돌이켜 생각컨대 나무처럼 幸福한 生物은 다시 없을듯 하다. 굳음에는 이루 비길데 없는 바위에도 그리 탐탁치는 못할망정 滋養分이 있다 하거늘 어디로 간들 生의 뿌리를 박지 못하며 어디로 간들 生活의 不平이 있을소냐, 칙칙하면 솔솔 솔바람이 불어오고, 심심하면 새가 와서 노래를 부르다 가고, 촐촐하면 한줄기 비가 오고, 밤이면 數많은 별들과 오손도손 이야기 할수 있고———보다 나무는 行動의 方向이란 거치장스런 課題에 逢着하지 않고 人爲的으로든 偶然으로서든 誕生시켜 준 자리를 지켜 無盡無窮한 營養素를 吸取하고 玲瓏한 햇빛을 받아드려 손쉽게 生活을 營爲하고 오로지 하늘만 바라고 뻗어질수 있는것이 무엇보다 幸福스럽지 않으냐.

이밤도 課題를 풀지 못하야 안타까운 나의 마음에 나무의 마음이 漸漸 옮아오는듯 하고, 行動할수 있는 자랑을 자랑치 못함에 뼈저리듯 하나 나의 젊은 先輩의 雄辯에 曰 先輩도 믿지못할 것이라니 그러면 怜悧한 나무에게 나의 方向을 물어야 할것인가.

어디로 가야 하느냐 東이 어디냐 西가 어디냐 南이 어디냐 北이 어디냐 아차! 저별이 번쩍 흐른다. 별똥 떨어진 데가 내가 갈곳인가 보다. 하면 별똥아! 꼭 떨어져야할 곳에 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