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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것에는 ㅿ도 없어지고 여듦 종성 중에 ㄷ은 이제 아니 쓰고 초성으로만 쓰이며 또 초성을 아울러 쓸 때에도 다만 ㅅ만 쓰게 되엇으며, 또 ㆁ 초성도 아니 씁니다。 또한 글씨 벌인 순서도 훈몽자회에 실은 반절과 오늘날 반절이라고 전하는 것이 서로 다릅니다。 연산주(燕山主) 때에 훈민정음은 몹슬 학대를 받아, 된 서리 맞은 것처럼, 힘없이 버린 채로 나리어 오다가, 우에 말 한 대로 중종 때 최세진이 쉽게 만든다고 고친다는 것이 잡아놓게 되엇으며, 그 뒤로 四백여년 동안이나 아무 과학적 도끼를 받아 보지 못하고, 유교의 전성(全盛)에 따른 학문의 세력에 눌리어 돌아보지 않게 되엇읍니다。 돌십보지 않을 뿐아니라 법(法)으로 금하기까지 가끔 한 것입니다。 연산주 때 무서운 형벌의 조건으로 금지 명령을 나린 것은 말 말고라도, 순조(純祖)때 사역원(司譯院), 식년강과(式年講科)에 언해(諺解)로 취재(取才)함을 금하엿으며, 고종(高宗) 二년(서역 一八六五)에 된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사채(私債)의 성문(成文)에는 「언문」(諺文)으로 쓴 것을 무효로 한다는 것이 부끄럼 없이 공공연하게 규정되어 잇읍니다。
三· 신정국문(新訂國)
고종(高宗) 三십一년(서역 一八九四) 갑오(甲午)에는 동학(東學)란이 일고, 따라서 일청전쟁이 일고, 따라서 소위 개혁(改革)이 각 방면에 일어나게 되엇읍니다。 국어, 국문에 대한 자각도 일어나게 되엇읍니다。 민간에서는 이에 대한 학자(學者)들이 생기고, 정부(政府)에서도 한문만 쓰든 대신으로 한글 섞어 쓰는 문체를 공사 문서(公私文書)에 채용하게 되엇읍니다. 이 때에 四백여년 내던지어 버리엇든 한글(훈민정음)에 처음으로 과학의 도끼를 나린 이는 고 주시경씨엇읍니다。 그는 최세진의 훈몽자회에 실은 「반절」의 그릇됨을 깨트리는 한 쪽으로, 오늘날 말에 쓰이지 아니하는 소리 밖에는 전부 훈민정음 발표 시대의 규정을 회복하여 놓앗읍니다。 그리하고, 그는 한편으로 연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면서, 한편으로는 각 학교에 그 것을 가르치고, 「국문학교」를 세우며, 강습소를 세우며, 연구한 결과를 책으로 발표하여, 이에 대한 새 연구자들이 많이 생기게 되엇읍니다。이 운동이 오늘날 우리의 한글 운동의 시초가 된 것입니다. 그러하나, 이는 다만 민간의 사사 운동이요, 아직 정부의 힘으로 이를 시행하기에는 이르지 못하엿든 것입니다。 이 때 정부에서는 그 연구의 필요를 느끼고, 학부(學部) 안에 연구회를 두게 된 바, 주시경씨가 그 중심 인물이엇든 것입니다. 그 때 의학교장이든 지석영(池錫永)씨도 그 연구회원의 한 분이든 바, 그의 상소로 학부에서는 광무(光武) 九년(서역 一九○五) 七월에 「신정국문 실시건」(新訂國文實施件)을 발표하게 되엇읍니다。
- 『新訂國文 五音象形辯
- ㄱ牙音象牙形 ㅋ牙音重音 ㆁ牙喉間音象喉扇形ㅇ音失其眞今姑闋之 ㄴ舌音象舌形 ㄷ舌音象棹舌形 ㅌ舌音重音 ㄹ半舌音象捲舌形 ㅁ脣音象口形 ㅂ脣音象半開口形 ㅍ脣音象開口形 ㅅ齒音象齒形 ㅈ齒舌間音象齒齦形 ㅊ齒音重音 ᅀ半齒音象半啓齒形ㅇ音失其眞今姑闋之 ㅇ淺喉音象喉音 ㆆ喉齒間音象喉音 齶形ㅇ音失其眞今姑闋之 ㅎ深喉音
- 新訂國文 初中終三聲辨
- 初聲終聲通用八字
- ㄱ기윽 ㄴ니은 ㄷ디읃 ㄹ리을 ㅁ미음 ㅂ비읍 ㅅ시읏 ㆁ이응
- ㄱㄴㄷㄹㅁㅂㅅㆁ八字난用於初聲
- 윽은음을음읍읏응八字난用於終聲
- 初聲獨用六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