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 두엇

우리 누님이 시집을 가더니 아이를 낳았다. 남이 들으면 「아들이오, 딸이오」 첫째 물어볼 것이요, 아들이라 하면 한 번 치하할 것을 두 번 치하하고, 딸이라고 하면 한 번 치하도 마지못해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 누님은 그것이 세상 사람의 말마따나 섭섭하게도 딸을 낳단다. 우리 어머니도 매우 시덥지 않은 눈치인데, 의리로 마지못해 웃음을 띠고, 우리 매부 되는 이는 우리 고모가 병원으로 치하를 가니까 어린애를 안았다가 내주면서 「사냅니다」 하더란다. 계집애를 사내아이라고 비꼬아서 말하는 그의 가슴에는 사내가 되었다면 하는 욕망이 얼마든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다. 더구나 사내들은 자기가 사내니까 혹시 모르지마는 계집인 여편네들이야 계집애 낳는 것을 더 치하해야 할 것이 아닌가. 계집애라고 시덥지 않게 여기거나, 그렇지 않으면 섭섭히 여기는 것은 자기네가 스스로 자기네를 낮추는 것이요, 모욕하는 것이다.

사람은 아직껏 인조자궁이 생기지 않은 이상 여자 없이는 살지 못한다. 여자가 전 인구의 2,3할만 적어도 홀아비 천지가 되겠다고 정치가 양반들이 책상을 치며 떠들면서, 계집애 낳는 것을 그렇게 시원치 않게 여기는 것은 어찌 취재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치안유지법이나 제령 7호(制令 七號) 모양으로 특수한 법률을 제정할 필요가 상당히 있을 것이다.

자기를 낳은 어머니가 여성인 것도 잊어버리고, 자기가 계집인 것도 잊어버리고, 자기 아들이 계집 없으면 홀아비로 늙을 것도 모르는 누님들! 아주 먼네! 제발 비지땀 흘리며 종종걸음을 치고 남녀평등 여성해방을 부르짖는 것도 좋지마는 자기모욕인 그 관념부터 없애 버리는 것도 결코 여성운동에 장애는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관념이라는 일종의 자가율을 지니고 산다. 사람인 이상, 이 관념이라는 것을 갖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관념 여하에 따라서 그 사람을 결정하기까지 한다.

일본 사람이 훈도시 하나로 불알을 싸매고 다니면서도 자기가 삼대 강대국의 하나인 가장 문명한 나라 사람으로 아는 것도 자기네의 관념이라는 것이 부끄럼 없는 사람을 만들어 준 것이요, 동양 도학자님이 남녀간에 입을 쭉쭉 맞추는 것만 하더라도 그네들의 관념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 관념이라는 것을 우리 머리 속에 만들어 집어넣어 주는 것은 시일과 환경에 따라서 다르겠지마는 이 관념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자기에의 한 번 타고 나오기 어려운 「생(生)」이라는 것을 무참히 시들어지게 하고 또는 나중에는 그것을 내버리게 되는 데까지 이르는 일이 있다.

관념이야 다 그것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서 말할 수는 없지마는 과도기에 있는 우리 조선 청년들의 관념이 극도로 산만 또는 혼탁한 이때에 우리는 첫째 문제의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인 정조관념을 가지고 보자.

예수는 일부일부(一夫一婦)를 말하였고 마호메트는 일부다처를 주장하였으며 어떠한 곳에서는 일처다부를 실행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더구나 동양에서는 삼종지교(三從之敎)로써 여자를 극도로 구속하였다.

그런데 정조라 하면 지금까지도 동정을 잘 유지하여 오는 여자나 남자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어찌하였든지 한 남자와 또 다른 여자가 서로 사랑으로 결합하여 그 사랑의 형식을 지지하여 가는 동안에 다른 여자나 다른 남자를 또다시 사랑하거나 성교를 하지 않는 것이 정조라고 하는 것이 현대의 일치한 정조관념일 것이다.

