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와 전망/러시아에서의 노동자 정부와 사회주의
앞에서 우리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객관적 선행 조건들이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 발전을 통해서 이미 조성되어 있는 상태임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러시아에 관한 한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
러시아 프롤레타리아의 손에 권력이 이전되는 것은 우리의 국민경제가 사회주의로 전환되는 과정의 시초가 될 것이라고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일까? 1년 전에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떤 문건을 통해서 발표했는데, 그 문건은 우리 당의 양대 분파의 조직들로부터 가차없이 쇄도해 들어오는 비판의 집중 포화를 받아야만 했다. 그 문건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마르크스는 우리들에게 "파리의 노동자들이 그들의 꼬뮌으로부터 어떤 기적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 역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부터 어떤 즉각적인 기적을 바라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 권력은 전지전능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대체시키기 위해서는 단지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잡고 몇 개의 법령을 공포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일 것이다. 경제 체제는 정부 활동의 산물이 아닌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집산주의를 향한 경제 발전의 길을 보다 쉽게 만들고 보다 단축시켜 줄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자신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 정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는 이른바 최소강령으로 표현되는 개혁안들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가 처한 객관적인 입지 그 자체의 논리로 인해서 프롤레타리아는 어쩔 수 없이 이러한 개혁 조치들로부터 집산주의적 조치들로 즉각 이행해 나가게 될 것이다.
하루 8시간 노동제와 누진적인 소득세의 도입은 비교적 용이한 일이 될 것이다. 비록 이것을 시행할 때조차도, 문제의 핵심은 '법'의 제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반 실천적인 조치들을 효율적으로 조직화하는 데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주된 난관은 이러한 법률 제정에 대한 반발로서 공장주들이 문을 닫아 버린 공장들을 국영 생산방식으로 조직화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만 집산주의로의 이행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상속권의 폐지를 위한 법을 제정하고 또 그 법을 실제로 시행하는 것은 비교적 용이한 과제가 될 것이다. 화폐자본 형태로 남아 있는 자본의 잔재들이 프롤레타리아를 난처하게 하거나 그들이 운용하는 경제에 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토지와 산업자본(생산수단- 역주)의 접수자로서 행동한다는 것은, 노동자 정부가 사회적 생산의 조직화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좀 더 범위를 확장해, 몰수에 관해서-보상을 하든 보상을 하지 않든 간에 -이와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보상을 해주는 몰수는 정치적으로는 유리하지만 재정적으로는 어려운 문제이다. 반면 보상이 없는 몰수는 재정적으로는 유리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 것은 바로 생산의 조직화의 문제일 것이다. 거듭 말하건대, 프롤레타리아 정부는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정부가 아닌 것이다.
생산의 사회화는 가장 어려움이 적은 분야들부터 시작될 것이다. 초기에는, 생산의 사회화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이 극소수의 기업들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사회화된 기업들은 상품의 유통 법칙에 의해서 사(私)기업들과 연결될 것이다. 사회화된 생산의 분야가 더욱 확장될수록, 그것이 지니는 장점은 더욱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따라서 갓 탄생한 정치 체제는 더욱 자신감을 느끼게 될 것이며, 프롤레타리아가 앞으로 취하게 될 경제 조치들은 더욱 대담한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는 단지 일국적인 생산력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한층 더 나아가서 전세계의 기술에 의지하게 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혁명 정책에 있어서 일국에 한정된 계급관계의 경험들뿐만 아니라 또한 전세계 프롤레타리아의 총체적인 역사적 경험들에 의지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지배가 그들의 경제적 예속과 양립할 수 없다. 어떠한 정치적 깃발 아래 권력에 도달하였든지 간에, 프롤레타리아는 사회주의 정책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조아 혁명의 내적 메카니즘으로 인해서 권력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사명을 부르조아지의 사회적 지배를 위한 공화주의․민주주의적인 조건들을 조성해 주는 데 국한시켜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주 허황된 몽상일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지배는, 비록 그것이 일시적일지라도, 언제나 국가의 후원을 필요로 하는 자본의 저항을 극단적으로 약화시킬 것이며, 또한 프롤레타리아의 경제적 투쟁에 엄청난 위력을 부여해 줄 것이다. 노동자들은 혁명 정부에게 파업자들을 원조해 줄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으며, 노동자들을 기반으로 하는 정부는 이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산업 예비군을 활용해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탄압하려 드는 자본가들의 술책을 무력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노동자들은 정치의 영역뿐만 아니라 경제의 영역에서도 지배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고 또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이러한 사회․경제적 결과들은, 정치 제도의 민주화가 달성되기 훨씬 전에 아주 신속히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소위 말하는 "최대"강령과 "최소"강령사이의 장벽은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에 도달하자마자 그 즉시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정부가 수립되자마자 다루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농업 문제의 해결이다. 그것은 러시아의 대다수 국민의 운명이 바로 이 문제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과제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에도,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이 취하는 경제 정책의 근본적인 목적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즉, 사회주의 경제의 조직화를 수행할 수 있는 분야를 가능한 한 광범위하게 장악하려는 정책을 펼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농업 정책의 시행 속도와 그것이 취하는 형태는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재량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물질적 수단들의 한계에 의해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또한 거기에는, 잠재적인 동맹 세력들이 반혁명 분자들의 대열로 넘어가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 조치들도 고려되어야만 한다.
