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扶餘王解夫婁之相阿蘭弗。夢天帝降而謂曰。將使吾子孫立國於此。汝其避之謂東明將興之兆也東海之濱。有地名迦葉原土壤膏腴。宜立王都。阿蘭弗勸王移都於彼。國號東扶餘。夫婁老無子。一日祭山川求嗣。所乘馬至鯤淵。見大石相對俠流。王怪之。使人轉其石。有小兒金色蛙形。王喜曰。此乃天賚我令胤乎。乃收而養之。名曰金蛙。及其長為太子。夫婁薨。金蛙嗣位為王。次傳位于太子帶素。至地皇三年壬午。高麗王無恤伐之。殺王帶素。國除。 |
북부여(北扶餘)의 왕 해부루[1]의 재상 아란불(阿蘭弗)의 꿈에 천제(天帝)가 내려와 이르기를, 장차 내 자손을 보내어 여기에 나라를 세울 것이니, 너는 이를 피하라이르되 동명(東明)이 장차 흥할 징조이다.. 동해의 바닷가에 가섭원(迦葉原)이라는 땅이 있어 토양이 기름지니, 도읍을 세우기에 좋다고 하였다. 아란불은 왕에게 그 곳으로 도읍을 옮길 것을 권하였고, 국호를 동부여라 하였다. 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었다. 하루는 산천에 제사를 지내어 후사를 구하였다. (부루가) 탄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러, 큰 돌을 마주하고 의기롭게 우는 것을 보았다. 왕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굴리게 하니,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금빛 개구리 모양이었다. 왕이 기뻐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하늘이 나에게 내려준 자식이로구나!” 하였다. 이에 맡아서 그를 키웠다. 이름하여 금와(金蛙)[2]라 부르고 그가 장성하자 태자로 삼았다. 부루가 붕어하였고, 금와가 후사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 다음에는 태자 대소(帶素)[3]에게 왕위를 전했다. 지황(地皇) 3년 임오(壬午)년(서기 22년)에 이르자, 고려왕 무휼(無恤)[4]이 그를 토벌하여 왕 대소를 죽이자, 나라가 없어졌다. |
高句麗 |
고구려 |
- ↑ 해부루(解夫婁, ? ~기원전 60년경)는 부여의 왕이다. 해모수의 아들이며, 금와왕의 아버지이다.
- ↑ 금와왕(金蛙王, ? ~기원전 24년 재위:기원전 60년경~기원전 24년경)은 부여의 왕으로 성은 해(解), 이름은 금와(金蛙)이다.
- ↑ 대소왕(帶素王, 기원전 59년이전 ~ 22년 2월, 재위: 기원전 24년 ~ 서기 22년 2월)은 부여의 왕으로 성은 해(解)이고 이름은 대소(帶素)이다.
- ↑ 대무신왕(大武神王, 4년~44년)은 고구려의 제3대 왕(재위 : 18년~44년)이다. 대해주류왕(大解朱留王)이라고도 한다. 왕후는 갈사왕의 손녀인 해씨부인(解氏夫人)이고, 성은 고(高), 휘은 무휼(無恤)이고, 추모왕의 손자이자 유리명왕의 셋째 아들이다.