그러나 이 정조관념은 예수가 「남의 아내를 보고 음란한 생각만 품어도 벌써 간음한 자니라」— 대의 — 한 것만치 일종의 이상에 불과하는 것이다. 착실한 현실, 우리가 밥 먹지 않으면 죽는 것도 죽는 것이지만 똥을 누지 못해도 죽을 수밖에 없는 이렇게 무서운 현실이라는 든든한 땅덩어리 위에 발을 밟고선 우리가 그와 같이 무지개난 신기루 같은 이상을 목전에 만져 보고 먹어 볼 만큼 실현하려 하는 것은 산 위의 별을 따려고 갈구쟁이를 들고 이 산 넘고, 저 산 넘어 봉우리마다 따라다니는 사람이나 다를 것이 없다.

이렇게 말을 하면, 즉 내가 「이상」이라는 것을 전부 부인하고 나서는 사람으로 생각할는지도 알지 못하겠지만, 유원(悠遠)한 미래에 잘 살기를 바라다가 전광석화보다도 더 짧은 나의 생을 조금이라도 터럭만큼이라도 의미 없이 지내기 싫다는 의미에서 하늘을 쳐다보는 것보다 땅을 내려다보는 것이 좋으며, 두 팔을 벌리고 날아 보려는 것보다 한 걸음이라도 성큼 더 내놓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내가 한 걸음 더 의미 있는 생을 누리려고 노력하고, 또는 향락하였다 하면, 또는 유원한 장래에 실현될 이상을 이루는 데 결코 쓸데없는 것이 되지 않을 것을 단단히 믿는 까닭이다.

말이 딴 데로 잠깐 나갔었으나 인생의 성악설을 주장한 예수의 말이니까 그런 말을 할는지도 알 수 없으나, 어떻든 나로서는 그런 말을 집 지을 때에 벽돌이나 바위 사이에 시멘트를 개어 바르듯이 척 붙여서 그만 단단해 버리도록 개성 완성의 도정(途程)에도 서지 못한 우리 조선 청년에게 부어 주는 것은 가장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다른 선진국에게도 문예상으로는 소설 희곡 등으로 벌써 일반 군중에게 준 감명이 적지 않겠지마는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한 우리에게 있어서는 뒤떨어진 말 같지만 또는 새로운 말이 아니라고 하지도 못할 것이다.

여기 중학교 더구나 예수교 학교를 갓 졸업한 18·19세의 소년이 있다고 하자. 그가 어렸을 적부터 보고 듣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간음하지 말라」 「두 아내를 얻지 말라」하는 그것이 아주 자기의 신조가 되어 버렸다고 하고, 그 소년이 사회에 나서거나 혹은 규율이 그렇게 엄하지 않은 이상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때 그의 가슴에는 젊은이의 뜨거운 혈기가 용솟음쳐 차고 넘칠 만하였을 것이니 그가 어떠한 기회에 밀쳐 오르는 정욕을 누르지 못하여 어떠한 소녀를 더럽히었다고 하자. 그러자 그후, 그는 자기의 신조를 지키지 못한 것으로 말미암아 후회와 가책으로 일생을 그르칠 만큼 되었다 하면 그때의 우리의 최후의 상정은 무엇이 될 것이냐! 임군을 위하여 자살을 하며 국가를 위하여 자식을 죽이는 것만큼 현대인인 우리는 그 어리석음을 말하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관념이란 우리의 전 생활을 향도(鄕導)하는 안전변(辨)이다. 그것이 있어야 우리 생활의 절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전변이 고정되는 때 우리의 생활은 절도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녹신녹신하고 자유자재한 안전변이라야 더욱 자기의 일을 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관념도 어디 가서 착 달라붙어 버리면 안 될 것이다.

요새는 백학을 타고서 옥경에 드나드는 신선만은 못하지마는 손자를 안고서 느티나무 밑에서 한가히 앉아 있는 촌로만큼 심심하도록 한가한 나는 먼지가 케케묵은 옛날 잡지를 손가는 대로 툭툭 한 권 두 권 집어서 뒤적거리니까 그야말로 그때 그 시기로 재생하여 올라가는 듯한 맛이 있다.

