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국회회의록 제헌 1회 8차 국회본회의 (한글 텍스트화).pdf/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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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헌식 의원 하-지 중장의 초대를 회의록에 올렸다는 것을 삭제하자는 동의인데 그 동의를 표준했다는 것은 그 기록에 남겨두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의장 김동원 다른 무슨 착오없으면 회의록에서 그것만 삭제하고 통과하기로 하겠읍니다.

그 다음에 각 위원의 보고가 있겠읍니다.
먼저 교섭위원의 보고가 있겠읍니다.

1. 국제연합조선위원단 및 북한동포에게 보내는 「멧세-지」 발송의건

◯장면 의원 우리 국회가 세계의 주시하에 성대하게 개회식을 거행하고 지금 그 업무를 진행 중에 있는 것은 세계가 다 알고 있는 것이올시다.

그런데 우리로서 물론 자율적으로 이런 것을 해 나가고 있읍니다마는 역시 여러 가지 연락관계에 있어서 국제적으로 정정당당하게 우리의 국회가 성립된 것을 또는 우리는 어떠한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또는 국제적 협조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해서 국회가 개회되기 이틀 전, 그것이 지난 8일날 같읍니다마는 여기에서 여러분께서 선정해 주신 준비위원 몇 사람이 그 유엔조선위원단을 방문하고 정식으로 이 국회가 성립된 것을 구두로 통지하고 개회식에 여기 출석해 달라는 것을 역시 구두로 청했읍니다.
그리고 그때에 위원단의 각국 대표들은 상해에 가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도중에 있기 때문에 서울에는 각국 대표가 없었읍니다마는 서기국에 주홍제라는 중국 사람인데 그분이 여기에 대해서 완전한 어느 나라의 대표자가 아닌 만큼 대표자의 자격으로 갈 수가 없으니까 모처럼 이와 같은 초대가 있으니 만큼 기쁜 마음으로 유엔의 멤버의 한 사람으로 출석하겠노라고 그때에 그렇게 대답을 했읍니다마는 유엔에 현 연락위원장의 자격으로 있읍니다. 그분이 역시 출석을 하셨읍니다.
그리고 두 분이 다 개회식에 있어서 경축의 의사를 표시한 것은 여러분들이 이미 아시는 바입니다. 그 후에 상해에 갔든 위원단들이 다 돌아왔읍니다.
그리고 다시 여러 가지 잔무를 처리하는 가운에 우리 국회로서 정식으로 조선위원단에게 대해서 성립되였다는 것을 통고하는 것이 전체적으로 절대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또 그 사람들과 이미 의견도 교환해 봤읍니다마는 정식으로 우리의 결의로서는 국회의 의장의 찬의로 조선위원단에게 정식으로 서면을 내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해서 대개 교섭위원 가운데에서 여럿이 협의한 결과 대강 초안을 작성해서 오늘 이것을 통과해주셨으면 곧 오늘 날자로 문안를 작성해서 그리로 보내겠읍니다.
그리고 대강 초안의 내용을 잠간 낭독해 드리고 통과되면 즉시로 발송하는 수속을 밟을까 생각합니다. 잠간 그 초안 낭독을 하겠읍니다.

1948년 6월11일
국회의장 이승만
국제연합조선위원단위원장 귀하
본 의장은 귀 국제연합조선위원단의 감시하에 거 1948년 5월10일에 거행된 총선거의 결과로 선출된 한인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한국 국회가 거 1948년 5월31일에 서울시에서 성립된 것을 정식으로 귀하께 통고하는 영광을 가졌읍니다.
자에 한국 국회의 성립을 통고함은 1948년 5월29일 국회준비위원으로부터 귀 위원단 서기국 대표 주홍제씨를 통하야 이미 비공식으로 국회가 성립될 것을 통고한 바를 재확인하는 바입니다.
주홍제씨와 귀단 연락위원장 핸리고스릴씨에게는 개회식에 참석하여 달라는 초청장을 보내었읍니다.
이 서한은 또한 본 위원회의 결의에 의하야 임시 대외 교섭위원을 임명한 사실을 재확인하는바 이 교섭위원들은 거 1948년 6월8일 귀단 위원장 패터슨씨의 수석 서기 밀터씨와 접견하였읍니다. 이 위원들은 본 국회와 관련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귀단과 상의할 것입니다.
한국 국회는 1947년 11월14일에(국제연합 총회에서) 채택된 결의문, 즉 제1분과위원회의 보고 제2호, 특히 그 제3항에 의하야 성립될 것이니, 즉 「선거가 끝난 후 될 수 있는 대로 속히 국회를 열고 국민정부를 조직할 것이며 국제연합조선위원단에 그 조직된 뜻을 통고할 것이라」는 결의에 의하야 성립된 것입니다.
국제연합 소총회는 귀단 전 위원장 메논씨가 거 1948년 2월27일에 진술한 보고를 청취하고 좌와 같은 결의를 나렸으니, 즉 「1947년 11월14일부 총회 결의문에 준하며 또한 그 후(1947년 11월14일) 한국에 관한 사태의 진전에 비추워(국제연합회) 위원단이 입경할 수 있는 한국 지역에서 결의문 제2호에 개설된 계획안을 실행하기로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