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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와 총각이 서로 마주앉았고, 총각은 한잔 마시고 빈 잔을 들고 있다。

총각 『여보, 또 한잔만 주우』

유모 『여보시, 돈만 내시다나。 돈붓 내면 어련히 안 주겠습마』

총각 『애 이년, 개씹으루 나온 보살년 같으누라구, 사람난 이후에 돈이지, 너는 돈만 아느니』 (벌칵 늘어세서, 유모의 곁에 놓은 술병을 쳐서 깨트리려 하였다)

유모 (술병을 밀어 마텨주면서) 『님재 잣구싶은대로 자시엣소웨』

총각 (한잔 두잔 석잔……부어 먹더니 취해 눕는다) 『애 취했군』

유모 (너무 어이없어 잠간 말 없이 있다가) 『이년어팔자는 무슨 팔잔가。 그다지도 기박해서 배뱅이 젓을 먹여주고 냥식을 구해 먹엇더니 배뱅이가 죽을 꿈을 꾸고 죽엇서 막걸레 댱사나 해먹을냇더니, 것도 못해먹겠구나』

(우는 짓을 한다)

〔멀리 배뱅이 집에서는 열두 무당의 장고 제금 소리가 들려온다。〕

총각 (술이 깰 임박에 귀를 기울러 그 소리를 듣더니) 『여보 오마니, 뎌게 무슨 소리요』

유모 『하, 여기 배뱅이라는 계집이 있었는데, 며칠전에 죽을 꿈을 꾸구 죽어서 그럼네』

총각 『여보, 죽을 꿈을 꾸다니, 그거 무슨 말슴이요?』

유모 『하, 여기 배뱅이 어머니가 무남독녀 외딸을 하나 두었는데, 갑작이 죽을 꿈을 꾸구 죽어서, 나는 그 배뱅이 젓을 맡겨주구 냥식말이나 주어 먹구 살다가 먹을 탁이 떨어져서 막걸레 댱세를 하레 여기 나왔더니, 님재 앞에 이 멸시를 오날 당합네』

총각 (새삼스럽게 회심이 돌아서) 『여보, 오늘 제가 대단히 잘못됫수웨다。 그런데 거 무슨 병이 나서 죽었나요』

유모 『병이 나디 않아 죽을 꿈을 꾸구 죽었답메。 그래 할수가 없어서 나는 유모로 있다가 나오고, 저 엄매가 속이 하도 답답해서 서울 조판서가 있읍머니ー그 조판서가 아들 삼형데가 있는데, 그 마지막 아들이 섬석이디 섬석이레 박사야 그 삼형데에서 우에 두 형데는 다 외방살이 가고 마지막으루 섬석이는 갈곳이 없더니, 요새 이 골 군수루 왔읍네。 그래 배뱅이 어머니가 그 박사레 군수루 왔다는 말을 듣고 문복(問占)을 들어가디 않었습마。 「소첩은 박사님이 이번에 「원」님으로 내리오셨다는 말슴을 듣고 왔삽는데 잘알아줍소서。 제 딸은 나희 열 두살에 죽을 꿈을 꾸고 죽었사오니, 무슨 니유로 죽었삽는디 알아져여다 하고, 문복하여저이다 하고, 들어왔습네다」 했더니, 박사 말슴이 「오호니야, 너의 딸이 죽을 꿈을 꾸구 죽었구나。 너의 집에 나아가서 열두나 다나 단골을 불러 들여 오를반도 열 두반, 내릴반도 열 두반에 스믈 네반설 워하고 뭇네미재다리를 갈라줘라。 그래서 배뱅이 어머니가 나와서 열 두 단골을 불러다놓고, 굿을 차려놓아서 저렇게 요란스럽게 군답메』

총각 『여보 오마니, 거좀 단단히 압세다。 무슨 연고 없이 배뱅이레 거저 죽었나요』

유모 『그렇거시다나 배뱅이레 열 둘에 나서 죽기는 죽었으나, 열 둘에 나두 녜물(幣帛)은 받고 죽었습머늬』

총각 『그런데 그 녜물이 뭣뭣 왔나요』

유모 『녜물이 온게 많디』

총각 『뭣뭣이요。 그럼 웟지고리채레 뭣이 왔나요』

유모 『윗저고리채는 명주저고리채레 왔옵머니』

총각 『초매채는 뭣이 왔나요』

유모 『남방삿도 홋치매레 왔습머니』

총각 『그 밖에는 또 온것이 없나요』

유모 『또 있디。 원앙이 같은 것두 오구』 (패물, 노리개) 독구(같) 같은것두 오구, 침통 같은것두 왔디』

총각 『다른건 온것 없나요』

유모 『다리(月子)도 두어쌍 왔습데』

총각 『예 여기 좀 가만 이수―나는 나갈데루 갑니다』(그는 술이 반쯤 취한 후라, 비틀비틀 배뱅이 집을 향하야 찾아간다)

유모 「…………」 (물끄럼히 총각의 나가는 뒤를 바라보고 앉았다)

계면 첫가운 한잎

잘 새는 날아 들고, 새 달이 돌아 온다。 외나무 다리로, 홀로 가는 저 선사(禪師)야。 네 철이 언마나 하관대, 원종성(遠鐘聲)이 들리나니。

둘가운 한잎

벽해(碧海) 갈류(渴流) 후에, 모래 모여 섬이 되네。 무성방초는, 해마다 푸르로되。 어떻데 우리의 왕손(王孫)은, 귀불귀를 하나니。

셋가운 한잎

청량산(淸凉山) 육륙봉(六六峯)을, 아나니 나와 백구。 백구야 현사하랴, 못 믿을손 도화로다。 도화야 떠지지 마라, 어자(漁子) 알가 하노라。

북전

누운들 잠이 오며, 기다린들 임이 오랴。 이제 누우신들, 어느 잠이 하마 오리。 차라로 앉은 곳에서, 긴밤이나 새오자。

진회(秦淮)에 배를 매고, 주가로 찾아가니。 격강 상녀(隔江商女)는, 망국한을 모르고서。 연롱수 월롱사(烟籠水月籠沙) 할제, 후정화(後庭花)만 부르더라。

고경명(高敬命)

ー(또 있소)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