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슬픈 하늘

검 붉게 부푼 흙덩이와
잎눈 뜬 가지 가지와
봄을 어루만지는 햇빛과……
꺼질 듯 어두운 슬픈 하늘에도
봄은 지금 아련히 빛난다

사람 사람의 눈초리마다
보이지 않는 불길이 타고
사람 사람의 가슴속마다
오직 하나 억센 뜻은 끊어

봄을 탐하는 안타까움
진주 구슬보다도 빛나고
있는 듯 만 듯한 봄노래 속에도
빛과 빛은 뜨거웁게 입맞춘다

아아 굶주린 내 마음속에
뛰는 핏줄 속에
붉은 장미꽃은 몽오리져도
머언 뒷날 묻는 이 있어
「너의 한 일이 무에냐」하면
서슴지 않고 대답할 말을
나는야 가지지 못하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