문득 작년 2월에 발행한 《개벽》이 손에 잡히자 책장을 뒤적거리니 눈에 띄는 것은 그때 「문인 인상기」였다. 거기 현진건 군이 나의 인상기를 쓴 것을 나는 다시 읽다가 「소정지옹(笑亭之翁)」이라는 데 와서 나는 그 책을 끼어 안을 만큼 기뻤다. 나는 그때로 돌아가는 듯하였다. 아아 벌써 4,5년 전이다. 나는 4, 5년이라는 세월을 살아 내려오다가 다시 그리로 뛰어서 뒷걸음질친 것 같았다.

소정지옹! 이 소리를 들은 지도 오래다. 그동안에 나는 잊어버릴 만큼 그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그것은 우리 친구 몇몇이 가장 긴장하고 뜨거웁고 즐거웁고 꿈같고 무엇이라고 표현할 문자를 찾아내지 못할 만큼 그저 좋던 때를 지날 때 나의 몸에 붙여 준 이름이다.

그러나 그 이름은 《개벽》이라는 잡지 위에 현진건이라는 사람의 손을 빌어서 아직까지 다시 보는 이의 기억을 새롭게 하지마는 그때 그 시기, 즉 나의 청춘의 뜨거운 피가 백열화하던 시기는 다시 찾으려 하나 찾을 길이 없다. 청춘기의 절정에 달하였었다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던 그때에 늙은이 「옹」자를 달게 된 것도 좋은 대조이지마는 그때보다 내적 생활로나 몇 해를 더 살아온 이때 그「옹」자를 잊어버리게까지 된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소정지옹」이라는 별명을 쓰게 된 것이니 그 의미는 내가 웃기를 잘하는 가운데 숙성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웃기를 잘한다 하니까 혹 어리석은 사람으로 알는지는 모르지만 웃음이 많다고 여태까지 남에게 똑똑하다는 소리까지는 못 들어보았어도, 또 어리석다는 소리는 못 들어보았다. 또 늙은이는 별명까지 듣기는 들었으나 그렇게 분별 있고 지각 있고 또는 냉정하지도 못하였다. 다만 나이보다는 기껏해야 2,3세 위로 보이는 것이 과장벽들이 있는 우리 친구의 실없는 짓을 하게 한 것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이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것이 나에게는 언제든지 일종의 비애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천재는 조숙이라는 말이 있으니까 혹 적이 위안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천재라는 명예를 얻을 만큼 천부한 은총을 타고났는지 그것도 시원치 못하거니와, 만일 날더러 천재가 되어서 요절을 하거나 또는 남이 사는 것만큼 생을 향락치 말라 한다 하면 나는 그까짓 천재라는 것은 헌신짝만큼도 생각지 않고 내버릴 것이다. 숙성하다는 것은 그만큼 더 살았다는 것이다. 내가 나이보다 2,3세나 더 먹어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늙었다는 것이니 그것만큼 나에게는 부지중에 손(損)을 하였다는 것이다.

버드나무가 자라는 것이 회양목이나 박달보다 여간 속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것이 질로 보아서 얼마나 버드나무가 회양목이나 박달보다 못한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랴?

더구나 사람이 청춘기에 가장 아름답고 혈기 있고 또는 정열에 찬 생활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시들었다고 하면 거기에는 구소에 사무치는 원한이 없다고 하지 아니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늙은이가 다시 젊기를 원하는 것은 그것이 너무 과한 욕심이니까 오히려 웃음에 붙인다 하더라도 인생의 비애를 느끼겠지마는 나는 남보다 더 일찍 늙기를 원하지도 않고 또는 남보다 더 젊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젊을 때 젊고, 늙을 때 늙어서 인생의 맛이라는 것을 균일하게 모조리 맛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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