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신문 기사를 내가 쓴다면
李鉀
소리결에 맞고 말본에 맞는 버젓한 맞훔법과 글본이 잇건마는, 굳하여 제 멋대로 이럭저럭 휘갈겨 놓은 것은, 참으로 한심히 생각 되어지지 않고는 못바길 정도다。 더구나, 일상 생활에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똑 바루 제대로 나타내는 알뜰하고 또렷한 우리의 말들이 잇음에도 마음넣지 않고, 엉뚱한 한짜의 숙어와, 그중에도 생전대책에 구경도 못하든 일본에서 지어진 한짜 숙어 따위와, 발음도 제대로 못 옮겨 놓는 서양말 따위를 함부로 뒤섞어 쓰는 것들을 볼 때엔, 그야말로, 욕지기와 역정이 아울러 막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물론, 본래 잇든 한짜 숙어와 새로 들어오는 딴 나라의 말들을 척척 받아서, 우리가 쓸만큼 손질해 놓지 못함은 한글 연구하는 이들의 책임이려니와, 그도 또한 우리의 지금 형편으로서는, 글쓰는 이들로서도 어느 정도까지는 그 책임을 우리와 함께 나누어지지 않을 수 없으며, 더욱이, 이미 다듬어 놓은 것까지, 굳이 좇아 쓰지 않음은 글쓰는 이들의 큰 잘못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우선, 신문 기사로 말할지라도, 정치, 경제, 학예들과 같은 좀 높은 지식 계급을 맞수(상대)로 하고 쓰는 것들은 나종 문제로 제쳐 놓드라도, 자기네들로도 가장여러 지식 없는 무리를 맞수로 하야, 그 중에도 쉽게 쓴다는 둘재 면(第二面)이나 셋재 면의 사회면 기사를 보면, 첫재로, 그 제목부터가 말끔 한짜 투벙이요, 둘재로, 그 글월들은 거의 반 넘어를 한짜에다 한글의 옷을 들씨워 놓았으니, 그야말로 눈가려보키고 아옹하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한짜 모르고 한글만 아는 많은 무리들이야, 그 것을 어찌 읽을 수가 잇으며, 또 읽은들 어찌 뜻을 알 수가 잇으랴? 소경의 잠 자나 마나다。
X
『선생님! 이것 보셔요。 이게, 아마 「때아닌 꽃이」란 말이지요?』
이것은 그러께 겨울에 시골 어떤 어린 노동야학생이, 야학 교무실에 들어와서, 신문지를 펴어 들고 무엇을 한참 끙끙대드니, 거기에 쓰여 잇는, 「…………………눈이 와서ᄯᅢ안인ᄭᅩᆺ치피엇다。」란 글월의 「ᄯᅢ안인ᄭᅩᆺ치」를 손까락으로 짚어 읽으며, 내게 물어 본 말이엇다。 그 때에 나는 그 애가 하도 귀어워서, 싱그레 웃고는,
『그러치。 거 어떠케 아래 우엣 말을 대어 보고 곳잘 아는구나?』 하엿다。 그 애는 해 웃고, 붓을 꺼내어 서툴은 글씨를 그리어 보이며,
『그런데 「때아닌 꽃이」라, 이러케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