농업 문제, 즉 농업의 사회관계들 속에서 규정되는 농업의 운명에 관한 문제는 전적으로 토지의 문제, 즉 토지 소유의 형태에 관한 문제로만 환원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비록 토지 문제의 해결이 농업발전을 미리 결정짓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최소한 프롤레타리아의 농업 정책을 미리 규정해 주는 것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시 말해서, 프롤레타리아 정부가 토지에 관해서 취하는 정책은 이 정부가 농업 발전의 경로 및 농업 발전의 필요성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입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토지문제가 일차적인 중요성을 차지하는 것이다.
사회혁명당이 제시한 토지 문제에 관한 해결책은 모든 토지의 사회화인데, 이것이 담고 있는 실질적인 내용을 살펴본다면 그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그럴싸해 보이는 인기와는 전혀 걸맞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모든 토지의 사회화란, 이 표현을 치장해 주고 있는 서구적인 포장을 벗겨 버리고 나면, '토지 사용에서의 평등'(또는 '토지 재분배')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토지의 평등한 분배라는 강령은 모든 토지의 몰수를 전제한다. 다시 말해서, 사유지 일반, 즉 농민 개인이 소유한 토지뿐만 아니라 마을의 공유지도 몰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새로 탄생할 정부가 첫 번째로 취해야 할 조치들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몰수이며, 그 반면 상품 생산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관계는 여전히 사회 전체를 지배할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럴 경우, 이러한 몰수 조치의 첫 번째 '희생자'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농민들 자신일 것이다. 보다 정확히 말해서, 농민은 자신들이 희생자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농민들은 수십 년 동안이나 자신들에게 할당된 토지를 자신들의 개인 소유로 만들기 위해서 상환금을 지불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 보다 유복한 농민은 대단히 많은 땅을 개인 소유로 만들 수 있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이들은 엄청난 희생을 감수했으며, 그 부담은 현재의 자손들에게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생각해 볼 때, 공동 소유의 토지(공유지) 및 사적 소유의 토지(사유지) 모두를 국가 소유(국유지)로 전환시키려는 시도가 엄청난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을 쉽사리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새로 수립될 정부가 이러한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농민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처음부터 이 정부에 대항해서 들고 일어날 것이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공동 소유의 토지와 개인 소유의 소규모 토지들을 국가 소유로 전환시키려 하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현재의 토지 없는 농민들과 농업 노동자들을 포함한 모든 토지 소유자들이 경제적으로 '평등'하게 토지를 이용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새로 수립된 정부는 공동 소유의 토지와 소토지들의 몰수를 통해서 경제적으로는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재분배 이후에는 국유지나 공유지가 사적 소유물처럼 경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이러한 정부는 대단히 커다란 오류를 범하는 셈이 될 것이다. 그러한 정책으로 인해서 정부는 혁명 정책의 지도자인 도시 프롤레타리아와 다수의 농민들을 대립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토지의 평등한 분배는 농업 노동자의 고용을 법으로써 금지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임노동의 폐지는 경제 개혁의 귀착점일 것이며, 또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은 법률적인 금지 조치로써 선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주 자본가의 임노동자 고용을 금지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가 않은 것이다. 그보다는, 농업 노동자들에게 생존권을 확보해 주는 것이 -그것도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합리적인 방식으로 말이다-가장 필요한 일이다. 토지의 평등한 경작이라는 계획 아래 임노동의 사용을 금지시키는 것은, 한편으로 토지가 없는 노동자들에게 얄팍한 몇 조각의 땅 덩어리 위에 정착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강요된 이처럼 사회적으로 비합리적인 정착을 위해서 정부가 필요한 물품들과 농기구들을 조달해 주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농업의 재조직화 작업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개입은 분산되어 있는 농업 노동자들을 분산된 땅 조각들 위에 묶어 두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토지들의 국가에 의한 경작이나 공동 경작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생산의 사회화가 제대로 정착되었을 때만 비로소 보다 발전된 사회화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따라서 임노동의 금지 조치도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집단경작 방식의 정착은 소규모의 것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집단경작 방식의 정착은 소규모의 자본주의적 영농방식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자급자족 내지는 반자급자족적인 영농을 위한 공간은 여전히 남겨 둘 것이다. 그 같은 것을 강제로 몰수하는 것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프롤레타리아의 강령 속에 결코 들어 있지 않다.
