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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확인하려 하였다. 이에 효종의 기민한 수습으로 잘 무마되고 김자점은 유배되었다가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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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의 초상화

김장생金長生(1548~1631)조선의 학자. 자는 희원, 호는 사계, 본관은 광산이다. 처음에 송익필에게 예학을 배우고 후에 이 이에게 성리학을 배워 예학파 유학의 거두가 되었다. 선조 때 벼슬길에 올라 참봉·현감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호조정랑으로 명의 군량미 조달에 공을 세웠으며, 정묘호란 때 양호호소사로 군량미를 조달하는 데 힘쓰면서 청과의 화의에 반대하였다. 이듬해 형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후배들을 가르치는 데 힘써 송시열·송준길 등의 유학자를 배출하여 서인을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를 이룩하였다. 저서에 『경서판의』 『가례집람』 『송강행록』 등이 있다.

김재로金在魯(1682~1759)조선의 정치가. 자는 중례, 호는 청사, 본관은 청풍이다.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수찬 등을 지냈다. 1716년 옛 선비들에게 없는 죄를 거짓으로 꾸며 벌을 주었던 소론의 유봉휘·정 식 등을 탄핵하여 파직하게 하였다. 경종 때 이조참의·대사간·개성부 유수 등을 지냈으나, 신임사화 때에 귀양을 갔었다. 영조 때 풀려나와 대사간이 되어 소론의 과격파 김일경을 사형시키게 하였다. 1727년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재등장하자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다시 충주 목사로 기용되어 난을 수습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 후 지춘추관사로서 실록도청 당상을 겸직하면서 『경종수정실록』을 편찬하는 데 참여했고 신임사화로 죽은 김창집·이이명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1738년, 판중추부사로 청에 가서 『명사(明史)』를 얻어왔다. 1740년 영의정에 올랐고, 관직 생활의 절반은 모두 대신으로 있으면서 노론의 선봉자로 활약했다. 저서로 『천의소감』 『난여』 등이 있다.

김재찬金載瓚(1746~1827)조선의 정치가. 자는 국보, 호는 해석, 본관은 연안이다.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순조 때 영의정에 이르렀다. 홍경래의 난 때는 흉흉한 민심을 수습하고 이를 평정하여 기근과 병란으로 인한 혼란된 세태를 안정시켰다. 저서에 『해석일록』 『해석집』 등이 있다.

김 정金淨(1486~1520)조선의 정치가. 자는 원충, 호는 충암, 본관은 경주이다. 중종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순창군수가 되었다. 조광조와 함께 미신 타파와 시골에서 서로 돕고 살도록 하기 위해 향약을 시행하도록 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광조와 함께 제주도로 유배되어 사약을 받고 죽었다. 저서에 『충암전집』 『제주풍토기』 등이 있다.

김정국金正國(1485~1541)조선의 유학자. 자는 국필, 호는 사재, 본관은 의성이다.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찰사에 이르렀으나,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벼슬에서 물러나 고양의 망동에서 팔여거사라 칭하고 강론과 저술에 열중하였다. 1537년 다시 벼슬에 올라 경상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시문이 당대에 뛰어났으며, 죽은 후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저서에 『성리대전 절요』 『사재집』 등이 있다.

김정한金廷漢(1909~1996)소설가. 부산 출생. 동래고보를 거쳐, 1932년 일본 와세다 대학 부속 제일고등학원 수학. 1936년 단편 「사하촌」이 조선일보에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 이때부터 「옥심이」(1936), 「향유기」(1938), 「그러한 남편」(1938), 「기로」(1938), 「월광한」(1940), 「낙일홍」(1940), 「추산당과 곁사람들」(1940), 「묵은 자장가」(1941) 등의 단편 소설을 발표하였다. 이후 1960년대 후기에 와서야 오랜 침묵을 깨고, 낙동강변에 사는 가난한 어촌민의 생활과 수난을 생생하게 그린 중편 「모래톱 이야기」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큰 주목을 받았다. 1969년 단편 「수라도」로 한국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부산대학교 교수·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단편집 『낙일홍』과 『인간단지』(197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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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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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

김정호金正浩(?~1864)조선의 지리학자. 자는 백원, 호는 고산자, 본관은 청도이다. 황해도에서 출생하였으며 정밀한 지도의 작성에 뜻을 품고 전국 각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30여 년간의 노력 끝에 「청구도」 2첩을 완성하였다. 그 후 「청구도」에 불만을 느끼고 다시 전국 각지를 답사하여 「대동여지도」 2첩을 완성하였다. 이어 「여지승람」의 잘못을 고치고 보충하기 위하여 32권 15책의 「대동지지」를 썼으며 「지구도」도 만들어 냈다. 그가 「대동여지도」를 손수 그려 목판으로 만들어 흥선 대원군에게 바치자, 그 정밀함에 놀란 대원군은 나라의 기밀을 퍼뜨렸다는 죄목으로 목판 지도를 불태우고는 감옥에 가두었다. 그 후 심한 고문을 받고 죽었다.

김정흠金貞欽(1927~ )물리학자. 평안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