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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畵跡에 對하야 (高裕變)

高麗史 百官志 外職에 「賓曹員吏亦同上大府小府陳設司綾雜店圖畫院幷屬焉」이란 記錄이 있고、破閑集 의 李寧의 記事中에 「睿宗時畫局」이란 句와 東文選 李仁老 二相歸体圖贊序에 「爱請畫局朴子雲」의 句가 있으니、畫院畫局의 存在를 어찌疑心하랴。實로 이 畫院의 設置야말로 將次로는 繪畫美術의 校化 (아카데미슴)의 一遠因을 形成 할 것이나、그러나 그 施設 當初에 에 있어서는 畫用의 重且大 함을 오히려 더 많이 느게 고 施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高麗時代의 畫道에 對한 愛好를 이 畫院의 一事 로써만 立證하려 함은 九牛一毛에 比의 不過한것이요 다시 도리켜 具體的 事實을 들어 말하면、 歷代諸王中 獻宗(1) 仁宗(2) 明宗 忠宣王 恭愍王等 至尊으로서 畫道에 精進한이가 많음은 歷史上 드문 일이며、睿宗은 天章閣을 九禁에 剏立하야 宋帝의 御筆書畫를 玩藏하야때때로 群臣에게 宣示하였으며、 毅宗朝에는 內侍의 左右番이 遊競에 憑托하야 珍寶書畵를 獻上하였으며、忠宣王은 燕邸에 萬卷堂을


一 一ᄋ 料構하야^fM' 姚經* «s:f!> 處»:等 ffiE와 名歌 * 家 들로 交遊하되 特히 木^에서 詩書®三絕로 稱頌되던 李 益齋를』1H致하야 그들과 交避하게 하였으니* 王이 이미. 能®의 才로써 다시 三絕의 益齋公올 £致한것은 忖度하 건댄 例文致學에만 뜻이 있^다느니보다 畫道에精逸-名 (3)

  • 의 收拾에도 意略이 있었다 할것이니 趙孟®'벌서 名

畫ᄎ家이지만 姑蘇 朱德调과도 親交를 맺고 王公®- 任 仁癸、李衍、張彥輔,g!]道權等大家들을 品騰하며, 韋僵처 에 畫松韓幹의»f馬等古*를들어詩:*致의書論을設立 한 鶴林公이 어찌 高瓶畫 發展에 도움이 되지 않았으라,- C4 /J 士ᄎ夫로서 畫道에 能한이가 많음을 말치마자——智勒

  1. 의 廣智禪師가 ; 釋徒로서ᄀ方文游然餘經寄圖盡ᄂ라일컬

0나 ,J 으진 好畫癖을 들지 마자 ᅵ 그러나 圖t«見聞tl에ᄀ熙寧E- 黄歲.遺使金良蜜人貢.,訪求中國圖肅- 鋭意購求、稍精者十 無 M;«SO%%-01JO:§^J 이라 한것는 무엇을 말한것일 것이며,同書에 r丙M.冬 •«遺使«思,;/|[人貢"B將帶畫 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