어떠한 경우라도, 우리는 토지의 균등 분배를 시행하겠다는 약속을 할 수 없다. 그러한 계획은, 한편으로 소토지들에 대한 무의미하고 순전히 형식적인 몰수를 전제로 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대토지들을 완전히 산산조각 내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적으로 소모적일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책은 단지 반동적이고 공상적인 저의만을 내포하는 것으로서, 무엇보다도 먼저 혁명적인 당의 정치적인 약화를 의도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노동계급의 사회주의적인 정책은 러시아의 경제적 조건들 속에서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다음의 것 하나만은 장담할 수 있다.- 즉, 사회주의적인 정책이 러시아의 기술적 후진성에 걸려 더 나아가지 못하게 되면 그 즉시로 노동자 정부는 정치적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유럽 프롤레타리아들로부터의 국가적인 차원의 직접적인 지원이 없이는, 러시아의 노동계급은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 없으며 또한 자신들의 일시적인 지배를 지속적인 사회주의 독재로 전환시켜 나아갈 수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심도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또한, 서구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은 우리로 하여금 노동계급의 일시적인 지배를 사회주의 독재로 직접 전환시켜 나아가는 것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는 사실 역시 명백한 것이다.
1904년, 카우츠키는 러시아의 사회 발전의 전망에 관한 논의와 보다 일찍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계산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러시아에서의 혁명은 그 즉시 사회주의 체제로 귀결될 수 없을 것이다. 이 나라의 경제적 조건은 그렇게 될 수 있을 정도로 성숙되어 있지 못하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은 확실히 유럽의 다른 국가들의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강한 자극을 주게 될 것이며 일단 불붙은 투쟁의 결과로서 독일의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쟁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카우츠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 이 같은 결과는 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결국 서유럽에서는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지배로 귀결될 것이며, 동유럽에서는 프롤레타리아가 사회 발전의 단계를 축약시키고 독일의 예를 따라서 인위적으로 사회주의 제도를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게 될 것이다. 하나의 전체로서의 사회는 그것이 밟아야 하는 발전의 단계들 중 어느 하나도 인위적으로 건너뛸 수 없다. 그러나 사회의 각 구성부분이, 보다 발전된 나라들을 모방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체된 발전을 촉진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가능성 덕택에, 심지어 그들은 발전의 최첨단부에 위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랜 역사를 지닌 선진국들이 거추장스럽게 끌고 다닐 수밖에 없는 전통의 부담으로 시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은 아마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말한 것처럼, 여기서 우리는 역사의 필연성의 영역을 벗어나 가능성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독일사회민주당의 지도적인 이론가인 카우츠키는 혁명이 러시아에서 먼저 일어날 것인가 아니면 서구에서 먼저 일어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찰하면서 이 글을 썼던 것이다. 그 직후에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는 우리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가장 낙관적인 분위기 속에서조차도 감히 예상할 수 없었던 그토록 엄청난 힘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러시아 혁명의 경로는 그것의 본질적인 특징에 관한 한 이미 결정된 것이다. 불과 2~3년 전에만 하더라도 가능한 것(the possible)으로만 여겨졌던 것(러시아에서의 혁명의 가능성 - 역주)이 거의 틀림없는 것(the probable)으로 나타났으며, 그리고 모든 것들은 거의 틀림없는 것이 필연적인 것(the inevitable)으로 되기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