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국회회의록 제헌 3회 1차 국회본회의 (한글 텍스트화).pdf/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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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차나 혹은 나무꾼 복색 또는 거지 복색 때로는 엿장사 복색으로 가장하고 실사한 결과 이하와 여한 결론을 얻게 되었음.
그간 작금 양년에 걸쳐서 국방, 내무 등 각 요인에게는 진언(進言)하였으나 별 성과를 얻지 못하였음.
위선 별지 도면 표시와 여히 지리적으로 38 이북은 고산 또는 언덕 등으로 유리한 반면에 38 이남은 산하 또는 언덕 아래에 처한 고로 원래 지리상으로 보아 가장 불리하게 되었음.
또 흡천(洽川)과 해주에다가 이북 인민군 총본부를 두고 그 후방 철원과 금화에는 독전대를 두었으며, 최전선에는 전국을 중심으로 하여 서로는 금천 해주, 동쪽으로는 화천 양구 인제 양양 등에다가 중축(中軸) 세력을 집중하고 작전 전투대를 두었고, 우리 이남 각 경찰서와 각 지서를 상대하는 그들의 대안(對岸)에다가는 약 일백수십 개나 되는 세멘트로 맨든 토치카와 토굴과 약 수백에 달하는 방공호가 설치되었고 또는 그 세멘트 토치카에다가는 전화 가설을 각각 하였고, 지난 5월 1일을 기하여서는 그네들은 보호색으로 전체를 제복(制服)하였으며, 장비로는 소련식 장총과 기관총 또는 중화기, 대포(미식) 등으로 각기 무장하였음.
그와 반대로 우리 일선 경찰관들은 보호색은 고사하고 아직 백색 모장(帽章)과 흑색 제복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에게 가장 불리하고도 그네들에게는 가장 유리한 목표가 되어 있음.
장비로는 우리 경찰은 상말로 부즈깽이와 같은 카빙총을 겨우 가지고 있고 하등 이렇다는 장비가 없다는 것은 실로 유감이라 안 할 수 없고, 더욱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까지도 경찰관의 대우와 신분이 보장되지 못한 것이 또 한 가지 유감이요(실례를 들며는 매우 죄송하오나 왜정 시의 압록강 경비 당시에 일인들은 압록강 경비를 일선이라 하여 은급제도에다가 포함시켜 보통 관리는 15년간을 근무하여야 은급을 주었고 압록강 경비에 당하였든 관헌에게는 4개년 반만 근무하고도 15년 근무한 관리와 동등한 은급으로 대우하였다는 사실을 문헌으로 조사하였으므로 혹 참고가 될까 함), 우리 38선은 국경이 아니면서도 압록강 이상의 중요한 현실의 국경이라 아니 할 수 없는 고로 본 의원은 이상 일제의 실례와 여(如)한 일선 군경에 대한 대우는 우리 처지로서는 곧 실시하기는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생명을 풍전등화같이 위협받으며 우으로 법을 갖추신 존엄하신 원수 각하와 이 나라 민족과 국가를 만세반석 위에 건전하게 세우는 초석이 되려는 우리 군경에게 각하와 및 주무장관은 솔선하여 심적으로 위선 후덕을 베푸시여 사기를 앙양할 것과 물적으로 일선 군경에게 특별한 가봉제도와 그들의 신분보장이 확보되기 전에는 이 위급한 존망지경에 있는 현실의 대책이 강구되지 않으리라고 믿음.
그 이유는 일선에서 사투하는 하급 군경이 원하는 이구동성의 원성과 본 의원이 실지로 목격한 바 소감으로서 이상의 물심양면의 대책 실시를 지급(至急) 실천하시기를 거듭 앙망하는 바임. 이 대책을 실시한다면 장비 부족한 현실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육탄으로라도 38선을 넉넉히 제거할 수 있다고 확신함.
국가재정이 허락하는 한 이북 제반 설치에 대비될 만한 시책을 실천하여 주심을 첨가하여 부언함.
둘째, 금차 거 2, 4 양일에 걸쳐서 장단 고량포사 매눌목 그리고 동 4일부터 7일까지의 개성 송악산(신관 미럭당지서) 사건, 또한 동 7, 8, 9일의 백천 연안 청단 내성 등지와 연하여 9, 10, 11일의 파주 적암, 포천 양문리 등 사건을 직접 목격한 본 의원으로서는 이상에 진술한 바와 여한 불리한 사실은 물론이고 금반 주로 장단 고량포 매눌목, 청단, 내성과 포천 양문리 지구 등에서 실전 사실을 발견할째 중화기 내지 대포로 교전하는 상태를 일선에 참가하여 보건댄 전체가 일본제 탄환과 미국제의 실탄 파편인대 일본제는 일본인이 북한에 유기한 것이거나 또는 일본 공산당으로부터 보급된 것이 아닌가 사료되며, 또 미국식 실탄 파편의 실물에 의하면 중공군이나 소련군으로서 보급된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 없음.
셋째, 또 더욱 놀낼 만한 것은 4일 오전에 개성 송악산 지구에는 수많은 소련군과 수천 명 이상의 인민군이 혼성되어 일선에 나타나서 개성부내에 중화기 폭격이 시작되자 우리 국군 병사 중 육탄 10용사(서부덕 육군 이등상사, 박창근 하사, 김현해, 황금재, 윤옥춘, 양남순, 오제룡, 박평서, 이희복, 윤승원, 이상 일등병)가 송악산 뒤 28개의 세멘트로 기설된 토치카의 적진을 향하여 돌진하는 그 웅장하고도 비장한 모습이야말로 피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관경(觀景)이였음.
4일 정오 우리 육탄 10용사는 그야말로 38선의 거룩하고도 신성한 충혼을 남기고 전사한 결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