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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대동단에 가입하여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1920년에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의 요인으로 활약하다가 병사하였다. 서예가로 유명하며, 시와 한학도 능하였다. 저서로 『근역 서화정』 『한국통사』 등이 있다.

김개남金開男(?~1894)조선 말기의 동학 접주. 전봉준 다음가는 동학의 실력자이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초기에 김낙삼·김문행 등 1,300여 명을 이끌고 백산에 모인 뒤 남원을 점거하여 전라도를 통할하였다. 전봉준을 능가할 만큼 위세를 떨치며 독자적인 세력을 확장해 갔다. 그러나 당시의 동학혁명군 토벌 책임자인 홍계훈과 타협, 동학도를 박해하지 않을 것을 약속받고 전주성을 관군에게 내주고 군대를 해산시켰다. 그러나 청 및 일본의 군대가 간섭하게 되자, 다시 일어나 5~6만의 병력과 농민을 모아 남원에서 전주까지 진격하였다. 남원 부사 이용헌을 처단하고 자신이 그곳의 자치 책임자가 되어 새로운 제도를 실시하는 등 남원에서 강력한 실력자가 되었다. 전주 수비군 5천명을 이끌고 북상하여 공주 전투에 참가하였으나, 우금치 전투에서 크게 패한 다음 태인에서 체포되었으며, 전주 감영에서 처형당하였다.

김경손金慶孫(?~1613)조선 광해군 때의 도적. 서자 출신으로 서자에게는 벼슬을 주지 않는 데 불만을 품고 같은 서자 출신인 박응서·서양갑 등과 어울려 세월을 보내다가, 1612년 이들과 함께 조령에서 상인을 죽이고 금품을 빼앗았다. 이듬해에 잡혀, 영창 대군을 추대하기 위해 자금을 마련했다는 혐의로 주살되었다. 이 사건은 이이첨·정인홍 등 대북파가 김제남 및 소북파를 제거하기 위해 이들을 꾀어 허위 진술하게 한 것으로 이른바 '칠서의 옥'으로 불리운다.

김경승金景承(1915~1992)조각가. 경기도 개성 출생. 1933년 송도고보, 39년 일본 도쿄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경성사범학교 및 여자사범학교, 그 후 정신·풍문·경기 중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39~4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 총독상·창덕궁상 등을 수상했고, 43년 선전 추천작가가 되었다. 1947년 종합미술전 심사위원, 그리고 49년 이래 오랫동안 국전 창설위원을 거쳐 심사위원을 지냈다. 1954년 대한미술협회 회원, 1954년~62년 홍익대학교 교수 및 조각과장을 역임했으며, 64년에 이화대학교 미술대학으로 교직을 옮겨 동 조각과장이 되었다. 1948~68년 서울특별시 문화위원, 64년 3·1문화상 수상, 68년 애국선열동상건립위원회 전문위원장에 피임되었다. 1961년 동남아시아 9개국을 예방, 한국의 현대미술을 널리 소개한 바 있으며, 각종 기념동상의 건립에 많은 공헌을 했다. 대표작으로는 「이충무공동상」 「맥아더장군상」 「밴프리트장군상」 「콜터장군상」 「안중근의 사상」 「김성수선생상」 「김활란박사상」 「에비슨박사상」 「세종대왕상」 「김구선생상」 「김유신장군상」 「목동」 「유(流)」 「희망」 「사색」 「평화」 「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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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균

김광균金光均(1914~1993)시인.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시인부락'동인으로 모더니즘 시 운동에 자극을 받아 "시는 하나의 회화이다"라는 시론을 전개하면서 주지적·시각적인 시를 계속 발표하여 시단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고, 후진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사업가로도 활동하였으며, 시집에 『와사등』 『기항지』 『황혼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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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

김광섭金珖燮(1905~1977)시인. 호는 이산으로 함북 경성에서 출생하였으며,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귀국하여 모교인 중동중학교 영어 교사로 있으면서 '해외문학' 동인으로서 외국 문학의 번역·소개에 힘썼다. 그 후 '시원'의 동인이 되어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의 경향은 시대적 고민으로 일관되다가 후기에는 인생 문제를 다루었다. 자유문학가 협회 회장 및 이승만 대통령의 비서 등을 역임하였다. 1957년,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동경』 『마음』 『해바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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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굉필·정영창·김일손·정여해·주자의 위패를 모셔놓은 경남 하동의 덕은사

김굉필金宏弼(1454~1504)조선의 학자·정치가. 자는 대유, 호는 한훤당, 본관은 서흥이다. 일찍이 김종직에게 소학을 공부하였다. 평생 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