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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四真興王。即位時年十五歲。太后攝政。太后乃法興王之女子。立宗葛文王之妃。終時削髮被法衣而逝。承聖三年九月。百濟兵來侵於珍城。掠取人男女三萬九千。馬八千匹而去。先是。百濟欲與新羅合兵謀伐高麗。真興曰。國之興亡在天。若天未厭高麗則我何敢望焉。乃以此言通高麗。高麗感其言。與羅通好。而百濟怨之。故來爾。 |
제24대 진흥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 나이가 15세였으므로 태후(太后)가 섭정(攝政)을 했다. 태후는 법흥왕(法興王)의 딸로서 입종(立宗) 갈문왕(葛文王)의 비였다. 왕은 임종에 즈음하여 머리를 깎고 법의(法衣)를 입고 있다가 운명했다. 승성(承聖[1] 3년(554년) 9월에 백제의 군사가 진성(珍城)에 와서 침범하여 남녀 39,000명과 말 9,000필을 빼았아 갔다. 이보다 먼저, 백제가 신라와 더불어 군사를 합하여 고구려를 치자고 먼저 말했었다. 이때 진흥왕이 말했다.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만약 하늘이 고구려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내가 감히 어떻게 고구려의 멸망을 바라겠느냐.” 또한 이 말을 고구려에 전했다. 고구려는 이 말을 듣고 감격하여 신라와 서로 평화롭게 사귀었다. 그러나 백제는 이로써 신라를 원망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렇게 된 것이다. |
桃花女 鼻荊郎 |
도화녀 비형랑 |
第二十五舍輪王。諡真智大王。姓金氏。妃起烏公之女。知刀夫人。大建八年丙申即位古本云。十一年己亥。誤矣。 御國四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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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梁 원제元帝의 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