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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는 病患으로 누어계시는 어머님의 寢床에 걸터 앉어 이야기 동무로 며칠을 보내다가 뜻밖에 速히 떠나게 되었읍니다. 東北大學에 있던 한 親友의 勸誘로 該校 入學手續치르라 오라는 電報 까닭이었읍니다. 놀이터에서 돌아온 나는 그가 떠났음을 알자 눈물이 글성 하였읍니다. 늘 정거장에서 맞고 바래던 그와 그렇게 헤여짐이 最後의 作別이 될줄이야 어찌 알았겠읍니까. 떠나면서도 어머님 걱정을 뇌이고 또 뇌이드랍니다. 아마 殞命時까지 눈앞에 어머님의 모습만 어른거렸을 것입니다. 東北大學에 간줄 안 兄에게서 무슨 意圖에서였는지 同志社 英文科로 옮겼다는 電報가 오자 아버지는 좀 노여운 기색이었읍니다.
東京과 京都에서의 그의 孤獨은 絶頂에 達했읍니다. 太平洋에서는 戰火가 들끓고 尊敬하던 先輩들은 붓을 꺾거나 變節하였고 사랑하던 친구들은 뿔뿔이 헤여졌고—下宿房에서— 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